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전쟁이 끝난 직후 이탈리아는 말 그대로 폐허였다. 건물이 무너졌고, 사람들은 죽었고, 일자리는 없었다. 간단히 말해 희망을 찾기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영화감독들은 카메라를 잡고 거리로 나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그들의 보통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굳이 뭘 어떻게 하자고 대놓고 주장하지 않아도 그걸로 충분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자전거 도둑>, <대지는 흔들린다>, <움베르토 D> 같은 걸작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약 삼십년이 지나 미국의 찰스 버넷은 카메라를 들고 LA의 흑인 동네로 가서 그의 첫 번째 장편 영화인 <양 도살자>를 만들었다. 물론 전후 이탈리아와 1970년대의 미국 흑인 사회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차례의 오일 쇼크로 인해 당시 미국 경제는 크게 어려운 상황이었고, 흑인들의 인권도 크게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그 안에서 흑인 하층민들의 삶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과의 유사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실제 거리에서 촬영했으며 유명하지 않은 배우들을 기용했으며 비디제시스적 연출을 최소화하고 극적인 사건이나 연출을 배제했다.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양 도살자>는 흑인 감독이 마피아나 뮤지션, 노예가 아닌 ‘평범한’ 흑인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거의 첫 번째 영화였으며 그 완성도도 딱히 흠잡을 데가 없다. 특히 주인공이 도축장에서 일하는 장면의 사실적인 묘사는 어떤 다른 서사적 장치보다 당시 흑인들의 곤궁한 삶을 직접적, 상징적으로 잘 설명해준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후 오히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 건조한 영화에서 물기를 머금고 빛나는 이질적인 장면들이다. 이를테면 스탠의 부인이 일하다가 문득 냄비 뚜껑에 자신을 비춰보는 장면이나 스탠 부부가 춤을 추는 장면, 그리고 문자 그대로 ‘아이처럼’ 노는 꼬마들의 모습 등 말이다. 이를 통해 <양 도살자>는 단순히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의 방법론을 미국으로 가져온 영화가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가진 영화로 남는다. <양 도살자>가 필견의 영화인 이유다.

글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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