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현재를 다시 파악하는 새로운 기획 - 김경만 감독의 <지나가는 사람들>

2015. 7. 2. 14:07특별전/한국 독립영화 신작전

[리뷰] 현재를 다시 파악하는 새로운 기획 - 김경만 감독의 <지나가는 사람들>




과거는 고정된 사실이 아니다. 그것을 사실로 만드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있을 뿐이다. 김경만 감독은 <각하의 만수무강>(2002), <하지 말아야 될 것들>(2003) 등과 같은 단편 작업, 그리고 첫 장편인 <미국의 바람과 불>(2011)에서 그러한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폭로한다. 이때 그가 취하는 방법이 흥미롭다. 미군 공보부나 한국 정부, 그리고 대한뉴스에서 제작한 기록 영상들을 재편집하는 과정을 통해, 선택된 이미지들은 완전히 다른 맥락 속으로 들어가 원래 만들어진 의도를 스스로 부정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 새로운 의미란 물론 기존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지 않은, 과거에 존재했던 가능성의 영역을 뜻한다. 다시 말해, 김경만의 작업은 체제의 기획과는 다른 기획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은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인 <지나가는 사람들>(2014)에서도 유효하다.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이 직접 촬영한 전반부와 기록 영상들을 재편집한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후반부는 다시 세 개의 챕터로 나누어지는데, 그중 1945년부터 1948년까지의 시기를 다룬 첫 번째 챕터의 제목은 “잃어버린 얼굴들”이다. 해방 이후, 미군정이 들어선 때는 좌우익의 대립으로 인한 극심한 혼란기였다. 하지만 동시에 아직 단독정부가 수립되기 이전, 체제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또 다른 길이 열려 있던 가능성의 시기이기도 했다. 감독은 이 시기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잃어버린 가능성, 그러니까 “잃어버린 얼굴들”이라고 이름 붙인다. 이러한 표현은 사실 영화의 후반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다. 여기에서 감독이 선택한 중심적인 이미지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념 갈등과 전쟁에 의한 파괴를 혹독하게 경험하고, 국가를 재건하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했던 이들은 영화가 보여주는 노동하는 사람들이었다. 후반부의 세 번째 챕터는 1966년까지의 기록이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탈취한 정권의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끝나는 해다. ‘박정희’라는 이름은 쉽게 기억하면서, 실제 성과를 이루고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던 노동자들을 우리는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한 우리의 모습들을 우리는 영화의 전반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는 수평이동을 하는 카메라가 벽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벽에 붙은 사각의 타일들이 사각의 프레임 안에 정교하게 짜여 있다. 이것이 카메라가 포착한 우리들의 모습이다. 배경이 되어버린 군중들, 이미 짜인 틀 안에서만 움직여야 하는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세계에서 누락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바로 그들 곁을 지나쳐버린다. 이 세계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존재들, 노동자들을 말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런 현재를 과거와 겹쳐 놓고 보기를 요구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이루어진 재편집 작업이 노동자들을 망각으로부터 구제하는 것이었다면, 이 과거를 현재의 모습과 겹쳐놓는 건 상속권에 대한 문제제기다. 과거로부터 현재를 만들어온 이들이,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권력을 쥔 자들과 싸워야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지난한 싸움 앞에 우리를 다시 멈춰 세운다.


송재상│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