안성기의 선택, 밀로스 포먼의 <아마데우스> 시네토크


1월 30일 오후 3시,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게 짧은 경고(?)가 주어졌다. “혹시 90분이나 100분으로 알고 오신 분들께 미리 말씀드리면, 이 영화는 세 시간짜리 영화입니다.” 하지만 새롭게 디렉터스컷으로 관객과 만난 <아마데우스>는 시계를 확인할 틈도 없이, 하품할 여지도 주지 않고 그대로 달렸다. 따라 웃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모차르트의 기이한 웃음소리와 음흉함, 어두운 열정으로 차 있는 살리에르의 표정은 그들이 이 영화를 사로잡고 있다고 자신하는 듯 했다. 관객과의 대화까지 끝나니 이미 해는 떨어진지 오래. 친구는 관객을 핑계 삼아, 관객은 친구를 핑계 삼아, 서로 말보다는 영화로 마음을 나눴던 그 시간을 담았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오늘 보여드린 <아마데우스>는 새로 복원된 디렉터스컷 버전으로 처음 공개한 것이고 필름 상태도 좋았는데, 상영관 위에 뮤지컬 전용관이 있어서 영화의 음악을 듣는 데에 불편하셨을 것 같다. 올해 친구들 영화제를 하면서도 제대로 된 공간을 마련하자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최상의 상태와 조건에서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스럽다. <아마데우스>는 작년에도 안성기 씨가 같이 보고 싶어 하셨던 영화 중 하나다. 먼저 왜 이 영화를 꼽으셨는지, 오늘은 어떤 느낌으로 보셨는지 듣고 싶다.

안성기(영화배우): 영화를 보고 나면 얘기를 더 하고 싶은 영화고 있고 그냥 가만히 앉았다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후자에 속하는 영화인 것 같다. 더 얘기하면 뭔가 깨질 것 같다. 이 영화는 84년에 미국으로 <깊고 푸른 밤>을 찍으러 갔을 때 처음 봤고, 나중에 단성사에서 우리나라에서 개봉했을 때 봤다. 완전히 압도당했던 기억이 난다. 권투 선수가 제대로 펀치 맞으면 별이 보이고 힘이 빠지면서 행복하다고 하는데, 그런 펀치 맛을 오늘 또 한 번 느낄 수 있어서 대단히 기뻤다. 밀로스 포먼 영화는 대부분 좋아하는 편이고, 특히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헤어>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헤어>는 반전 영화였기 때문에 70년대 후반에 열악한 비디오테이프로 봤는데, 보고 정말 흥분했고 감동 받았다. 다시 볼 기회가 없었는데, 좀 전에 작년에 아트시네마에서 했다고 들었다. 그걸 왜 놓쳤는지 모르겠다. 하는 줄 알았으면 보러왔을 텐데. 앞으로도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여러분들 핑계를 대고 같이 봤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배우다 보니까 연기를 중점적으로 보게 되는데,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오랫동안 사람들 마음속에 각인되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 작품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눈에 선해서, 더 감명을 받았다. 그 이후로는 두 배우 모두 사실 이렇다 할 성공작이 없다. 살리에르 역의 F. 머레이 에이브러햄은 주로 악역 조연들을 하면서 빛을 못 받았다. 모차르트의 톰 헐스도 다음 연기부터는 힘을 못 썼던 것 같다. 어쩌면 모든 것을 이 영화에 쏟아 부어서 그런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김성욱: 두 배우는 살리에르와 모차르트로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마지막에 밤을 새면서 레퀴엠을 써나가는 순간에 두 사람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결과적으로 아카데미에서는 살리에르를 맡았던 에이브러햄이 상을 받긴 했지만, 두 배우가 모두 압권이다. 배우가 봤을 때 두 사람의 연기가 어떤 면에서 강렬하게 다가오셨는지.

안성기: 톰 헐스의 경우는 감독의 요구가 있긴 했겠지만, 직접 만나면 웃음은 누가 설정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모차르트를 저렇게 맘대로 자유롭게 만들었다는 사실, 거기다 저렇게 잘 연기했다는 것까지 대단히 훌륭했다. F. 머레이 에이브러햄은 볼 때마다 그 배우 이상으로 감탄하는 연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웃음) 무언가를 보거나 듣고 느낄 때의 리액션 연기가 대단하다.

영화를 보면서 음악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병원에서 회상을 할 때 음악이 많이 들어가는데, 한 번은 귀를 꽉 막고서는 연기만 봤더니 별로 볼품이 없더라. 음악이 웅장하게 들어가고 감정이 실리니까 감정의 폭이나 연기가 훨씬 커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굉장히 좋은 음악을 써서 그랬겠지만, 음악이 영화의 힘에 미치는 역할이 큰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김성욱: 어떤 감독은 음악과 소리가 연결된 연기의 패턴이 있는 경우에 음악을 진짜로 틀어놓고 작업하는 경우도 있더라. 그런 경험이 있으신지.

안성기: 같이 작품을 많이 했던 배창호 감독과 그런 시도를 몇 번 해봤다. 요즘에는 음악 작업 시기가 빨라졌지만, 예전에는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음악을 만들었다. 그런데 비슷한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는 비슷한 음악을 미리 가져와서 배우가 리허설 할 때 들려주면 감정이 잘 살아난다. 여배우들의 경우엔 특히 음악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감정의 폭이 넓거나 흐름이 눈에 보일 정도의 음악이 있다면 그런 식으로 작업했다. 물론 홍보 스틸이나 다른 사진 촬영 때도 음악을 많이 틀어놓는다. 작가들이 컨셉에 맞게 음악을 틀어놓으면 거기에 적응해서 좀 더 쉽게 촬영에 임할 수 있다.

 

김성욱: 모차르트는 하이든이 40세에 보여준 음악적 완성도를 이미 8살 때 보여준 천재적 음악가로 알려져 있다. 살리에르와 모차르트의 갈등도 범용한 예술가와 천재적 예술가 간의 갈등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사람도 30, 40대가 넘어서 10대의 글을 보고 감탄하는 경우도 생긴다. 비슷하게 너무 젊고 경험도 별로 없는 것 같은 어떤 배우의 연기를 보고 놀랄 수 있지 않나. 혹은 가끔 본인의 재능에 대해 살리에르처럼 느끼거나, 아니면 모차르트처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연기자의 입장에서 재능이라고 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성기: 물론 재능은 중요한 부분이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사람도 있고, 조금만 해도 잘 되는 사람이 있다. 예술에 있어서는 불공평한 부분이 생긴다. 근데 배우들의 경우는 본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어떤 연출자와 만나는가도 그만큼 중요하다. 어떤 배우가 어떤 감독하고 만났을 때는 호흡이 잘 맞아서 굉장히 빛나는 보이는 반면, 어떤 때는 굉장히 바보 같아 보일 때도 있다. 감독이 작품을 읽는 능력, 디테일에 대한 요구 같은 것들이 배우에게 감동이나 자극을 주면, 배우 속에 잠재되어 있던 것들이 발현된다. 그렇지 않으면 배우에게도 한계가 있어서 평범해지고 만다. 나 역시도 몇 번 그랬다. 배우나 감독의 관계엔 어느 정도 그런 등식이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어느 순간 자신이 너무 평범한 재능을 가진 것 같다는 의심이 들 때 작업을 지속해 나가는 동기나 믿음은 어디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안성기: 좋은 시나리오를 읽으면 자극을 받는다. 배우에게는 연기자 자신의 재능이나 연출자의 도움 이상으로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능력도 매우 중요하다. 참 좋은 시나리오들이 있다. 읽으면 상상력이 생기면서 점점 디테일한 이미지들이 떠오르는 시나리오가 있다. 그런 건 반드시 해야 된다. 그리고 십중팔구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 반면 시나리오 자체는 좋은데 배우의 상상력이 일어나게끔 하지 못하고 캐릭터들이 자유롭지 못한 경우도 있는데, 그럴 경우는 결국 실패를 맛보게 된다.

 

관객1: 많은 관객들이 비교적 평범한 인물인 살리에르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볼 것 같다. 안성기 선생님은 어느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되셨는지. 만약 살리에르라면, 평소에 모차르트처럼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상대가 있는지.

안성기: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 비밀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밝히라는 말인데. (웃음) 영화 쪽에서는 천재성이라는 것이 통하는지 잘 모르겠다. 채플린 같은 사람을 보면 정말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 외에도 대단한 사람들은 많지만, 그들이 모두 천재라는 생각은 잘 안 든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우리 모두는 살리에르와 같은 마음을 품고 산다고 생각한다. 살리에르를 통해서 그려지는 인간의 안 좋은 욕심, 본성적인 부분, 질투심이나 증오 같은 감정들은 사람마다 크기는 달라도 조금씩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도 <올드보이>의 최민식 씨를 보면 ‘죽였다, 정말.’ 이렇게 생각한다. 근데 내가 하면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최민식이라는 배우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나로서는 그렇게 안 가는 게 맞다. 내가 어리숙한 연기를 잘하고 그러니까 최민식 씨가 반대로 갔을 수도 있겠지만. (웃음) 요즘 배우들은 자기만의 개성이 있지 않나. 다른 배우의 세계를 건드려서는 안 되겠다 싶으면 그쪽은 놔두고 자기의 세계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객2(신연식 <페어 러브> 감독): <아마데우스>에서 톰 헐스가 피아노 치는 게 전문가 수준인 것 같더라. <피아노 치는 대통령>도 생각이 났다. 그 작품에서 피아노나 다른 영화를 통해 악기 연주를 직접 준비하신 적이 있으신지.

안성기: <피아노>에서 노래 한 곡을 꼭 쳐야했다. 중요한 부분이어서 안칠 수가 없었다. 근데 그 전까지는 피아노 손도 안 대본 사람이어서, 피아니스트한테 찾아가서 아무 것도 모른다고, 가르쳐달라고 해서 배웠다. 영화 <모정>의 주제곡이기도 하고, 우리에겐 앤디 윌리엄스의 목소리로 기억되는 ‘Love Is A Many Splendid Thing’이란 곡인데, 아시는지. (노래 한 소절) 배우는 데 왼손 한 달, 오른손 한 달, 같이 치는데 한 달, 합쳐서 석 달 걸렸다. 그게 마지막 촬영이어서 다섯 달 동안 연습했는데,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감독이 무척 좋아했다. 마음대로 카메라 갈 수 있었으니까. 아니면 카메라를 얼굴로 올렸다가 배경으로 돌리고 해야 했을 거다. 요즘 관객들은 빨라서 흉내만 냈는지 실제로 친 건지 다 안다. 흉내만 내면 벌써 영화에 방해가 된다. 그런 부분은 감독이 말하기 전에 배우가 만들어야 될 부분이다. 다른 악기도 다뤄보고 싶은데, 마음뿐이고 쉽지는 않다. 배우란 직업이 참 좋은 것이, 영화에 필요하면 돈 받아가면서 배울 수가 있다. 또 그런 기회가 생기면 열심히 배울 생각이다.

 

관객3: 아까 <모정> 얘기하시니까 나중에 여기서 <모정>도 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아마데우스>는 85년도 개봉 때 처음보고 TV에서 할 때도 감동이 깨질까봐 안 봤는데, 오늘 극장에서 보니 그 때의 감동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런데 두 배우가 그 뒤로는 다시 좋은 연기를 보여주지 못해서 안타깝다. 선생님께서는 정말로 좋은 작품 하나를 하는 것과 꾸준히 작품을 해나가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시는지.

안성기: 지금까지 계속 가늘고 길게 왔기 때문에 갑자기 짧고 굵게 가라고 하면 당황스럽다. (웃음) 물론 누구에게나 불같이 한 번 확 타올랐다가 꺼지고 싶은 생각들은 있을 것이다. 누구도 꼼짝 못하는 영화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 영화인들이 꿈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이 예술가의 아주 본질적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 영화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호흡조절을 잘 해서 끝까지 잘 도착하고 싶다. 운명론적 생각인지는 몰라도, 자기 그릇의 크기는 나름대로 정해서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 그릇에 채워져 있는 것을 빨리 취할 것이냐, 조금씩 취하면서 살 것이냐 하는 문제인 것 같다. 내 그릇이 이만하다면, 그걸 조금씩 밧데리 용량 써나가듯이 조금씩 쓰고 있는 것 같다.

 

관객4: 살리에르가 과거를 회고를 하면서 영화를 진행시키는 면이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 같다. 한 배우가 다른 시간의 인간을 연기하는 부분이 인상이 깊었다. 최근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같은 영화에서처럼 한 배우가 다른 시간의 인간을 연기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선생님께선 실제 나이와 전혀 다른 나이를 연기하실 때 어떠셨는지.

안성기: 당시에는 살리에르의 분장을 비롯해서 무척 잘 만들어진 인물이었다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스스로 아쉬운 작품은 배창호 감독과 했던 <흑수선>이다. 보통 15년 안팎의 세월 차이는 헤어스타일, 몸짓으로 커버할 수 있지만, 30년이나 40년이 넘는 경우에는 특수 분장이 필요하다. 그 때가 2003년이었는데, 75세 정도로 분장했어야 됐다. 그런데 같이 연기했던 이미연 씨가 두드러기가 나서 분장이 힘들어서 둘 다 약간의 분장으로 적당히 커버를 하려고 했는데, 감정이 안 실리더라. 그래서 관객들도 당황한 것 같다. 배창호 감독은 영화는 마음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시대에는 워낙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까 생각만큼 영화가 잘 되질 않았다. 또 배창호 감독이랑 했던 <꿈>이라는 영화도 비슷한 경우였는데, 늙고 병색이 서려있는 모습이 연기로는 안 되는 거더라. 요즘은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당시 88년이라 기술적 한계도 있었다. 분장기술도 좋아졌고 주름도 잘 잡혀있는 편이니까, 앞으로 얼마든지 좋은 노역들을 많이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김성욱: 시간이 많이 지났다. 처음 얘기하셨던 것처럼 이 영화는 같이 보고 집으로 그냥 돌아가 생각하고 싶은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장시간 대화를 나눠주셔서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이 있으시다면.

안성기: 관객여러분은 또 내년에 어떤 영화가 보고 싶으신지. (웃음) 덕분에 저도 보고 싶은 영화 봐서 좋았다. 아트시네마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시간,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아까 처음에 용감하게 말씀해 주신 분처럼, 모두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후원에 많이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 영화에 대한 사랑 간직해 주시기 바라고, 영화와 더불어 행복해 지셨으면 좋겠다. (정리: 이후경)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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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 감독이 추천한 <트로츠키의 암살> 시네토크

오승욱 감독의 추천작 <트로츠키의 암살> 상영 후 시네토크가 진행되었던 지난 1월 29일, 시네마테크를 지키기 위한 관객 스스로의 후원운동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오승욱 감독은 시네마테크의 이름이 아닌, 지금까지 이어져온 어떤 정신과 친구가 되었다 생각한다며, 관객들 스스로 그 정신을 지켜가기 위해 움직여가는 모습에 감사와 지지를 보냈다. 시네마테크, 그리고 오승욱 감독이 전하는 이상하고 매혹적인 영화 <트로츠키의 암살>에 대해 나눈 관객과의 대화 일부를 옮겨본다.


 

오승욱(영화감독): 영화에 대해서 얘기하기 이전에 시네마테크의 이 상황에 대해 오승욱 개인으로서 한마디 하고 싶다. 공모제를 한다는 것이, 지금의 상황에서 더 좋게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진정 모르겠다. 문제의 본질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시네마테크라는 것은 어떤 정신, 생각들이라고 본다. 제가 ‘시네마테크의 친구 된 것은 이곳을 운영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관객들과 같이 볼 영화를 고민해왔던, 시네마테크 사람들의 정신과 친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곳의 껍데기만 남고, 다른 무엇으로 바뀌거나 대체된다는 것은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한다. 저는 시네마테크의 이름, 단순히 어떤 건물과 친구가 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곳이 운영되어 온 정신과 친구가 된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이 훼손된 것에 대해 굉장히 불쾌해했지만,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희망이 보인다. 방법이 생겼구나 싶다. 관객들 스스로의 의지로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에 대한 돌파구를 만들어주셨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관객 분들께 정말 감사드린다. 이것이 하나의 돌파구가 되어 자본에 의해서 정신이 훼손되거나 좌지우지 되지 않을 어떤 기회를 만들어 준 것 같아 감사하다. 시네마테크가 지녀왔던 정신, 생각들을 의연히 지켜나가고, 관객 분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관객 여러분들만큼 저도 노력하겠다. 이게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이었습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저희들이 굴복당하지 않게끔 나셔주셨으면 합니다. 한번 무너지면 그 다음에 할 이유가 없는 게 맞는 것 같다. 어느 나라나 한 번은 나서야 될 때가 있다. 영화를 아시는 분이라면 아실 것 같다. 굴종을 참으라고 얘기하도록 말하는 상황을 만들어주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푸코가 말했듯, 지금은 사회가 방어를 해야 할 상황입니다.

 

시네마테크의 이름이 아니라 사람들, 정신과 친구가 된 것


 

김성욱: 이제 영화 얘기로 들어가서 오승욱 감독님께서 이 영화를 추천해주셨는데, 처음에 이 영화를 보셨을 때랑 지금 다시 본 느낌이 어떠신지 궁금하다.

오승욱: 이 영화를 처음 알게 된 건 옛날 일본의 『스크린』에서 영화 포스터 특집기사에 실린 포스터를 통해서였다. 알랭 들롱 주연의 포스터들을 소개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암살자의 멜로디>라는 제목이었다. 세 인물의 얼굴이 담긴 포스터였는데, 제목부터도 호기심이 생겼다. 한국에서 개봉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90년대에 NHK 방송을 통해 이 영화를 처음 봤다. 암살자를 다루는 보통의 영화들과는 내용이 좀 다르다. 감정 이입을 인물이 없고, 킬러의 내면이나 살인의 동기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계속 뇌리에 남는 건, 로미 슈나이더, 알랭 들롱, 그리고 리처드 버튼이 연기한 트로츠키의 이상한 감정들이었다. 그리고 나서 십년 후에 DVD로 이 영화를 다시 봤는데, 제일 재밌게 봤던 건 로미 슈나이더와 알랭들롱의 관계였다. 예전엔 제 기억에 로미 슈나이더가 알랭 들롱을 때리는 장면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런 장면은 없었다.(웃음) 둘이 함께 있는 장면에서의 감정이나 관계가 격렬하면서도 이상하게 그려진다. 이 영화가 조셉 로지의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재밌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남성들이 굉장히 히스테리컬하다. 트로츠키가 하는 행동이나 말들도 그렇다.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녹음기에 대고 하면서, 링컨같이 되고 싶다고 하는 말이나, 자신의 말은 앞문으로 빠져나가 전 세계를 돌아 뒷문으로 들어온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상한 과대망상도 보인다. 알랭 들롱의 캐릭터도 분명히 잡히지 않는다. 그가 보이는 강박적이면서 히스테리에 휩싸인 모습들이 이 시대의 뭔가 히스테리컬한 남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에 로미 슈나이더는 그 히스테리컬한 남성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격렬해 보이긴 해도 다른 남성들에 비하면 비교적 제정신인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자꾸 조셉 로지란 사람이 생각나게 된다. 조셉 로지는 사실 매카시 광풍에 의해 미국에서 쫓겨나 유럽에서 살면서, 네 개의 이름을 가지게 된 사람이었다. 이 영화에서 알랭 들롱은 자신이 벨기에인이라고도 했다가 캐나다인이라고도 한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조셉 로지의 처지가 자꾸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일들, 그리고 김구의 암살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이 연결되기도 한다. 알랭 들롱은 어떤 신념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가 붙잡히면서 어머니 얘기를 꺼내는 장면에서는, 비겁하고 소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나는 트로츠키를 죽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다. 아무것도 아닌 인간들이 뭔가 시나리오를 만들고 일을 꾸미고 작당을 하면 꼭 어떤 일들이 벌어진다. 사실 이 영화가 썩 재밌는 영화가 아니다. 누구의 이야기를 따라가야 할지 감정선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알 수 없지만 흥미 있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영화 초반부에 멕시코 화가, 시케이로스를 굉장히 많이 보여준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그는 트로츠키의 암살에 연관이 되어있는 사람이다. 그가 조직을 해서 암살을 공모하는 장면이 있는데, 굉장히 미숙하고 허술한 모습으로 그린다. 알랭 들롱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허술한 사람이다. 그렇게 허술하고 상당히 보잘것없는 그런 사람들이 일을 꾸민다는 것, 그들의 이상한 허세와 강박들이 인상적이다. 정확하게 어떤 해석을 내리기는 어려운 영화 같다. 조셉 로지는 평소에, 어떤 사건들과 이야기의 결들이 따로따로 놀다가 어느 한 지점에 합쳐질 때 느껴지는 힘들을 즐긴다고 했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런 점이 느껴진다.

 

김성욱: 이 영화는 수수께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 벽화가 많이 등장하는데, 종종 벽화의 특정 장면들이 클로즈업되어 보여 진다. 그리고 영화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정지해, 스틸사진처럼 보여주는 장면들이 있는데, 마치 벽화의 배경을 이루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현실의 어떤 사건이 멕시코의 뒷 배경을 이루고 있었던 어떤 벽화처럼 그려지는 것 같다. 도끼로 트로츠키를 내리치는 순간 장면이 정지되는데, 그 뒤를 이어 트로츠키나 알랭 들롱이 굉장히 고함을 치고 소리 지른다. 정지된 사진 혹은 벽화 같은 것은 소리가 없는 이미지인데, 왜 정지된 스틸 사진과 같은 장면들을 구성했을까 싶기도 하고, 그리고 그것과 대비되는 고함소리가 묘한 효과를 주는 것 같다. 또 영화는 잭과 트로츠키, 두 인물을 중심으로 설정되면서, 인물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트로츠키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다른 한편으로는 ‘암살자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이 생긴다. 그것이 최종적 순간에 합의를 보게 되는 건 결국 ‘그는 트로츠키를 죽인 사람이다’이다. ‘그’를 정의하는 것은 ‘트로츠키를 죽였다’는 사실이다. 이런 방식으로 인물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영화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과도한 거울 장면의 사용 등을 통해서도 드러나는 듯하다.

오승욱: 이 영화는 역사적 사건 그 자체를 다룬다기보다, 굉장히 얄팍한 사건과 얄팍한 인물들을 그린다. 개인적으로 암살자와 관련된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그런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해서, 자료들을 찾아보곤 했다. 공통적으로 암살되는 대상들은 허세일 수도 있는, 굉장히 얄팍한 어떤 모습을 갖고 있다. 그런 점들이 이 영화에서 얘기하려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성욱: 이 영화의 제목이 일본에서 <암살자의 멜로디>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던 것은, 아마도 <순응자>의 번역 제목이 <암살자의 숲>이어서 그렇게 이어지는 것 같다. 두 영화에는 연결 지점, 비교 가능한 지점들이 있다.

 

올 여름 시네바캉스에서는 알드리치의 <피닉스>를 함께 보고 싶다!



 

관객1: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적이 없다. 트로츠키의 암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관심이 있어 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비장한 분위기일 거라는 예상과는 영화가 많이 다른 것 같다. 시네마테크가 사라진다면, <트로츠키의 암살>같은 영화를 앞으로 볼 수 있을까. 우리도 힘을 모아서 움직여야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관객2: 오승욱 감독님이 추천하셔서, 인과관계가 탄탄한 영화를 상상했는데, 아니었다. (웃음) 영화적 형식이 인상 깊다. 말씀하신 것처럼 <순응자>가 떠오를 정도로, 촬영과 편집, 미장센이 특이하다. 투우하는 모습과 알랭 들롱의 모습을 연결시키는 방식, 트로츠키의 요새를 표현하는 방식, 노이즈에 가까운 과잉된 음악사용, 갑자기 정지되는 화면 등이 눈에 띈다.

오승욱: 조셉 로지의 연출에 대해 김영진 씨가 말한 것이 있다. ‘이상하지만 매혹적인 알레고리를 갖고 있는데,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끈적끈적한 알레고리의 그물을 갖고 있다’고 한 부분에 동의한다. 이 영화만 봐도 굉장히 건조하게 찍힌 영화 같지만, 굉장히 뭔가 촉감적으로 이상한 부분이 있고, 끈적끈적한 것들이 있다.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 이 영화는 어떤 부부에서는 과잉되고, 촌스럽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으면서도, 투우장면 처럼 강렬하게 인상적인 장면들도 있다. 쇼트와 쇼트를 붙이는 과정이 굉장히 울퉁불퉁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투우장면과 알랭 들롱을 연결시켜 파워풀한 힘을 발생시키기도 하고, 저처럼 영화에 없는 장면까지 기억할 정도로 영화를 확장시켜 생각하게 할 정도로, 어떤 매력을 갖고 있다. 조셉 로지는 에이젠슈테인에게 영화를 배웠고,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긴 했어도, <하인>만 해도 이 영화와는 느낌이 좀 다르지 않나. 이 영화는 아주 작정하고 울퉁불퉁하게 만들어졌고 굉장히 불친절하다. 그런데 굉장히 매혹적이고 이상한 마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작년 친구들 영화제에서 제가 선택한 <들판을 달리는 토끼>에 이어 이번 <트로츠키의 암살>이 두 번째 이상한 영화가 된 것 같다. (웃음) 이상한 영화적 경험을 주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정말 보고 싶었던 영화중에 하나가 로버트 알드리치의 <피닉스>였다. 사막에서 비행기를 타고 멋지게 날아올라 탈출하는 영화이다. 우리가 시네마테크를 지켜내서 여름의 시네바캉스에서 알드리치의 <피닉스>를 함께 꼭 보고 싶다! (정리: 장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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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r. tough 2010.02.02 0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함께 시네마테크를 지켜내서 올 여름 <피닉스>를 볼 수 있기를~ ^-^

시네마테크의 선택, 찰스 로튼의 <사냥꾼의 밤> 시네토크

1월 26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인 찰스 로튼의 <사냥꾼의 밤>이 시네마테크의 필름 라이브러리로 직접 구매한 뉴 프린트로 선을 보였고, 이어 김성욱 프로그래머와 관객과의 대화가 마련되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영화의 마지막에 아이들이 자기가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 것처럼, 시네마테크 역시 있는 것 가운데서 조금 포장해 놓은 선물처럼 시네마테크의 선택이라고 내놓았다. 어찌 보면 민망할 수도 있다. 뭐, 저런 게 선택이야 싶지만 크고 대단한 것만이 선물이 아니라 있는 것 중에서 마음으로 전달하는 것이 릴리언 기시의 말대로 최고의 선물일 수 있다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 시네마테크의 상황을 느낄 수 있는, 비장한 심정이 흐르던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시네토크를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아이들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이고, 크리스마스 때 틀면 적합하겠다 싶다. 하지만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여기서 아이란 예술의 아이들, 즉 예술의 유년성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영화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아이의 영화와 어른의 영화가 있습니다. 아주 초기의 영화는 유년기의 예술이자 아이의 영화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나중에 영화를 접한 우리들의 경우는 그것이 어른의 예술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50년대나 60년대 누벨바그리언들이 시네마테크에서 발견한 영화는 어른의 예술이었습니다. 하워드 혹스나 알프레드 히치콕과 같은. 하지만 어른의 예술 안에서도 예술의 유년성, 유년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세르주 다네가 시네필에 대해 언급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그는 아이들이 등장했던 영화들 몇 편을 거론하면서-프리츠 랑의 <문플리트>, 베르히만의 <파니와 알렉산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합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언제나 학교에는 이런 애들이 있었습니다. 활발하지도 않고, 두세 명 혹은 혼자 노는 애들말입니다. 그런 애들 중의 대부분이 나중에 시네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아이들은 어딘가 도피할 생각도 하지 않았던 아이들입니다. 저 또한 그러한데, 별로 문제를 저지르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혼자 조용히 동네 재개봉관에 가서 영화를 보러 가곤 했습니다. 어디로 도피할 자신도 없었고, 도망갈 생각을 할 만큼 상상력이 풍부하지도 않았고, 그런 가운데 들어갈 법한 곳이 극장이었던 것입니다. 적은 돈으로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던 곳. 그래서 어딘가 도망갈 순 없었던 사람들이 그 안에서 거주하게 되는데, 그 안에서 다른 세상을 발견하게 되고, 그래서 동시에 두 세계에 존재하는 경험을 하게 됐던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아이들은 도피할 것인가의 문제에 처합니다. 릴리언 기시가 예수의 탄생과 아이들을 죽이려고 했던 해롯왕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도망가야만 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이 영화의 아이들은 도망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보호를 받았습니다. 오히려 도망가듯이 자꾸 빠져나가는 아이는 루비입니다. 다네가 지적한 것도 아마도 그런 부분일 것입니다. 어딘가 도피하지도 못하고, 혹은 더 나이가 든 루비처럼 어른들의 꼬드김에 현혹되기 전 단계의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감성 안에서 시작되고 형성된 것이 시네필이라는 사람들이 지닌 일종의 모럴리티인 것입니다. 도피하지 않으면서 대신 그 안에서 견뎌나가는 것, 그리고 동시에 두 세계에 거주하는 것. 그것이 시네필의 모럴리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 어린아이들의 세계와도 연결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아이들을 지키는 어머니역은 릴리언 기시로 그리피스 무성영화에 나왔던 불멸의 스타였던 배우입니다. 이 영화를 하나의 ‘영화에 대한 우화’로서 가정 했을 때, 아이들, 그리고 어른들의 세계, 그리고 루비로 표현되는 청소년기, 즉 무언가에 현혹되어 조금씩 바깥으로 빠져나가려는 그러한 시기의 인물들이 있습니다. 릴리언 기시는 “여자들은 다 저래. 다 속아 넘어가고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낳은 아이들을 내가 데리고 있을 수밖에 없어”라고 자조적이며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런 방식으로 어른에 현혹되어 빠져나가려는 루비가 동네에서 산 것은 '현대 영화'라는 잡지로, 이는 마치 당대의 현대영화 혹은 어른들의 영화라고 포장되어 미숙한 이들을 현혹하고 있었던 세계처럼 보입니다. 그런 어들들의 세계와 대항해나가며 존재하는 사람이 릴리언 기쉬로, 영화의 기원성에 존재했던 여배우입니다. 이 영화에서 매우 독특하다고 느꼈던 것은, 로버트 미첨이 “기대라. 기대라”하는 성가를 부를 때, 릴리언 기시가 총을 들고 지키면서 그 노래를 따라 부르는 순간입니다. 이 장면과 관련해서 마그리트 뒤라스가 언급했던 것처럼 로버트 미첨의 노래 소리는 세이렌의 노래 같은 것으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반대로 릴리언 기시는 그 동일한 노래를 부르지만, 그것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공간 내의 아이들을 보호해내는 노래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선택하면서 떠올렸던 것은, 시네필의 모럴리티입니다. 그것은 도피가 아니라는 것. 환상적인 세계로 빠져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또 다른 세계를 꿈꾸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때가 때인만큼 문득 시네마테크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달콤한 목소리로 들어오는 로버트 미첨과 같은 존재가 있고, 그로 인해 떠돌아다니는 아이들처럼 8살 먹은 서울아트시네마는 표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표류하고 있는 것이지, 도망가는 것도 도망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잘 견뎌내고 참아낸다”라고 이 영화에서 릴리언 기시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보면, 미첨을 때려죽이려고 하고, 교수형에 처하려는 어른들이 있는데, 그런 가운데 굳건히 릴리언 기시가 지켜나가려는 것은 그들과는 다른 모럴리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올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가장 돈 없이 시작이 되었지만, 우리 안에서 할 수 있는 하나의 선물들을 만들어나가려 했고, 즐겁게 받아들여 주는 관객들의 모습에 기쁨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게 하나의 선물이었으면 합니다. 

관객1: 로버트 미첨을 보면, 노골적으로 늑대 연기를 하고 있는데, 그게 굉장히 재밌기도 하면서 너무 노골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미첨의 연기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

김성욱: 과장되어 있다는 것은 다들 느낄 것 같다. 그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전체가 하나의 동화 같은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고, 잔혹동화 같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정도의 과장성은 통용될 수 있고 재미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영화의 개봉 당시엔 대중들과 비평가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가 너무 한심하고, 톤이 맞지도 않고, 어디서는 다큐멘터리 같고 어디서는 세트에서 너무 과잉적으로 찍었기에 50년대에 만들었을법하지 않다는 거다. 그래서 컬트가 된 영화이기도 하다.

 

관객2: 영화를 보니 <엑소시스트>가 생각났다. 아이가 창문에서 가로등 밑에 서 있는 목사님 같은 장면이나, 아버지가 없는 집에 목사가 찾아오는 것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또 하나는 영화에 동물들이 많이 나오는데, 동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물과 어린 아이들의 유사성을 감독이 영상으로 재현한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김성욱: 우화적, 우의적인 장면이 많다. 자연적 요소들을 어떻게 볼 건가와 관련해 이 영화가 어떤 시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 영화의 전체적 시간 구조는 ‘옛날 옛적에’라는 동화적 시간인데, 그건 또 한편으로 보면 굉장히 고대적이거나 태원적, 시원적인 세계의 시간이다. 거기에 동물이나 자연적인 풍경이 어울리게 표현되어있다. 영화를 보는 자는 성인의 시간 안에 살고 있는데, 동시에 우리 안에 내재되어있는 아이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직설적인 표현이지만 잃어버린 시간 혹은 되찾은 시간의 느낌이 강하다. 찰스 로튼이 그리피스나 초기 미국 무성영화의 전통을 차용하려 했고, 그중 하나가 릴리언 기시의 등장인데, 그런 방식으로 좀 더 근원적인 시간 안으로 들어간다는 점이 자연적인 세트의 장면들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 같다. 많은 영화들에 대한 이 영화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대단한 걸작보다도 오히려 이상한 컬트영화라는 점에서 테마와 특정 장면의 순간에 대한 모방이 매우 많았다고 생각된다.

 

관객3: 영화를 보면서, 종교나 기독교를 가지고 양쪽의 상반되는 것들, 반전, 극과 극의 이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준다는 생각을 했다. 릴리언 기시가 총을 들고 흔들의자에 앉아 로버트 미첨과 똑같은 노래를 부를 때. 한쪽이 암전이면 한쪽이 불이 켜지는 등 동일한 것의 양면성이 드러나는 것 같다. 50년대 작품이니까 미국의 매카시 광풍과도 동떨어지지 않은 것 같다.

김성욱: 말씀하신 것은 시대의 흔적인 것 같다. 특히 미첨을 둘러싼 후반부의 에피소드에는 그런 것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릴리언 기시가 노래 부르는 장면은 유명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흥미롭다. 여기서 어둠이 있어야 바깥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응시할 수 있는 구조가 발생된다. 어두움의 조건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 무언지를 볼 수 있는 시선들을 제공하는 거다. 너무 들떠 있는 밝음이라는 것은 자기 주변의 어둠을 제대로 볼 수 없게 하는 현상을 만든다. 영화의 도처에 이런 표현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 영화에는 시대를 은유하는 것이 많이 느껴진다. 동시에 이 영화가 놀랍게도 지금의 시대를 은유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현명한 게 어떤 건가. 보호 받지 못하는 이 세상 안에서 보호라는 게 도대체 뭔지. 보호받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행동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 든다. 
 

 

관객4: 위선적인 말을 하는 로버트 미첨에게서, 지금 현실을 생각하며 분노를 느낀다. 이 영화는 누아르의 요소도 있지만, 동시에 아이들의 성장 영화인 느낌이 든다. 50년대 미국 사회에 앞으로 닥쳐올 수 있는 균열 같은 것을 찰스 로튼이 예감한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도 있다. 시네마테크가 용기를 냈으면 좋겠고, 어린아이가 참고 견뎌내듯이 능히 우리도 견딜 수 있으리라 본다.

김성욱: 존 카사베츠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10대를 넘겨서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영화를 만든다고. 근데 10대를 넘기기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르주 다네가 시네필에 대해 한 얘기를 짧게 읽으며 자리를 마감하고자 합니다. 

“나는 도망가지 않았다. 우리가 청소년이 됐을 때는 많은 도주하는 방법들이 있다. 환상적인 세계, 공상과학 속으로, 더 나은 세계로 도주할 수도 있었다. 그것이 정치적이든 종교적이든. 그런 유토피아가 있었는데, 그런 것에 나는 관심이 없었다. 왜냐면 나는 어떤 상상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호감이 있는 좋은 세상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살도록 허락되어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좋다는 것을 발견했다. 거기에 살도록 내버려 두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거기에서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생각은 이러했다. 우리는 이 세계를 가질 것이다. 이 세계에 있지만, 우리는 거기에서 결국은 살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 시네필의 핵심이었다.” (정리: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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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 감독이 선택한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 시네토크

날이 풀리는가 싶더니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던 일요일 오후. 3년간 연속 시네마테크의 친구로 활약해 온 이명세 감독이 추천한 영화 <동경이야기>의 상영이 있었다. 이명세 감독은 영화 학교를 만든다면 다섯 명의 감독을 교수로 세우고 싶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해왔다. 그 다섯 명의 명단은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 자크 타티, 페데리코 펠리니, 그리고 오즈 야스지로다. 이들의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오즈의 이름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명세 감독은 ‘진정한 몽상가만이 진정한 리얼리스트’라는 자신의 지론을 토로하며 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선택했는지 진지하게 들려주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올해 이명세 감독님의 선택작은 평소 존경한다고 얘기한 다섯 명의 감독 중 한 분인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다. 처음에는 <만춘>을 선택했는데 필름 수급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동경 이야기>를 상영하게 됐다. 평소에 이명세 감독님이 오즈 야스지로에 대해 얘기를 많이 했는데, 오즈를 어떤 방식으로 만났는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그 얘기부터 들어보며 시작하겠다.

이명세(영화감독): 오즈를 처음 만난 것은 1986년이었다. 초청을 받아 일본에 가서 <태어나기는 했지만>을 봤는데 그 영화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두어 편의 무성 영화와 다른 유성 영화를 봤을 때 어떤 느낌이 왔다. 이 분이야말로 영화를 영화로 찍는 감독이라는 느낌.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서 다시 뉴욕에서 오즈 야스지로 감독전에 갔는데, 그 때 이 분이야말로 영화를 영화로 찍는 감독이라고 다시 생각했다. 오늘도 다시 느꼈는데, 불교의 금강경 1장 1절이 오즈 영화의 핵심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부처님이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입고, 때가 되어 공양을 나가고, 밥을 먹고 돌아와 발을 씻고 자리에 누웠다. 이런 변화 없는 일상이 바로 오즈의 핵심이다. 아시다시피 오즈의 묘비명에는 ‘무(無)’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건 비어 있거나 없는 게 아니라 차있는 것일 수도 있다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막내딸과 며느리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모든 걸 정리한다. 세상은 흘러가고 변하고, 그렇지만 그대로 있다는 대사 말이다. 중간 중간에 보이는 일상의 인서트 숏은 그대로 똑같이 보인다. 평소와 다른 것이 없는 일상들. 들어오면 양말 벗고, 옷 벗고, 청소하고 하는 이런 변함없는 일상이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시간들이다. 이 시간들을 정확하게 자르는 것, 이것은 템포의 문제가 아니라 리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재적인 리듬이 몸에 스며들게끔 말이다. 이것이 오즈 영화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말씀드리면, 내가 꿈에서 만난 감독이 세 분 있다. 한 분은 오손 웰즈를 동물원에서 봤고, 또 한 분은 나에게 “M” 이라고 적힌 책을 주는 히치콕 감독이다. 그 분은 손만 봤다. 근데 오즈는 집에 놀러 왔었다. 오즈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앉아서 내가 오즈 감독님에게 “저도 오즈 감독님처럼 영화 찍고 싶다”라고 말했더니 “당신은 당신의 길을 걸어라”라고 말씀하셨다(웃음). 그래서 기념해야겠다 싶어서 사인을 받으려고 했는데 벌써 안 계시더라.

 

금강경 1장 같은 일상성이 오즈 영화의 핵심


 

김성욱: 나도 고다르를 꿈에서 본 적이 있다(웃음).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보고나면 사실 먹먹해진다. 감독님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했지만 이게 형식의 힘에서 나오는 건지 아니면 오즈의 정신세계가 이 영화 안에서 구현되기 때문 인지 생각하게 된다. 오늘도 먹먹했던 것이 ‘세상은 원래 그렇게 변하는거야’라는 노리코의 대사를 들을 때였다. 오늘 볼 때는 두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하나는 할머니가 손자에게 “너는 커서 뭐가 될 거니?”라고 물어보는 장면이고, 또 하나는 할머니의 임종 전후에 보여주는 사람이 전혀 없는 무인의 풍경이었다. 감독님은 다시 보니 어떤 장면이 인상적이었나.

이명세: 이번에는 다른 것들이 많이 눈에 걸려들었다. 우에노 공원에서 인물들이 화면 밖으로 빠져나갔다가 우산을 챙기기 위해 돌아오는 사소함 같은 것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사소함, 또는 일상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이 영화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챙겨가야 하는 사소함 말이다. 사실 영화 내용을 아는 사람으로서는 그 장면을 보면 화가 난다. 어차피 죽고 다 놔두고 가야 하는데 챙긴다. 그런데 이런 게 살아가는 것이다. 아마 젊은 분들 중에서 시간이 지나서 이 영화를 다시 보면 다른 느낌을 갖게 될 것 같다. 이 영화는 시간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동경 이야기>는 시간이 조금 지나서 보면 다른 많은 디테일들이 들어올 것이다. 나도 10년 만에 보니까 오즈의 뻔뻔스러움이 눈에 들어왔다. 이를테면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같이 안 앉고 다 따로 앉는다. 내 생각에는 화면을 따로 잡을 때 그게 편해서 그런 것 같다. 또는 골목에 정종병 세워놓고 하는 것들. 그런 스타일이 참 뻔뻔해서 웃음이 난다. 오즈야말로 형식적인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오즈 영화의 핵심은 무성영화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정적인 카메라에 거의 정물 같은 프레임을 유지한다.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답답함을 줄 수도 있는데 방금 언급한 버스 장면만 봐도 인물들은 버스에 앉아 있어서 움직임이 없는데 버스의 진동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표정 변화도 없이 버스에 앉아있다는 것만으로 발생하는 움직임의 묘미가 있다. 자크 타티의 <플레이 타임>의 버스 장면과 비슷하기도 하다. 실내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얘기를 할 때 거의 의식을 취하듯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향의 연기, 선풍기의 움직임, 등이 흔들리는 것들 같은 작은 움직임이 이상한 매혹을 준다.

이명세: 개인적으로 오즈의 영화를 배우나 신인감독에게 추천하고 한다. 정확한 내러티브와 연기의 리듬을 배우라는 것이다. 오즈의 완벽주의는 어느 정도냐 하면, 물을 먹고 나면 컵을 여기에 꼭 놔야만 한다. 이런 완벽성 때문에 이마무라 쇼헤이가 도망을 쳤을거다. 우디 알렌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습하고 실제로 찍는 시간은 짧다고 한다. 이런 연습을 통해서 자연스럽고 보이지 않는 연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보통 연기를 잘 한다고 하면 소리 치고 하는 임팩트 있는 연기를 꼽지만 그런 건 개인적으로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드러나지 않는 연기야 말로 최고의 연기이고 고수의 경지이다. 최고의 사케맛은 물맛에 가까운 것처럼 말이다.

 

현재성 안에 영원성을 심어 놓는다!

김성욱: 나는 오즈의 영화들을 보편적이거나 고전의 반열에 들어선 과거의 영화들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즈의 핵심은 시대의 현실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조구치 겐지나 구로사와 아키라와 비교하면 오즈는 당대의 현실, 변화하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노리코의 대사가 보여주듯이 변화할 것이고, 변화됐고, 나도 변화할거다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오즈는 사람들의 풍속을 보여주는 작가로서 뛰어나다는 생각을 한다. 허오 샤오시엔도 오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인 <카페 뤼미에르>를 만들면서 현실 세계의 변화를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단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막연하게 오즈를 고전의 반열에서 보편적인 감독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그 영화의 동시대성을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명세: 뛰어난 영화는 현재성 안에 영원성을 심어 놓는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는 많지만 영원성 속에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즈 감독님을 나중에 만나면 질문하겠지만(웃음), 나는 오즈가 근본적으로 시니컬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냉소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허무주의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이런 느낌들이 먹먹하게 다가온다. 이런 점에서 오즈의 위대함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관객 1: 나는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갔을 때 영화가 끝나는 것이 맞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 후로도 영화는 계속 진행된다. 감독님은 이 영화의 끝을 어디서 자르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는지.

이명세: 이 영화는 시작과 끝의 공간이 똑같다. 다만 시작할 때는 두 사람으로 시작하고 마지막에는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다르다. <만춘>도 이와 같은 방식이다. 사실 자르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신 감독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 감독은 어떤 의도로 저기서 끝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물론 전보 씬 없어도 된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의 흐름을 감독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도날드 리치의 책을 읽어보니 오즈는 스토리를 풀어내기 보다는 끊었다고 얘기하더라. 그게 화두다. 왜 안 건너뛰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관객 2: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형식적이고 장치가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러 편을 보면서 생각보다 사실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감독님은 영화를 찍을 때 어떤 걸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

이명세: 질문하신 것은 나의 영화 찍는 원칙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땅에 발이 닿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대높이뛰기 선수도 장대가 땅에 닿아야 한다. 진정한 리얼리스트만이 꿈을 꿀 수 있다. 그리고 진정한 몽상가만이 진정한 리얼리스트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떠있는 것만 본다. 하지만 뜨려면 땅에 발을 붙이고 장대가 땅에 닿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상식이다. 나는 영화를 만들 때 현재성 속에 있는 영원성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내가 오즈를 좋아한다. 영화란 것이 예술이라고 했을 때 현실 너머의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감독 중에 한 분이 오즈이다.

 

시네마테크는 숨겨진 보물창고

 

김성욱: 오즈는 굉장히 비사실적이고 형식적이고 조형적인 것을 추구한 감독이다. 그런데 그게 어느 경지에 오르게 되면 또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역설적인 작가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시네마테크 전용관 추진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 시네마테크에 대한 생각을 들려 달라.

이명세: 이렇게 극장에서 동지를 만난다는 게 얼마나 귀한지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것은 미사 드리는 것 같기도 하고, 시골장터 같기도 하다. 중요한 건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나는 ‘고전 영화’란 말보다 ‘보물창고’란 말이 좋다. 그래서 많이 보여주고 싶지 않다. 다들 경쟁자인데 어쩔 수 없이 보여주는 거다(웃음). 좋은 영화는 보물찾기처럼 수없이 숨겨져 있다. 여러분들이 영화를 사랑하고 많이 찾아야 가치가 있다. 보물창고에 먼지가 쌓이고 귀신창고가 되면 쓸데없어진다. 광장의 예술로서의 영화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시네마테크가 필요하다. 단지 영화를 좋아하는 몇몇의 공간이 아니라 문화적인 재산으로서 후배들에게 도서관이 필요한 것처럼 시네마테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리: 김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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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 감독과 배우 김윤석이 함께한 <바람에 사라지다> 시네토크

눈물 쏙 빼는 더글라스 서크의 멜로드라마를 보고 덩치 큰 세 남자가 한 자리에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잘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실제 벌어졌다. 1월 24일 오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바람에 사라지다> 상영이 끝나고, 월간 『스크린』 편집장이었던 김형석 씨의 진행으로 이 영화를 추천한 최동훈 감독과 영화배우 김윤석 씨의 시네토크가 이어진 것. 이날은 서크 뿐 아니라 평소 멜로드라마 장르를 좋아한다는 최동훈 감독과 배우로서 언젠가 멜로드라마 연기에 욕심이 난다는 김윤식 씨가 함께한 자리였던 만큼, 더글라스 서크와 멜로드라마, 연출과 연기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오갔다. 여기에 그 현장을 전한다.

 

김형석(전 『스크린』 편집장): <타짜>부터 <전우치>까지 콤비를 이루고 계신 최동훈 감독과 배우 김윤석 씨를 모시고 영화에 대한 얘길 해볼 텐데, 먼저 필름으로 <바람에 사라지다>를 다시 보시면서 이전과 다르게 느꼈던 부분이나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최동훈(영화감독): DVD로 다섯 번은 봤다. 제 아내도 좋아하는 영화이다. 더글라스 서크가 멜로드라마를 찍지만 굉장한 형식주의자이고 그가 구축해놓은 미장센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는데, 필름으로 다시 보니까 DVD로 봤던 건 가짜였구나 싶었다. 더글라스 서크의 문장과도 같은 장면, 이를 테면 바깥의 카메라가 창틀에서 밖을 바라보는 인물을 잡는 장면이랄지, 루시가 아이를 가졌다고 얘기하는 장면에서 독특한 조명설계 같은 것이 있다. 루시가 남편을 향해 걸어갈 때 아주 잠깐 암흑 속에 묻혔다가 다시 빛으로 나오는데, 그 순간에 남편에 대한 신뢰가 이미 무너졌음을 느끼게 된다. 영화전체에 불안감이 존재한다. 호텔 처음 갔을 때, 창밖의 푸른 배경조차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김형석: 만약 김윤석 씨가 이 영화를 연기한다면 어떤 캐릭터를 하고 싶으신지.

김윤석(영화배우): 글쎄... 여러분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사실 미치 역할의 연기가 좀 실망스러웠는데, 엉성한 면이 있고 표정도 세 가지 밖에 없지 않던가(웃음). 카일이 루시와 비행기에 올라탔을 때 미치가 먼저 와있는데, 그 때 미치가 느꼈던 여자에 대한 실망감이 컸을 것 같다. 그 때의 느낌이 감정적으로 제일 컸는데, 비행기 안에서의 미치의 모습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좀 더 밀도 있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제가 제일 매력적인 캐릭터는 술집에서 메릴리와 술을 마시다 얻어맞는 남자다(웃음).



서크 영화의 특징은 ‘불행한 해피엔딩’에 있다!

 

김형석: 시나리오나 영화의 구조적인 면에서 독특하게 느끼는 점이 있다면.

최동훈: 서크는 제가 보기에는 굉장히 똑똑한 연출을 한다. 표면상 영화의 주인공은 미치와 루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해들리 남매가 진짜 주인공인 것 같다. 록 허드슨는 서크의 영화를 통해 스타가 되었다. 록 허드슨이 연기한 미치는 주변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격동 속에 빨려 들어가지 않는다. 노동자계급의 삶을 살아가길 바라고, 루시 역시 소박한 삶을 꿈꿨다. 미치가 루시에게 ‘우리는 어쩌면 같은 종류의 인간일지 모른다’고 하는 장면이 있다. 루시가 원했던 건 심리적으로 결혼이었을 거다. 그녀가 처음에 카일에게 ‘이 회전목마에서 내려주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회전목마’라고 하는 건 서크 영화의 특징이다. 인물들의 관계가 끊임없이 맴돈다. 미치는 로렌을 사랑하고 로렌은 카일을 사랑하고. 미치가 과연 이 집 안의 구원자일 수도 있지만 침입자일 수도 있다. 당대의 관객들은 영화의 표면, 멜로드라마적 요소들을 좋아했겠지만, 감독이 설치한 장치들을 자세히 보게 되면 영화의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테면, 서크 영화에서 보여지는 ‘불행한 해피엔딩’ 같은 것이 있다. 이 영화에서도 결말은 갑작스럽고 당혹스럽다. 영화에는 세 자루의 총이 등장하는데, 카일과 술집주인, 아버지의 총이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카일이 술집의 총을 들고 가나 싶었는데, 서크는 기어이 그가 집 안에서 아버지의 총을 집게 만든다. 원래 멜로드라마를 좋아하지만, 특히 총이 나오는 멜로드라마를 좋아한다(웃음). 블랙멜로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것들, 이 영화에서처럼 의처증, 알콜중독증 같은 어두운 면들이 드라마를 구성하는 그런 멜로드라마를 좋아한다.

 

양식화된 연기에서 오히려 입체감이 느껴진다!

 

김형석: 50년대 영화다보니까, 고전배우들의 뛰어나지만 한편으로는 규격화된 연기를 볼 수 있다. 배우들의 연기스타일도 변화하면서 많은 진화를 해왔는데, 김윤석 씨는 이런 고전적 연기를 보시면서 어떤 느낌이셨는지.

김윤석: <무간도3>에 중국에서 온 비밀 수사요원으로 진도명이라는 배우가 나온다. 그 배우를 <영웅>에서 진시황제 역할을 맡았을 때 봤는데, 그 분의 연기가 굉장히 ‘연극적이다, 고전적이다’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가 <무간도3>에 나와서 양조위 같은 배우와 앙상블을 이룰 때, 전혀 튀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때로 조각 작품 보다 회화가 입체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저런 양식화된 고전적 연기, 배우의 모습과 등장인물의 모습이 약간 겹쳐지는 듯한 그런 연기가 오히려 입체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언뜻 평면적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조각처럼 튀어나오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지금도 영화는 잘 모르겠으나 연극을 볼 때마다 그런 것이 주는 힘이라는 것, 여운이라는 것이, 연기가 밖으로 튀어나와 관계와 관계사이의 통로를 형성해서 울룩불룩 조각 같은 느낌을 줄 때 놀랍다는 느낌을 받는다. 굉장히 매력적이고 자양분 같은 느낌이 든다.

 

관객1: 록 허드슨의 성정체성 때문인지 자꾸 이 영화를 볼 때 동성애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미치가 질투하는 게 로렌인지 카일인지도 모호하고 메릴리를 루시를 질투하고 마치 루시를 침입자처럼 받아들이는 부분에서 근친상간적인 느낌도 받았다.

김형석: 분명 그런 지점이 있다. 그런 해석이 직간접적으로 깊게 녹아든 영화도 있다. 일례로 토드 헤인즈의 <파 프롬 헤븐> 같은 경우 좀 더 직접적으로 동성애를 끌어오면서 서크에게 오마주를 보낸 영화고, 파스빈더가 서크를 재해석한 경우도 있다.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없는 시대였기 때문에 암시적으로 표현했을 수도 있다 본다.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최동훈: 저도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근친상간은 냄새는 나지만 확증은 없기 때문에 정확히 얘기하긴 힘들다. 서크는 그러한 감정들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암시한다. 영화 밑에 스물 스물 스며있는 어떤 공기가 있다.

 

관객2: 재판장면에서의 메릴리가 증언하는 장면에서, 사실 그녀가 ‘미치가 범인이다’고 말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 같다.

김형석: 저도 왜 갑자기 메릴리가 말을 바꾸는지 궁금했었고,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장면에서 미치의 표정이랄지 하는 것에서 어떤 상상을 해 볼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최동훈: 서크의 영화를 보면 그는 절대 두 남녀가 헤어지는 걸로 끝을 맺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위장된 해피엔딩 같은 거다. 처음에 루시를 좋아했던 건 미치였고, 그래서 영화의 결말은 결국 원래 사랑했던 여자를 되찾는 설정이기에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남겨진 메릴리를 보여줌으로써 해피엔딩과는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연기를 보는 것에서 인간에 대한 흥미 느껴

 

관객3: 최동훈 감독님 영화를 보면 레퍼런스가 많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만들 때 자신 안에서 나오는 창조성과 외부에서 자신에게 들어온 것들, 영향 받은 것들이 어떤 식으로 어우러지는지 궁금하다.

최동훈: 영화를 많이 보고, 많이 기억하는 편이다. 그런데 <범죄의 재구성>을 쓸 때는 레퍼런스로 삼을 만한 영화가 별로 없었다. 언젠가 <범죄의 재구성>을 가지고 해외영화제에 갔을 때 ‘<리피피>라는 영화를 봤냐, 큐브릭의 <킬링>을 봤냐, <아스팔트 정글>을 봤냐’하는 식의 질문을 들었다. 모두 안 봤다고 하더니 깜짝 놀라더라(웃음). 범죄 영화를 만들기 위해 범죄영화를 보진 않는다. 영화를 많이 보지만 직접적으로 그것을 가져오기 보다는 다른 종류의 것에서 가져오거나, 현장에서 배우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는 편이다. <타짜> 때는 서부극을 많이 봤다. <전우치>를 찍을 땐 판타지를 안 봤다.

김형석: 연기에도 그런 부분이 있다고 여겨지는데, 다른 사람들의 연기를 많이 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김윤석: 영화광은 아니다. 저 뿐만 아니라 저 주변의 배우들도 보면 그렇다.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보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있다. 하정우씨는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보는 편인데, <비열한 거리>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우체통에 폭탄을 집어넣고 길에서 열 몇 번을 돌아보는 장면에서의 연기를 얘기한 적이 있다. 인물의 불안감을 그렇게 끊임없이 돌아보는 것으로 표현한 건데, 놀라웠다. 타인의 연기를 보는 것이 연기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타인이 어떻게 연기하는가, 인물의 감정을 표현해내는가를 보는 것에서 인간에 대한 어떤 흥미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초심으로 돌아가 꽉 짜여진 영화 만들고파!

 

관객4: 최동훈 감독님만의 연기연출의 방법과 김윤식 씨의 놀라운 연기 비법이 궁금하다.

최동훈: 데뷔할 때는 배우들이 무서웠다. 감독 말을 안들을 때도 많고, 걱정이 많았다. 영화연출법과 관련한 어떤 책을 읽었는데, 다 읽고서 느낀 건 간단하다. 칭찬하라. 그리고 연기주문을 어렵게 하지마라. 그 외엔 잘 모르겠다. 배우와 감독 사이의 작품에 대한 공유가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캐스팅이 중요하다. 그 외에 현장에선 별 말이 없는 편이다.

김윤석: 연기에 너무 예민해서, 무대에서 한걸음도 못 걷는 후배 배우를 보면, 어떻게 하면 그가 자의식을 잃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저 같은 경우는 단순해지려고 한다. 너무 많은 것을 표현하려고 신경쓰다보면 의도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일단 시작한 이상 그대로 두라는 얘기를 한다. 감정의 흐름이 내 의도대로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거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흥미롭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거부하지 말고 맡겨보라는 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관객5: 마스무라 야스조와 감독님 외모가 닮으신 것 같다. 마스무라 야스조의 영화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다음 영화 계획은.

최동훈: 마스무라 야스조 영화 좋아한다. 그렇지 않아도 마지막 멘트로 <아내가 고백한다>를 추천하려고 했는데, 신기하다(웃음). 여러분들도 기회가 되시면 그 영화를 꼭 한번 보셨으면 좋겠다. 다음 영화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꽉 짜여진 그런 영화를 해보고 싶다. (정리: 장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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