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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현대 코미디 역사의 전위 - 테리 길리엄의 ‘몬티 파이튼의 성배’

1975년에 <몬티 파이튼의 성배>가 공개되었을 때, ‘몬티 파이튼’은 TV 시리즈를 통해 이미 하나의 컬트 현상이 되었다. 골계미마저 느껴지는 풍자와 비틀린 유머로 점철된 저예산 소모성 코미디인 ‘몬티 파이튼’ 시리즈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대 코미디 역사의 전위로 불리고 있다. <몬티 파이튼의 성배>는 그 중에서도 이 우상파괴적인 코미디 시리즈의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특히 여기에는 시리즈의 골수팬들이 열광하는 전설적인 장면들이 수두룩하게 들어가 있다.

<몬티 파이튼의 성배>는 TV 시리즈에서부터 이어진 코믹한 패러디 각본을 모델로 삼고 있다. 왕 중의 왕이 되기 위해 성배를 찾으려는 아더 왕의 이야기를 패러디 한 스토리는 특별한 중심 모티프 없이 제멋대로 전개된다. 서기 932년 잉글랜드, 아서 왕(그레이엄 채프먼)은 카멜롯으로 성배를 찾기 위해 용맹한 기사들을 물색 중이다. 속이 빈 코코넛을 딱딱거리면서 말 소리를 내는 황당한 아서의 여정은 우여곡절 끝에 베드비어, 갈라하드, 란슬롯, 로빈 등의 기사와 한 패를 이루게 된다. 정상인이라고 볼 수 없는 얼뜨기 성배 기사단의 행로는 아나키즘에 경도된 노동자들과 마녀 사냥에 열중하는 농부들을 경유해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괴물 토끼에게로 이어진다.

그래엄 채프먼, 존 클리시, 에릭 아이들 등 ‘몬티 파이튼’ 패밀리가 각본, 주연을 맡고 테리 길리엄, 테리 존스가 힘을 합쳐 연출한 이 영화에서는 4차원 유머와 화장실 코미디, 부실한 신체 개그가 혼연일체를 이룬다. ‘자막 담당자를 잘랐다’는 농지거리로 시작하는 도입부가 마음의 채비를 위한 맛보기처럼 깔리더니 가공스러운 컬트 코미디의 향연이 스크린을 채우기 시작한다. 존 클리시는 예의 바보 같은 걸음걸이로 비웃음을 사고, 좀비와 같은 중세의 농부들, 허세의 절정을 보여주는 얼빵한 흑기사, 공포의 만렙토끼, 괴상한 질문을 쏟아내는 성문지기 등 안드로메다에서 온 것 같은 캐릭터들이 숨 가쁜 릴레이를 벌인다. 몬티 파이튼 시리즈를 상징하는 두 개의 노래 ‘원탁의 기사들'과 '로빈 경의 발라드'가 삽입되어 있으며, 테리 길리엄이 삽입한 애니메이션 장면들도 한 몫을 한다.


개연성을 내팽개친 탈 중심화된 내러티브는 중구난방으로 널을 뛰고, 밑도 끝도 없이 출몰하는 사건들은 TV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활력과 에너지를 영화에 돌려주면서 창조적인 코미디를 펼칠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줬다. 시종일관 여기에는 통제되지 않는 혼종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불손한 조롱과 잔혹 유머, 절로 어깨가 들썩거리는 춤과 노래, 막장 코미디, 조야한 특수효과, 애니메이션의 두서없는 믹스로 얼을 빼 놓는 것이다. 화급한 전투에서 돌 대신 소나 돼지, 오리, 염소를 던지는가 하면, 극중 인물이 자신이 출연하는 장면에 대해 논평을 하고, 유명 역사학자가 등장해 성배 기사단의 행적을 설명하다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몬티 파이튼의 성배>에서 테리 길리엄이 구사하는 유머는 신랄하다. 정치와 종교에 대한 날 선 풍자는 허다하게 많은 여타의 코미디들과 이 영화를 근원적으로 구별하는 특징이다. 허술해 보이는 이미지들은 어떤 총체화의 인상도 거부하기 위해 디자인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예컨대, 흥겨워야 마땅할 뮤지컬 장면들은 빈약한 스펙터클과 쓸쓸하고 음울한 분위기에 의해 의도적으로 훼손된다.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즐길만한 유머는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폭소를 유발하는 궁극의 괴작이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Cine-Talk
2월 10일(목) 19:00 상영후 이준익 감독과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