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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을 기다리는 산파의 시간 <천황군대는 진군한다> [하라 가즈오 특별전: 물러서지 않는 카메라] 진술을 기다리는 산파의 시간 에서 오쿠자키 겐조가 취하는 폭력이라는 수단과 이에 관한 카메라의 방조는 종종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누군가는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할 것이고, 다른 이들은 ‘정당한 목적을 위해 폭력이라는 수단이 때로는 필요하다’는 입장에 설 것이다. 이는 지극히 단순화한 입장일 뿐, 둘 사이에 수많은 결이 있다. 이 글에서 나는 오쿠자키 겐조의 행위를 폭력으로 함축해 그것의 당위성을 따지지는 않을 생각이다. 먼저 그것은 나의 능력치를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단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를 폭력으로 정의해야 할지부터 아득하다. ‘폭력의 단계를 나눌 수 있다면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거쳐 ‘.. 더보기
<동풍> 상영 후 크리스티앙 페겔슨 강의 [1968+50 새로운 세상, 새로운 영화 May ´68 by Godard] “지금 고다르가 중국에 산다면 어떤 영화를 만들지 궁금하다.”- 상영 후 크리스티앙 페겔슨 강의 이나라(이미지문화 연구자) 오늘 강의를 해줄 크리스티앙 페겔슨 씨는 영화와 사회학을 공부했으며, 현재 파리 3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영화를 가르치고 있다. 오늘은 지가 베르토프 시기의 고다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들려줄 계획이다. 크리스티앙 페겔슨(영화평론가) 이 길고 지겨운 영화를 참을성 있게 봐주셔서 감사하다(웃음). 은 프랑스 관객에게도 그리 쉬운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50년 전 영화이고, 2018년의 우리는 50년 전과 다른 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에 대해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사회학에 기본을 두고.. 더보기
“절대 담배 안 끊겠다는 반항심으로 만들었다” - <소공녀> 상영 후 전고운 감독 시네토크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것: 광화문시네마의 경우] “절대 담배 안 끊겠다는 반항심으로 만들었다”- 상영 후 전고운 감독 시네토크 정지혜(영화평론가) 는 물론 미소의 이야기지만 서울이란 도시의 주거 형태가 어떻게 분화되고 있는지, 어떤 지경까지 처했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감독님이 영화를 만들 때 공간에 대한 고민도 굉장히 많이 했을 것 같다. 영화의 출발 지점에 대해 먼저 듣고 싶다. 전고운(감독)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소이지만 또 하나의 주인공은 서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도시에서 살아 남으려 하다가 잃어버리는 것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리고 를 만들 때는 정권에 대한 불만도 정말 컸다. 이걸 어떻게 간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던 참에 마침 담뱃값도 오르더라. 내 생각에 정말 말도 안 되.. 더보기
<범죄의 여왕> 상영 후 이요섭, 박지영, 백수장 시네토크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것: 광화문시네마의 경우] “광화문시네마의 가족이 된다는 건 많은 사람을 얻는 일이다”- 상영 후 이요섭, 박지영, 백수장 시네토크 김보년(프로그래머) 오늘은 특별히 감독과 배우들이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보았다. 이요섭(감독) 오랜만에 이렇게 관객과 만나니 정말 떨린다. 박지영(배우) 은 2015년에 촬영했고 2016년에 개봉했다. 그리고 오늘 2년 만에 다시 보았는데 너무 새롭고 좋았다. 2년마다 한 번씩 다시 봐야 할 것 같다. 그때의 기분과 열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백수장(배우) 내가 이 영화에 소속되어 있다는 게 정말 기쁘다. 요즘 다른 작품을 촬영하고 있는데 다시 큰 힘을 받았다. 김보년 이 영화의 특징은 여러 장르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스릴러도 있고 코미디도 있다.. 더보기
필름 없는 필름 - <시네마 퓨처> 상영 후 오성지 시네토크 [폴 토마스 앤더슨 35mm 필름 투어] 필름 없는 필름- 상영 후 오성지 시네토크 오성지(한국영상자료원 연구전시팀) 를 보면서 생각난 것들을 자연스럽게 얘기해볼까 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 35mm 필름으로 영화를 봤고 사진을 찍을 때도 필름 카메라로 찍은 뒤 사진관에서 현상-인화를 했다. 사진과 영화를 물질로 경험한 세대다. 그런데 요즘은 어릴 때부터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는 디지털 세대라서 경험 자체가 다를 것이다. 먼저 필름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겠다. - 질산염 필름에서 폴리에스터 필름까지상영용 필름을 7~8 프레임 정도 잘라서 가져온 걸 나눠주려 한다. 지금 나눠드린 걸 보면 모든 장면이 거의 같은 장면일 것이다. 24프레임이 1초에 해당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는 꽤 긴 필름이 필.. 더보기
“현실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 - <눈꺼풀> 상영 후 오멸 감독 시네토크 [오멸의 제주] “현실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 상영 후 오멸 감독 시네토크 이용철(영화평론가) 2016년 5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을 상영했었다. 그리고 2년 만에 감독님과 다시 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2016년 시네토크 당시 관객들 중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있었다. 그때는 세월호를 둘러싼 상황이나 전반적인 정치 상황이 지금 같지 않았다. 오멸(감독) 엊그제 개봉을 앞두고 시사를 하면서 나도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봤다. 바뀐 사회적 분위기가 내 감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시네토크를 할 때는 나도 마음이 좀 이상했던 기억이 있다. 이용철 은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바로 그해 제작한 영화다. 하지만 오랫동안 정식 개봉은 하지 않았고 이제서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을 찍는 그 순간에도 .. 더보기
세상에 저항하기, 또는 나만의 세계에 갇히기 -<소공녀>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것: 광화문시네마의 경우] 세상에 저항하기, 또는 나만의 세계에 갇히기- 담배 한 모금과 한 잔의 위스키를 위해서라면 집(정확히는 방)은 포기하겠다. 대개의 경우라면 이 문장을 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의 미소(이솜)의 셈법은 완전히 다르다. 그녀는 집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담배와 위스키를 사랑한다. 자신의 취향이 뭔지를 확실히 아는 미소는 가난한 현실을 이유로 들어가며 그 취향을 포기하거나 타협하고 싶지 않다. 오르는 방세를 감당하느니 오른 담뱃값을 감당하는 쪽을 택한다. 최소한의 짐을 챙겨 거리로 나선 그녀는 이 상황을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이라고 설명한다. 자기변명이나 합리화가 아니다. 미소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또 그 생각대로 살아간다... 더보기
건들건들 느껴볼 것 - <인히어런트 바이스> [폴 토마스 앤더슨 35mm 필름 투어] 건들건들 느껴볼 것- 조연으로 출연한 조쉬 브롤린조차 처음 읽었을 때 “빌어먹을, 한 단어도 못 알아먹었다”고 토로한 바 있는 토머스 핀천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옮긴 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해가 안 간다고 불평하게 만들기에 딱 좋은 작품이다. 제법 이름 난 비평가인 조너선 롬니조차 『필름 코멘트』에 쓴 의 리뷰에서 이 전작을 언급하면서 지독히 두서없는 영화란 뜻에서 “차라리 인코히어런트 바이스(incoherent vice)라고 불러야 한다”며 비꼬았을 정도니 말이다.이 영화를 멋지게 독해해내려는 시도는 무모한 도전으로 남겨지게 마련이다. 독해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 그 이상야릇한 무드에 다짜고짜 전염되어 볼 수밖에 없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립탐정 닥(호.. 더보기
말씀의 탄생 - <데어 윌 비 블러드> [폴 토마스 앤더슨 35mm 필름 투어] 말씀의 탄생- 1898년에 시작한 영화는 1927년 대공황의 시기에서 멈춘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라는 시대 배경은 역사적 맥락 외에 영화사적 맥락을 환기하는 측면이 있다. 말소리가 소거된 채 숨소리와 비명, 과잉된 음향으로 채워진 약 15분간의 도입부를 통해 영화는 무성영화를 인용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 초기 영화의 반향으로 영화를 읽을 때 두드러진 이미지가 있다. 시축 기계가 땅에 꽂히자 땅에서 석유가 흘러나오는 모양을 클로즈업한 숏은 어쩐지 몸속에서 피가 불거져 나오는 양상을 연상시킨다. 비유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검은 석유는 곧 흑백 영화의 검은 피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석유를 추출하는 것만큼이나 기계가 사람의 몸에 꽂히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 더보기
사랑의 동선 - <펀치 드렁크 러브> [폴 토마스 앤더슨 35mm 필름 투어] 사랑의 동선- 폴 토마스 앤더슨이 만든 장편 중 가장 짧은 결과물인 는 90분 남짓한 러닝타임 동안 멈춤 없이 내달리는 영화다.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행사 상품에 관해 문의하는 배리(아담 샌들러)의 모습으로 다짜고짜 시작하는 오프닝 시퀀스의 문이 열리면 카메라는 결코 후진하는 법 없이 인물의 동선을 따라 사방으로 질주한다. 날렵하지만 유려하고, 재빠르되 능수능란한 속도와 테크닉으로 곧장 결말에 도달해 버리는 이런 영화를 보고 덧붙일 말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저 배리라는 인물에 부여된 몇 가지 특수한 조건을 이야기하고 싶다. 가 멈춤 없이 내달린다는 말은 단지 비유적인 표현만은 아니다. 영화는 배리에게 안정적인 거주지를 제시하지 않는다. 집 안에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