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만나다] <어머니>의 태준식 감독

 
지난 17일 이른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2009년 겨울 첫 촬영이 시작된 이후 장장 3년에 걸쳐 완성된 영화 <어머니>작가를 만나다에서 미리 만나보는 시간을 가졌다. ‘전태일의 어머니이기에 앞서 평범한 어머니로서의 일상을 담은 <어머니>는 그렇게 故 이소선 어머니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마지막 기록으로서 남게 됐다. 그 여운을 지우기에는 너무도 짧았던 시간, 영화 상영 후 태준식 감독이 전해준 속 깊은 이야기들을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한 해를 끝내는 12작가를 만나다에서 올해 돌아가신 이소선 어머니를 다룬 다큐멘터리 <어머니>를 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계기로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되었나.

태준식(영화감독): 애초에 생각했던 기획은 전에 활동했던 노동자 뉴스제작단이라는 단체에서 진보적인 운동을 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90년대까지는 노동운동이 최종적인 계급적 단결로 가는 확산의 시기였는데 IMF 발발 이후에는 패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지속됐고 그런 것에 대한 답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노동운동을 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소선 어머니를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시간이 지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전작인 <샘터분식>을 끝내면서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를 다시 만나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차근차근 주변에서부터 접근하면서 시작하게 되었다.

김성욱: 출발점에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영화를 보는 사람으로서는 마지막 기록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촬영을 하면서도 예상치 않았던 일이었을 것 같은데 그 때문에 어떤 변화도 있었나.

태준식: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을 거라고 100% 확신을 하고 촬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간에 어머니한테 이 작품을 꼭 보여드린다라는 명확한 목표는 있었다. 어머니가 퇴원하시고 몸이 좀 좋아지셔서 많이 또 돌아다니시려 했기에 전혀 예상을 못한 상황이었는데 올해 쓰러지시게 된 거다. <어머니>를 상영한 지 몇 번 안 됐는데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감하고 감정 조절도 잘 안 된다. 또 올해 어머니와 관계가 깊어지면서 정말 격려를 많이 해주셨고 은근히 기대도 많이 하셨다. 처음에는 어머니께서 말년에 집안에만 계시는 스스로의 모습을 다른 분들에게 보여준다는 그 자체를 저어하셨었는데 관계를 맺다 보니 이런 것도 네가 잘 할거라 믿는다는 말씀도 하시고 저도 꼭 보여드린다고 했었다. 장례를 치를 때보다 처음에 쓰러지셨을 때가 많이 힘들어서 1~2달 정도 작업을 못했었다. 원래는 연극 <엄마, 안녕>을 어머니가 보러 가시는 게 끝이었는데, 구성이나 이야기가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 돼버려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

김성욱: 다큐멘터리 거의 초반부에 어두운 골목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와 걸어가는 뒷모습이 나오는데, 그 처음의 느낌부터 굉장히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있었다. 사람들이 어머님을 모시고 가는 거지만 또 반대로 보면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을 언제나 데리고 다니신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러한 영화의 첫 부분을 만드신 데에는 어떤 느낌 같은 게 있으셨을 것 같다.

태준식: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창신동이라는 공간은 서울 중심부에 있지만 재개발이 덜 된 곳이다. 평화시장에서 옷을 만드는 노동자들이 거의 창신동으로 이동을 했는데, 스팀이 나오는 골목골목마다 미싱을 하고 옷을 만들어내는 사람들과 작은 공장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공간이다. 골목이 복잡하고 아주 옛날부터 생성되어있던 곳인데 거기서 어머니가 오래 사셨다.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 어머니 인생은 골목길 인생이라고. 멀리 동떨어져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과 가깝게, 항상 옆에 서있던 인생을 사셨던 분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약간 아이디어를 준 것도 있고, 또 우연치 않게 어머니 스케치를 하다가 걸어오시는 모습을 잡은 것도 있었다. 저도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옆에서 부축을 하며 쭉 걸어갔었는데, 개인적으로 어머니 말년을 같이 걸었다는 의미도 있겠다 싶었다.

김성욱:함께 걸었던이라는 그 표현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처음에 병원 근처에 있는 풀이 보여지고 연극을 하시는 두 배우 부부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그렇고 장례식에 있는 조화들까지, 일관적이고 반복적으로 풀이나 꽃 등이 영화에 많이 등장한다.

태준식: 어머니라는 인물이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라는 것도 있고, 보통의 사람들에게 각인되어온 노동운동의 이미지가 비호감이지 않나. 작업을 할 때 언제든지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것의 발현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소선이라는 인물을 소개한다고 했을 때 일상적으로 많이 보여질 수 있고 사람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어머니가 꽃과 같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연극 배우 분들 같은 경우도 처음 촬영 시작하는 날 마침 화단 작업을 하셔서 잘 됐다고 생각했다. 준비를 하고 조금씩 자라고 끝이 나는, 그런 것들로 표현을 하려 했던 것 같다.

김성욱: 초반부에 어머니께서 사람들이 전태일을 두고 열사라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있었는데 페이드아웃처럼 소리가 낮아졌다. 거의 끝부분에 가니 그 장면에 이어진 얘기였을 것 같더라. “낮은 데 있고 싶다는 말은 종교나 삶에서 나오는 부분이었을 것 같은데 참 인상적이었다. 아마 감독님께서 인터뷰를 하시면서도 인상적이라서 장면 분리를 한 게 아닌가 싶었다.

태준식: 국가에서 주어지는 열사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거부감, 권위적인 느낌이 있어서 노동자들에게 열사라고 불려지는 것도 비슷하게 생각을 하셨던 거다. 원래 인터뷰에선 그 사람의 뜻은 여전히 살아남아있고 같이 싸우는 많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차라리 동지라고 부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뒤의 말은 굳이 넣을 필요가 없겠다 싶어서 처리를 한 거다. 물론 이소선이라는 사람을 둘러 싸고 있었던 전태일의 어머니라는 원형 같은 게 있기는 하지만 어머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매력은 촬영을 하면 할수록 많이 느꼈다. 항상 농담도 잘하시고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낮은 자세, 겸양의 자세를 가지고 계셨다. 존경스러운 것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요 몇 년간 딸 아이 빼놓고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김성욱: 최근에 <오월愛>에서도 시와 씨의 음악이 들어갔었는데, 제가 근래 본 다큐멘터리 중에 가장 노래가 많이 들어갔던 것 같다. 노래가 들어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처음 작품을 만들어 갈 때부터 생각을 하신 건지, 아니면 나중에 편집을 하면서 가사가 있는 노래를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신 건지 궁금하다.

태준식: 음악을 많이 좋아한다. 음악에서 생각도 많이 떠오르고 작업에서 톤을 잡거나 할 때도 음악에 의지하는 측면들이 많다. 이번에도 당연히 음악은 들어간다라는 생각을 했고, BGM이 아닌 가사가 있는 음악을 생각했던 것은 일정 부분 이아립 씨의 음악을 듣고 생각을 했던 거다. 허스키하고 전반적으로 낮은 어머니 목소리 톤과 다른 목소리가 좋았고, 이아립 씨가 만든 음악들의 가사도 이러저러하게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게끔 굉장히 부드러운 톤을 가지고 있어서 BGM의 역할로 끝나는 게 아니라 브릿지씬의 의미로 쓰자는 생각이 좀 있었다. 전반적으로 영화에 설명이 별로 없지 않나. 인물도 한 명, 공간도 한정적이라 톤을 잡을 때 가사가 있는 노래를 써도 충분히 표현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던 것 같다.


김성욱: 완벽한 건 아니지만 시간이 거꾸로 흘러 2009년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형태다. 물론 중간에 2011년 일들도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최종적으로 다 찍고 구성을 할 때 영화 <박하사탕>처럼 과거로 단락씩 넘어갔던 것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

태준식: 이런 구성은 어머니가 쓰러지시기 전에 이미 결정이 된 부분이다. 연극 라인은 정석대로 시간 순으로 가고, 어머니의 시간은 거꾸로 돌려서 나중에 만나고 푸는 식으로 하자고 결정을 했던 것 같다. 뭔가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인물을 소개하는 데에 있어서 그 인물을 전제하고 가는 게 아니라, 그냥 이 인물 자체를 바라보고 난 다음에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다라고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또 제가 이소선이라는 인물을 처음 봤었을 때는 항상 노동운동 집회에 같이 다니고 싸움이 붙으면 앞에 나가시면서 똑바로 안 한다고 소리지르거나 혼내는 모습들이어서, 그런 이미지들을 찍고 싶었던 것도 있었는데 처음 촬영을 갔었을 때는 현실적으로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작품 안에서 그런 모습을 좀 되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결국에는 돌아가셨고, 지금 현재 상태로 얘기하자면 다시 살리고 싶다는 생각의 반영이 아니었을까 한다. 보시는 분들이 전태일과 이소선을 잘 아는 분들이라면 , 이소선이라는 분이 옛날에 정말 저랬었지하는 것을 줄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잘 모르는 분들이 보시기에도 보통의 어머니나 할머니한테도 다 이야기가 있구나, 그러나 이 사람에게는 약간 특별한 이런 이야기가 있구나 라는 것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작업을 했던 것 같다.

김성욱: 연극 <엄마, 안녕> 같은 경우는 대만인이 연출을 했고, 중간에는 와다 하루키라는 일본인 교수가 와서 인터뷰를 한다. 연극 연출을 대만인이 맡은 게 좀 특별했다. 물론 그 시기 안에 그런 연극이 있었기 때문에 감독으로서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 싶은데, 연극은 어떻게 기획이 되고 어떻게 만나게 된 건지 궁금하다.

태준식: 배우 부부인 백대현, 홍승이 씨는 부산의 일터라는 극단에 들어가서 활동을 하다가 따로 나왔고 결혼을 해서 주로 2인극을 많이 했던 분들이다. <엄마, 안녕> 전에 했던 편법 대출에 관한 연극 <빛이 아늑한 방>의 연출가는 이스라엘 분이었는데 그 연출가가 잘 알려진 분이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다가 대만에서 공연을 했고, 그때 처음 만난 왕모림 선생님이 굉장히 감동을 해서 두 배우에 대한 믿음으로 서로의 관계가 만들어진 거다. 그러다 작년 전태일 열사 추모 40주년에 맞춰 두 분이 전태일과 이소선에 관련된 연극을 한 번 해보자라고 했을 때 연출자를 고민하다가 대본 쓴 것을 왕모림 선생님께 보내어 제안을 했고 그분이 어머니를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해서 연극이 시작된 거다.


김성욱: 촬영 과정에서는 일정 시간마다 방문을 한 건가.

태준식: 초반에는 카메라를 들고 바로 간 것은 아니었다.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소개를 하고 심부름도 하고 고스톱도 치면서 가끔씩 갔었다. 당연하겠지만 방안에서만 있는 게 뭐가 좋으냐고 처음엔 많이 저어하셨었는데 그렇다고 쫓아내진 않으셨다. 올해 여름부터는 필요한 화면들이 어떤 것들인지 구성도 정리가 되고 연극도 일정 부분 끝이 나서 생각을 해서 촬영을 했기 때문에 자주 갔지만 카메라를 들고 간 일은 별로 없었다. 그냥 가서 밥 같이 먹고 이야기 나누고 태삼이 형님이 심부름 시키면 갔다 오고 하는 식의 관계를 맺었다. 원래는 어머니 쓰러지시기 전에 촬영 하나가 남아있어서 다음주에 가겠습니다라고 말을 했었는데 그 다음주 첫째 날 월요일에 쓰러지신 거다. 그래서 처음에 쓰러지셨을 때 자책감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툭하면 가서 인터뷰 해달라고 하고 옛날 생각나게 하고, 그런 자책이 있었다. 이 작품을 위한 촬영이 없었으면 그래도 좀 더 사셨을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김성욱: 어쨌든 사람을 찍는다는 것은 그 뒷면에서 무조건 지켜보는 것이지 않나. 여기서는 전개되는 것 안에 감독님 본인이 들어가는 장면들이 있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언제나 부딪히는 문제일 것 같은데, 특히나 이소선 어머니를 촬영할 때는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다.

태준식: 어머니와 카메라와의 관계를 어머니가 만나는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라는 것을 좀 표현하고 싶었다. 저도 똑같이 이소선이라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많은 사람들 중의 한 명이다라는 생각으로 그런 관계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자는 생각이 애초부터 있었다. 제가 작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어떤 권위 같은 것을 처음부터 포기한 측면도 있지만 또 어머니 성향자체가 그런 걸 인정하시는 분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노동운동과 관련된 다큐를 주로 했었는데, 그 동안은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한테 알려줘야 돼 라는 생각이 많았다면 이 작품은 애초부터 그런 생각이 좀 없어서 저한테도 신기하고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어쨌든 긴 시간 속에서 관계를 맞고 화면 속에서 관객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작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김성욱: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이나 내용이 전태일의 어머니라는 특정하고 고유한 인물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할머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좋았는데, 사실 고유인명으로서 이소선이라고 했을 때는 그 분의 삶의 매력들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 아닐까 하는 고민도 좀 하셨을 것 같다.

태준식: 원래는 부차적으로 어머니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아예 과감히 포기를 했다. 굉장히 큰 인물인데 너무 설명이 없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지적에 대해 말씀 드리고 싶은 건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건 아니라는 거다. 한 때의 그 인물이 이런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라고 갔으면 하는 거였다. 한 두 줄이긴 하지만 어쨌든 전태일이라는 인물은 교과서에도 있기 때문에 전태일의 엄마라는 기본적인 정보만 있다면 충분히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본 정보가 없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래서 더 자연스럽게 한 할머니의 모습으로 충분히 따라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또 작년이 전태일 열사 추모 40주년이기도 했고 이명박 정권 이후 노동의 문제가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시대상황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늘어났다. 그런 부분에 있어 이전 작업들처럼 성급하게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한편으로는 했었던 것 같다. 그냥 어머니의 힘을 믿고 가자, 어머니가 보여주는 모습이 분명 힘이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있어서 포기한 이유도 많았다.

관객1: 엄청난 정신적 충격이 있었을 텐데 세월이 지난 뒤의 모습에서 유머라든지 위트 같은 게 많이 보여져서 좋았다. 저도 젊어서 전태일의 죽음은 텍스트나 기록으로만 접했기 때문에 솔직히 공감한다기보다는 교육을 받은 세대다. 교육받기 이전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간으로서 공감할 수 있고 또 그것을 해학으로 풀어낸 점이 참 좋았다.

태준식: 항상 단순한 사실을 꿰뚫는 것에서 시작하면 듣는 사람이 반하지 않을 수 없다. 복잡하게 얘기하지 않고 단순하게 말씀하시는 스타일이 워낙 재미있기도 했고, 굳이 어머니가 웃기는 장면을 넣으려 했던 게 아니라 워낙 많은 장면에서 선택을 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반영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관객2: 작업을 하다 보면 다큐멘터리 작가로서의 윤리라고 해야 하나, 개입이냐 아니냐 연출이냐 아니냐의 정의에 대한 작가님의 기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태준식: 작가의 개입과 관련된 것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오래고도 별 영양가 없는 논쟁일 텐데, 저는 당연히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의 연출, 개입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한다. 다만 그것이 작품의 전반적인 스타일이나 기획 의도, 의미,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감정들에 따라 정도의 수준은 있을 것이다. 내레이션이나 인터뷰 등 형식적인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용인이 되어야 된다고 본다. 그러나 말의 순서를 바꿔서 원래 의도했던 의미가 아닌 다른 것으로 만들어낸다든지 하는 것은 다큐멘터리 윤리로써 뿐만 아니라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이다. 넓게 보여질 필요가 있는 동시에 다큐멘터리스트가 관계의 진정성에 기반하여 그것을 흐리지 않는 범위에서 표현을 하고자 한다면 많이 용인되어야 한다고 보고 그것을 넘어가는 것은 안 된다는 생각이다.

 


김성욱: 예전에 다르덴 형제가 다큐멘터리에서 극영화로 작업을 전환할 때 했던 말이 생각난다. “현실에 더 개입하기 위해 픽션을 시작했다.”는 것인데, 다큐멘터리를 하는 사람들은 그런 현실을 계속 담아내면서 답답함이나 막막함 같은 정신적인 후유증이 있지 않나. 그런 부분들은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그래서 어떨 때는 픽션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태준식: 다큐멘터리스트는 특히 독립 다큐의 역사 속에서 봤을 때 스토리텔링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사람 만나는 걸 더 좋아하는 게 많은 것 같다. 이야기 창작에 대한 욕구도 분명 있지만 그것보다는 사람들이나 사건과 관련된 나의 발언,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던 메시지들을 사람들과 빨리 소통시키는 것, 기저에 있는 소통의 중요한 도구로서 기능했었던 것이 다큐멘터리의 역할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많이 좋아했던 사람들이 동료들의 성향이 아닌가 싶다. 사실 다큐멘터리는 삶을 찍는 거라 오히려 작업이 끝나고가 더 힘들다. 그래도 삶은 지속되지 않나. 사람 관계가 단박에 끝나지는 것도 아니고 관계를 계속 형성해야 하고, 그러면서 작품이 끝나고 나서 사람들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그런 부분에서 힘든 측면들이 있는데 촬영을 하고 만드는 게 행복하고 좋아서 버티고 작업을 하는 것 같다.

김성욱: 중간에 딱 한 컷으로 그날 하루나 일주일에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적어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머니 삶의 단편 안에 잠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년에 이 다큐멘터리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졌으면 하는데, 마지막으로 상영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태준식: 일단 내년 봄에 개봉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시라. 사실 어머니의 거대한 의미를 소통한다기보단 한 사람의 죽음까지 보면서 기성세대나 주변에 대해 고민을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요즘 젊은 분들 사이에서 멘토가 유행인데,어머니는 온몸으로, 삶으로 보여주셨던 분인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보며 주변 분들과 얘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다. 물론 개봉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면 다른 형식으로 상영 활동도 열심히 할 생각이니 많이 신청해주시고 봐주셨으면 좋겠다. 어머니라는 인물이 이 작품을 통해 많이 기억되었으면 한다. 어떤 분이 어머니는 이미 클래식이라는 말씀을 하시더라.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이 이소선이라는 사람을 가지고 다른 영화를 만들거나 글을 쓰는 등 창작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작업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정리
장미경(관객 에디터) 사진 주원탁(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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