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두려움과 매혹의 공존

-임권택의 <안개마을>

 

이문열의 소설을 각색한 <안개마을>은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그린 작품으로 두려움과 매혹을 동시에 안기는 작품이다. 당대 절정의 미모를 자랑하던 정윤희,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지만 존재감만으로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준 안성기의 열연으로도 기억되는 이 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다른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반드시 재평가 받아야 할 수작이다.

 

 

임권택 감독의 79번째 영화. <짝코>(1980)로 시작하여 <만다라>(1981), <길소뜸>(1985), <티켓>(1986), <씨받이>(1986)로 이어지는 임권택 감독의 1980년대 걸작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덜 보여지고 덜 말해진 작품이다. 이문열의 단편소설 『익명의 섬』을 가져와 임권택과 그의 시나리오작가 송길한은 그 이야기에 좀더 여성중심적인 시선을 가미하였다. 성적 욕망이라는 모티프를 두고 하나의 폐쇄된 공동체가 그 순도를 지키기 위해 이방인을 필요로 했다는 이야기를 또 한명의 이방인 관찰자의 시선으로 들려준다. 이 이야기가 독특하다면 그 공동체의 해소되어야 할 욕망이 여성의 것이며 그 욕망의 도구로 쓰인 것이 남성 타자의 육체라는 점에 있다. 임권택 감독은 여기에 몽환적이고 음침하며 아름답고 신비한 기운을 불어넣어 그의 작품 중에서도 눈에 띄게 강렬한, 일종의 무드의 영화를 내놓았다. 12일의 촬영으로 이토록 균질적이고 밀도 높은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지금 보아도 놀랍다.

 

산으로 둘러싸인 데다가 짙은 안개에 파묻혀 이중으로 은폐되고 고립된 어느 산골마을에 도시의 여선생이 부임해 온다. 이 마을은 다들 친인척으로 엮인 집성촌이었다. 마을에 도착한 수옥이 처음 마주친 이는 부랑자차림의 깨철. 바보 깨철의 멍한 눈이 그녀를 향해 순간 맹렬한 빛을 띨 때 수옥은뱀 같은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곧 그녀는 깨철과 동네아낙들의묘한 관계를 감지하게 된다. 폐쇄된 공동체를 떠도는 음침한 침묵의 규약. 이 마을에서 그녀는 처음에 관찰자였다가 잠시 도덕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수사관 행사도 하지만 결국에는 공모자가 된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의 문제에 그 나름의 존재방식을 제시한 이 영화가 무척 신선하다면 그것은 그 보편적 욕망이 자리잡은 공간의 특정성 때문일 것이다. 산과 안개, , 비에 싸인, 거대한 혈연 공동체의 비밀. 그 비밀은 낱낱이 까발려진다.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무척 적은데도 불구하고 (원작에서 옮겨온) 다소 문학적이고 설명적인 수옥의 보이스 오버 나레이션이 너무 친절하여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그에 반해 대사 없는 수옥의 클로즈업들은 무척 매혹적이다. 당대 절정의 미모를 자랑하던 정윤희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지만 임권택은 그 아름다운 얼굴에 캐릭터의 심상을 새겨넣었다. 호기심과 두려움을 숨기면서 드러내는 그 얼굴에 말은 군더더기일 뿐. 안성기의 연기는 더할 나위 없다. 이 영화로 여러 개의 주연상을 수상한 안성기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며 클로즈업도 몇 되지 않지만 그 존재감만은 압도적이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핸드핼드로 찍힌 그는 불안을 자아내는 사운드와 함께 나타나 그의 정체를 되묻게 하는 눈빛으로 깊게 각인되는 흥미로운 존재를 체현한다. 두려움과 매혹을 동시에 안기는, 다시 재평가되어야 할 임권택의 수작.

 

글_강소원(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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