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영화의 제왕이라 불린 로저 코먼의 자서전 제목은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 푼도 잃지 않았는가'입니다.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손해를 보지 않았는가가 핵심입니다. 돈을 버는 일보다 영화를 많이 찍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로저 코먼은 메이저 영화사들이 스튜디오를 매각하고 자사의 영화관을 정리하던 1940년대 말에 영화계에 들어섰습니다. 당시 영화관들은 생존전략으로 특색 있는 작품들을 찾고 있었고 그런 요구에 재빨리 대응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작가들이 일말의 기회를 얻을 수 있던 시기입니다. 그렇게 로저 코먼의 전설적인 영화적 삶이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B영화의 작가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로저 코먼을 통상적인 의미의 ‘개인적’인 작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후대의 평가야 물론 작가라는 개인의 이름으로 작품들을 선별하겠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B영화의 작가들은 당대에 언제나 작품의 뒤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익명적‘인 작가들이었습니다. 그는 3백여 편의 영화에 제작자로서 이름을 올렸고, 갖은 방식으로 영화에 관여했습니다. 그가 관여하는 방식, 혹은 그의 주변에 몰려든 이들과의 관계에서 볼 때 로저 코먼은 개인으로 호명되기 보다는 집단체, 결합체, 혹은 운동체로서의 작가라 부를 수 있습니다.

1960년대에 그의 주변에는 영화계 입문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젊은 영화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를 위시해 잭 니콜슨, 데니스 호퍼, 피터 폰다, 찰스 브론슨, 로버트 드 니로, 토미 리 존스, 워렌 오트, 로버트 타운, 몬티 헬만, 피터 보그다노비치, 마틴 스콜세지, 조나단 드미, 제임스 카메론, 조 단테, 론 하워드, 존 세일즈 등이 코먼의 영화학교 문하생으로 성공적으로 영화계에 뛰어들 수 있었습니다. 코먼은 그들에게 영화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이들은 나중에 할리우드를 위기에서 구해낸 뉴시네마의 기수들로 성장합니다. 코먼은 제작 외에도 해외의 예술작품을 미국에 공개하는 활동도 벌여 국제적인 영화의 이식에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저예산의 한계적인 영화를 만들었을지언정 코먼은 모든 영화, 모든 장르에 손을 대어 세상을 여행했고 영화계가 위기에 처한 순간에 구제를 시도한 영화인이 되었습니다.

이번 ’B영화의 위대한 거장 특별전‘에서 소개하는 리처드 플레이셔, 테렌스 피셔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리처드 플레이셔는 로버트 와이즈와 더불어 모든 장르영화에 손을 대었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영화를 만들고 오슨 웰즈에서 아놀드 슈왈제네거까지 다양한 배우들을 섭렵한 다채로운 작가입니다. 로버트 알드리치, 사무엘 풀러 등과 더불어 리처드 플레이셔는 1950-1970년대 아메리칸 시네마에서 재발견해야만할 위대한 작가입니다. 비록 공포영화에 전념했지만 1930년대 미국공포영화와 1970년대 새로운 공포영화의 가교가 되었던 해머 공포영화의 걸출한 작가 테렌스 피셔도 있습니다. 이들은 영화사의 정식 교과서에 제대로 등재되지 못한 인물들이지만 영화를 위기에서 구한 숨은 공로자들입니다.

글 /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