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관계로 얽힌 생활의 터전에서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접점을 찾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같은 일터에서 만나 알게 된 정윤정 씨는 아주 뜻밖의 모습으로 다가온 최초의 인연이었다.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덧 시네마테크에 대한 논의로까지 이어졌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렇듯 유난스러울 만큼 정윤정 씨가 더 반가웠던 것은 시네마테크를 알고 아끼는 사람을 가까운 생활의 영역에서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영화를 전공했고 영화계에서 일을 하기도 했었다는 정윤정 씨에게서 시네마테크에 대한 애정 어린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시네마테크와의 인연을 꽤 오래 이어왔다고 들었다. 2003년도에 처음 알게 되었다고 했는데 시네마테크에 처음 오게 된 날이나 처음 본 영화 같은 것들을 기억하는가. 또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시네마테크에 처음 간 것은 2003년 봄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엔 시네마테크가 소격동에 있었고, ‘허우 샤오시엔 특별전을 할 때였다. 허우 샤오시엔을 좋아해서 간 건 아니었고, 양조위를 좋아해서 <비정성시>를 보러 갔던 거다. 그때에도 영화를 보기 위해 서울에 있는 이런저런 극장을 다닐 일이 많았는데, 다른 극장과 달리 의자가 딱딱했던 것이 신기했었다. 작은 로비에 붙어 있는 관객 회원 가입 안내문에 호기심이 생겨서 메일링을 먼저 등록하게 되었다. 이후 2005년에 대만 뉴웨이브 특별전을 해서 친구랑 왔을 때는 이미 허우 샤오시엔 팬이 되어있을 때였다. 그때 허우 샤오시엔 감독도 내한을 해서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고등학교 때 시네마테크에서 처음 본 영화가 <비정성시>였고, 원래 중국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공부해봐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 그때부터 계속 찾아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양조위가 저를 시네마테크로 인도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웃음).


 

시네마테크에 처음 온 날 챙겨둔 리플렛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더라. 나중에는 어떤 결심으로 관객 회원이 될 생각을 했나. 이 공간에 대한 각별함이 있었을 것 같다.

<비정성시>를 보러 갔던 날 가져온 허우 샤오시엔 특별전리플렛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관객 회원은 스무 살이 되면서 돈을 자유롭게 쓰자는 생각에서 가입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1년에 영화를 30번 이상은 보니까 본전은 나오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나중에는 그런 횟수에 연연하기 보다는 시네마테크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에서 갱신을 계속 하게 됐다.


 

현재 시네마테크가 사람들에게 활용되고 이용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어떻다고 생각을 하나. 전용관의 부재에 따른 문제도 크지만 이 공간을 지키려는 노력이 엉뚱한 의미로 보수화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는 류승완 감독님의 지적도 있었다. 본인의 생각은 어떤지, 또 아직 이 공간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체험을 공유하면 좋을 것 같은지.

저도 시네마테크라는 공간에 사람들이 보다 쉽게 접근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시네마테크를 좋아하게 되면서 외국에 가면 꼭 그 나라의 시네마테크를 가보자는 다짐을 했고, 그렇게 일본과 대만의 시네마테크를 가 본 적이 있다. 도쿄에는 도쿄국립현대미술관 안에 시네마테크가 같이 마련되어 있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도 독립 영화나 무성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 있지 않나. 도쿄의 미술관 지하에도 고전 영화를 상영하는 아카이브가 있더라.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 영화를 보러 가면 살짝 기가 죽는 면이 없지 않아 있는데, 거기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고 저같이 평범한 사람도 많아서 보이지 않는 울타리도 없어 보였다. 게다가 미술관 안에 있으니까, 하나의 예술로 영화와 미술이 연계되어 있다는 게 좋아 보였다. 시네필이 이만큼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거기에서 한두 명 떨어지는 걸 막자 라기 보다는 예술이라는 큰 카테고리로 접근해야 되지 않나 싶다.
대만의 시네마테크도 정말 작은 공간이고 100석이 채 안 된다. 마찬가지로 도심에 위치해 있고 또 특이한 게 작은 정원이 있었다. 그날 본 영화는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했던 <점프 보이즈>였는데, 마침 그날 있던 GV의 분위기가 굉장히 조용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름 시네마테크 순례를 했던 것 같다(웃음). 다만, 그 울타리 없음에는 주의를 기울였으면 하는 게 있다. 작년에 부산 영화의 전당에 있는 복합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는데 공연 전용 상영관이라서 그런지 소리가 많이 울리더라. 예술간의 교류는 좋으나 전용관을 만들 때는 용도를 제대로 구분해줬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에 대한 측면에서, 이탈로 칼비노는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가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시네마테크에서만 충족될 수 있는 순기능과 역할들이 많은데 여태 전용관이 없다는 게 오랜 의문이다. 전용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고, 또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는지가 궁금하다.

전용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제가 대학교 때부터 얘기가 진행됐던 거라 지금에 와서 굳이 그 필요성을 얘기한다는 건 무의미한 일인 것 같다. 이미 무조건 필요한 거다. 서울이 듣도 보도 못한 도시도 아니고 영화산업도 가장 큰 최대의 수도인데 전용관이 있냐 없냐, 의 문제로 싸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것 같다. 너무 당연한 얘기를 오래하고 있는 것 같다. 또 전용관이 있다면 외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강연들을 내부에서 수용할 수 있게 되면서 공간의 역량이 강화될 수 있을 것 같다. 집약적으로 영화 교육이 이루어지고 그런 것들을 내부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말하다 보니 이 공간에 대한 애정을 털어놓고 있는데, 영화를 보러 오면 이 주변에 있는 밥집에 가자고 해서 골목골목에 있는 밥집들도 다 찾아갔었다. <소문난 집 추어탕>에서 1500원짜리 국밥을 먹었던 기억도 난다. 또 시네마테크에 혼자 가서 영화를 2~3편씩 보고 올 때가 있는데,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주저 없이 혼자 가는 편이다. 혼자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도 마음이 편하다(웃음). 그리고 스스로에게 비춰봤을 때 가장 효과적인 홍보 방법은 GV였다. 저는 GV를 정보습득의 의미로 보지는 않고, 재미있고 웃겨서 많이 찾는 편이다. 재미있겠다 싶어서 참석하는 GV는 김영진 평론가님과 이명세 감독님이다. 학술적이고 진지한 영화 얘기도 물론 있지만 이렇게 재미가 있어서 가는 사람도 있다. GV에서만 들을 수 있는 비화도 재미있고, 이런 것을 홍보 전략으로 해서 접점들이 많아지는 전용관이 생기면 좋을 것 같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대한 접근도 굉장히 자연스러웠을 것 같다. 마침 ‘2012 친구들 영화제가 진행되고 있지 않나. 참여 친구들과 같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본인이 원하는 접점이 있을텐데, 이번 영화제에서 보고 싶은 작품은 어떤 것들이 있나? 영화에 대한 취향은 어떤가?

뉴스레터를 매번 체크하기 때문에 친구들 영화제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계속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램을 확인한다. 이번 ‘2012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관객들의 선택으로 <화해불가>가 뽑혔을 때 좀 놀랐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장 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의 다른 작품을 봤었는데 영화가 거의 영상 철학이라서 어려워했던 기억이 난다(웃음).

남은 상영 일정에서 제 취향을 따져본다면 <로제타> <정복자 펠레>. <로제타>는 일단 다르덴 형제의 작품인데다, 내 안의 윤리의식을 일깨우는 영화라서 좋아한다. 윤리에 대한 문제를 다르덴 형제는 실생활에서 굉장히 잔혹하게 보여주지 않나. ‘나는 왜 편하게 살고 있을까하는 반성과 깨달음을 주는 영화라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좋아한다. <정복자 펠레>는 아직 못 봤는데, 궁금증이 있는 영화다. 제가 다닌 대학원의 교수님이 회사 생활을 하다가 교수님이 되신 분인데, 이 영화를 보고 대학원 진학에 대한 결심을 했다고 하시더라. 도대체 어느 정도로 엄청난 영화이길래 회사원이 대학원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한 걸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다. 사실 취향이라고 꼬집어서 얘기할 만한 게 없다. 다 너무 좋아한다.

 


이번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의 테마는 이것이 영화다!”이다. 참여 친구들에게도 이 테마로 생각을 묻기도 했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영화상이 있다면.

글쎄,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영화를 그냥 좋아하는 학생에서 영화에 대해 공부도 해보고 가까이서 일도 해봤지만, 여전히 영화를 볼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인 것 같다. 문자 그대로의 행복이 아니라, 행복한 순간을 의미하는 행복 말이다. 슬프고 괴로운 영화를 봐도 거기서 행복해하고 만족감을 느끼지 않나. 그런 행복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 바로 영화인 것 같다.

 

인터뷰/글 : 장미경(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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