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노 비스콘티'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11.03.14 [리뷰] 로코와 그의 형제들
  2. 2011.03.14 [리뷰] 순수한 사람들
  3. 2011.03.14 [리뷰] 루드비히
  4. 2011.03.14 [리뷰] 저주받은 자들
  5. 2011.03.14 [리뷰] 베니스에서의 죽음


루키노 비스콘티의 초기 대표작 <로코와 그의 형제들>은 도시 공간 속에서 가족의 해체를 다룬 영화다. 극빈한 가난때문에 낯선 곳으로 이주한 가족사를 다룬 영화는 삼각관계가 불러일으킨 형제간의 균열과 가족의 구제에 대한 형제들의 견해 차로 인해 와해된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해체를 가속화시키는 원인들 또한 도시 공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특히 영화의 도시 공간은 가족이라는 심리적, 사회적 연대를 허무는 과정에서 개인의 인격마저 붕괴시킨다. 이 점은 강한 멜로드라마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비스콘티의 필모그래피에서 네오리얼리즘의 정점으로 불리는 이유다.

영화는 밀라노로 상경한 파룬디 가족이 결혼 피로연으로 분주한 맏아들 내외에게서 버림받고 기차 역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니노 로타의 처연한 오프닝 음악은 이들의 운명을 암시하고 영화 내내 반복되며 여운을 남긴다. 맏아들은 부양 부담에서 자유롭길 원해 가난으로 위태로운 가족을 버리고 독립한다. 숙련기술이 없는 형제들은 눈을 치우고 건설 현장에서 노동을 하지만 일확천금에 대한 갈망은 그들을 복싱에 투신하게 만든다. 이후 나디아라는 창녀의 등장은 둘째 시모네(레나토 살바토리)와 셋째 로코(알랑 들롱)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고 영화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균열을 봉합하려는 로코는 '성인'에 필적할 만한 희생을 하지만 그러한 결단에 대한 거부감으로 넷째 치로는 집을 박차고 나간다.


복서와 창녀는 지극히 도시적인 인간 군상이다. 영화에서 창녀 나디아의 마음을 사기 위해 시모네는 복싱에 몸 담고 절도도 서슴지 않는다. 나디아에 대한 그의 소유욕은 로코와 달리 복싱계에서 낙오된 좌절감과 맞물려 친동생을 피범벅으로 만들고 끝내는 동생의 인생을 담보로 자기 빚을 갚기에 이른다. 한편 형들과 달리 노동자로 살아가는 치로는 시모네의 막대한 빚을 갚을 의향도 없지만 순식간에 복싱 챔피언이 된 로코처럼 그럴 엄두도 낼 수 없다. 현실적으로 복싱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가족을 구제하기 위해선 시모네를 비난하고 소외시키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가족 일에서 차츰 손을 뗀 맏형과 달리 치로는 가족에 자신의 수입을 내놓을 정도의 의지는 있다. 하지만 형의 빚을 갚으려고 평생 복서로 살아가기로 한 로코의 납득하기 힘든 선택에 절망하고 만다. 이처럼 도시는 가족이라는 '다섯 손가락'을 하나씩 찢어나간다. 문제는 인물들의 인간성마저 비틀어버린다는 것이다. 특히 진실되고 선한 모습의 로코는 영화 속에서 복싱을 할 때 희생 이면에 놓인 증오심을 투사한다. 하지만 이는 달리 말해 파괴된 가족을 구제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길 애타게 원하는 마음과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하고 싶은 간절함을 나타낸다. 네오리얼리즘에 강렬한 감성이 가미되고 알랭 들롱과 레나토 살바토리의 호연이 돋보이는 영화 <로코와 그의 형제들>은 제24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특별사자상과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최용혁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특별전 > 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정한 리얼리즘의 재발견  (0) 2011.03.14
[리뷰] 벨리시마  (0) 2011.03.14
[리뷰] 로코와 그의 형제들  (0) 2011.03.14
[리뷰] 순수한 사람들  (0) 2011.03.14
[리뷰] 루드비히  (0) 2011.03.14
[리뷰] 저주받은 자들  (0) 2011.03.14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연극과 오페라 연출가이기도 했던 비스콘티는 거의 평생 동안 멜로드라마에 탐닉했다. 유작인 <순수한 사람들>에서 그는 19세기 이탈리아 상류 사회에서 벌어지는 불륜과 정조의 문제를 다루며 다시 한 번 멜로드라마로 돌아온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공간은 사교계의 살롱과 귀족들의 저택인 실내 공간들로, 소품들의 화려함과 다채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주인공들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의 의상 또한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하고 아름답다. 장면이 바뀔 때, 동일한 공간이나 의상이 다시 등장하는 일이 거의 없으며, 사물들은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정점에 달한 영화미술, 숏 하나하나가 회화 작품과도 같은 프레이밍으로 이뤄진 미장센은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극 전체의 분위기와 상황, 인물들의 감정을 매우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정열적인 애정, 격정적 질투의 감정을 발현하는 주인공들의 얼굴과 눈빛을 보여주는 클로즈업은 그 자체가 최고의 미장센이기도 하다.

영화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식의 4막 구성을 따라 진행된다. 훤칠한 미남 주인공 툴리오(지안카를로 지안니니)가 정숙하고 순진한 아내 줄리아나(로라 안토넬리)를 버려두고, 치명적인 매력을 내뿜으며 사교계의 여왕처럼 군림하는 테레사(제니퍼 오닐)와 정분을 나누는 격정과 질투의 이야기가 영화의 1막이다. 테레사와 줄리아나를 연기한 두 배우의 외모가 무척 닮았는데, 이는 다분히 의도적인 캐스팅으로 보인다. 많은 남자와 정분을 뿌리고 다니는 테레사와 정숙한 아내인 줄리아나는 툴리오에게 욕정과 순수라는 두 가지 형태의 사랑을 대변한다. 그러나 줄리아나의 순수함이 깨어져나가면서 두 여인 사이의 간격은 점점 좁혀지며, 그들의 외모 또한 더욱 더 닮아간다.


툴리오가 줄리아나에게 돌아오면서 부부는 행복을 되찾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처럼 밝은 분위기의 2막은 싱그러운 자연의 실외 공간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평화는 너무도 짧다. 줄리아나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일순간에 바뀐다. 그리고 줄리아나의 아이가 태어나면서 이제 영화는 파멸과 죽음의 4막으로 치닫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툴리오와 테레사는 검은 옷을 입고 있다. 이 검은색은 줄리아나의 아이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실은 툴리오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함이었음이 곧 밝혀진다. 그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보인다. 비스콘티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과 데카당스의 미학에 매혹된 사람이었다. (박영석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특별전 > 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뷰] 벨리시마  (0) 2011.03.14
[리뷰] 로코와 그의 형제들  (0) 2011.03.14
[리뷰] 순수한 사람들  (0) 2011.03.14
[리뷰] 루드비히  (0) 2011.03.14
[리뷰] 저주받은 자들  (0) 2011.03.14
[리뷰] 베니스에서의 죽음  (0) 2011.03.14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만년의 대작 <루드비히>는 19세기 바이에른의 왕이었던 루드비히 2세의 기이했던 삶의 궤적을 장엄하게 담아낸다. 영화는 루드비히 2세(헬무트 베르거)의 즉위식으로 시작한다.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부와 왕이라는 지위가 주는 거대한 권력은 그에게 부담감으로 다가올 뿐이다. 이제 곧 그를 둘러싼 권력자들의 정치적 압력이, 제복의 높은 깃이 목을 감싸는 것처럼 그를 옭죄어 올 것이다. 자신을 옭죄는 왕좌로부터 벗어나 그가 택한 것은 예술에 대한 탐닉이다. 그는 왕위에 즉위하자마자 시종들에게 바그너를 찾아오라는 지시를 내리고 바그너를 성으로 초대해 거의 우상처럼 떠받든다. 바그너는 루드비히의 거울이미지와도 같은 자유로운 인물이다. 그의 방탕한 생활은 왕실의 재정을 탕진시킨다. 재상들의 압력에 굴복한 루드비히는 결국 바그너를 원조하기를 포기하고 다른 지방의 성에 들어간다. 이제 그는 성의 축조에 광적으로 몰입해 노이슈반슈타인 성과 같은 유명한 성을 짓도록 한다.

 
루드비히가 사랑했던 사촌이 그 성의 복도에 들어오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카메라는 거대한 복도의 오색찬란한 빛 속에서 경탄을 감추지 못한 채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을 롱 숏으로 담아낸다. 공간이 너무나 압도적이고 화려해 그 속의 인간은 너무나 왜소해 보인다. 성의 과도함이 루드비히의 광기를 증명하고 있다. 그의 축성은 많은 국고를 탕진한다. 정치인들이 이를 비난하자 이제 그는 성 안의 더 깊숙한 곳으로 숨어버린다. 그는 마음에 드는 배우를 성으로 초대해 그로부터 거의 진기를 쥐어짜듯이 예술적 에너지를 뽑아낸다. 그의 광기는 급기야 남색으로 이어져 거의 초현실적인 남자들의 집단성애로 극에 달한다. 이제 왕들의 시대는 끝났다. 이상의 시대도, 낭만의 시대도, 예술의 시대도 끝이 났다. 루드비히는 너무 늦게 도착했고, 그 자신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 깨달음은 그를 내부로부터 붕괴시킨다. 썩어가는 치아가 주는 고통, 예술과 남색에 대한 광적인 집착, 외부로부터 오는 직접적인 정치적 압력은 그의 정신을 서서히 붕괴시킨다. 그의 얼굴은 퉁퉁 붓고 피부는 새까매지며 눈빛을 붉게 충혈 된다. 머리와 허리를 꼿꼿이 세우던 미남자의 모습은 더 이상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화의 색조도 검푸른 톤으로 변해간다. 이제 그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통해 부흥한 바그너의 음악과 화려한 성은 역사에 생생하게 아로새겨졌다. (박영석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젊은 시절 네오리얼리즘의 기수로 불리던 루키노 비스콘티는 50년대 무렵 멜로드라마에 심취하는데, 이런 경향은 말년에 이르러 탐미주의로 치닫는다. 이러한 비스콘티의 탐미주의를 가장 잘 보여주는 독일 3부작의 서두를 여는 작품이 바로 <저주받은 자들>이다. 특유의 멜로드라마 연출과 연극적 특징, 동성애적 성향과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 한 편의 대작에 농도 짙게 뒤엉켜있다. 나치가 차츰 그 세를 불려나가던 1933년 독일. 루르 지방의 세도가 요하임 폰 에센벡이 운영하는 철강회사는 나치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회사를 넘겨받은 SA의 일원 콘스탄틴, 진보적이고 반나치적인 아들 허버트와 권력욕에 사로잡힌 사촌 아셴바흐(헬무트 그리엠), 에센벡 철강을 관리하고 있는 프레드릭(더크 보가드)과 그의 연인 소피(잉그리드 툴린), 그리고 그녀의 아들 마틴(헬무트 베르거)은 각자의 욕망을 안고 골육상쟁을 벌인다.


비스콘티는 <레오파드>에서처럼 역사의 격변기에 놓인 거대 세도가의 파멸을 그려내는데, 여기서는 나치즘의 도래였다. 나치즘의 불꽃을 일으킨 것은 에센벡 가문의 권력과 돈이었지만 여기에 풀무질을 하는 것은 인물들의 사적 욕망이다. 프레드릭의 소피에 대한 욕망, 소피와 마틴 간의 비뚤어진 성적 욕망은 모든 인물을 파국으로 몰아간다. 그와 동시에 이 사적 욕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권력욕과 경계가 모호해지며 더 많은 인물들이 나치에 가담하도록 만들어간다. 마틴이 연인의 어린 딸과 마주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는 페도필리아는 소피로 인해 비뚤어진 그의 성적 욕망을 대변하고, 밤에 벌어지는 SA대원들의 남색의 향연은 영화 초반에 드러난 콘스탄틴의 동성애적 욕망과 이어진다. 이 모든 것들이 뒤엉킨 채 굴러가는 골육상쟁의 아수라에서 모든 욕망은 과장된 조명과 세트, 화려한 편집과 카메라 움직임으로 극도로 탐미적이고 아름답게 흘러넘친다. 그러나 이 모든 아름다움은 파멸로 향한다. 영화의 시작부터 그러하다. 시뻘겋게 끓어오르는 철강회사의 용광로 위로 떠오르는 영화의 제목은 앞으로 등장할 인물들이 모두 일종의 지옥에서 허덕이리라는 것, 더 나아가 이들이 이미 모두 죽은 것과 다름없으리라는 것을 은유한다. 요하임의 생일파티에서 콘스탄틴의 아들 귄터가 첼로를 연주하는 순간 차례로 보이는 인물들의 얼굴은 흡사 데드마스크와 같으며, 바흐의 사라방드를 일종의 진혼곡처럼 들리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 모든 것이 타고 남은 폐허의 광경에 느리고 단호하게 경례를 붙이는 헬무트 베르거의 모습에는 피할 길 없이 도래하게 될 잔혹한 시대를 되돌아보는 비스콘티의 슬픔에 찬 시선이 있다. (박예하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비스콘티의 탐미주의적 성향이 극에 달한 후기 걸작이다. 중년의 작곡가가 갓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에게 반한다는 이야기는 순수한 절대미에의 매혹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미적 요소들이 과잉된 바로크적인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엄격한 고전주의적 면모가 보인다. 영화의 아름다움이 절제된 움직임과 형식 안에서 돋보이기 때문이다. 전작 <레오파드>의 무도회에서 보여준 화려한 색의 향연과 달리 색채도 절제되어있다. 영화 속 베니스는 온통 잿빛이며 도입부터 시종일관 습하고 어두운 죽음의 기운을 품고 있다. 의상도 거의 흰색이나 검정색이다. 이 도시에서 원색은 광대들에게나 어울리는 조롱거리이다. 마치 드라이플라워 같은 인물들은 우아하지만 생기가 없다. 덕분에 이 죽음을 배경 삼아 더욱 빛나는 건 황금빛 소년의 아름다움과 젊음이다.


유명 작곡가 구스타프 아쉔바흐(더크 보가드)는 요양 차 베니스를 찾았다가 소년 타지오(비요른 안데르센)와 같은 호텔에 묵게 되고 그 아름다움에 한 눈에 사로잡힌다. 그의 눈은 계속해서 타지오를 쫓고, 귀는 그 이름을 들으며, 입은 비탄에 젖은 혼잣말로 사랑을 고백한다. 동시에 그는 젊음 앞에서 늙고 병든 몸의 비통함, 수치심, 질투 같은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한편 미로 같은 도시 베니스에는 전염병이 쉬쉬하며 돌고 있다. 구스타프는 도시를 당장 떠나라는 충고를 받지만, 소년에의 매혹은 그를 죽음으로 이끈다.


주연 더크 보가드의 연기는 실로 감동적이다. 토마스 만의 원작 소설은 환희와 비애와 애증이 뒤범벅 된 예술가의 복잡하고 예민한 심리를 길고 자세히 묘사하는데, 보가드는 젖어있는 눈동자의 흔들림, 눈썹과 입가의 미세한 경련, 지친 몸짓과 표정만으로 이 모든 언어들을 대신한다. 클로즈업의 인물과 소년을 좇는 카메라의 절제된 움직임만으로도 그 심정의 미묘한 뉘앙스들이 충분히 마음을 울리며 전해온다. 순수하면서도 요염하고 앳되면서도 성숙한 비요른 안데르센의 자태는 취향을 뛰어넘어 절대적인, 하지만 결국 시간 앞에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배가되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말러의 교향곡 5번 2악장이 선택된 마지막 해변에 다다르면 음악, 빛, 파도와 함께 감동이 밀려온다. 말러와 만과 비스콘티. 각각의 영역에서 종합적이고 완벽한 미의 세계를 추구했던 세 예술가의 모습이 여기서 겹쳐진다. 지극히 아름답고 쓸쓸한 레퀴엠이다. (백희원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