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사악한 곳이다
2011. 5. 15. 15:55ㆍ특별전/서울아트시네마 개관 9주년 기념 영화제
시드니 루멧 추모 상영회를 준비하며...
지난 4월, 시드니 루멧이 세상을 떠났다. 다작의 감독으로 멜로드라마, 코미디, 풍자극, 형사물, 법정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 손을 대었던 루멧은 미국 사회와 법적 시스템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 생전에 사회파 감독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는 1924년 필라델피아에서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 시절이 그러했듯 대공황기의 아이로 성장했다. 사회적 문제에 민감했던 것은 태생적이었고 인간의 의식과 조건, 사회적 불평등에 관심을 보이면서 특히나 인간을 구속하는 형사 사법제도에 흥미를 느꼈다. 루멧의 영화는 정서적이지만 감상적이지는 않다. 그가 시스템에 관심을 가졌던 탓이다. 좋은 영화는 ‘보이지 않는 스타일’을 지녔다고 늘 생각했기에 그는 불필요한 카메라의 움직임과 과장된 스타일을 꺼렸다. 배우들을 존중하는 것이 그의 덕목이었다.
1982년 루멧은 부정의료 사건과 싸운 변호사의 이야기를 그린 <폴 뉴먼의 심판>(1982)으로 다시 법정 드라마로 되돌아왔다. 90년대에 들어서 <글로리아>(1999)같은 범작들도 만들긴 했지만 루멧은 유작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2007)로 잉마르 베르히만의 유작 <사라방드>(2003)가 보여준 '말년의 양식'에 비견할 말한 작품을 남겼다. 보석 강도의 장면에서 시작해 사건은 그것이 전후하는 시간 속에서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며 확장된다. 중산층 가족의 내면에 자리한 광기와 불안, 폭력과 섹스가 변화하는 사회와 가족의 관계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것으로 그려진다. 돈이 부족한 형제가 부모의 가게를 강탈하는 용의주도한 범죄를 벌이면서 점차 도시 전체에 만연된 자본주의적 질서와 개인주의의 역학이 서서히 부각된다. 그런 세계에서 고립된 인간에게 출구란 없다. 극중의 대사를 옮기자면 그에게 세상은 사악한 곳이었다.
글/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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