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5일, 구로사와 아키라의 <붉은 수염>의 상영이 있었고, 영화를 선택한 김영진 영화평론가가 함께하는 시네토크 시간이 마련됐다. 18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상영 이후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시네토크에 참여했다. 시선, 얼굴,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감정의 스케일을 만들어내고 있는 뛰어난 작품이라는 설명과 함께 구로사와 아키라의 미학과 영화세계, 일본 영화계의 다양한 면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이었다.

 

김영진(영화평론가): 요즘은 선한 의지를 가진 영화가 사람을 설득시키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을 평소에 엄청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붉은 수염>은 사적인 동기에 의해서 추천하게 됐다.

<붉은 수염>은 1965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붉은 수염>은 1962년에 <츠바키 산주로>라는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사람의 또 다른 작품을 가져다가 만든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최전성기 작품이다. 사실은 그의 집안은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제작비를 너무 많이 사용하다 보니 일본 제작사에서 꺼리는 감독이 됐다. 그래서 만든 게 <요짐보>이고, 후속 압력이 자꾸 들어와서 찍은 게 <츠바키 산주로>다. 이 영화에는 명불허전의 결투장면이 나온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롱테이크 결투신이 있는데, 이 장면이 굉장히 창의적이다. 이후 이 장면이 일대유행을 일으켰다. <붉은 수염>의 마지막 장면도 비슷한 느낌인데, 좋게 말하면 젊은 요시모토가 스승의 입장이 되어가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꼰대가 돼가는 것이다. 당시 일본영화계는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같은 감독이 꼰대가 돼가던 시절이고, 오시마 나기사, 이마무로 쇼헤이 같은 젊은 피가 내지르던 시기이다. 이러한 시대에 스승의 입장에서 세상에 대해서 하는 말 같은 영화이다. 마지막 장면은 명백하게 <츠바키 산주로>의 에코 같은 장면이다. <츠바키 산주로>의 마지막 장면은 산주로가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지막 대결에서 이기고 떠나가려고 하는데, 제자를 삼아달라는 사람이 있어 그들을 뿌리치고 떠나간다. 이 부분이 <붉은 수염>과 거의 비슷하다. 이 작품을 끝으로 구로사와 아키라와 미후네 도시로의 협업작품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기존에 함께 작업했던 팀과의 파트너십도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종말을 구한다.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아키라가 계속 요구하다보니까 문제가 됐다. 그 예로 <거미집의 성>에서 맨 마지막 장면에 보여주는 수백발의 화살을 실제로 쐈다고 한다. 명사수들을 데려다가 3일을 촬영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3일 동안 연기를 한 게 아니라, 미후네 도시로는 진짜 죽을 지도 모르겠다는 공포감에 영화를 찍었다. 이런 것을 영화로 보면 대단하긴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피로감이 극에 달했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영화산업 자체가 구로사와 아키라가 요구하는 것을 감당해낼 수가 없었다. 이 영화도 굉장한 대작이다. 거대한 마을을 세트로 다 지어놓은 것이다.

영화의 원작하고 내용은 대부분 대동소이한데, 오토요 소녀의 에피소드만 추가한 것이다. 인터미션 이후 영화 후반부는 붉은 수염은 관찰하는 입장으로만 등장하고, 야스모토와 소녀의 스토리가 주를 이룬다. 후반부는 구로사와 아키라가 만들어낸 하나의 완전한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옛날 거장들 영화를 보면 극도로 양식화되어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물감이 든다. 일단 일상적인 레벨로 연기를 하지 않는다. 특히 미후네 도시로가 그렇다. 미후네 도시로가 중심을 그렇게 가지고 있으니 아역배우들도 그렇게 연기하는 것 같다.(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레벨로 계속 영화를 끌고 가면서 관객을 고조시키는 것은 신기한 경지다. 이 영화는 와이드 스크린에서 쓰리샷, 투샷 정도로 놓고 촬영하고 있는데, 그 자체가 스펙터클이 된다. 동작, 시선, 타이밍이 굉장히 기가 막힌다. 타이밍을 정교하게 계산을 했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본다는 것에 대한 쾌감을 주는 느낌이다. 간단히 말하면 연극적으로 찍었다고 하는 것인데, 흔히 가부키 노 스타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서양에서 먹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저항할 수 없는 순간들을 연기로 연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영화는 대부분 드라마 스타일이다. 관객이 다 알 수 있는데도 영화가 세심한 면까지 다 설명해준다. 그러나 진짜 필요한 순간에는 오토요와 야스모토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이런 장면들이 굉장히 영화적인 순간이다. 오토요가 야스모토를 간병할 때, 눈 오는 장면 같은 경우에도 특별한 대사 없이 시선을 잘 맞춘다. 이런 식의 연출은 우리가 알면서도 당하는 느낌을 들게 한다. 감동적으로 연출한 것을 알면서도 저항할 수 없는 감동을 받는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섬나라라고 비하하기도 하지만, 아키라는 스케일이 정말 대단한 대륙적인 사람이다. 장이모우 같은 경우에는 조금 소심한 편이다. 예를 들어 붉은색을 사용해 정열을 표현한다. 아키라 같은 경우는 감정 상태를 보여줄 때 기후가 변화한다. 시나리오에는 ‘바람이 분다’라고 간단히 써졌겠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스케일은 실로 엄청나다. 비가와도 보슬비가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폭우다. 바람이 불었다하면 광풍이고, 비가 아주 장대비로 내린다.(웃음) 이런 것은 단순한 유비관계인데도 보이는 풍광으로 압도를 해버린다. 화면 밖에서 프레임에 보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생각하게 한다.

<도라 도라 도라>라는 영화에서 결국 구로사와 아키라는 해고됐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키라가 요구한 것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범위였다. <도라 도라 도라>를 찍으려고 세계적인 감독을 고용했지만, 할리우드에서도 포용할 수 없는 요구였었다. 하지만 이런 요구들을 해왔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대작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붉은 수염> 이후에는 일본영화산업에서 일을 얻지 못했고, 자살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 1974년에 구소련정부의 지원으로 러시아에 가서 <데루스 우자라>를 찍었고, 80년 <카게무샤>는 조지 루카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돈을 대주어 찍었고, <란>은 프랑스가 지원해주면서 복귀하게 됐다. 감정의 스케일에 대해서 앞서 이야기 했지만, 영화라는 것이 칼이나 총을 써서만 스펙터클이 아니고, 시선, 얼굴,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스펙터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붉은 수염>만큼 잘 보여주는 영화는 없다. 건물도 앵글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굉장한 스펙터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화면도 망원으로 찍어서 대부분 아름답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망원 촬영은 전매특허처럼 되었다. 배우들의 연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망원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도 필요할 때는 심도를 주어서 집단샷을 찍기도 했다. 그래서 굉장히 깔끔하고 감정의 스케일도 큰 화면을 만들어낸다.



관객1: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를 주로 비디오로 봐오다가 큰 화면으로 보니까 전혀 느낌이 다르다. 이건 단순히 스크린의 사이즈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것인가?

김영진: <붉은 수염> 같은 영화는 스크린으로 봐야하는 영화다. 그 차이는 화면이 크기 때문에 디테일이 많이 드러나서 그렇다. 당장 빛의 배분만 봐도 큰 화면으로 보면 느낌이 달라진다. 이 영화에서는 조명이 굉장히 좋다. 예를 들어, 야스모토를 보여주는 조명은 계속해서 바뀐다. 처음에는 조명이 굉장히 탁하다가 야마모토가 굴곡을 겪은 이후 점점 맑은 느낌으로 변화한다. 여기에서 조명이 그의 상태를 많이 반영한다. 물론 세팅자체가 극 초반과 후반에서 다르지만, 영화적 질감이라는 것들이 굉장히 다르다. 이런 것들을 작은 화면으로 보면 느낌이 다르다. 사실 처음에 와이드스크린이 나왔을 때, 많은 감독들이 반대를 하기도 했다. 심지어 베드신에만 이용될 것이라고 하는 감독도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디테일을 잘 살렸다. 극 초반에는 붉은 수염이 중간구도에, 후반부에는 야마모토가 중심구도에 놓이게 된다. 그런 디테일들이 저항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영화다.



관객2:
일본영화는 오래된 영화도 컬러나 흑백 구분 없이 필름상태가 좋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이것은 촬영 당시의 기술이나 필름상태가 달랐기에 발생하는 것인가, 아니면 보존문제 때문인가?

김영진: 말씀하신 모든 것에 해당한다. 찍을 당시의 기술도 굉장한 차이가 있었고 보존의 차이도 있다. 미국영화는 3,40년대 전성기를 맞았고, 한국영화는 당시에 이제 막 시작하고 있는 시기였다. 일본도 30년대에 이미 스튜디오 시스템이 확립이 되었다. 당시 일본은 할리우드 시스템처럼 운영되고 있었고 기술적 조건도 좋았다. 보존도 잘 되었다. 당시 한국상황은 우선 찍을 때 기술 조건이 상상을 불허할 만큼 열악했다. 70년대에는 필름을 아끼기 위해 잘라서 찍기도 했다. 필름을 잘라서 와이드해졌기 때문에 한국적 시네마스코프라고 부르기도 했다.(웃음) 80년대에 만든 한국영화들 보면 기술적으로 더욱 낙후됐기 때문에 색감 같은 것은 못 봐줄 정도다. 당시에는 만드는 사람조차도 한번 쓰고 버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수출할 때에 원판을 수출하기도 했다. 어떤 곳에서는 원본을 보냈다고 되돌려 보내기도 했는데, 세관에서 돈을 더 내야한다는 이유로 안 찾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관객3:
일본 고전 거장감독들에게 감동을 받아서 80년대 이후의 일본 영화를 보게 됐는데 실망스러웠다. 왜 이렇게 변화하게 됐는가.

김영진: 일본영화산업은 60년대 몰락했다. 그런데 전통적인 스튜디오들이 건재하고 있다. 이 영화사들에서 60년대 이후부터는 영화를 많이 안 찍고 주로 배급을 했다. 그리고 한국처럼 드라마와 별개로 영화제작만 한 것도 아니어서, 60년대부터는 대부분 자주영화산업시스템이라고 해서 독립프로덕션 개념으로 영화를 촬영했다. 지금도 해외에서 거의 유명한 감독들은 이런 프로덕션에서 제작하는 감독이다. <붉은 수염>은 주류영화 스튜디오 시스템 한 복판에서 만들어진 작품인데, 요즘 주류 시스템의 영화들은 실망스러운 부분도 많다. 주류는 점차 드라마와 경계가 모호해지고 말랑말랑한 영화로 만들어진다. 산업자체가 양질의 주류영화를 만들어낼 동력자체를 잃어버린 것이다.



정리: 김고운(관객 에디터)

사진: 최용혁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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