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모자이크 없이 감상하자 - <부기 나이트> [폴 토마스 앤더슨 35mm 필름 투어] 모자이크 없이 감상하자- 의 국내 개봉(1999.3.20) 당시 엔딩 장면에서 더크 디글러(마크 월버그)의 성기를 모자이크 처리하게 한 공연윤리위원회(현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처사는 폭력이었다. 모든 영화가 대표작이자 마스터피스라고 할 수 있는 폴 토마스 앤더스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 (1997)는 제도권에서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공동체를 형성해 유사 가족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밟는다. 제도권의 상식은 종종 보기 좋은 것을 상수에 두고 그렇지 않은 것을 골라내어 나쁜 것 혹은 쓸모없는 것 취급해 경계 밖으로 쫓아내고는 한다. 더크의 경우를 들어 설명해 볼까. 원래 이름은 에디 아담스. 공부 대신 나이트클럽 주방 아르바이트에, 동급생 여자와 잠자리를 나누는 게 엄마에게.. 더보기
고독의 공기 - <조용한 열정> [봄날의 영화 산책 - 오즈 야스지로에서 프레드릭 와이즈먼까지] 고독의 공기- 19세기 미국의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삶을 스크린으로 옮긴 테렌스 데이비스의 전반부에는 어딘지 모르게 밝고 환한 기운이 감돈다. 기숙학교에서 숨 막힐 듯한 삶을 살고 있던 에밀리 디킨슨은 친애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시 쓰기 활동을 시작한다. 집이라는 실내 환경은 새로운 외부로의 가능성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듯하다. 개인의 삶에 대한 그녀의 강고한 철학이 보수적인 종교관을 가진 이모를 놀라게 하기도 하지만 큰 갈등은 빚어지지 않는다. 가족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안정감과 견고함이 적어도 한동안은 이 영화를 지배한다.그러다 영화가 시작된 지 20분 정도 경과했을 때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 영화는 초기 사진술이.. 더보기
데이빗의 자리 - <스파 나잇> [봄날의 영화 산책 - 오즈 야스지로에서 프레드릭 와이즈먼까지] 데이빗의 자리- 은 한국계 미국인 앤드류 안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2016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수상작이다. 영화는 데이빗이라는 인물의 곤경을 총체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 집안의 3세, 경제난에 시달리는 부모의 유일한 자식, 부모의 기대와 한인 사회의 은근한 부추김 속에서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인물. 무엇보다도 지금 데이빗을 압도하는 건 자신의 성정체성을 감각하고 자각하며 느끼는 두려움과 떨치기 힘든 사회적 기대에 따른 자기 부정이다.인물의 감정 상태와 상황을 그려가는 이 영화의 방식에는 특정한 공간이 있다. 그곳은 불특정 다수가 집단적으로 몸을 드러내는 게 공적으로 허락된 대중 목욕탕이다. 특히나 한국의 가족.. 더보기
일상의 시인 - <패터슨> [봄날의 영화 산책 - 오즈 야스지로에서 프레드릭 와이즈먼까지] 일상의 시인- 은 미국 뉴저지주에 위치한 패터슨이라는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월요일 오전 6시 10분경,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과 동명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버스 운전기사이자 시인인 패터슨이 잠에서 깨어난 다음 늘 그랬다는 듯 시계를 확인한다. 그는 아직 잠에서 덜 깬 아내 로라와 아침 인사를 나눈 다음 전날 밤에 준비해둔 것으로 보이는 옷가지를 챙긴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홀로 단출하게 아침 식사를 한다. 이후로도 영화는 요일별로 아침에서 저녁으로 이어지는 패터슨의 일과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짐 자무쉬의 전작에 익숙한 관객에게 이 오프닝은 생경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황혼의 시간과 허름한 모텔 공간을 배경으로 어딘가.. 더보기
미지의 것을 마주하는 방법 - <스테잉 버티컬> [봄날의 영화 산책 - 오즈 야스지로에서 프레드릭 와이즈먼까지] 미지의 것을 마주하는 방법- 알랭 기로디의 에는 누군가의 시선에 비친 광경을 먼저 제시하고, 그 시선의 주인을 나중에 보여주는 숏이 종종 등장한다. 오프닝 시퀀스의 드라이빙 숏은 주인공을 화면에 등장시키지 않은 채 한동안 계속된다. 관객은 주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그 시선의 주인이 차창 밖의 사람들을 응시하는 시점 숏을 감당해야 한다. 시선의 주인을 명시하지 않은 채 시선 숏을 제시하는 방식은 레오가 처음으로 마리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다시 등장한다. 걷는 레오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숏이 등장한 직후, 카메라는 양 떼와 양치기 개, 마리가 함께 있는 풍경을 멀리서 당겨 잡는다. 이후 망원경에서 눈을 떼는 레오의 모습이 등장하면서 시선의 주.. 더보기
“관객이 줄어든다는 얘기는 이십 년 전부터 했다” 예술영화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 [Special]“관객이 줄어든다는 얘기는 이십 년 전부터 했다”예술영화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 지난 12월 14일(목),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일본 오사카의 예술영화관인 ‘플래닛 플러스 원’의 도미오카 구니히코 대표를 초대하여 영화를 둘러싼 얘기를 나누는 특별한 자리를 가졌다. 특별히 대전아트시네마에서 진행된 이 자리에는 서울, 청주, 대구 등에서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스태프들이 참여하여 깊이 있는 이야기를 오래도록 나누었다. 도미오카 구니히코 씨는 신인 감독들이 만든 독립영화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하며 조만간 한국과 일본의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자는 제안도 하였다.도미오카 구니히코(플래닛 플러스 원 대표) 만나서 반갑다. 나는 1995년부터 오사카의 ‘플래닛 플러스 원’에서 활동.. 더보기
<황제>, <설계자> 상영 후 민병훈 감독 시네토크 [작가를 만나다]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치유의 경험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 상영 후 민병훈 감독 시네토크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오늘 상영한 와 를 보면서 최근에 민병훈 감독의 영화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두 편의 영화 모두 예술가들이 중심적으로 나온다. 시나리오를 쓴다던가, 무대 연출가라던가.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들과 그들이 가진 고민이 있다. 민병훈 감독의 초기 작품이 가진 활력과 비교하자면 많이 무거워졌다.민병훈(영화감독) SF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면 아무래도 나의 이야기, 내 주변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영화제에 초대받아서 마르세유에 가게 됐는데 간 김에 영화를 찍어야지 생각하고 급하게 시나리오를 구상해서 나온 게 다. 그냥 내 얘기.. 더보기
<사랑과 총알을 그대에게> 상영 후 마르코 마네티 감독, 미켈란젤로 라 네베 작가 시네토크 [2017 베니스 인 서울] “서울을 배경으로 K-pop 가수가 등장하는 영화를 찍고 싶다”- 상영 후마르코 마네티 감독, 미켈란젤로 라 네베 작가 시네토크 미켈란젤로 라 네베(시나리오 작가) 무엇보다도 서울에 와서 무척 기쁘다. 서울은 정말 아름답고 놀라운 도시다. 허남웅(영화평론가) 이탈리아 뮤지컬 영화를 본 건 오랜만이었다. 어떻게 처음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궁금하다.마르코 마네티(감독) 내가 조금 ‘맛이 간’ 성격이다(웃음). 나도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잘 몰라서 답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 동생과 함께 뮤직비디오를 100편 정도 만들었는데 그래서인지 내 영화에는 뮤지컬이나 오페라적인 측면이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은 나폴리인데, 나폴리는 다른 도시가 제공하기 힘든 경험을 선사.. 더보기
<가타 신데렐라> 상영 후 마리노 과르니에리 감독, 연상호 감독 대담 [2017 베니스 인 서울] “즐거움을 추구하는 욕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상영 후 마리노 과르니에리 감독, 연상호 감독 대담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베니스 인 서울”에서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상영했다. 사실 이탈리아 애니메이션 영화도 거의 만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오늘 자리는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잠바티스타 바실레(Giambattista Basile)라는 작가의 17세기 동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이 동화를 바탕으로 만든 1970년대의 희곡을 원작으로 삼았다고도 볼 수 있다. 어떤 계기로 이 작품을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마리노 과르니에리(감독) 방금 말한 것처럼 이 영화의 원작은 바실레의 『Gatta Cenerentola』이다. 처음 제작할 때는 ‘고양이 신데.. 더보기
처음 가보는 길에서 느끼는 무서움, 그리고 기대감 - <초행> [한국영화 특별 상영] 처음 가보는 길에서 느끼는 무서움, 그리고 기대감- ‘초행’은 처음 가보는 길이자 처음으로 가는 행위 그 자체를 의미한다. 사실상 누구에게나 모든 것의 처음이 있을 테고 엄격히 따져 묻자면 같은 일을 반복할 때조차도 흘러간 시간 앞에서는 그마저도 처음일 수밖에 없다. 또 처음 하는 일에는 얼마간의 낯섦이 있을 수밖에 없을 텐데 그 낯섦이 무서움이라는 감정으로 호명될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주춤거리다 못해 잔뜩 움츠러든다. 김대환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은 ‘첫’이 불러일으키는 이 무서움에 대한 영화이자 그 무서움의 실체를 마주하게 하는 방식에 대한 영화 같다. 에선 무엇이 무서움인가. 무서움은 어떻게 발생하는가.7년간 연애하며 지금은 동거 중인 지영(김새벽)과 수현(조현철)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