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0일, 김태용 감독이 선택한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을 관람하기 위해 많은 관객들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상영 직후 진행된 시네토크에는 많은 여성관객들이 참여해 김태용 감독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물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도 영화의 비극성과 슬픔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진지한 자리이기도 했다. 사랑의 대서사를 생각할 때마다 이 영화가 떠올랐다는 김태용 감독과의 대화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작품선택을 하면서 여러 편의 작품이 오갔다.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살인 사건>도 있었고,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도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다. <부운>은 김태용 감독과 잘 어울리는 선택인 것 같다. 오늘 보면서 예전에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우묵배미의 사랑>을 김태용 감독이 선택했던 것이 떠올랐다. 물론, 작년에 개봉했던 김태용 감독님의 <만추>라는 작품도 떠오르기도 했다. 사랑을 찾아 떠나려는 유랑의 느낌, 공간을 떠도는 그런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러티브는 굉장히 심플하다. 두 남녀의 만남, 이별, 재회의 문제를 다룬다. 예전 상영했을 때, 여성관객들 중 일부가 ‘왜 저렇게 찌질한 남자를 쫓아다니는 거지’라고 분노를 하기도 했는데.

김태용(영화감독):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고 했더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영화에 나오는 남자를 대부분 너무 싫어했다. 지금 우리가 보면서 좋아할 만한 인간형은 아닌 것 같다.(웃음) 말씀을 듣다 보니까 <우묵배미의 사랑>, <만추>가 맥이 연결되는 부분이 있긴 있는 것 같다. 나는 이 영화가 일종의 사랑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관계의 역사를 다루는 영화를 좋아한다. <만추> 작업을 할 때는 어떤 시점, 찰나의 순간에 집중을 했지만 기회가 되면 이런 식의 사랑의 대서사를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마다 생각난 영화가 <부운>이다.


김성욱: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보면 내향적인 남녀가 자꾸 바깥으로 나가려는 과정을 그린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런데, 하나는 내면에서 바깥으로 나가려는 시도이다. 이 둘에게 필요한 것은 연애의 공간이다. 그래서 가정의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이 부각되지 않고 도리어 여관 같은 떠도는 일시적인 공간이 주를 이룬다. 다른 하나는 일본의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첫 시작도 인도차이나라는 공간이었고, 영화의 마지막은 일본의 남단 끝이다. 이런 식으로 바깥으로 나가려는 인물들의 시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만추>의 경우에도 여자가 점차 조금씩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진전되는 과정의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태용: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슬픔이나 비극성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극단에 서 있는 작품이 이 영화다. 프레임 안에 있는 인물들을 염려하기도 하고, 잘 살기 바라기도 하고, 비극이나 슬픔을 향해 달려갈 줄 알면서도 그런 비극성에 관심이 많았다. 이게 그런 것의 정점에 있는 작품인 것 같다. 멜로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영웅들, 자기 사랑을 확실히 하고 능력도 있고 설득시킬만한 힘이나 여유도 있고 꺾이지 않는 멜로드라마 영웅들의 느낌이 있는데, 이 영화의 영웅이 아닌 사람들은 스크린 안에서 우리를 너무 불안하게 만드는 게 있다. 그런데 스크린 밖에서도 계속해서 우리를 쫒아다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감정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 감정에 대해서 끊임없이 괴로워하면서도 비극을 향해 끝임 없이 달려가는 모습을 아주 정점으로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인 것 같다.


김성욱:
이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만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이들이 연인이 됐을까도 궁금한 부분이다. 세 개의 플래시백이 나온 것 같은데, 이들의 사랑의 순간을 보여준다. 두 가지가 <만추>를 떠오르게 했는데, 남녀의 사랑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는가 하는 문제를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는 계절적인 기후, 공간의 변화가 영화 전체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만추>에서도 공간과 기후를 담아내고 싶었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태용: <만추>를 찍을 때도 공간의 핵심은 날씨라고 생각했고, <부운>을 보다 보니까 날씨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우리보다 큰 무언가의 느낌이 영화 안에 날씨나 공간으로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었었던 것 같다.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조건으로서의 공간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그 공간을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기후라고 생각했다. 여기서도 보면 그런 느낌이 많다. 인도차이나는 햇빛 좋을 때는 지상낙원이지만, 비가 와서 한번 우기가 지나가면 거기에서 어떻게 살아갈까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래서 풍요로움과 고통스러움을 같이 지배하는 것도 날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김성욱:
여러 인상적인 장면이 많은데, 사소한 장면이 기억난다. 함께 걸어가다가 갑자기 무좀이 있다는 남자주인공을 여자주인공이 쳐다보다가 ‘우리 부부같이 보인다’는 말을 슬쩍 던지는 장면이다. 두 남녀가 이런 식으로 걸어가는 장면이 굉장히 많다. 어떤 장면을 인상 깊게 보았나?

김태용: 새로운 여자가 등장할 때, 여자의 바스트샷이 항상 들어가는데 그게 묘한 느낌을 들게 한다. 심지어 마지막에도 섬의 하녀를 그렇게 보이게 만들어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웃음) 두 사람이 계속해서 걷는 게 나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어떻게 찍었을까 궁금할 정도의 트랙킹 샷도 많이 나오는데, 지금의 스테디캠 정도의 수준을 갖고 있다. 영화가 묵묵히 앞뒤로 따라가면서 걷는 것을 찍는데, 둘이 걷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도 아니고 따라가는 느낌의 샷들이 뭔가를 의미하고 있는 것 같다.


김성욱:
처음에 인도차이나에 있을 때, 주인공 남녀가 대화하는 순간에 하녀의 샷이 하나 들어가 있다. 순간적으로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러티브로는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원작에는 남자가 하녀를 임신시킨 게 있다. 그런데 그걸 알고 나서도 이게 내러티브적인 설명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구도 안의 안정적인 느낌이 파괴되거나 인물의 내향성이 시선을 경유해서만 이 화면에 무언가의 감정이나 효과를 전달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둘이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가의 설명은 굉장히 영화적이다. 최종적으로 이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서는 것 또한 설명되기 어려운 것 같다.

김태용: 원작 소설은 안 봐서 모르겠지만, 영화는 끊임없이 여자를 따라가게 만든다. 공간을 표현하는 방식도 그렇고 여자의 등장방식도 그렇다. 그래서 이 여자를 중심으로 우리는 영화를 본다. 우리가 이 남자를 그나마 보는 건 여자가 그 남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여자가 마지막에는 사라지고 남자만 남게 된다. 초반부터 여자가 남자를 찾아가는 여정을 계속 보여주어서 끝도 그렇게 맺어야 할 것 같은데, 이 감독이 영화의 엔딩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뼈저리게 고민하고 만든 것 같다.



관객1: 슬프고 비참하지만 또한 굉장히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감독님은 이 <부운>이라는 영화의 어떤 점에 끌리셨는가?

김태용: 인물들이 좀 안쓰러웠다. 그래서 계속해서 생각났던 게 컸다. 우리는 어떤 영화에서 나오는 인물들이 하는 선택을 옹호하고 응원할 때가 많다. 그런데 어떤 영화는 내가 옹호하고 싶지 않은 감정, 실패, 실수를 할 때가 많다. 그런데 후자의 영화가 더 많이 떠오르는 것 같다. 올바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약하게 선택하고 실패하는, 우리가 옹호하고 응원하지 않는 관계에 대해서 이만큼 적나라하게 표현한 영화가 있었나 싶다.

김성욱: 현실적으로 이 영화의 이야기나 인물들의 선택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어려운데, 이끌림은 분명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로 멀리가고 싶다는 단순한 표현들 같은 것들 말이다. 실제로 전쟁 때문에 인도차이나라는 곳으로 간 건데, 거기서 사랑의 순간을 맛보게 되는 역설이 있다. 마지막에도 저 멀리 일본의 남단으로 가게 되는데, 마치 죽으러 가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안착이라는 느낌이 있다. 이 영화는 그런 점에소 꽤나 폐쇄적이고, 밀실적이다. 하지만 연인들에게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런 연인들의 공간을 찾아나가는, 이끌려가는 영화인데 문득 그런 와중에 여자의 선택에 동의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도덕적인 질문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관객2
: 마지막에 삽입된 ‘꽃은 빨리 지고, 괴로움은 끝도 없도다’라는 자막이 인상적이다. 제목인 ‘부운’은 뜬구름 또는 덧없음에 대한 것인데, 맨 마지막 자막은 사족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없음을 잡아내려는 일본미학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김태용: 일본 미학을 잘 모르지만 마지막 ‘꽃은 빨리 지고 괴로움은 끝도 없도다’ 문장은 영화에 약간 반하는 지점이 있다. 영화의 톤은 무상하고 쓸쓸한 것을 깔고 있지만 캐릭터들이 계속 보여줬던 그 방식은 그렇게 덧없지는 않았던 느낌이다. 덧없음보다는 슬픔 혹은 무력함에 가까웠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마지막 문장은 이 영화를 만들고 문장을 넣었다기보다는, 원래부터 그 내용인데 나루세 미키오 감독이 이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이 과해져서 반하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이 감독의 특징이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무좀 장면이 실제 소설에 있든 있지 않든 간에 인물들이 꼼지락 거리면서 서로를 무언가를 나누게 하는 애정, 그리고 비를 맞으면서 돌아오는 과정, 사과를 깎아주는 과정, 이 때 남자의 눈빛이 자상함으로 많이 바뀌어져 있다. 배우와 연출자가 끊임없이 이야기 하면서 캐릭터가 만들어지는데, 그러다 보니 끝에 예정되어 있던 표제어와 다르게 캐릭터가 바뀐 게 아닐까 싶다.


김성욱:
이 영화의 라스트에서 문득 <만추>의 엔딩을 떠올려봤다. 앞에 있었던 두 개의 플래시백은 여자에 속한 것 같은데 마지막 플래시백은 남자에게 속한 것 같아서 과거의 기억을 둘이 이제 공유한다는 느낌이다. 그것이 주는 무상함이 있지만 죽음의 순간에 와서야 비로소 가까스로 사랑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마칠 시간이다. 최근에 단편영화 촬영을 끝내고 편집 작업 중이라고 알고 있는데, 앞으로는 어떤 계획이 있는지?

김태용: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는 안정감보다 영화에서 표현하려고 하는 정서적인 감정을 자신의 균형감을 잃을 만큼 끌려가는 감독 같아서 개인적으로 더 호감이 가고, 궁금한 영화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올해 안에는 작업하고 있는 시나리오를 완성해서, 가을에는 영화를 찍고 싶다. 판소리 영화인데 많이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다. (웃음)


정리: 김고운(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