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2. 14:03ㆍ특별전/한국 독립영화 신작전
[리뷰] 서로 다른 시간대의 공존 - 오민욱 감독의 <재>
<재>는 영화가 제시하는 정보에만 의존해 언어화하기 힘든 작품이다. <재>에 등장하는 활자라고는 도입부에 등장하는 발터 벤야민의 문장,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사회적 제의는 공허하고, 사물은 병적일 정도로 차갑다”와 막바지에 등장하는 영화 제목 '재 ash : re'뿐이다. 전반적으로 사운드는 풍성한데 언어는 빈곤하다. 기댈 수 있는 정보는 부산시민공원에서 열린 사생 대회의 개회사뿐이나 이마저도 분절된 채 제시된다.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이곳은 부산이고 부산시민공원이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며 그곳에서 어린이 그림 대회가 열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정보를 주는 사생 대회에서 출발해보자. 사생 대회가 열리고 있음을 알리는 소리가 내화면에서 들려오는데 어쩐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모인 아이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 몇몇이 카메라가 있는 쪽으로 오고 갈 뿐이다. 가운데가 텅 비고 이따금 사람들이 지나갈 뿐인 고정된 화면은 마치 하나의 화폭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화면 위에 걷거나 뛰는 사람들의 흔적을 포착해 화면 위에 고정시키는 작업이 영화 속에서 실시간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한 사람은 둘로 분화돼, 마치 자신의 흔적을 길 위에 벗어두고 지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순간 화면에는 과거와 현재라는 서로 다른 시간이 공존하게 된다.
이 장면 외에도 감독은 한 화면 위에 나타나는 이미지와 사라지는 이미지를 겹쳐 놓는 기법을 종종 사용하는데 이것은 움직이는 이미지는 사라지고, 고정된 것만 사진 위에 흔적으로 남는 초기 사진의 방식을 연상시킨다. 화면 속에서 어떤 것은 사라지고 다른 것은 남겨지면서 다른 시간대가 공존한다. 만약 오늘날 초기 사진기로 도시의 모습을 찍는다면 사람의 흔적은 거의 지워지고 텅 빈 집이라든지 오랫동안 공사 중인 크레인만이 선명한 <재>와 같은 풍경이 포착되지 않을까. 사람들은 사라지고 건물은 폐허가 된 채로 남아 있는데 그것은 바위처럼 굳건히 버티고 선 것이 아니라 곧 헐리기를 기다리면서 사라지는 중이다. 어떤 것은 증축되고 다른 곳은 허물어지는 상반된 상황이 부딪히는데, 이때 한편은 다른 한편의 미래나 과거처럼 보인다.
사생 대회에서 제시한 요구 사항은 풍경화와 상상화를 한 작품씩 내는 것이다. 영화는 종종 같은 이미지를 흑백과 컬러를 오가며 보여준다. 반복된 이미지는 같은 이미지를 한번은 풍경화로 한번은 상상화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이는 달리 말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캡처한 화면이 그렇듯 현재의 풍경에 다른 시간을 새기는 작업처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에서 제시하는 이미지들은 풍경화이자 곧 상상화이기도 하다.
영어 제목에 기대 설명하자면 영화의 제목은 잿더미의 재와 재건한다는 의미가 동시에 겹쳐있는 것으로서의 ‘재’다. 이것은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도시 재개발에 대한 비판을 내포한 것이다. <재>는 중첩되거나 부딪히는 이미지를 통해 나타나는 동시에 사라지는 중인 건축의 생리를 마치 살아있는 생물을 바라보듯 탐구한 생태학적 보고서다.
김소희│『씨네21』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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