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영화학자 한스 슐레겔 박사 마스터클래스 지상중계] '이콘과 영화'

지난 11월 12일 오후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세계적인 영화학자 한스 슐레겔 박사의 내한을 기념하여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어> 특별상영과 함께 '이콘과 영화'를 주제로 한스 슐레겔 박사의 초청강연이 열렸다. 영화에서 시각적인 것,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등에 대해 논의하며,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초청강연 현장을 여기에 전한다.


한스 슐레겔(영화학자): 타르코프스키의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 굉장히 기쁘다. 사실 한국의 이 극장, 이 자리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 다른 해외 어느 도시보다도 의미 있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에 대해 몇 가지 말씀 드릴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내가 본 많은 한국영화들 중에서 상당수의 것들은 예술적인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와 유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타르코프스키에 대해 규정하기를, 가장 러시아적인 감독이라고도 하고 동시에 가장 정교적인 감독이라고도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아시아에 대해 타르코프스키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중앙아시아의 기본적인 문화 요소인 다오이즘, 도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서구의 음악은 나를 중심으로 주장을 하고 나의 목소리를 통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항상 나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신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이 있고 신과 자연, 다음에 그 계절에 대한 존경심이 있다. 전체적인 것 속에서 스스로 자신을 발견한다고 볼 수 있다.

타르코프스키를 러시아의 정교적인 감독이라고 말 하지만 소비에트 시절에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그런 경계적인 위치였다. 서구에서는 그를 물질주의에 반대되는, 영혼의 신비를 추구했다고 평가했지만 소련에서 그의 작품은 일반극장에서 개봉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거기에는 소련의 이데올로기 문제가 작용했다. 이런 측면에서 타르코프스키가 가장 러시아의 정교적인 감독이라고 칭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 적으로 물질이 강조되는 거친 소비에트 시절을 살아가면서도 <안드레이 류블로프>(1966)와 같은 영화를 찍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타르코프스키는 러시아의 종교적 전통을 보여준다. 타르코프스키 영화세계와 비교할 수 있는 다른 감독의 작품이 있는데 불가리아 감독 흐리스토 흐리스토프(Hristo Hristov)의 <Ikonostasat>(1969)라는 영화다. 불가리아 인들에게 '이콘 Icon'이라는 것은 <안드레이 류플료프>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반항자, 대항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있다. 도그마적인 제도, 관습으로부터 진정한 영혼의 해방을 위해 영화를 만들었던 것이다. 국가의 독단주의 자체에 대한 저항일 뿐만 아니라 국가 자체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그는 예술이 인간에게 기여하고 봉사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극 중 류블로프가 그린 가장 유명한 성상화는 서구 이콘의 구조적인 것을 따르지 않는다. 비잔틴적으로 보자면, 형상에 대한 이해는 구체적인 것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일종의 창문 같은 것이다. 추상적인 물체에 대한 사고, 관념이고 성찰적인 시선이다. 이런 것들이 다오이즘과 관련된, 이콘에 대한 성찰적인 시선, 즉 형상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는 창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신이 자기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든 것이다. 그렇지만 죄로 인해서 얼굴이 낯짝으로 바뀐다. 이것이 오늘날 아시아의 영화와 서구의 영화가 기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제들이 그리는 이콘은 사실 복사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보통 교회에서 이콘을 그린 사제들은 자기 개인의 상상력으로 그릴 권한이 없었다. 그 사람들은 태곳적부터 내려오는 원초적인 형상을 복사했을 뿐이다. 하지만 타르코프스키와 같은 인물은 항상 자신의 개인적인 창작품을 만들어냈다. <거울>(1975)에서 타르코프스키는 주관적으로 회상된 시간을 잘 이용해 유년시절의 물질적인 요소들을 아주 정확하게 재구성했다. 예컨대, 타르코프스키는 스페인 내전에 대한 다큐멘터리 장면을 삽입할 때 당초에 생각했던 것과 일치하는 장면을 찾아내기 위해 상당히 오랜 시간 공들였다. 이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소리와 관련이 된다. 그는 라디오 극을 만들 때 자기가 사용했던 스튜디오를 마치 다음 영화제작을 위한 음향 실험실처럼 이용했다. 그는 본인의 정신을 감동시키는 자신만의 소리를 찾기 위해 직접 음향기기를 들고 결국 찾아냈다. 이렇듯 이미지, 형상이라는 것은 매우 심도 있게 주관적인 것과 연관된다. 이렇게 하면서 정교의 도그마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 있었다.

지금은 영화가 상업적인 주류가 되고 글로벌화가 되면서 자기만의 집, 자기의 고향을 상실하고 있는 그런 시대다. 타르코프스키는 항상 보이는 외부세계 뿐만이 아니라 내면적인 것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현실의 물체를 볼 때 별별 것이 다 있을 수 있다. 타르코프스키는 에이젠슈타인과 상당히 반대되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예술에 있어서 관객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였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영화에 대해 비가시적인 것, 즉 보이지 않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후계자라고 말하는 알렉산더 소쿠로프 영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며 헝가리 감독인 벨라 타르도 타르코프스키적 전통을 계승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벨라 타르 역시 성찰적인 시선으로 외면의 내면적인 본질을 포착했던 감독이다. 에이젠슈타인은 아주 철저하게 물질적이고 변증법적인 입장에서 영화형식을 추구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정신분석적인 의미에서만 그런 것을 이해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 다음에 형상적인 것과 개념적인 것, 논리적인 것과 초논리적인 것, 감성적인 것과 합리적인 것 말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요소들의 상호작용이었다. 에이젠슈타인도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타르코프스키도 마찬가지였다. 타르코프스키는 이런 상호작용의 개념이 꼭 영화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를 모순으로 보기 보다는 통일체로 보고, 접근했다. 우리는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감성적인 것과 합리적인 것의 새로운 결합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이해 없이 우리 문화는 결국 죽어버릴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상호작용을 가지고 기능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진정한 작가영화를 볼 수 있도록 허용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그래서 나는 서울의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쁘다.
오늘의 강의는 벨라 타르의 영화를 마지막으로 끝내고 싶다. 벨라 타르는 아주 긴 영화를 찍는 감독이지만 지금 보여드릴 영화는 아주 짧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의 영화들이 자기들의 연방과 결합했을 때 그 시기를 그린 작품이다. 5~6명의 감독들이 그 시대에 어떤 희망이 있었는가를 질문하는 짧은 영화들을 만들었다. 벨라 타르는 <프롤로그>라는 짧은 단편을 연출했다. 이 영화에서 대사는 거의 없다. 하지만 집이 없고 자기의 일이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희망하는 것에 대해서 성찰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관객1: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거울>에서 유년시절을 완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몽타주를 사용하지 않았나?
한스 슐레겔: 대략은 맞게 이해했다. 타르코프스키는 반복적으로 이를 주장했는데 몽타주는 영화에서 정서적인 흐름을 느낄 때 해가 된다고 쓴 적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 절대적이지는 않다.

관객2:
<프롤로그>를 보면서 <희생>(1986)이 많이 생각났다. 두 영화 모두 광인의 이미지가 나온다. <희생>은 집을 불태우고 <노스탤지어>(1983)는 분신을 한다. 타르코프스키가 불에 대해서 어떤 의미로 혹은 다른 영화에서도 그렇게 불을 해석했는지 궁금하다. 더불어 물의 이미지 역시 강렬하게 썼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설명을 듣고 싶다.
한스 슐레겔: 불에 대해서 쓴 바는 없지만 물에 대해서 쓴 것은 있다. 타르코프스키에게 물, 불, 안개와 같은 자연이 가장 근본적인 요소였다. 안개가 중요했던 이유는 일종의 장막과 같은 역할로 이 세계와 저 세계를 가르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바람소리, 빗소리 같은 근본적인 소리들. 아주 근본이 되는 요소들이지만 타르코프스키가 그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는 없다. 물론 타르코프스키가 자기 영화에서 이런 요소를 상징으로 대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하고 금지하다시피 했지만 우리는 이 사람 영화에서 물, 불, 안개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상징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스크린을 향한 관객의 정신분석적인 의미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어두운 극장에서영화를 볼 때 완전히 잠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낮에 꾸는 꿈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꿈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영화는 모여서 보기 때문에 집단적인 꿈으로 볼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정신분석과 영화와의 관계를 연구했고 지금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타르코프스키는 사실 이런 것들을 굉장히 싫어했다. 당초에 이렇게 바라보는 대상들은 그냥 구체적인 물질 대상일 뿐이었다. 그런데 단순한 물질적인 대상은 구체적인 것인데 대상 너머의 어떤 것을 느끼려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입장이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박사로서 타르코프스키 감독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이 궁금하다.
한스 슐레겔: 한마디로 이야기하기 어렵다. 무슨 이야기를 아침에 해 놓고 점심 먹은 다음에 또 반대되는 소리를 한다.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의 의미에 반대되는 것이 깔려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그 사람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제 타르코프스키에 대해서 감독으로서 그를 규정하자면 보통 누구나 다 언어의 장인이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타르코프스키가 형상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는 거장이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상업영화와 이데올로기적인 도그마에 대해 반대했던 저항자였다고 볼 수 있다. 그에게는 정전으로 따르는 구호는 없었다. 자기 영화에서 이콘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훌리건이었다. 그는 삶 자체가 그러했기 때문에 그런 방식의 모순된 것을 하나의 통일체로서 묘사하는 것을 선호했다.

정리 이정아(자원 활동가) | 사진 주원탁(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