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르누아르 만년의 걸작 <탈주한 하사 Le caporal épinglé>(1962)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지역에서 포로로서 수용된 프랑스 군인들의 생활을 그린다. 뉴스릴 필름을 통해 간략하게 당시의 상황이 설명되고 영화는 곧바로 수용소 내부와 그 주변 지역에서의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주된 인물은 파리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탈주를 시도하는 하사(장 피에르 카셀), 그의 절친한 친구이며 몽상가처럼 보이는 동그란 안경을 쓰고 다니는 바롤셰(클로드 라쉬), 그리고 가장 쾌활하면서도 현실의 씁쓸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인 파테(클로드 브라쇠르)다. 군인이 되면 이전의 신분이나 직업들은 지워진다. 전쟁터 혹은 수용소는 그들에게는 거의 유일하게 인간 대 인간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만나는 장소가 된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전쟁이 끝나면 원래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야만 함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수용소 내부에서의 삶과 새로운 질서에의 적응의 태도에 있어서도 각각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각 캐릭터가 보이는 행태의 특징이 매우 중요한 이유다.



물론 수용소의 현실은 극도로 비참하다. 강제 노역이 행해지며, 탈주의 시도가 실패한 이후에는 가혹한 체벌이 이어진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 에너지를 잃지 않는 르누아르의 영화답게, <탈주한 하사>는 가혹한 수용소의 환경에서도 사람들 사이의 인간적 연대와 따스한 우정을 발견해 낸다. 인물들은 결코 의기소침하지 않고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수용소의 삶에 적응해 살아간다. 하지만 하사와 바롤셰를 통해 드러나는 르누아르의 또 다른 전언은 편안한 삶의 타성에 젖어 권력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느덧 탈주의 시도를 멈추고 안락한 삶에 만족하던 하사는 독일 소녀와의 관계에서 애정을 느끼는 순간, 불현듯 그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적 존엄을 지키기 위한 자유에의 투쟁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하사는 자신이 아끼는 친구인 바롤셰를 깨우치기 위해 그의 멱살을 잡는다. 자신의 비겁함에 스스로 상처받고 일어난 바롤셰가 탈주를 시도하다 맞이하는 죽음의 순간. 외화면에서 총성이 들려오고 클로즈업된 하사의 얼굴이 부르르 떨린다. 르누아르에게 있어, 이것은 숭고한 죽음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하사의 끊임없는 탈주 시도다. 그러나 그 다양한 탈주 시도는, 실상 그것이 목숨을 걸고 벌이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유머러스하게 묘사되면서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순간이 된다. 왜일까? 르누아르에게 자유에의 열망은 곧 삶의 에너지이며, 현실의 비참함 조차도 그 긍정적 에너지를 억누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하사와 파테의 탈주가 성공하는 순간도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계속되는 우연의 중첩의 결과다. 그들은 마침내 파리에 도착하고 파테는 두려워한다. 이제 탈주가 성공했으니 그들은 이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고 더 이상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그러나 자유는 아직 완전히 획득되지 않았다. 세상 자체가 감옥인 까닭이다. 억압에 대한 저항은 계속되어야 한다. 단순히 물리적 자유만이 아닌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심리적 자유를 얻기까지, 끝없는 자유에의 열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제 그들은 그것을 깨닫고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간다. 르누아르의 영화는 여전히 뜨겁다. (박영석 :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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