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재의 진실에 대한 안톤 체호프의 보고서

지난 8월 6일 오후 ‘러시아 모스필름 특별전’ 섹션에 마련된 안톤 체호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갈매기> 상영 후 '안톤 체호프와 문학'이란 제하의 두 번째 특별강좌가 열렸다. 강사는 체호프로 석박사 논문을 썼을 만큼 체호프 전문가인 성균관대 러시아문학과 오종우 교수가 나섰다. ‘인간 존재의 진실에 대한 안톤 체호의 보고서'란 주제로 20세기 현대문학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체호프 문학의 특징과 의미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볼 수 있었던 그 시간의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오종우(성균관대학교 러시아문학과 교수):
좋은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면 왠지 하늘 색깔이나 거리의 풍경이 달라진 듯하고, 마음속에서 여러 느낌들이 생기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이것이 영화예술이 갖고 있는 진정한 힘이라고 생각된다. 좋은 영화를 보고났을 때의 감흥은 상당히 오랜 기간 살아남아 아주 미세한 부분에서 우리 삶의 어떤 동기나 힘이 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영화, 넓게는 예술이 갖고 있는 힘이 아닌가 싶다. 오늘 본 영화 <갈매기>는 잔잔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절제된 격정이 존재한다. 이 느낌이 우리의 삶 속에 반영되거나 투영될 수 있는 경험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먼저 세계문학사에서 체호프가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체호프는 예술과 문학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를 연 작가이다. 체호프 이전의 문학은 그 안에 사상과 철학이 녹아들어 있었다. 다시 말해 문학과 사상·철학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와 같은 작가들이 그렇다. 문학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예술의 한 분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문학이라는 단어는 러시아어에서는 문헌이라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즉 문학은 허구적인 이야기들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빗대서 철학이나 사상을 담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체호프 이전의 문학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이다. 하지만 체호프는 문학을 사상과 철학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예술로서의 문학을 얘기한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인물이 어떤 행위를 하는 데에 있어 그에 대한 사상과 철학에 대한 논리적인 진술이나 설명이 없다. 예술 작품은 논리적이거나 일상적인 언어로 백퍼센트 번역 혹은 환원되지 않는다. 바로 그 부분에 예술이 갖는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이며, 체호프의 작품은 이러한 예술에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20세기 현대문학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

체호프는 ‘좋은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대하는 것은 한 잔의 보드카를 마시는 일과 같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보드카는 무색, 무취, 무미한 술이다. 때문에 음미하며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한 잔을 툭 털어 넣으며 마시게 된다. 이때 보드카의 작용은 미각이 아니라 가슴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무엇을 ‘안다’거나 ‘이해한다’고 하면,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파악한다는 의미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렇게 머리로 아는 지식은 결코 삶 속에서 실천되지 않는다. 우리의 감각으로 알아야 진짜 아는 것이다. 실천될 수 있는 진정한 지식은 우리의 감각과 가슴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예술이 이 시대에 갖는 중요한 의미이며, 체호프의 가치도 여기에 있다. 예술은 이성적이거나 논리적 행위가 아니다. 예술은 감각과 관련되기 때문에 예술을 통한 앎은 우리의 몸과 함께 하며, 따라서 이때의 앎은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될 수 있다. 체호프가 보드카에 빗대어 한 얘기도 바로 이것이다. 보드카가 가슴으로 마시는 술인 것처럼 좋은 예술 역시 머리가 아닌 우리의 가슴을 통해 반응한다.
체호프에게서 중요한 것은 문학이 삶의 진실을 담는다는 것이다. 체호프 작품에 나오는 대사 중에 ‘인생은 짧은 거야, 그러니 잘 살아야해’는 말이 있다. 이는 그가 예술가로서 우리에게 남긴 아주 큰 의미를 함축한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진실에서 벗어나거나 괴리감을 갖는 통념들의 문제를 다룬다. 통념에 갇혀서 모두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니까 거기에 안주하면서 우리는 진실로부터 멀어져 우리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없게 된다. 이는 체호프에게 가장 예리하게 발견되는 점들이다. 일반적인 통념에 비추어 볼 때, 사실과 진실은 일치되곤 한다. 우리는 종종 사실을 곧 진실로 받아들이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심지어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것이 있을지가 의문이다. 모두가 동일하게 생각하는 사실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모두 해석된 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과 현상들은 사람들의 해석에 따라 사실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백퍼센트 객관적인 사실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실들을 분석해서 범죄를 밝히는 법이 득세를 하는 시대는 한편으로는 타락한 시대이다. 로마가 그랬다. 여러 가지 정황들, 사건들의 사실들을 종합해서 판결하는 것이 이 시대의 진실 혹은 진리라고 주장하는 데에서는 인간들의 타락을 볼 수밖에 없다. 각각의 개인의 해석들을 죽여 버렸기 때문이다. 해석력이라는 것은 진실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기에 대단히 중요하다. 체호프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 역시 이 해석력의 문제이다.

영어에서 ‘general’과 ‘universal’이라는 두 단어는 모두 ‘일반적인, 보편적인, 두루 통용되는’이라는 비슷한 뜻을 지닌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general’은 ‘종류’라는 뜻의 라틴어가 어원으로, 즉 같은 종류의 것이 널리 퍼진다는 것이다. 반면 ‘universal’의 라틴어원은 '하나'와 '귀결'이라는 뜻을 갖는다. 따라서 두 단어는 외형적인 뜻은 같아도 그 본질적인 뜻은 서로 다르다. 'general'이 똑같은 종류의 것들이 널리 퍼지는 것이라면, ‘universal'은 단 하나가 세상 모든 것의 의미를 갖는다. 이 세상에는 'general'한 듯하지만 'universal'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사랑’이 있다.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사랑이 존재하지만 사랑의 경험을 떠올린다면 그 모든 사랑도 똑같은 건 하나도 없다. 많은 듯하지만 하나로서 전체가 된다는 점에서 ‘예술’과 ‘생명’ 개념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생명은 'general'한 형태로 아주 많은 것 같지만, ‘철수’라는 존재는 단 하나이다. 인간 존재라는 것은 바로 이 점에서 대단히 소중한 것이다.
한편 'general'한 것의 아주 대표적인 것이 이데올로기이다. 체호프는 그의 작품에 사상이 없다는 비판에 대한 대답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행간에서 경향을 찾아 내가 자유주의자이니, 보수주의자이니, 확고하게 규정지으려고 하는 자들이다. 나는 자유주의자도, 보수주의자도, 점진주의자도, 성직자도, 무신론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단지 자유로운 예술가이고자 한다. 나는 거짓과 모든 형태의 폭력을 증오한다. 내게 신성한 것은 모든 형태의 거짓과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진실에 대한 아주 절대적인 자유이다. 이것이 내가 위대한 예술가라면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강령이다.’
‘우리가 단순히 좋다고 하는, 그리고 우리를 취하게 하는 작가들은 하나의 공통된,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어디론가 가서 거기서 당신을 부른다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이성이 아니라 자신의 온 몸으로 그들에게 어떤 목적이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들보다 더 뛰어난 작가들은 사실적이며, 삶을 있는 그대로 쓴다. 그러나 당신은 각각의 논쟁들에 목적의식들이 스며들어 있다면서,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배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삶을 있는 그대로 쓴다. 그 이상은 알바 아니다.’
이는 체호프의 아주 중요한 예술관이다. 우리가 통념처럼 갖고 있는, ‘주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결국 'general'한 것이다. 하지만 체호프가 얘기하는 것은 ‘해석한 주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삶을 있는 그대로 쓴다’는 것은 사실들을 마치 보고서처럼 쓴다는 것이 아니다. 체호프는 사실들을 각각의 해석력을 갖고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이 예술이라고 말함으로써 ‘universal'을 강조했다. 여기에는 대단한 인간 신뢰가 담겨있다. 체호프 이전의 작가들은 교사가 되려고 했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체호프는 객관적인 것을 냉철하게 보여주며, 독자에게 해석하라고 한다. 이것이 체호프의 현대적 가치이다.


체호프는 모스크바의 의과대학에 입학한 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잡지에 콩트를 쓰기 시작한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의사의 봉급보다 작가의 원고료가 훨씬 많았다. 우리는 문학과 예술을 관념의 유희라고 오해하곤 하는데, 체호프에게 있어서 예술은 생존의 수단이었다. 이는 그의 작품의 근간을 이룬다. 좋은 의사는 환자를 만났을 때 냉철하게 그 병의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한다. 이는 작가로서의 체호프와도 연결된다. 현실을 바라볼 때, 감정적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동정하는 것으로는 현실과 조응하는 진정한 좋은 작품을 쓸 수 없다. 현실의 냉정한 문제들을 예리하게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것이다. 체호프가 불쌍한 사람들의 몰락에 대한 얘기들을 유머라고 쓴 것은, 그것을 보면서 그렇게 살아서는 진실한 삶을 살 수 없음을 독자 스스로 해석하기 바랐던 것이다.
『갈매기』는 주요 인물의 자살로 끝나는 이야기임에도 체호프는 이 작품이 코미디라고 말한다. 자신의 꿈을 이루어내는 인물은 한 명도 없는 이 작품은 자기가 바라는 바와 자기가 처한 현실의 괴리를 다루고 있다. 코미디의 중요한 요소는 어긋남, 불일치이다. 『갈매기』의 인물들의 삶들이 그렇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갈매기』 이야기를 본 딴 것으로, 역시 꿈을 이루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이다. 꿈은 현실로 와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고도를 오게 해야 하는 것이다. 진실을 통찰하지 못한 통념의 문제는 체호프 문학의 근간을 이룬다. 물론 이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갈매기』에는 극중극 형식으로 니나의 중요한 독백이 있다. 그녀는 독백을 통해 생명과 해석과 같은 것들이 물질에 의해 사로잡혀서 그 생명력을 잃은 끔찍한 현상에 대해 얘기한다. 이처럼 체호프는 우리에게 삶과 인간 존재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강하게 얘기한다. 그는 작품은 우리가 삶을 해석하려는 노력을 얻게 될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 주원탁(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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