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당스와 빛
2011. 1. 12. 15:44ㆍ특별전/한 겨울의 클래식
한겨울의 클래식 영화사 강좌 [4]
서울아트시네마의 '한겨울의 클래식' 기획전 기간에 영화에 대한 즐거움을 한층 더할 수 있도록 '영화, 역사, 풍경'을 테마로 한 영화사 강좌가 마련되었다. 지난 1월 9일, 루키노 비스콘티의 <레오파드> 상영 후에는 그 마지막 시간으로 한창호 영화평론가가 "데카당스와 빛"이라는 제목으로 강좌를 맡았다. 그는 <레오파드>에서 드러나는 오페라에서 가져온 4막 구성을 따라, 공간과 미장센을 중심으로 풀어내면서, 비스콘티의 데카당스 미학에 대해 들려주었다.
한창호(영화평론가): 2년 전에 비스콘티의 <루드비히>와 관련된 강좌 이후, 비스콘티로 여러분들과 만나는 두 번째 시간이다. 오늘은 "데카당스와 빛"이란 제목으로 준비했다.
영화는 이탈리아 통일 운동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그 당시 이탈리아는 대부분 왕정이었는데,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에 있는 사보이 왕가를 중심으로, 모든 왕국들이 사보이 왕가에게 충성 맹세를 하는 흡수 통일이 시작됐다. '비토리오 엠마누엘레'라는 왕과 '카부르'라는 재상, 직접 전투를 벌이는 '주세페 가리발디' 세 사람이 그 중심이었다. 그들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큰 대의에는 합의를 했지만, 어떻게 통일하느냐에 있어서는 생각하는 방식이 달랐다. 사보이 왕가는 입헌군주제를 원했다. 귀족과 부르주아가 서로 합의하여 권력을 분점하려 한 것이다. 반면, 가리발디는 국민주권의 공화국 건설을 하려 했다. 그런데, 가리발디가 국민적 영웅으로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왕가 입장에서 그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사람이 된다. 귀족들은 가리발디에게 밀려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먼저 가리발디를 숙청한다. 영화의 끝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다. 그것이 현재 이탈리아의 출발이다. 이탈리아는 비록 통일은 했지만, 그것은 처음에 목표했던 '혁명'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미흡한 상태로, 정치적 타협을 한 상태로 이뤄졌다. <레오파드>의 주인공 돈 파브리치오(버트 랭카스터)는 구시대에 속한 사람의 본능처럼 가리발디를 적대한다. 반면, 조카인 탄크레디(알렝 들롱)는 세상의 변화를 알고 있고, 가리발디에 자신의 미래를 건다. 상식적으로 가리발디는 이탈리아의 국민적 영웅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레오파드>에서 가리발디는 공포를 주는 대상이자 무뢰한처럼 나온다. 이는 주인공인 귀족의 관점에서 바라봤기 때문이다.
세 번째가 돈 파브리치오와 안젤리카의 춤이다. 3분 동안의 가장 중요한 춤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버트 랭커스터가 처음 캐스팅 됐을 때, 비스콘티는 대단히 화를 냈다고 한다. 비스콘티는 랭커스터에게 춤 선생을 붙여 유럽의 사교춤을 가르치게 한 후, 귀족들이 인사하는 법을 가르쳐 줬다. 1주일 후에 왈츠 스텝을 보러 온 비스콘티는 랭커스터가 귀족식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큰 모욕을 주었다고 한다. 랭커스터도 화가 나 짐을 싸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 사람하고 일을 해야겠다는 어떤 무언의 소리가 들리더라는 거다. 내가 볼 때는 랭커스터가 대인이었다. 비스콘티의 질책을 예술적인 야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친구였다. 세 번째 춤은 4막의 피날레이자 이 극 전체의 피날레이다. 하얀 옷을 입은 소녀와 검은 옷을 입은 나이든 남자의 춤이다. 소녀가 상징하는 사랑과 돈 파브리치오가 상징하는 죽음이 동시에 만나면서, 죽음과 순결한 사랑이 더 강조되는 대조법을 쓴 장면이다. 이 장면이 끝난 후 돈 파브리치오는 죽을 것이라는 걸, 우리 모두는 안다. 밤새도록 벌어진 파티가 끝나고 돌아가는 에필로그에서, 탄크레디와 안젤리카는 마차를 타고 가며, 돈 파브리치오는 걸어간다. 마차를 타고 갈 때 들리는 소리는 총소리이며, 파브리치오가 홀로 길을 걸어갈 때는 교회 종소리가 들린다. 종소리는 죽음을 앞둔 돈 파브리치오의 영혼은 위로하는 일종의 진혼처럼 들린다. 앞을 쳐다보니 좁고 깊은 검은 색 골목이 눈 앞에 펼쳐지고, 그는 어깨를 당당히 펴고 걸어 들어간다.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러 들어가는 것이다. 랭커스터가 워낙 연기를 잘했다. 사회적으로도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는 남자가 물리적으로도 죽게 되는 데 이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일종의 의례로서의 춤을 전개시키는 이러한 형식은 다른 영화들에게도 큰 영향을 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부>인데, 결혼식을 통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보여준 다음에 영화가 전개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공간과 소품은 세트디자인이 아니라 모두 진짜다. 시칠리아의 귀족에게 빌린 실제 성이다. 살레모라는 지역에서 매일 꽃을 공수했으며, 초는 매 시간마다 갈았다. 춤추는 홀 바로 옆방에 부엌을 설치해서 실제로 음식을 만들어 먹게 했다고 한다. 조명을 많이 쓰지 않고 거의 양초로 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중에 스탠리 큐브릭이 <배리 린든>에서 양초를 활용한다. 귀족들의 파티를 재현했다기보다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 낸 것이다. 비스콘티는 같은 영화는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사실 왕족 내부자가 그린 귀족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다. 비스콘티 이외에, 극소수 계급을 대표하는 내부자의 긍정적인 의미로서의 권위를 잘 표현한 사람은, 현재로서는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가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정리: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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