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헝가리 영화의 보석같은 작품 -졸탄 후스자릭의 <신밧드>

2013. 1. 22. 11:19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리뷰

 

삶은 왜 이토록 허무한가?

 

- 졸탄 후스자릭의 <신밧드>

 

 

 

 

졸탄 후스자릭의 <신밧드>는 ‘헝가리의 프루스트’라고 불리는 쥴라 크루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쥴라 크루디가 그러했듯(그리고 그 누구보다 프루스트가 그러했듯), 졸탄 후스자릭은 <신밧드>에서 한 남자가 죽음과 사랑이라는 화두를 통해 잃어버린 자신의 기억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한 남자가 자신을 사랑했던 여자들을 만나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과거의 기억을 되찾아 간다는 면에서 이 영화는 짐 자무쉬의 <브로큰 플라워>나 빔 벤더스의 <돈 컴 노킹>과 유사점이 있다. 하지만 “삶은 아름다운 거짓말의 연속이다”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죽음을 앞둔 한 부르주아 남자의 삶의 공허함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두 영화와 방향을 달리 한다.

 

사실 <신밧드>는 죽어가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이미 죽은 남자가 내레이션과 이미지를 통해 기억을 소환해내는 영화다. 영화는 개화하는 꽃, 물에 떨어진 기름의 이동, 썩어가는 낙엽, 여성의 머리카락, 타들어가는 숯, 거미줄, 여성의 사진과 꽃, 떨어지는 빗방울 등의 극단적인 클로즈업 숏으로 시작하고, 이어서 죽은 남자가 마차에 실려 가는 장면과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클로즈업의 촉각적인 이미지들은 그 남자의 기억을 구성하고 있는 이미지들로 밝혀진다. 이렇듯 영화는 프롤로그에서 그 구성을 명확히 밝힌다. 즉 <신밧드>는 죽어가는 남성을 통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들로만 남아 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죽은 자의 목소리를 통해 재구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여인들과 그녀들의 나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의 집들, 그리고 낙엽이 깔린 길과 설원의 광활한 풍경 등의 이미지로 재구성된 기억은 공허하고 무의미하다. “죽음 때문에 우리는 하루도 한가하게 지낼 수 없다”라는 사무엘 베케트의 말처럼, 신밧드는 하루도 한가하게 지내지 않고 사랑했던 여인들을 찾아가 그녀들과의 추억을 떠올려 보지만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삶은 공허하다. 그녀들은 항상 묘지 주위를 배회하는 사람처럼 그에게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그는 그녀들에게 퇴폐적인 향락만을 갈구할 뿐이다. 이렇듯 물신주의자인 상류층의 한 남성이 느끼는 극도의 허무감은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에 기인한다.

 

영화에서 간접적으로 제시하듯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후반이다. 이 시기는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의 등장으로 인해 전 유럽이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을 때이다. 이런 영화가 풍기는 기이하고 불안한 분위기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 사회주의 혁명을 앞둔 시대의 분위기를 퇴폐적인 몰락의 이미지로 그렸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실패한 사회주의 국가가 어떻게든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려는 상황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과거의 기억을 되찾아 과오를 씻으려던 죽은 남자의 행위가 결국 들판을 가로질러 실려 가는 그의 주검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가 어떻게든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려고 발버둥치지지만 결국은 몰락하고 실패했다는 것을 허무주의적 태도를 통해 우화적으로 보여주려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동구권의 영화에 대해 소개가 많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신밧드>는 보석 같은 작품이다. 한국에서 헝가리 감독에 대한 정보는 벨라 타르, 미클로스 얀초, 이스트반 자보와 같은 감독 정도일 것이다. <사이트 앤 사운드>의 마이클 앳킨슨은, 졸탄 후스자릭의 작품이 굴절된 시간 구조와 분절된 숏을 연결하는 빠른 몽타주로 이뤄져 있다는 점에서 미클로스 얀초의 우아한 트래킹 숏과는 대비되는 미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에 알고 있던 동구권의 영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놨다는 점에서, 죽음의 의미와 삶의 공허함 그리고 사랑에 대한 사색을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분위기 속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죽은 것을 통해 세상을 둘러싼 기억들을 소환한다는 점에서 <신밧드>는 눈 여겨 봐야할 작품이다.

 

최혁규 /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