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샤 기트리가 1936년에 만든 <어느 사기꾼의 일기>에서 중요한 것은 내레이션의 사용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나이든 주인공이 까페에 앉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일기를 쓰고 그 일기는 고스란히 영상으로 옮겨진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주인공이 자신의 일기를 고스란히 읽어 준다는 것이다. 즉 관객은 영화 상영 시간 내내 흐르는 주인공의 일인칭 내레이션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사기꾼의 일기>가 보여주는 삶에 대한 유쾌하고 낙관적인 태도와 유머러스함 역시 영화의 이러한 화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샤 기트리는 1915년에 데뷔해서 50년대까지 30여 편의 영화를 만든 영화감독인 동시에 연극 쪽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한 경력을 갖고 있다. 특히 꾸준히 영화와 연극의 각본을 쓰며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런 맥락에서 <어느 사기꾼의 일기>를 본다면 사샤 기트리가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단적으로 말해 이 영화는 말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오프닝 크레딧까지 내레이션으로 ‘들려주는’ 이 영화는 그만큼 내레이션에 많은 역할을 부여한다. 말 그대로 내레이션이 영화를 진행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내레이션은 영상을 설명하는 주석이 아니다. 오히려 영상이 내레이션에 맞춰 변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말이라는 음성 기호가 영상의 시각 기호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 영화 특유의 유머러스한 정서 역시 여기에서 발생한다. 이를테면 주인공이 몬테카를로의 풍경을 설명할 때 카메라는 정확하게 내레이션에 맞춰 좌우로 패닝하며 유머러스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영화 밖의 말이 카메라의 논리에 우선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종종 무성영화와 유성영화 사이에 기묘하게 걸쳐 있다는 인상을 준다. 카메라는 무성영화의 화법인 비주얼 텔링 방식으로 움직이지만 결국 영화를 진행시키는 것은 주인공의 음성이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대사까지 내레이션으로 들려줄 때 관객이 보는 것은 그야말로 무성영화의 한 장면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의 역할은 마치 변사와 같다. 이러한 내레이션을 사용한 영상과 사운드간의 기묘한 불일치는 이야기에 영화적인 생기와 유쾌한 웃음을 불어 넣는다.

그러나 이 영화를 마냥 웃기기만 한 영화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어느 사기꾼의 일기>는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특히 주인공이 자신의 불우한 어린 시절을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삶의 비극적인 이면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장면들을 사샤 기트리 특유의 유머러스한 화법으로 보여줄 때 부조리에 기반을 둔 섬뜩한 감정까지 발생한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 영화를 단순한 코미디 영화로만 볼 수 없다. 어쩌면 이 영화의 기본적인 정서는 ‘쓸쓸함’이란 생각도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평생을 정직하게 살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한 어느 사기꾼의 자기 고백이다. 이때 내레이션은 주인공의 감정을 전달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도구이다. 우리는 이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중년의 목소리로 말하는 아이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김보년)

  * 카르트 블랑슈: 시네필 정성일 평론가의 선택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Le Roman d un tricheur//Confessions of a Cheat
  1936|77min|프랑스|B&W|35mm|15세 이상 관람가  
 
  * 상영일정
  1/16 (토) 13:00 
  2/11 (목) 19:00 상영후 강연//정성일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