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작가이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같은 영화에서 그는 자신이 만든 영화 속 세계에 대해 어떤 의심도 갖지 않는다. 영화 속의 세계는 조화로우며 카메라는 특유의 롱 숏-롱테이크로 안정적인 미장센을 만들어내며, 그 안의 인물들은 자신만의 소우주를 만들어낸다.

한 편 <텐>을 만드는 키아로스타미가 있다. 이때 그는 영화의 형식을 끝까지 밀어붙여 영화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자칫하면 그저 개념만이 가득한 영화로 빠질 위험도 있지만 그는 어떤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다. 차에 달린 카메라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미장센으로 차에 앉은 사람들의 대화를 열 개의 컷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최고작 중 하나인 <클로즈업>은 기묘한 방식으로 이 둘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를 보기 전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영화 속 사건이 실제 사건이며 배우들도 실제 인물이라는 것이다. 한 남자가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을 사칭했다가 사기 혐의로 재판장에 선다. 이때 키아로스타미는 카메라를 들고 재판장에 갔었고, 이때 찍은 클립을 바탕으로 사건을 영화화 했다. 여기에 실제 인물들을 불러 모아 사건을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픽션과 논픽션의 구분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그저 영화적 실험을 위한 단순한 개념 놀이라면 이 영화를 특별하게 생각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가짜 모흐말바프와 진짜 모흐말바프가 피해자 가족에게 찾아가 눈물을 흘릴 때 우리는 픽션과 다큐멘터리, 그리고 실제 삶이 하나로 달라붙는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은 영화-현실 속 인물들에게 치유의 순간이다. 형식적 실험을 통해 영화가 자기 등장인물들의 삶을 중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다시 생각해보면 그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감독이라는 건 틀린 말일지도 모른다. 그는 어떤 형식을 택하든 하나의 영화를 만든다. 자기 영화 속 인물에게 따뜻한 애정의 시선을 보내는 영화 말이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이야기인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말할 필요도 없고, 또 다른 형식 실험을 시도한 <쉬린>도 결국 여성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니 그의 영화가 어렵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다음 영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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