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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소식

[인터뷰]페드로 코스타 “아무도 나쁜 것을 그대로 보려 하지 않는다”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1주년 기념영화제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와 친구들'로 지난 5월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던 페드로 코스타 감독의 씨네 21 인터뷰 기사입니다. 


한국 찾은 포르투갈의 거장 페드로 코스타 감독



포르투갈의 거장 페드로 코스타가 또 다른 거장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의 회고전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전자는 형식 이전에 실존 그 자체의 힘을 믿으며 유일무이한 방식으로 현실을 포착해낸 반면 후자는 욕망의 아름다움을 다채로운 방법으로 쓰다듬은 이미지의 연금술사였다. 많은 것을 뭉뚱그리고 생략함에도 불구하고 거장이란 표현 안에서 그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이 발 디딘 새로운 영역에의 도전 혹은 고집 때문이다. 비록 두 사람의 영화세계는 전혀 다르지만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를 기억하는 페드로 코스타의 언어는 결국 두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거장들의 흔적을 통해 현재 우리가 어디쯤에 서 있는지를 발견한다. 현실을 기만하지 않고 눈앞의 존재를 직시하며 진짜 세계를 필름에 담아내는 페드로 코스타는 오늘도 여전히 사라진 것들에 시선을 돌리고 과거를 재배열하며 ‘지금’을 발견해나가는 중이다. 문득 페드로 코스타가 상상하는 내일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노란 집의 추억> 상영 뒤에 가진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에 관한 대담은 잘 들었다.

=좋은 시간이었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다들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주어 감사하다. 생각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고, 다들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것 같아 즐거웠다. 신선한 생각들을 접할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 회고전을 기념해 한국을 방문했는데.

=두달 전쯤 서울아트시네마쪽의 초대를 받았다. 그때는 신작을 순회 상영하는 중이라 당장 시간을 내긴 힘들었지만 이번엔 다행히 시간이 맞아서 가벼운 걸음으로 찾아왔다. 한국은 이제껏 전주국제영화제와 관련하여 세번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일정이 짧았던 탓에 제대로 한국을 둘러보지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지만. (웃음) 기회가 되면 내년쯤엔 한국에 장기간 머물면서 영화 교육과 관련된 일들을 진행해보고 싶다.



-몬테이로의 수많은 영화 중 대담 전 상영 영화로 <노란 집의 추억>을 고른 특별한 이유가 있나.

=영화는 주최쪽에서 골랐다. 물론 나에게 다른 영화 뒤에 대담을 하고 싶으냐고 묻긴 했지만 그의 모든 영화가 다 중요하니까 어떤 영화를 상영한 뒤에 진행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사실 몬테이로의 친한 지인이라 하기엔 쑥스럽다. 그를 항상 존경해왔지만 실제로 그를 개인적으로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 등장하는 주앙 드 데우스(John de Deus)처럼 외로운 사람이었다. 아! 그렇다고 슬픈 느낌은 아니다. 애잔함 가운데 꼿꼿한 기운이 서려 있다고나 할까. 아무튼 내가 기억하는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번화가의 한가운데 서 있을 때조차 혼자라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영화 스타일만 놓고 보면 그토록 다른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는 게 오히려 의외다.

=몬테이로와 사적으로 친밀해진 건 그가 세상을 떠나기 3년 전부터였다. 처음엔 나 역시 그를 대하기가 어려웠다. 친구라기보다는 선생님에 가까울 정도로 나이 차이가 있었으니까. (웃음) 함께 나이를 먹으면서 그에게 좀더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나이를 먹을 때까지 너그럽게 기다려준 덕분에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걸 다행이라 생각한다. 영화 작업에 대한 자잘한 이야기부터 깊고 비밀스런 이야기까지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눴지만 그를 전부 알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내가 아는 건 몬테이로가 감성적인 만큼 깊고 무게감이 있는 사람이란 사실이다. 젊었을 땐 그의 영화에서 발랄하고 재미있는 부분만 봤었는데 이제 다시 몬테이로의 영화를 보면 죽음이 보인다. 마지막 두편(<백설공주>(2000), <오고 가며>(2003))에서는 특히 진한 죽음의 향기가 느껴진다. 전부 어릴 적에는 느끼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이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모든 것을 바꾸는 법



-신작 <센트로 히스토리코>(2012)에서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빅토르 에리세, 마뇰 드 올리베이라 감독과 공동작업을 했다.

=존경해왔던 감독들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다. 연출 요청을 받아들인 것도 그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이 낯설면서도 매력적인 건 다른 감독들이 무엇을 할지 생각하게끔 만든다는 데 있다. 하지만 작업은 각자가 생각한 방식대로 철저히 독립적으로 이루어졌다. 지난해 로마국제영화제에서 두 감독의 영화를 처음 관람했다. 사실 도시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의뢰를 받았을 때는 해야 할지 망설였다. 나는 장소에 대해 굉장히 긴 호흡으로 연구를 하는 편이라 관광 성향의 영화를 만들기 싫었고, 만들 재주도 없었으니까. 그때 마침 벤투라(<행진하는 청춘>(2006)의 주인공이자 리스본 빈민촌을 배경으로 한 ‘폰타이냐스 연작’ 속 중요 인물)에게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고, 재미있단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개인적인 경험으로 풀어낸 방식의 이야기였는데 그런 식으로 만들어도 좋겠냐고 했더니 마음대로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당신을 단박에 매료시킨 벤투라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벤투라는 어느 햇살 좋은 날 광장에서 햇볕을 즐기다가 문득 예전의 기억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카네이션 혁명(1974년 4월25일, 포르투갈의 살라자르 정권을 무너뜨린 무혈 쿠데타)이 일어났던 그날도 이 광장에서 똑같이 햇볕을 쬐고 있었다고 했다. 이민자였던 그는 시민들이 환호하며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고 거리로 나왔을 때의 상황을 두려움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전체적인 상황을 알 수 없었던 그는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몰랐고, 흥분한 거리의 분위기를 마주하며 자신이 쫓겨나는 건 아닌가 싶어 생명의 위협마저 느꼈다는 것이다. 벤투라의 경험이 내게 준 영감은 결국 폐쇄된 엘리베이터에 갇힌 두 남자에 관한 영화로 표현되었다. 도시의 기억, 또는 역사와 개인적 체험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영화가 그렇듯 직접 봐야지 알 수 있다. (웃음)



-세 번째 장편이었던 <뼈>(1997)부터 시작된 폰타이냐스 연작에서 이제는 벗어난 인상이다.

=<뼈>, <반다의 방>(2000), <행진하는 청춘>(2006)을 두고 폰타이냐스 3부작이라고들 이야기하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을 뿐이다. 사람을 찾고 장소를 찾아서 그 속에서 다른 이야기가 발견되면 영화는 시작된다. 상황이 바뀌고 벤투라에게 다른 사연이 생긴다면 그 이야기를 다시 카메라에 담게 될 것이다. 대부분 감독들이 그렇겠지만 한 가지 작업만 하다보면 지루해져 여러 가지를 시도한다. 음악가들과의 작업을 담아낸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2009)처럼. 이번 작품을 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기억, 단어, 대사들이 주는 효과의 힘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그간 탐구해왔던 장면의 배치만큼 흥미로운 요소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좀더 공부해보고 싶다. 물론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를 비롯한 당신의 영화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영화”다. 로베르 브레송의 문구를 빌린 이러한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겠고 일정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많은 이들이 나를 두고 탐색과 재발견에 일가견이 있다고들 하는데 의식적인 작업이라기보다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찍었을 뿐이다. 내 생각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영화감독이 있다. 무언가를 보는 즉시 영화로 만드는 사람과 천천히 반응하는 사람. 오즈 야스지로, 장 마리 스트라우브, 자크 투르뇌르, 다니엘 위예는 후자에 속하고 나 역시 그러하다.



-2007년 전주영화제 인터뷰 중 켄 로치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인가.

=켄 로치 영화에 대해 언급한 건 잘 생각나지 않지만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폰타이냐스를 배경으로 한 일련의 영화들도 그저 익숙하고 오래된 곳들에서 이야기를 발견했을 뿐 혁명이란 목적하에 기획된 것들이 아니다. 오랜 작업을 통해 배우들과 친해졌고 함께 성장해왔다고 믿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는 경찰들이 서 있고 그곳의 삶은 변한 게 없다. 설사 있더라도 그것은 내 영화 때문이 아니다. 어떤 감독들은 영화 속에 살며 자신의 상상력으로 화면을 재편한다. 그러나 나는 현실에 사는 사람이다. 내 역할은 꿈꾸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내려온 것들을 관찰하고 배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반대로 존 포드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존 포드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나? (웃음) 광활한 대지, 웅장한 산맥의 풍경처럼 누구나 좋아할 법한 것들이 거기에 있다. 단순하고 전통적인 방식의 삶이 주는 아름다움. 반동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존 포드의 영화에는 그런 단순한 것들의 가치가 담겨 있다. 몬테이로의 말을 빌리자면 “중요한 것은 어떻게 단순해질 것인가”다.



진짜 삶을 위한 영화적인 순간들



-주로 실내에서 작업하는 것에 비해 좋아하는 감독들은 존 포드, 장 마리 스트라우브처럼 전부 야외 촬영이 탁월한 감독들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글쎄, 왜 그럴까? (웃음) 나는 실내에서 클로즈업으로 인물의 표정을 관찰하는 것이 더 편하다. 바깥 풍경은 잘하는 이들에게 맡기려 한다. (웃음) 사실 우리는 점점 좋은 풍경을 찍기 어려워지는 시절을 살고 있다. 루이스 브뉘엘의 한탄처럼 “100년 전에는 강가에 수영을 하러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수영할 수 있는 강이 없다”. 좋은 것은 과거에 있고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있단 건 그런 의미다. 영화에 국한해서 말해보면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지만 아무도 나쁜 것을 그대로 보려 하지 않는다. 다들 좋은 것만 모아 찍으려 하거나, 좋아질 미래를 찍고 싶어 하니 그곳에 진짜 삶이 머물 곳이 없다. 꽃이 돌보다 중요하지 않고, 사람이 나무보다 중요할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숏 안에 잡힌 모든 것은 각자 나름대로 중요하다. 나루세 미키오나 오즈 야스지로가 그러했듯 핵심은 화면 안의 평등한 요소끼리의 조화에 있다. 오늘날 영화를 보면 전부 사람밖에 안 보인다. 마초, 마초, 마초 혹은 브루스 윌리스, 브루스 윌리스, 브루스 윌리스. (웃음) 나도 그를 좋아하긴 하지만 모든 화면이 항상 그의 얼굴로 채워져 있다면 그건 너무 힘들지 않겠나.



-모두가 안다고 생각하는, 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장소에서 전혀 새로운 발견을 해내는 건 그런 이유에서인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영화를 위한 영화를 만든 적은 없다. 누구와 대화하고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는가에 따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르고 담아낼 방법이 정해진다. 궁극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이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그런 마음을 글로 쓸 수도 있고 음악으로 표현할 수도 있는데, 왜 하필 영화인가.

=처음에는 음악가가 되고 싶었다. 펑크음악. 하지만 음악은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배워야 하는데 의욕이 생겼을 땐 이미 시간이 너무 흘러 있었다. 재능도 없었고. (웃음) 하지만 영화는 30분만 배우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덧붙이자면 집단 안에서 함께 만든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무엇이든 내 안의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으면 족하다. 사실 그것이 꼭 영화여야 하는 건 아니다. 내 삶의 첫 번째는 내 주위의 사람들이다. 영화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공간, 영화보다는 사람들, 영화보다는 나를 둘러싼 진짜 삶이 중요하다. 영화를 만드는 이유를 굳이 꼽으라면 영화를 통해 그런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상상된 이미지가 아닌 진짜 세상.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지금의 삶이 점점 더 소중해짐을 깨닫는다. 어쩌면 영화는 그 사실을 깨닫기 위한 수단이다.



페드로 코스타는 인터뷰 내내 벤투라를 ‘내 배우’라고 불렀다. 아마도 그것이 영화를 마주하는 그의 태도일 것이다. 소재로 활용되는 사연이 아닌 진짜 이야기,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꾸며진 공간이 아니라 그곳에 실재하는 장소, 가상의 역할을 맡은 배우가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사는 진짜 배우. 다시 말해 하나의 진실을 담기 위해 필요한 단 하나의 이미지. 역설적으로 영화에 대한 집착과 이미지에의 강박을 벗은 그의 삶은 진정 ‘영화적인 순간’들로 가득 차 있다. 한마디 한마디 느리게 내뱉는 그의 말들을 곱씹으며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페드로 코스타의 영화를 진실의 도구로 만들어주는 비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글 : 송경원 | 사진 : 손홍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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