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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시네바캉스 서울

[이슈] 영화 등급분류제도, 여전한가요?

영화 등급분류제도, 여전한가요?


지난해 7월, 영화인들이 관객이 영화를 볼 권리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며 등급 결정 기관을 성토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었다. 그해,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가 국내 제한상영가를 받으면서 문제가 됐었다. 등급제를 둘러싼 논란, 특히나 제한상영가 판정을 둘러싼 잡음은 최근 <님포매니악>의 개봉과 더불어 다시 수면 위에 부상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의 폐지나 제한상영관 설치 문제는 영등위의 소관이 아니라며, 등급 제도와 심의는 어디까지나 시대적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영등위가 밝히듯이 지금의 영비법상으로는 제한상영관을 만들기가 힘들며, 현실적으로 제한상영관은 존재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영화들이 관객들과 만날 수 없는 한계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의 문제와 관련해 세 명의 영화 관계자들에게 영화의 등급분류 제도, 그리고 합리적인 대안에 대해 물었다.(편집자)


포럼: 아트플러스에 제한상영가를 허하라!


일시│8월 7일(목) 18:30 <호수의 이방인> 상영 후

장소│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사회│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기조발제│조영각(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패널│정상진(아트나인 대표), 김조광수(제작자), 황승흠 (국민대 법과대학 법학부 교수) 




의견1: 현행의 등급분류 제도는 여전히 사전 검열이며 위헌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제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검열을 금지한다. 여기서 검열이란 ‘명칭이나 형식과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행정권이 주체가 되어 사상이나 의견 등이 발표되기 이전에 예방적 조치로서 그 내용을 심사, 선별하여 발표를 사전에 억제하는, 즉 허가받지 아니한 것의 발표를 금지하는 제도’를 말한다. 사전 검열은 어떠한 법률로써도 불가능한 것으로 절대적으로 금지된다. 헌법재판소는 ‘영화도 의사 표현의 한 수단이므로 영화의 제작 및 상영은 다른 의사 표현 수단과 마찬가지로 언론·출판의 자유에 의한 보장을 받음은 물론, 영화는 학문적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예술 표현의 수단이 되기도 하므로 그 제작 및 상영은 학문·예술의 자유에 의하여도 보장을 받는다’(93헌가13)고 결정했다.


하지만 영화의 사전 검열은 여전히 ‘등급분류’라는 방식으로 잔존하고 있다. 현행 등급분류 제도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제29조에 근거한다. 제29조 제1항은 ‘영화업자는 제작 또는 수입한 영화(예고편 및 광고영화를 포함한다)에 대하여 그 상영 전까지 제71조의 규정에 의한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상영등급을 분류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등급분류의 의무는 ‘영화업자’에게만 부여된다. 영비법은 영화업자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자(제2조 제9항)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자 외에는 등급분류를 받아야할 법적인 의무가 없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영화업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등급분류가 강제된다. 영비법 제29조 제3항에서 ‘누구든지 제1항의 규정을 위반하여 상영등급을 분류받지 아니한 영화를 상영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비법은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영화의 상영을 원천적으로 금지(제42조)하고 있고,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영화를 상영하는 상영관은 영업 정지나 상영관 등록이 취소(제45조)될 수 있다고 강제하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제94조 제1항)하고 있기도 하다.

등급분류를 강제로 관철시키는 영비법 해당 조항들은 ‘허가를 받기 위한 표현물의 제출의무, 행정권이 주체가 된 사전심사 절차, 허가를 받지 아니한 의사표현의 금지 및 심사 절차를 관철할 수 있는 강제수단’ 등의 요건을 갖춘, 명백히 헌법이 금지하는 사전검열에 해당한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제한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런 경우라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청소년 등에 대한 상영이 부적절할 경우 이를 유통단계에서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미리 등급을 심사하는 것은 사전검열이 아니다’(93헌가13)라고 결정한 것은 글자 그대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유통단계를 전제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까지 등급분류를 강제하고, 등급분류 받지 않은 영화의 상영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영비법 제29조 제3항 등 관련 조항들은 이러한 과잉 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 영화를 통한 의사 표현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도록 개정되어야 마땅하다.


원승환│독립영화전용관 확대를 위한 시민모임 이사




의견2: 철폐만이 대안이다.

현 등급제의 문제가 뭐냐고? 당연히 사전 검열이다. 영화에 등급이 내려지기 시작한 70년 전부터 지금까지 사전 검열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게 문제인 거다. 96년에 사전 검열은 위헌 판정이 났는데 무슨 말이냐고? 제한상영가를 말하는 거다. 제한상영가라는 “어른도 못 보는 등급”이 존재하는 한, 사전 검열의 심의 과정이 영구히 반복될 거란 건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심지어는 제한상영가를 남발하는 영등위 홍보팀 인턴 직원도 그 정돈 알고 있다.


제한상영가의 오류는 간단하게 두 가지로 볼 수 있겠다. 첫 번째는 철학적인 오류다. 등급은 본래 청소년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아직은 볼 것과 보지 않아도 될 것에 대한 판단이 미숙한 청소년들을 위해 심의기구가 대신 판단해 주는 것이다. 이 말은 거꾸로 하면, 판단이 가능한 성인 관객들에 대해선 심의기구가 어떤 판단도 대신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제한상영가는 성인들도 봐선 안 될 것들을 성인 대신 판단해 주면서 등급의 본래 목적을 철저히 부정한다. 성인들의 판단을 순식간에 청소년의 미숙함으로 전락시켜 버리며 관객들의 볼 권리를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의 권리를 지켜줘야 하는데, 오히려 빼앗고 있다니. 뭐 이딴 국가가 다 있냔 말이다.


두 번째로 현실적인 오류다. 알다시피 국내엔 제한상영관이 없기 때문에 이 등급을 받게 되면 사실상 상영 금지나 마찬가지다. 당연히 상영을 하기 위해선 재심의를 받아야 하고, 심의에 통과하기 위해 문제 장면을 편집해야 한다. 어디서 많이 보던 패턴이다. 그렇다. 군사 독재 시절에 자행되던 사전 검열의 패턴이다. 제한상영관이 없는 한 제한상영가는 상영 금지 등급의 기능을 반복할 것이다. 그렇다면 제한상영관을 만들면 되지 않냐는 멍청한 반문이 있을 수 있겠다. 제발 생각 좀 하고 살자. 대한민국에서 제한상영관의 설립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불가능하다. 일본이나 미국처럼 성인물(포르노)가 합법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그나마 토속 에로물들은 인터넷 등의 다운로드 시장에만 풀리는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의 특성상 제한상영관을 자처해서 설립할 극장주는 없다는 건 영등위 홍보팀 인턴 직원도 알 만한 사실이다.


제한상영가보다 더 큰 문제는 박선이 위원장이다. 주지하다시피 박선이 위원장 체제의 영등위는 영화를 보여주기보다는 안 보여주려는 정책으로 악명 높다. 제한상영가 남발부터 납득 불가능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까지, 박선이 영등위의 “안 보여줌 정책” 때문에 영화인들이, 또 관객들이 분노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영화 속 언어개선 토론회》 따위를 열어서 등급 업무 외에도 영화인들의 더러운 말버릇을 지적하는 오지랖을 떨며 다시 한 번 영화인들을, 볼 권리를 누려야 할 관객들을 경악케 했다. 선정성, 폭력성은 많이 걸고 넘어졌으니 이젠 영화 속 욕설을 구실로 “안 보여줌 정책”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걸 노골적으로 선언한 거다. 이쯤 되면 영등위 홍보팀 인턴 직원은 자가당착에 빠진다. 왜냐하면, 인턴 직원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엔 언제나 걸쭉한 욕설의 리얼리티가 있기 때문이다. 씨발.


그렇다면 대안이 뭐냐고? 제한상영가의 대안은 제한상영가 철폐뿐이다. 제한상영관을 만들자고 할 거면 제발 그 입 다물기 바란다. 성인들의 볼 권리 쟁취를 위해서라도 제한상영가 따위의 반시대적인 등급은 없어져야 한다. 청소년만 보호하면 된다. 성인들은 풍기문란하게 놔두라.


제한상영가보다 더 큰 문제인 박선이 위원장은 어떡하냐고? 여기에 대한 대안 역시 박선이 철폐뿐이다. “안 보여줌 정책”의 원흉을 잘라내야 한다. 《언어개선 토론회》로 등급 강화를 선포한 저 박선이 위원장을 잘라버려야 한다. 왜 내 영화 청불 받았냐고 아무리 영등위 홍보팀 인턴 직원에게 따져봤자 소용없다. 제한상영가 받고 나서 재편집해서 청불을 받아볼까 혹은 행정소송을 걸어볼까 고민하는 사이, 영화들은 관객들로부터 멀어지고 있고 영화의 생명은 생매장되고 있으며 관객들의 볼 권리는 안드로메다로 사멸되고 있다. 박선이를 잘라야 한다. 조희문을 잘라냈듯이.



김선│영화감독





의견3: 제한상영가 영화를 예술영화관에 허용해야 한다

올해 영화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님포매니악>이 국내에 수입되었다는 소식에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심의를 넣기 전부터 긴장하고 있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이유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파격적인 성을 테마로 한 여성 색정증 환자의 이야기이고 발표하는 작품마다 이슈를 일으키는 악동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수입사의 입장에서도 성에 관해서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국내 등급심의 기준을 쉽게 통과하기는 힘든 부분이 있을 거란 예상은 어느 정도 하고 있었다. 다행히 라스 폰 트리에의 제작사인 젠트로파에서 각국의 정서를 고려해, <님포매니악>을 수입한 주요 바이어를 덴마크 스튜디오로 초대해 <님포매니악 볼륨 1>, <님포매니악 볼륨 2>를 상영한 후 기술적인 블러 처리 방법에 대한 설명과 블러의 강도를 예시로 보여주며 심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 주었다. 재미있는 것은 북미의 경우는 직접적인 성행위나 노출에 대한 제약보다는 유아 시절의 성을 묘사한 부분을 문제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서의 <님포매니악 볼륨 1>, <님포매니악 볼륨 2> 의 개봉은 6월 19일과 7월 3일, 2주차 간격을 두고 개봉하는 전략이었고, 이에 심의 신청도 나누어 신청하였다. 1차는 블러 처리를 하지 않은 원본 그대로 심의 신청을 했고, 그 결과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받았다. 제한상영가 등급은 국내에는 제한상영관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상영 금지에 해당되는 등급이다. 이후, 영화의 제작사인 젠트로파에 한국의 입장을 전달하였고 젠트로파사는 한국에서 온전하게 영화를 볼 수 있게 해달라는 서면 협조문까지 보내주었다. 이후, 문제가 되는 장면 중 일부를 덴마크 제작사에 의뢰하여 블러 처리를 한 후 재심의를 신청했고 19세 미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판정을 받았다. 볼륨 1의 경우 2차 재심의 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을 수 있었고, 볼륨 2의 경우 3차 재심의 신청 끝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개봉 당시 이러한 제약은 영화 상영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포스터, 전단, 광고를 위한 모든 인쇄매체와 영상까지 심지어는 전단 문구에 섹스와 색정광이란 단어조차도 언급해선 안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여자 색정광이란 뜻의 <님포매니악>이란 제목으로 심의가 나온 것이 놀라울 뿐이다. 이런 어려움 속에 가장 심각했던 문제는 영화의 얼굴인 포스터가 계속해서 반려가 된 것이다. 포스터가 반려가 된 이상 온라인상 이외에는 극장에서의 노출이나 외부 광고로 전혀 사용할 수 없다. 결국 고심 끝에 자구책으로 선택했던 것은 포스터 블러라는 영화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 메인 포스터에 블러를 한 후 영화의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주고 싶다”라는 카피를 넣어 심의를 넣었고, 그 포스터는 심의를 통과했다. 참고로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배우들의 오르가즘 포스터는 <님포매니악>을 개봉한 모든 나라에서 사용되었고 세계 10대 포스터에도 선정된 상징적인 포스터이다. 유독 대한민국에서만 사용할 수 없는 웃지 못할 코미디가 벌어진 것이다.


매체 특성상 영화는 영향력이 높은 매체이기 때문에 나라마다 국민 정서의 보호와 청소년 유해물 금지 등을 위해 등급분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에서 분류하는 관람등급은 현재 ‘전체관람가’, ’12세 이상 관람가’, ‘15세 이상 관람가’, 청소년 관람불가’ 그리고 ‘제한상영가’로 나뉘어진다. ‘제한상영가’ 등급은 ’청소년 관람불가’보다 더 높아 성인이라 할지라도 제한을 받는다. 그럼 제한상영가 등급의 요지는 무엇일까? ‘선정성, 폭력성, 사회적 행위 등 표현이 과도하여 인간의 보편적 존엄, 사회적 가치,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 정서를 현저하게 해할 우려가 있어 상영 및 광고 선전에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에 적용하는 등급이다.


사실 이러한 등급 자체는 대한민국에서는 비현실적이다. 왜냐하면 ‘제한상영가’로 분류된 영상물은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해야 하는데, 현재 한국에선 사실상 제한상영관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광고나 선전물에 대한 지나친 규제와 낮은 등급의 영화를 상영을 할 수 없고 일반상영관에서는 운영할 수 없는 까다롭고 높은 법률상의 제한 규제가 있어 현실적으로 제한상영관 자체를 만들기도 힘들다. 또한, ‘제한상영가’ 등급은 그 명확한 판단 기준이 규정되어 있지 않아 지난 2008년 7월 31일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바 있는 등급이다.


이렇듯 ‘제한상영가’ 문제는 등급분류 문제를 넘어 ‘제한상영가’는 곧 상영불가라는 점에서 영화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영화 산업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점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다. 다시 말해 헌법에 반하는 현 제도에 대해 상영 가능한 활로 방안을 검토하거나 등급분류 규제를 완화하던가 하는 등의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여기서 몇 가지 대안을 제안해 보고 싶다. 대한민국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의 관람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고 생각한다. 그 하나는 매년 열리는 크고 작은 다양한 영화제와 기획전을 통해서 쉽게 접하기 힘든 영화를 적극적으로 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일반 상영관에서 개봉 영화를 보는 형태일 것이다. 근 십여 년간 매년 한국에서 개최되고 있는 크고 작은 국제영화제들은 한국 영화관객의 영화를 보는 안목과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영화제를 통해서 우리는 세계적인 거장 감독들의 작품부터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각국의 현재의 영화를 만나 볼 수 있다. 이러한 영화는 영화제나 특별 기획전의 형태로 신청하여 받을 수 있는 자체 심의 면제를 통해 창작자의 온전한 작품세계를 그대로 볼 수 있다.


이는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고 수용했기 때문이다.  다양성 예술상영관을 그 틀에 적용시켜 보면 어떨까? ‘제한상영가’ 등급의 영화를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상영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는 예술영화가 1년에 많지 않으니 예술영화관에서의 수급 작품에 대한 선택은 극장 담당 프로그래머에게 전적으로 맡겨도 무방할 것이다. 자신의 극장에 가치 없는 3류 포르노를 상영하는 멍청한 프로그래머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또한 다양성 예술영화관 주요 관객층의 연령대가 일반 영화관보다는 다소 높지만 청소년들에게 쉽게 노출될 수 있는 부분이 문제가 된다면, ‘제한상영가’ 등급의 영화에 대해서는 상영 시간을 조정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평일 낮 시간대와 늦은 저녁시간대로 정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듯 하다.


영등위는 영화 및 비디오 등의 영상물의 등급을 분류하는 기관으로 영상물을 선택하고 관람할 때 참고할 수 있는 등급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제한상영가’ 등급 논쟁을 보면 영등위의 등급분류는 등급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 심의로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검열에 가깝다. 온라인을 통해 혹은 스마트폰의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성인물을 접속하는 것이 일도 아닌 것이 야동대국 한국의 현주소이다. TV나 케이블TV, 광고, 인쇄 매체에서 홍수처럼 범람하는 노출 수위에 대한 규제는 영화와 비교해 상상을 초월한다. 현재 영화가 아닌 방송, 서적, 게임, 인터넷 등에서 청소년 유해물 등급보다 높은 등급이 사전에 나오는 매체는 존재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제한상영가’ 유무에 대한 논의보다 현실성 있는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권리 중 하나가 바로 표현의 자유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누릴 자유도 있다. ‘제한상영가’ 영화를 선택하는 것은 국가도 아니고 영등위도 아니고 결국 우리 사회의 성인 구성원의 몫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

정상진│아트나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