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루멧 추모 상영회를 준비하며...


지난 4월, 시드니 루멧이 세상을 떠났다. 다작의 감독으로 멜로드라마, 코미디, 풍자극, 형사물, 법정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 손을 대었던 루멧은 미국 사회와 법적 시스템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 생전에 사회파 감독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는 1924년 필라델피아에서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 시절이 그러했듯 대공황기의 아이로 성장했다. 사회적 문제에 민감했던 것은 태생적이었고 인간의 의식과 조건, 사회적 불평등에 관심을 보이면서 특히나 인간을 구속하는 형사 사법제도에 흥미를 느꼈다. 루멧의 영화는 정서적이지만 감상적이지는 않다. 그가 시스템에 관심을 가졌던 탓이다. 좋은 영화는 ‘보이지 않는 스타일’을 지녔다고 늘 생각했기에 그는 불필요한 카메라의 움직임과 과장된 스타일을 꺼렸다. 배우들을 존중하는 것이 그의 덕목이었다.

그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영화계에 뛰어들기 전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라디오 방송과 극단에서 실질적인 경력을 쌓았다. 어린 시절에는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고 영화에도 출연했다. 처음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배우로 시작해 연출가로 전환했는데,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두각을 보여, 이어 1957년에 <12인의 성난 사람들>을 통해 정식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가 영화계에 뛰어든 1950년대는 미국 영화계 전체가 격변을 치르던 시기였다. 동부 연안파 감독의 엘리아 카잔, 가족 멜로드라마를 혁신한 니콜라스 레이, 파괴적인 에너지를 몸에 끌어들인 로버트 알드리치와 사무엘 풀러 등 미국영화계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데뷔작인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미국적 액션의 형식에 재판영화라는 합의적 모델을 선보인 것으로 각별하다. 핵의 공포를 다룬 서스펜스 드라마 <미지에의 비행 Fail-Safe>(1964), 전쟁의 후유증을 다룬 <전당포>(1964), 부패한 경찰의 실체를 다룬 <형사 써피코>(1973) 등에서 루멧은 라디오, 연극무대, 텔레비전에서의 활동에서 체득한 꼼꼼한 리허설, 엘리아 카잔과 더불어 배우의 적극적인 연기를 뽑아내는 탁월한 능력을 선보였다.

사회적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뤄 '최고의 뉴욕영화'라는 찬사를 얻은 작품은 단연 <뜨거운 오후>(1975)이다. 1972년 8월 22일에 뉴욕의 브룩클린에서 실제 발생했던 사건을 영화화했는데, 일종의 도시형 부조리극이다. 은행 강도와 인질, 그들을 둘러싼 경찰의 하루 동안의 대치 상황이 이야기의 전부이지만 단순한 설정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시간을 더해가며 사회적 문제로 확장된다. 돈을 강탈하려 했던 주인공 서니(알 파치노)는 인질을 볼모로 경찰과 대치하면서 미디어를 조롱하고, 경찰을 꼼짝 못하게 만들면서 마치 록스타처럼 대중을 선동한다. 거리의 공간은 집회가 벌어지는 아고라, 혹은 법정의 공간처럼 기능한다. 미디어가 등장하고, 군중들은 배심원처럼 사태에 참여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 한다. 하지만 FBI가 개입하면서 토론과 변증의 공간은 공공적인 폭로의 공간으로 변질된다. 그런 가운데 미국식 민주주의의 좌절이 그려진다. 아티카 대폭동(1971년 9월, 뉴욕의 아티카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1,200여명의 죄수들이 교도관을 인질로 잡고 인권유린에 항의하는 폭동이 벌어졌었다), 워터케이트 사건 이후의 들끓는 미국사회, 그리고 케네디, 로버트 존, 마틴 루터 킹의 암살과 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는 폭력과 암살의 정황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은 개 같은 날이 된 것이다. 이런 비판적 경향은 텔레비전이 지닌 강대한 힘과 인간의 추악함을 그린 <네트워크>(1976)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1982년 루멧은 부정의료 사건과 싸운 변호사의 이야기를 그린 <폴 뉴먼의 심판>(1982)으로 다시 법정 드라마로 되돌아왔다. 90년대에 들어서 <글로리아>(1999)같은 범작들도 만들긴 했지만 루멧은 유작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2007)로 잉마르 베르히만의 유작 <사라방드>(2003)가 보여준 '말년의 양식'에 비견할 말한 작품을 남겼다. 보석 강도의 장면에서 시작해 사건은 그것이 전후하는 시간 속에서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며 확장된다. 중산층 가족의 내면에 자리한 광기와 불안, 폭력과 섹스가 변화하는 사회와 가족의 관계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것으로 그려진다. 돈이 부족한 형제가 부모의 가게를 강탈하는 용의주도한 범죄를 벌이면서 점차 도시 전체에 만연된 자본주의적 질서와 개인주의의 역학이 서서히 부각된다. 그런 세계에서 고립된 인간에게 출구란 없다. 극중의 대사를 옮기자면 그에게 세상은 사악한 곳이었다.

글/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