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건축가>의 정재은 감독

 

갑작스런 비바람이 몰아쳤던 지난 4월 21일 토요일, 한국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건축 다큐멘터리인 <말하는 건축가>의 상영이 있었다. 상영이 끝난 후에는 영화를 연출한 정재은 감독과 한선희 PD가 참여해 시네토크 시간을 이어갔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관객들이 참여해 다양한 질문을 던졌고 결국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이 날 상영은 끝날 수 있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한 인물의 마지막 삶의 기록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정기용 건축가를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건축에 대한 영화를 찍을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정재은(영화감독): 평소 공간이나 도시를 영화에 잘 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것이 영화를 찍을 때 중요한 목표이기도 했다. 그러다 점점 관심이 도시 환경과 건축 문화로까지 커져갔다. 건축영화제가 열렸을 때 외국다큐멘터리들을 보니 대부분 빌딩 하나를 만드는 과정을 따라가며 건축가, 건축주, 시공사 등을 보여주더라. 이와는 다르게 접근하고 싶었고, 그러다가 정기용 선생님을 주인공으로 하기로 결심했다.

 

김성욱: 이 영화는 건축가의 사회적 위치를 굉장히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특히 전시회를 함께 준비하는 큐레이터를 보면서 건축가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질문해보았다. 동시에 엔딩장면에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앉아 있는 그 자리가 정기용 건축가의 적절한 위치일까라는 생각도 했다. 한국 사회에서 건축가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정재은: 건축과 영화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내게 건축이 뭐냐고 질문할 때마다 건축은 영화라고 답한다. 건축가의 삶과 건축 다큐를 찍으면서 되돌아오는 것은 영화에 대한 질문이었다. 예전에는 원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 외에는 크게 다른 고민들을 해 보지 않았고 늘 남들이 하는 방식으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기용 건축가를 만나면서 어떤 관객을 대상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가, 영화 한 편에 과연 큰돈을 들여야 하는가라는 질문들을 스스로 해보았다. 건축가들의 양극화된 모습이 영화와 비슷하다. 거대한 설계사무소에서 찍어내는 건축이 있고 아뜰리에 스튜디오 방식으로 일하는 건축가들이 있다. 영화의 시스템이나 문화와 다르지 않았다. 사회 전반에 걸친 공통의 문제임을 느낄 수 있었다.

 

김성욱: 건축가와 영화감독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대문 운동장을 보여줄 때 현실화된 건축이 있고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제안과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중 다른 제안이 이루어졌다면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프로젝트에는 많은 가능성이 있는데 현실에는 일부만이 구현된다는 점, 그래서 건축이 영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에도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셨을 텐데.

정재은: 처음 다큐멘터리를 만들다 보니 우여곡절이 많았다. 편집 작업이 시나리오 작업과 동일한 정신적 집중력을 요구하더라. 400 시간의 분량에서 하나의 신, 하나의 시퀀스, 하나의 상황을 고르는 것이 시나리오 작업과 똑같았다. 3개월 동안은 꼬박 줄여나갔고 그 다음 3개월은 여러 버전을 만들었다. 다른 버전들이 아쉽긴 했지만 결국 전시회가 중심에 있는 버전으로 완성했다.

 

 

김성욱: 한선희 프로듀서는 영화 속 큐레이터와 같은 역할이었을 것 같다. 이 작업에 어떻게 참여했는지, 프로듀서로서의 작업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한선희(프로듀서): 건축 영화제의 1,2회 프로그래머를 하면서 감독님과 많이 가까워졌다. 개인적으로 나도 공간을 잘 표현한 작품을 좋아한다. 우리 삶의 한 부분인 건축이 한국에서는 문화나 예술의 분야로 잘 인식되지 않고 인문학에서도 열외라는 점이 이상했다. 그러던 중 감독님이 일 년 정도 혼자 작업하면서 촬영을 80% 정도 끝냈을 때 함께 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 후로는 감독님의 말동무 역할을 하면서 보충 촬영을 함께 진행했다. 국내에서 처음 만들어지는 건축 다큐멘터리이니만큼 한국 사회에서 건축을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차원에서 이슈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김성욱: 영화 안에서 정기용 선생님이 직접 촬영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그분이 만든 영상이 주로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다.

정재은: 정기용 선생님은 1972년 파리에 국비유학생으로 가서 15년 동안 공부를 했다. 그때 영화를 정말 많이 보신 것 같다. 실제로 촬영도 하면서 아마 영화감독도 꿈꾸지 않았을까. 특히 기록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어서 스틸 카메라, 슬라이드 카메라 등으로 자기가 본 것을 모두 기록했다. 이미 편집을 한 것도 있고 안 한 것도 있었는데 그중 ‘영화적’인 것들을 따로 선별했다. 이 푸티지 덕분에 다큐멘터리 이상의 영화적 느낌을 낼 수 있었다.

 

관객1: 영화를 완성하기 전에 정기용 선생님이 돌아가실 걸 알았는지 궁금하다. 만약 정기용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다른 결말이 나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 속 인물들이 선역과 악역으로 나뉜 것 같았는데, 이런 갈등을 어떻게 묘사하려 했는지 궁금하다.

정재은: 원래는 선생님이 강의를 하는 모습으로 끝내려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에 영화가 많이 흔들렸다. 영화의 중반부터 선생님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지만 돌아가실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돌아가신 다음 다시 촬영한 부분도 있다. 갈등의 부분은, 다큐멘터리를 찍으니 오히려 극영화적인 부분을 살리고 싶더라. 다큐멘터리에 생각만 많으면 재미가 없어진다. 좀 더 스토리적 요소를 넣고 싶어 하던 참에 강성원 큐레이터가 등장해서 굉장히 기뻤다. 드디어 악역이 등장하고 갈등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분이 없었으면 영화가 재미없었을 것이다. 그 분도 영화를 보고 이해해주셨다. 상황과 영화의 시나리오 상 관객분들이 악역처럼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관객2: 개인적으로 정기용 선생님을 직접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도 그분에게 쇼맨십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큐멘터리지만 정기용 선생님이 연기한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 감독으로서 그 부분을 어떻게 제어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정기용 건축가가 영화를 통해 하나의 캐릭터가 되었는데 감독으로서 생각하는 정기용이 어떤지 궁금하다.

정재은: 정기용 선생님은 카메라에 대한 이해가 높은 분이다. 상황에 대한 이해력도 빨라서 어떤 상황이든 그것에 대해 이성적이고 멀리서 보는 시선을 가졌다. 이 분을 주인공으로 정말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 건 그가 타고난 아티스트라서이다. 삶 자체를 연기자처럼 사신 분이다. 보통 배우들은 주어진 대본을 갖고 연기를 하지만 선생님은 스스로 대본과 상황을 만들어 관객에게 보여주려 한다. 대표적 장면이 엔딩 장면이다. 그날 현장에서 선생님이 너무 의도적으로 그 자리에 가서 앉는 게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어떻게 찍힐지 아는거다. 그때는 찍으면서도 그 장면을 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모든 시간들이 지나고 이 장면을 엔딩으로 결정했을 때 선생님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관장한 진정한 배우였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어디에 어떻게 남을지를 선택한 사람. 정기용 선생님에 대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연스럽고 본능적으로 보여주는 최고의 배우라고 말하는게 최고의 극찬일 것 같다. 정기용 선생님이 쓴 책만 보면 글도 딱딱하고 어떤 사람인지 느낌이 안 온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어떤 사람인지 느껴진다. 영화라는 것이 이만큼 한 인물의 표정과 목소리와 느낌들을 잘 담아낼 수 있는 매체라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처음에는 건축 다큐멘터리를 찍겠다고 생각해서 한 인물의 삶을 포착하는 카메라와 영화의 힘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기용 선생님을 만나면서 다큐멘터리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김성욱: 지금까지 2만 7천명의 관객들이 보았고 앞으로 더 많은 관객들이 볼 것이다. 이 작품을 만들면서 아직 다 말하지 못한 부분이 남아있을 것 같다. 후속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사실 한국에서 이런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어렵고 작가로서, 피디로서 쉽지 않은 조건인데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린다.

한선희: 모든 면에서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다. 이 영화를 통해서 건축과 삶에 대해 모두가 좀 더 나은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다음 작품으로 굉장히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정재은: 개봉을 앞두고 90여분 짜리 한 편의 영화에 못 담은 이야기가 많다는 생각을 했다. 건축 관련 삼부작을 만들고 싶다. 삼부작을 통해 영화의 방향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고 관객들에게 건축에 대한 새로운 관심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본다. 현재 서울 시청에 관한 두 번째 다큐멘터리가 촬영에 들어갔다. 극영화로든 다큐멘터리로든 곧 찾아뵙기를 바란다.

 

정리: 손소담 관객 에디터 ㅣ 사진: 최미연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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