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서울아트시네마에 갔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2007년, 시네바캉스가 개막하고 난 바로 다음날이었다. 나는 <대탈주>와 <프렌치 캉캉>을 보았고 영화며 극장이며 옥상이며 낙원동에 첫눈에 반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 다음해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서울시민이 되었다. 이 거대하고 낯선 도시에서 내게 익숙하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 아트시네마였다. 얼마가 지나고, 낙원상가가 곧 철거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앞도 뒤도 다 잘라먹고 딱 그 문장 하나 듣고 나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옥상을 데굴데굴 구르며 투쟁하겠다’며 농담처럼 지나갔지만 늘 마음에 담고 있었나보다. 또 다시 얼마가 지나고, 누군가 <캘리포니아 돌스> 시네토크에 갔다가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공모제라니,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이상한 이야기였다. 놀란 가슴에 헐레벌떡 달려간 포럼에서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걸 확인받았다. 나는 어쩔 줄을 몰라 방방 뛰며 꽁지에 불이 붙은 것 마냥 매일같이 블로그에 글을 쓰고 주변 사람들에게 서명지를 돌렸다. 처음 시작할 땐 상상도 못했던 숫자의 서명을 모아 전달하고도 그 겨울 내내 토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해 친구들 영화제의 마지막 상영을 보면서 조금 울었다. 그 모든 일을 지나면서도, 그래, 사실은 이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다. 내가 영화에 대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시네마테크에서 배웠고, 그 시네마테크의 8할은 서울아트시네마다. 영화 말고도 참 많은 걸 배웠다. 아트시네마에 드나들었던 하루하루를 돌이켜보면 내가 자라 온 모습이 보인다. 나는 키도 조금 컸고 마음도 조금 컸다. 그런 나의 학교가, 꼬박 2년을 지나고도 여전히 이 도시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인 이 공간이 ‘사라져야 하는’ 이날이 정말로 오려고 한다. 지난 1년,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극장에 앉아 화내고 분통해하는 일뿐이었지만, 올해는 같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아트시네마에서 자라야겠다. 그렇게 할 거다. 원래도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좀 더 자주 중얼거리게 된 영화 대사가 있다.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아버지가 주문처럼 외우던 그 말. “가드 올리고, 상대방 주시하고.” (박예하, 19세)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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