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는 버림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뭉텅뭉텅 버려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다.”

 


6월 마지막 토요일, 강석필 감독의 <춤추는 숲>의 상영이 끝나고 시네토크가 있었다. 영화 속 성미산 주민들처럼 작가와 관객 사이에서 작품성미산 주민들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 대화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 프로그래머: 다큐에는 필연적으로 보여지는 게 있고, 보여지지 않는 게 있다. 이 작품에서는 성미산을 지키기 위한 주민들의 절실함은 잘 드러나지만 마을 주민들의 세부적인 측면은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비교적 보여지지 않는 미묘한 마을 공동체에 대해서 궁금했다.

 

강석필 감독 : 성미산에 대한 다큐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3부작으로 만들려고 했다. 2, 3부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 성미산 마을은 다큐멘터리스트가 아니더라도 정말 흥미로운 곳이다. 언론에 많이 비춰지기도 했고, 공동체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봄직한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 자체가 워낙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개성이 넘치고, 재미있고, 뭔가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 처음에는 작품을 만들기로 했을 때는 영 자신이 없었다. 방송에서 60분짜리 다큐멘터리로 이미 많이 다뤄졌고, 몇 주 와서 촬영하는 카메라가 아니라 일상을 지켜보고 기록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이전에 비춰진 것 이상의 무엇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런 생각만 2년 정도 했다. 원래 1부작으로 아이들을 다룬 성장다큐를 만들려고 했다. 그것을 2부에서 마을 단위의 공동체, 즉 생협이나 어린이집을 다루려고 했다. 3부에서는 내면의 소리를 쫓아가려고 했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성미산 사건이 터진 거다.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고민이 많았다. 촬영을 계속하던 와중에 싸움에 대한 정직한 기록, 직설적인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애초 우리의 기획과 맞지 않은가는 고민이 생겨났다. 애초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꿈, 삶에 대한 희망, 그리고 비슷한 고민을 나누고 있던 사람들 사이의 관계들이었다면, 성미산 사건이 특이한 사건이긴 했지만 그것을 겪어내는 사람들에게는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품 속에서 성미산 마을 사람들을 두고평범한 별종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마을 주민들은 정말 보통의 사람들보다 특별해 보인다. 마을에   다보니 특별해진 것인, 특별한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이 특별한 것인가.

 

평범한 별종들이란 표현은 형용모순이다. 이 일화를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다. 몇 달 전에 한겨레 신문 1면에 이런 기사가 났었다. 박원순 시장의 주요 정책 중에 하나인마을 만들기가 일종의 종북좌빨 무리들을 만드는 것이고, 그 핵심에는 성미산 마을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종북이라면 굉장히 싫어하며 고개를 흔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좌익적인 생각들을 갖고 있어서 그렇다기보다 추구하는 가치나 맺어나가는 방식들이 보통과 다를 뿐이다. 한사람 한사람을 들여다보면 평범한 회사원이고, 평범한 주부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이면 뭔가 다른 특별한 게 있는 것 같다.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분위기이고, 그것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운동과 관련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이 한 명 잘 키우기 위해서 성미산으로 흘러 들어온 사람도 있다. 한국사람으로서 행복을 추구하려고 하면 걸리는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러한 것들을 풀어나가기 위해 행동하다보면 그것이 사회적 운동으로 비춰질 수는 있다. 그러나 한쪽의 정치색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영화 중반쯤에 초대가수의 공연이 진행되는 가운데 화면이 전환되어 새벽에 마을주민이 다치고, 비가 쏟아지는 장면이 이어진다. 화면은 바뀌지만 초대가수의 음악이 계속해서 관통한다. 불일치하는 면도 있지만 묘하게 어울린다.

 

제일 먼저 확정되고, 위치 정해진 장면이다. 그 음악 자체가 이어지는 것에 대해 불편하다는 분들도 있고, 반대로 영화적이라고 보신 분들도 있었다. 물론 두 장면이 같은 날 일어난 것은 아니다. 며칠간 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100인 합창단 공연 이전에 1차 문화행동으로 생태캠프가 있었다. 캠프에 시위 현장을 찾아 공연하는 걸로 유명한 홍대 가수 야마가타 트윅스터를 초대했다. 펑크하면서도 사이키델릭했고, 리듬도 반복적이라 공연 모습을 찍을 당시에도 음악이 인상적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며칠 후 사고가 났다. 술 먹고 홧김에 벌목하려는 전기톱 소리를 듣고 마을 주민이 말리다가 아킬레스건이 다친 사고였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왔고, 그런데 마침 또 우르르쾅쾅 천둥이 치면서 비가 내렸다. 사람들이 비가 갑자기 쏟아지자 주차장에 서있었다. 어두운 가운데 번쩍할 때마다 사람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머릿속에서 생태캠프에서의 그 음악과 장면들이 연계되었다. 당시 성미산 사건이 거의 최고조에 치닫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두 가지가 연결되면서 복잡미묘한 심경, 막다른 길에 다다른 듯한 막막함, 결국엔 사람이 다치는 지경에 오게 되었다는 사실들이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음악은 내용과 사건이 진행되는 상황, 복잡한 심경 등이 그 음악이 튕겨내는 듯하면서도 무언가를 긁는 느낌이라 그 음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 음악은 그 자리에, 그 순서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제일 먼저 결정되었다. 물론 시간 순서대로 편집하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편집에 들어가기 전부터 결정된 장면이었다.



 관객 1 : 성미산 마을 사람들마다꽃다지딱풀이니 하는 가명을 쓴다. 그러한 관습이 성미산 마을만의 것인지,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별명을 부르는 것은 성미산 마을만의 문화는 아니다. 문화단체에서도 별명을 많이 쓰는 추세다. 성미산 마을의 별명 문화는 공동육아로부터 시작했다. 20여년 전에 다른 육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부모들과 여성주의 사회학자들이 모여 아이들에게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을 키울 것인가하는 생각을 나누었다. 대학입시가 최고인, 그래서 어린이집에서부터 ㄱㄴ, ABCD부터 가르치는 그러한 교육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어른이 시키는대로 무조건 따르는 억눌린 교육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다보니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의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르기로 했다. 별명은 아이들이 지어줬다. 대부분 곤충인 경우가 많다. 선생님인데도 웃긴 별명을 부르니까 아이들 입에서는 존댓말이 아닌, 예삿말이 나오게 되어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이름에는 유교적인 측면이 강하다. 우리는 이름 석자를 제대로 부르는 경우가 없다. ‘김사장’, ‘이부장처럼 직함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호칭으로 인해 억압적인 대화가 이루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서 별명을 부르는 것이다. 그러다가 왜 어린이집 선생님들만 별명으로 부르나 우리도 별명으로 부르자 하는 의견으로 지금과 같아 졌다. 물론 형, 동생의 선 지키지만 호칭으로 인해서 관계 자체가 스스럼없이 되는 것 같다.

 

배우분으로 카메라가 자꾸 가서 조금 불편했다. 마을에 사는 주민이고, 활동에 계속 참여했으니까 이해가 가지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생각을 드러낸다기보다 어른들은 계속 싸우고 아이들이 말을 하는 형국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마을 사람들이 열심히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왜 그렇게 절실한 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것 같다.

 

그 배우의 말, 농담, 표정이 재밌어서 넣었을 뿐이다. 고창석씨도 그저 이웃주민일 뿐이고, 정인기씨도 바쁜 와중에 활동을 열심히 한 주민일 뿐이다.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언제나 고민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인물을 활용하는 것이든, 사건을 활용하는 것이든 좀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선택하게 된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가 어떻게 다른가. 살아가는 사람을 따라가는 게 다큐멘터리이고,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비유를 자주 사용한다. 극영화는 소조와 비슷하고, 다큐멘터리는 조각과 비슷하다고 본다. 다큐멘터리는 버림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뭉텅뭉텅 버려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다. 애초에 좀 더 알록달록한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나 작품이 세상에 나온 형태로 선택을 내린 것이다. 영화제에서만 틀 다큐로 남고 싶지 않았다. 개봉을 목표로 만들었다. 앞으로의 작품에서는 그 지점을 더욱 주안점을 두고 싶었다.

 

관객 2: 카메라의 존재 자체가 기록을 왜곡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감독님이 이미 주민이었고, 주민으로서 같이 있는 익숙함 때문에 그런 왜곡이 적었다고 본다. 마을 주민들에게 카메라를 비출 때 왜곡을 막기 위해서 노력하였다면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다큐멘터리는 카메라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 것인가에 대해서 결정해야 한다. 카메라의 태도라고 함은 관객이 그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약속과 같다. 극영화도 마찬가지이나, 다큐는 처음 시작할 때 4-5분간의 카메라 형식에 따라 완전히 관객들의 반응이 달라진다. 성미산에 대해서 찍을 때는 형식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한 가지 형식으로 고정되어 버리면 역으로 거기에 얽매이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노닥거리면서 잡담하듯이 찍으려고 했다. 나중에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지 아닌지도 사람들이 잘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촬영 분량이 상당부분 흘러갔을 때, 카메라가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혼란스러웠다. 카메라를 던져버리고 상황에 뛰어들고 있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때 결론을 내린 것은그저 마음 가는 대로 하자였다. 마을 주민들에게 깊숙이 들어가는 순간도 있고, 완전히 멀어져서 바라보는 순간도 있다. 마을 주민의 일부였다가 그저 지켜보는 사람으로 왔다 갔다 했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들어감과 나오기를 반복한 끝에 완성된 결과물을 보니 꽤 어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기록을 하지만 상영을 하게 되면 마을 주민들이 그를 보게 된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적으로 관련되다보니 상호작용이 활발할 것 같다. 어느 정도 한계까지 계속해서 싸워야 되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 꼬마를 찍고, 그 장면을 다시 마을 사람들이 보는 장면처럼 말이다.

 

그렇다. 다 끝내고 마을에서 시사회를 한다고 하는데도 아직도 못 본 분들이 있을 정도다. 당시의 기억과 대면하기 힘들어서 그렇다는 거다. 대부분 다큐가 시작하자마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수도꼭지 틀어놓은 것처럼 눈물을 흘린다. 당시에 정신없이 살아왔던 시간이 머릿속으로 정리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마을 주민들은 영화 배급에도 많은 도움을 줬다. 마을 사람이 만들어서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에게는 그저우리 영화인 것이다. 거기에는 심리적인 복잡함이 담겨있다. 그 당시에 힘들게 싸웠고, 비록 만족할만한 성과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가치를 같이 공유하고 싶어 하는 일종의 치유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들의 모습이 고정된 매체적 성질까지 인식하고 있다. 3부의 주제는 굉장히 내면적이고 복잡하다. 10년 넘게 생협을 이끌어가던 분들이 새로 들어온 젊은 사람들의 공격을 받고 마을을 떠나게 된다. 또 마을을 떠나는 분에게 인사를 건내는 장면 모두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런 점이 굉장히 불편한 것이다. 내가 어떻게 비춰질지, 이 모습이 어떠한 맥락에서 영화 속에 들어가게 될지에 대한 불편함 같은 것 말이다. 3부는 매체 자체에 대한 성찰을 일깨우게 하는 복잡한 작품이 될 것이다.

 

녹취ㅣ관객에디터 배동미

사진ㅣ김윤슬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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