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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11월의 레터

 

오늘부터 서울아트시네마는 전국예술영화관협회와 공동기획으로 “Save Our Cinema -우리 영화의 얼굴”을 시작합니다. 예술영화, 독립영화 상영의 활성화를 위한 행사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네 명의 평론가가 선택한 네 편의 한국 독립영화 상영과 강연이 진행되고, 시네마테크 아카이브 작품인 에릭 로메르의 영화 네 편이 상영됩니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는 판권 기한이 올해까지이기에 아마도 당분간 마지막 상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올해 탄생 백주년을 기념한 상영도 진행했지만, 여전히 에릭 로메르의 영화가 소수의 영화 애호가 서클을 넘어서 충분히 전달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로메르란 이름 뒤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또 다른 로메르는 영화 작업 외에도 이론적 성찰, 열린 교육학으로서 영화를 통한 교육 활동에도 전념했지만 이런 작업은 아직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지금 같은 시기에 그의 경제적 미학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찌감치 독립제작사를 운영했던 그는 엄격한 절약의 의지로 평생 경제적 미학의 원칙을 추구했고, 예술이 현실에 종속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 여겼습니다. 어려운 현실에서도 영화 예술은 가능하고, 가능해야 합니다.

11월 11일부터 22일까지는 체코 뉴웨이브의 대표 감독이자 이른바 ‘사회주의’ 체제의 예술적 관습에 도전한, 아녜스 바르다와 더불어 ‘여성 영화’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가장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태도로 끊임없이 영화 표현을 갱신해온 작가 인 베라 히틸로바의 작품 14편을 - 그 가운데 35mm 필름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상영하는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합니다. 그간 소개될 기회가 적었던 작가의 전모를 살펴볼 보기 드문 기회입니다. 

코로나 감염 확산으로 미뤄졌던 “2020 스페인영화제”가 11월에 열릴 예정이고, 12월 2일부터는 지난해에 이어 안제이 뭉크, 보이체크 하스,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크지슈토프 자뉴시 등의 폴란드 고전 작가들의 작품과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상영하는 두 번째 “폴란드영화제”가 열립니다. 또한 국내에는 소개될 기회가 없었던 살로메 라마스 등의 신예 포르투갈 작가들의 작품을 상영하는 특별전과 다나카 키누요의 연출작을 포함한 60년대 일본 여배우 특별전이 올해를 마감하는 행사가 될 예정입니다. 일본 여배우 특별전의 작품들 대부분은 35mm 필름으로 상영될 예정입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대에 손노동의 35mm 필름 상영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 과거의 영화들은 여전히 수작업을 거친 35mm 필름으로만 상영이 가능하기에 계획대로 행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때마침 들어온 반가운 소식을 미리 말씀드리자면, 수년간 수차례 상영을 시도했지만 저작권 문제와 고액의 상영료로 번번히 소개가 허락되지 않았던 에드워드 양의 두 편의 영화, <독립시대>와 <마작>을 11월에 상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해탄적일천>은 저작권 문제로 국내 상영이 불가하지만, 두 편의 영화는 마찬가지로 유일한 상영본인 35mm 필름으로 상영될 예정입니다. 해외 네트워크 교류의 일환으로 일본 미니시어터 관계자와의 줌을 통한 시네마테크 네트워크 포럼이 11월에 열릴 예정이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강좌도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30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도 영화진흥위원회의 관객지원사업의 일환으로 ‘할인권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행사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으로 중단됐던 사업으로, 예술영화전용관을 포함한 모든 극장에서 동시에 진행 중입니다. 아울러 11월 7일부터는 기존의 좌석간 거리두기가 1단계에서는 완화될 예정입니다.

대기업이 운영하던 영화관들도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리는 때입니다. 우려하던 일로, 하나의 진실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흥행 위주의 대자본 영화 몇 편에, 거대 규모의 대중 동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영화관이 지금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경영의 어려움에 독촉은 진행중이고, 카운트다운이 개시되고 있지만,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던 영화관들이 이 어려운 시기에도 극장을 찾는 관객들과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니, 영화관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일을 미뤄둘 이유는 없습니다. 

2020. 11. 3.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