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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Interview

[Interview] 시네마테크는 관객의 오만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가장 ‘관객’이고 싶을 때 시네마테크에 온다


이창동 감독이 추천한 제리 샤츠버그의 <허수아비> 상영 직후, 공부하려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보러 왔다는 김다미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로서 다양한 문학작품들을 편집해왔다는 그녀에게 영화를 포함한 ‘고전’에 대한 의견도 물으며 논의를 더했던 시간이었다. 시네마테크에 오면 관객으로서의 오롯한 느낌을 갖게 된다는 그녀는 이날도 어김없는 ‘관객’의 모습으로 극장에 자리해있었다.



오늘 이창동 감독이 추천한 영화인 제리 샤츠버그의 <허수아비>를 관람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난 소감은 어떤가. 어떤 계기로 이 영화를 보러 오게 되었는지, 또 이렇게 감독이나 배우들과 만나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들 영화제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도 궁금하다.

이창동 감독님을 좋아한다. <시>나 <밀양> 같은 감독님의 작품들을 보면 우리 사회나 그 구성원들에게 항상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번에는 감독님께서 다른 영화를 추천하는 기회였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실지가 궁금했다. 감독님께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면,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그래서 나도 단순히 유명한 고전영화를 본다는 것보다, 이런 영화를 통해서 어떤 것을 생각하고 알아야 하는지 공부하고 싶은 마음으로 왔다. <허수아비>에 대해서는 감독님께서도 어떤 것을 딱 짚어내서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진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시대의 희망이라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려는 것 같았다. 감독님의 팬으로서 앞으로 감독님도 ‘그런 이야기를 하시겠구나’하는 기대감도 들었다.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출중해서 굉장히 만족스럽게 봤고, 이렇게 몰랐던 감독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 앞으로 제리 샤츠버그나 당시의 영화들에 대해서도 찾아보게 될 것 같다. 좋은 경험이었다.


처음에 시네마테크를 알고 찾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 공간에 얽힌 에피소드 같은 것도 있다면 들려달라.

굉장한 씨네필은 아니지만 시네마테크에 오게 된 것은 기본적으로 전주나 부산 등 영화제의 역할이 컸던 것 같다. 영화제를 통해 접촉했던 좋은 영화들을 다시 보기 위해 올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처음 시네마테크에 왔을 때는 이런 곳이 서울에 있었나 싶었다. 인사동에 본적을 두고 있는 개인적인 역사와도 맞물리면서, 이곳에 영화관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었다. 처음 왔는데도 마음이 참 푸근해지더라. 허례허식이 없는 이 공간이 재미있었다. 종로의 중심에 있는 이런 건물에서 시네마테크가 유지된다는 것 자체가 오래 버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 많은 지지를 하고 싶다. 여기는 꼭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다만 가끔 서운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렇게 친구들 영화제를 한다고 하면 더 내려오고 밖으로 나와도 좋을 텐데 꼭꼭 숨어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몰라서 못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근처의 공간들도 재미있지 않나. 조금만 더 밖으로 나와 있어도 종로의 젊은이들을 얼마든지 끌어올 수 있다고 보는데, 그런 작업도 해야 되지 않나 싶다.

에피소드라면, 사실 오늘 본 영화보다도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있었다. 아마 시네마테크라서 가능한 일일 텐데, 사정이 있어서 예매했던 두 장 중에서 표 한 장을 현장에서 취소하게 됐었다. 그래서 상영 전에 옆자리에 앉은 분한테 취소된 표 구입하셨냐고 그냥 말을 걸었는데 그분께서 맞다며 거듭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는 거다. 번호를 남기고 자리가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데, 종로를 떠나지 않고 전화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이런 열정적인 팬들이 있다는 게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재미있게 보라고 했던 것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특별한 유대관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줬다. 비단 이런 인터뷰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끼리도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였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영화를 기다리는 풍경이 뻔하지 않나. 좀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경험을 계기로 다음에도 옆 사람 정도에게는 영화 재미있게 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이런 경험들이 재미있다.


독일 뮌스터에서 유학했다고 들었는데, 독일에 있을 때 시네마테크나 그와 유사한 공간들을 접해보았는지 궁금하다. 독일 사람들이 그러한 공간을 이용하는 문화나 분위기는 어떤가.

뮌스터에 작은 독립영화극장이 있어서 몇 차례 가 본 적이 있다. 보통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사람들이 많이 가는데 뮌스터에서 시네마테크의 역할을 하던 그곳에서는 좋은 영화들을 선정해서 2~3주의 시간을 두고 기획전을 열었었다. 상영 시간이 항상 동일하게 정해져 있어서 어떤 영화를 상영하는지 모르더라도 일단 영화를 보러 그 시간에 맞춰 가는 거다. 또 극장 안에는 스낵을 먹을 수 있는 바 같은 공간이 분위기 있게 구성되어 있다. 혼자 온 할아버지도 있고 젊은 연인들, 또는 남자아이들끼리 몰려오는 경우도 있다. 극장 안에서 맥주나 감자칩을 사 갖고 들어가서 먹을 수 있는데다, 영화를 관람하는 분위기도 생각했던 것처럼 엄숙하지 않아서 자유로운 느낌이 있었다. 그때 뮌스터의 영화관은 나에게 ‘일상에 들어와있다’라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서점에 가는 것을 의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듯,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을 때나 뭔가 생각하고 싶을 때, 아니면 부담 없이 습관처럼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관에 간다는 것이 나한테는 어떤 의미가 되는지, 그런 것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됐다. 여기서는 홈페이지 등에서 정보를 얻고 나에게 맞는 영화들을 찾아서 보는 느낌이었는데, 앞으로는 그런 부담 없이 더 편안하게 보려고 한다. 프로그램도 더 풍부해져서 좋은 기회들이 많았으면 한다.


이곳에서 시네마테크를 계속해서 찾게 되는 동기엔 어떤 것들이 있나? 상영 정보를 직접 찾아보고 오는 편이니 아무래도 영화 때문인가?

예전에는 영화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이 공간에 오고 싶다라는 생각이 더 강하다. 멀티플렉스 같은 대형 상영관에서는 내가 주가 아니지 않나. 영화 프로그램들도 계산적으로 짜여져 있고 시간도 그렇게 편성되어 있는데, 여기는 상업적인 정밀함이 없다 보니 내가 주체가 되는 느낌이 든다. ‘관객’이 되고 싶어서 오는 것이다. 멀티플렉스에 가면 나는 소비자가 되지만, 여기서는 소비자라는 느낌은 안 든다. 어떻게 보면 관객의 오만함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관객으로서 오만해도 되는 공간이지 않나. 어떤 외압이나 남들이 보니까 나도 봐야겠다는 초조함도 없고 정말 내가 영화 관객이라는 느낌이 드는 곳이 여기, 시네마테크에서인 것 같다. 내가 관객이고 싶은 날, 가끔은 이렇게 오만해져도 되지 않을까(웃음). 또 영화를 기다리면서 극장에 들어가기 전의 다양한 순간들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출판사에서 고전문학작품을 편집하기도 했었다고 들었다. 몇 년 전부터 국내에 고전문학 열풍이 불면서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번역과 편집을 통해 고전문학 시리즈를 꾸준히 출간하고 있다. 이런 시류에 맞춰 고전 영화들도 함께 조명을 받고 꾸준히 사람들에게 회자되었으면 하는데, 고전 문학과 영화가 다시 사람들에게 보여진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또 고전 문학과 영화가 사람들을 만나는 방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최근에 김연수 소설가가 강연에서 고전문학과 관련해서 들려준 이야기에 굉장히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다. 사실 고전문학이라는 게 인기 장르가 아니었고 그런 적도 없었다. 작가들도 따지고 보면 대부분이 사회의 부적응자였고, 그것에 상처입고 괴로워했는데, 김연수 작가는 이러한 지점들이 지금의 우리모습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했고 그런 측면에서 고전을 예찬하게 된다고 했다. 고전이 고전으로서의 특별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다만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 감춰지는 것에 대해 얘기를 한다는 생각이다. 고전 문학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지금의 우리가 위로 받을 수 있고, 그런 노력들이 헛되지 않고 남는다는 것. 고전 문학이든 영화든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기가 해야 될 얘기가 있다고 생각해서 배우들과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촬영했던 것인데, 그 뒤에 몇 십 년이 지날 때까지 국경을 초월한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어떤 기법이나 특수한 주의에 구애되기 때문인 것 같지는 않다.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고 그것에 답을 내리려는 열정적인 모습에서, 고전 영화와 고전 문학은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이런 고전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특히 오늘 <허수아비>를 보면서 장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는데, 그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잘 읽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까지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나라의 훌륭한 고전 영화들도 더 많이 찾아보고 싶어졌다.


다양한 에피소드와 경험들을 들려주었는데 시네마테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체험을 공유해주면 좋을 것 같나. 또는 시네마테크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일단 시네마테크에서 상영되는 영화가 기본적으로 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내가 먼저 이 공간에 와봤다고 해서 처음 오는 사람들과 느끼는 바가 크게 다를 거라고 생각은 안 한다. 일단 여기를 와보면 다 좋아할 것 같다. 상영하는 영화에 대한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고, 일단은 의미를 좀 찾아봤으면 좋겠다. 악기상가 위에 이렇게 극장이 있다는 것, 실버영화관과 같이 있는 이런 풍경이나 모든 경험들이 다 소중한 것 같다. 사람들이 다 알아서 느끼지 않을까 한다. 내가 처음 시네마테크에 왔을 때 굉장히 인상 깊었던 것은 매표소의 직원의 친절함이었다. 처음 표를 끊을 때부터 분위기가 달랐는데, 영화에 대한 얘기를 간단히 해줬던 것 같다. 영화관이나 시설 이용 안내, 상영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인상이 좋게 남아있다. 매표소에서도 대뜸 이 영화 재미있냐고 물어보고 싶고, 그렇게 편하고 쉽게 생각하고 싶다. 모두 그런 열정이 있는 분들이라 어디서든지 영화 소개도 편히 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극장 입구에서 수표를 할 때에도 친근한 느낌이 든다. 항상 이 공간에 오면 영사 기사님도 궁금했는데, 이 공간이나 영화제의 역사에 대해 그분들만큼 잘 알 수 있는 분들도 없을 것 같다. 외부 인사보다는 내부에 계신 영사 기사님께서 이야기를 해준다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인터뷰나 서면으로도 얼마든지 실을 수 있으니 이 공간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면 그 역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터뷰/ 글 : 장미경(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