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니의 세계에 ‘끝’은 없다” - <네버엔딩 펠리니> 상영 후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시네토크

 

김성욱(프로그램디렉터) <네버엔딩 펠리니>를 만든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감독을 소개한다. 올해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탄생 백 주년을 맞는 해이고, 오늘 1월 20일은 펠리니의 100회 생일이기도 하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과 함께 작업한 분을 직접 만나는 건 나도 처음인데, 일단 이번 행사에 참여한 소감부터 듣고 싶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감독) 이 시간 나와 함께 해주시는 모든 벗들, 관객들에게 감사한다. 내가 오늘 여기에 온 건 큰 결정이었는데, 왜냐하면 오늘이 정말 중요한 날이기 때문이다. 펠리니의 100회 생일은 단지 이탈리아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날이다. 그래서 조금 의무감을 갖고 서울에 왔다. 일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김성욱 에토레 스콜라 감독은 2013년에 펠리니 감독의 사후 20주년을 맞아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었다. 이번 <네버엔딩 펠리니> 역시 펠리니 탄생 백 주년을 맞아 만들어진 작품 같다. 이 작품의 연출을 제안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이탈리아 국영 방송인 라이(Rai)의 아카이브 부서로부터 이 영화의 제작을 제안 받았을 때 처음에는 굉장히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곧 이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위험한 일인지 깨달았다. 왜냐하면 나 또한 감독인데 다른 거장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 라이의 모든 자료들을 정리하며 펠리니와 나 사이의 자전적 이야기도 함께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굉장히 예민한 단계에 접어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경험하며 본 것과 이 자료들로 인해 새로 알게 된 것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보다는 하나의 극영화에 더 가깝게 생각했고, 지금은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방금 얘기한 에토레 스콜라 감독의 영화 제목도 <페데리코, 불가사의한 존재(Che strano chiamarsi Federico)>이다. 감독님의 <네버엔딩 펠리니>도 펠리니를 대단히 신비한 존재로 그린다. 감독님은 펠리니라는 감독을 어떤 존재로 기억하는지, 그리고 펠리니가 가지고 있던 비밀스러움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어떤 분인지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나는 개인적으로도, 일적으로도 그분을 잘 알았는데 어떤 면에서든 펠리니와 가까이 있었다는 건 대단한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펠리니는 굉장히 주의 깊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 주의 깊음은 시각적 지각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직관의 영역까지 포함한다. 그는 사람을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펠리니는 위대한 배우들과도 연기를 했지만 배우가 아닌 사람도 연기를 잘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마 이런 능력 때문일 것이다. 물질과 창조성 사이에 매개자가 있다면 바로 펠리니가 아닐까? 그는 마치 마술사처럼 느껴지는 존재였다. 자석과 같은 끌어당김을 가진 분이었다.

김성욱 에우제니오 감독님은 펠리니의 조감독이기도 했다. 펠리니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특별히 기억하는 점들이 궁금하다. 그리고 펠리니 감독이 실제 작업 현장에서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또 어떤 진행 과정들을 거쳤는지 듣고 싶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펠리니는 굉장히 꼼꼼하고 정확한 감독이다. 그러나 시나리오는 하나의 줄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촬영 바로 전날까지 시나리오를 다시 썼다. 또한 펠리니는 그 자신이 대단한 배우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 심지어 물체가 연상시키는 이미지들까지 잘 표현했다. 지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하루는 촬영을 하다가 어떤 젊은 배우에게 “가만히 있되 불 켜진 램프처럼 서 있어봐” 라고 했고, 그 배우는 그 느낌을 잘 캐치해 표현했다. 역동성과 즉흥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굉장히 정확하고 꼼꼼했다. 특히 중요한 신을 찍을 때는 기술팀을 위해 촬영 당일 아침에 모든 장면을 아주 꼼꼼하게 그려주었다. 즉흥적이지만 실행에 있어서는 굉장히 꼼꼼했다.

김성욱 지금 관객석에 이명세 감독님도 오셨다. 평소 이명세 감독님이 페데리코 펠리니를 가장 좋아하는 감독으로 손꼽으셨다.

이명세(감독) 일단 페데리코 펠리니 탄생 백 주년에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다. 오래 전 내가 이탈리아에 갔을 때 펠리니를 느껴보기 위해 치네치타(*로마의 남쪽 교외에 위치한 거대한 규모의 촬영소)에 갔던 기억이 있다. 나는 펠리니의 모든 영화를 좋아하지만 특히 <로마>를 너무 좋아한다. 오늘 이곳에 계신 분들이 펠리니의 놀라운 상상력과 열정을 많이 가져가길 바란다. 

김성욱 에우제니오 감독이 실제로 펠리니의 작업에 참여한 건 <진저 앤 프레드>부터인데, 이 작품은 펠리니의 후기작에 속한다. 이 당시 이탈리아 영화 산업은 TV와 경쟁하며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치네치타 스튜디오 자체도 위기에 처한 시기였다. 그 시기의 펠리니 감독과 작업하며 펠리니 감독의 영화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하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펠리니는 예지자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분은 이탈리아, 나아가 세계 인류사적 변화를 보며 그 변화의 과정을 담은 기념비적 작품을 찍었다. TV가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찍은 <인터뷰(Intervista)>(1987)라는 영화가 있는데, 이 작품은 영화의 변화가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질문하는 영화였다.

김성욱 에우제니오 감독과 펠리니 감독이 겹치는 부분은 ‘리미니(Rimini)’라는 마을이다. 펠리니가 연출한 <아마코드>(1973)의 배경이기도 하다. 펠리니에게 리미니는 어떤 곳이었고, 감독님은 리미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마을 사람들은 <아마코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듣고 싶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내가 리미니로 이사했을 당시 <아마코드>가 상영되고 있었다. 이건 대단한 우연인데, 아버지의 전근으로 인해 리미니에서 살게 되었지만 내가 거기서 태어나진 않았다. 그런데 펠리니 감독은 그곳에서 태어났다. 

<아마코드>는 펠리니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펠리니는 거의 모든 영화를 로마의 치네치타에서 찍었고, 로마 근교에서 모든 걸 찍었다(펠리니는 한 장소에서 촬영하는 걸 선호했다). 결과적으로 리미니라는 마을은 사람들에게 이탈리아의 어떤 과거를 연상시키는 상징적 공간이 되었다. 펠리니 감독은 이미지를 통해 그곳을 연상하도록 만들었다. 리미니가 펠리니 때문에 유명해진 건 사실이고, 현재 그곳에는 펠리니 박물관도 있다.

관객 1 펠리니의 영화를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순서대로 보며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분위기가 너무 달라 같은 감독의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다. 이런 변화에 관한 에우제니오 감독님의 생각이 듣고 싶다. 펠리니는 매 순간마다 자신의 모습을 바꿔가며 다양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인지, 아니면 이 다양한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는지 궁금하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어느 순간 펠리니 감독이 “나는 계속 같은 영화만 만들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굉장히 단순화한 말이지만 여기엔 진실도 담겨 있다. 펠리니의 영화는 스타일적으로 계속 진화했고, 나중에는 무한한 크기가 되었다. 마치 어떤 사람이 미지의 땅에 도달한 뒤 대단한 관찰력을 갖고 그 세상에 익숙해진 다음, 더 시간이 지나 아예 완벽할 정도로 그 땅을 잘 알게 된 상황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사람, 바로 펠리니가 미지의 땅을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거다. 그것도 매우 서정적으로. 나에게 펠리니의 비밀은 시적인 서정성에 있다. 질문하신 분이 시(詩)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관객 2  <8과 2분의 1>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사람들이 나온다. 감독님은 실제로 펠리니가 초현실적 경험을 하는 걸 듣거나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펠리니 감독이 대강의 스토리만 갖고 영화를 찍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펠리니가 영화의 결말을 미리 정하고 찍는지, 아니면 현장에서 바꾸는지 궁금하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펠리니 본인은 형이상학적인 것, 비현실적인 것, 마법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 속에 진실이 들어 있다. 펠리니는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현실 뒤에 있는 것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그가 가진 모든 도구들이 인간과 영혼을 잘 인식하기에 적합한 도구들이었다. 그 도구에는 과학과 비현실적인 것이 함께 들어있다. 그리고 이 도구들을 심리 분석을 통해 얻고자 했다. 실제로 펠리니는 융의 연구에 기반해서 다른 세계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고, 어느 순간부터 점점 더 심리 분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른 세계를 말하는 게 그의 최종 목표는 아니었다. 그건 다만 도구일 뿐이다. 펠리니가 렌즈를 통해 세상에서 보고자 한 건 항상 아이러니였다. 이를 통해 아주 복잡한 테마도 잘 다룰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러니의 중심에 있는 건 결국 인간이었다. 특히 이런 부분이 잘 드러난 영화로는 주로 그의 흑백 영화들, <8과 2분의 1>, <달콤한 인생>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영화 이후에는 굉장히 어려운 작품들이 탄생한다. 여기에는 다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 도래할 새로운 세상에 대한 펠리니의 비전이 담겨 있다. 

시나리오의 경우에는 연대기적으로 나눌 수 있다. 초기작은 시나리오가 보다 구조화되어 있어 따라갈 항로가 미리 정해져 있었다. 반면 후기작은 마치 한 그루의 나무에서 가지가 여러 갈래로 뻗어나오는 것과 같다. 이런 특징이 펠리니의 영화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점점 열린 구조의 시나리오가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가벼워지기도 했다.

관객 3 나는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이탈리아 문화에 대해 알아보고자 이번 영화제에 왔고, 사실 오늘 펠리니를 처음 알았다. 펠리니 영화들 중 처음으로 보기 좋은 영화를 추천받고 싶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아주 멋지고 어려운 질문이다. 일단 맨 처음에는 가장 중요한 영화를 봐야 한다. <8과 2분의 1>이라는 복잡하지만 아주 재밌는 영화를 추천한다. 아마 영화 속에서 아주 아름다운 음악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후 <8과 2분의 1>에서부터 시작해 일곱 번째 영화, 여섯 번째 영화, 그렇게 첫 영화까지 내려가길 바란다. 그리고 다시 순서대로 올라가길 추천한다. 행운을 빈다. 사실 당신이 너무 부럽다. 나도 극장에 와서 처음 펠리니를 보는 행운을 느껴보고 싶다.

관객 4 먼저 펠리니 감독의 예술적 동반자이자 삶의 동반자인 줄리에타 마시나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그리고 <네버엔딩 펠리니>에 ‘진정한 현실주의자는 망상가’라는 말이 나온다. 에우제니오 감독님은 이 말을 어떤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페데리코 펠리니는 위대한 감독이자 위대한 인간이었다. 그는 천재였고 운도 아주 좋았다. 왜냐하면 그의 곁에 다른 천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줄리에타 마시나는 물론이고 시나리오 작가인 엔니오 플라이아노(Ennio Flaiano), 작곡가인 니노 로타(Nino Rota)도 천재였다. 펠리니 주변의 사람들은 마치 하나의 별자리처럼 그의 곁에 자리 잡았다. 

줄리에타 마시나와 펠리니 감독은 예술적으로 한 몸 같은 관계였다. 물론 충돌도 많은 커플이었지만 어떤 것도 둘을 떼어놓을 수 없었다. 항상 영화가 둘을 묶어주었고 진정한 사랑으로 단단히 묶인 커플이었다. 줄리에타 마시나가 없는 <길>이나 <카비리아의 밤>을 상상할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마치 두 개의 기관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기관처럼 둘은 예술적으로 한 몸이었다.  

그리고 ‘진정한 현실주의자는 망상가다’라는 말은 표면적인 것에 머물면 안 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눈앞에 있는 것보다 더 뒤에 있는 차원, 바로 진실의 차원으로 가야 한다. 더 상상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이런 능력은 마치 영매의 능력 같은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펠리니는 영매이기도 했다. 그는 현실 너머를 볼 수 있는 감독이었다.

관객 5 펠리니 감독은 TV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TV 광고를 찍었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펠리니와 TV의 관계가 안 좋았던 건 아니다. 펠리니의 마지막 작품들은 TV 덕에 만들어졌고, 말씀하신 것처럼 직접 광고를 찍기도 했다. 펠리니는 광고를 반대하지 않았고, 어떤 광고는 매우 좋아했다. 젊은 시절부터 광고 아이디어를 많이 메모하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 용서하지 않았던 건 영화 방영 중간에 광고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펠리니는 TV 광고를 싫어했고 이와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김성욱 영화 제목을 “네버엔딩 펠리니”로 지었다. 펠리니의 어떤 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우리가 백 주년을 기념하는 건 또 어떤 의미인지 듣고 싶다. 

에우제니오 카푸치오 펠리니의 인터뷰를 보며 이 제목을 떠올렸다. 한 기자가 펠리니에게 영화의 마지막에 왜 “끝(Fine)” 자막을 넣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펠리니는 “엔딩이란 말을 넣는 게 나는 싫다. 왜냐하면 이건 영화에 옳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답한다. 펠리니에게 영화는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루가 끝날 때 ‘끝’이란 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 펠리니는 ‘Continue’란 표현을 쓰지 않을까? 펠리니의 영화는 물론 펠리니 역시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으로 이런 제목을 지었다. 나는 이 제목이 마음에 든다. 관객 여러분도 이 제목이 마음에 들기를 바란다.

 

일시 2020년 1월 20일(월) 오후 <네버엔딩 펠리니> 상영 후

정리 예그림 홍보팀장

사진 예그림 홍보팀장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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