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생생히 전해지는 영화 속의 어떤 공기 - 임정환 감독의 <라오스>

2015. 7. 2. 14:13특별전/한국 독립영화 신작전

[리뷰] 생생히 전해지는 영화 속의 어떤 공기 - 임정환 감독의 <라오스>



<라오스>는 상영 시간이 71분 정도인 영화다. 장편으로선 짧은 편인 영화의 내러티브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별 다른 사건 없이 흘러간다는 점에서 단순해 보이지만, 인물의 감정이 빚는 결을 따라가자면 그게 단순하지 않다. 영화의 감독인 임정환은 애초 정해진 영화로 출발한 게 아니라 여행과 이동과 상황에 따라 각본을 쓰고 촬영했다고 밝혔다. 끄덕끄덕, 고개를 움직였지만 그렇다고 영화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라오스>는 미스터리인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미스터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기실 내 첫 번째 관심사는 미스터리 너머에 있다. 내가 궁금한 비밀은 내 머릿속에 맴도는 영화의 공기, 그 기운의 정체다.


영화는 일곱 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1. 현철과 원식, 2. 태국, 3. 라오스, 4. 정환과 상범, 5. 새로운 아침, 6. 남과 북, 7. 모든 길은 한곳으로 통한다.’ 인물과 공간의 이동을 의미하던 챕터의 제목은 점점 모호한 뜻의 것으로 변한다. 이야기를 따라가던 내 발이 어디 머물러 있는지 헷갈리는 지점도 아마 5번째 챕터의 전후 어디쯤일 게다. 졸업영화를 찍던 두 친구가 의견 다툼을 벌이고 영화 작업은 중단된다. 원식이 한때 같이 수학했던 정환의 이름을 들먹이며 돈을 벌기 위해 태국으로 떠나자고 제안한다. 태국에 도착한 현철과 원식은 정환과 랑데부하는데, 라오스로 이동한 뒤 정환의 파트너라는 상범을 만나면서 현철은 의혹의 심증을 굳힌다. 정환과 상범은 마법의 알약을 구하러 라오스의 오지로 떠나고, 현철과 원식은 외딴 호텔에 남는다.



영화의 공기를 잡아내려고 애썼던 영화 중 한 편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쿨의 <징후와 세기>(2006)였다. 홍상수의 영화와 닮았다고 생각했던 <라오스>와 형제 같은 영화는 사실 아핏차퐁의 <M 호텔>(2011)이나 <메콩 호텔>(2012)이다. 나는 그들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행하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맡거나 포착할 수 있는 건, 스크린의 표면 위로 흘러나오는 공기뿐이다. 이상한 말이다. 말과 행동은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스크린 위에 박혀 있지도 않은 공기를 킁킁거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사실이 그러하다. 나는 원식과 정환 중 누가 사기꾼인지, 아니면 둘 다 사기꾼인지 알지 못한다. 원식이 정말로 속임을 당했는지도 알 수 없다. 상범은 라오스의 유령일 수도 있고, 혹은 정말로 상범과 닮은 다른 사람이 태국에 따로 살 수도 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혼자 여행을 떠난 현철의 머리와 손이 지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그들 관계 사이로 맴도는 공기를 맡는다, 맡았다.


감독의 말에 의하면 <라오스>는 우연의 서사로 지탱되는 영화다. 당장 내일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처럼, 현철과 원식을 연기한 배우도 다음에 벌어질 일을 알지 못한 채 현재를 연기했다는 것이다. 즉 <라오스>의 서사는 실제 삶의 행보와 같은 불안, 같은 기대, 같은 망설임 아래 전개된다. 그러므로 그들과 그들의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공기에서 진한 존재의 냄새가 자연스레 맡아진다. 그렇지만 그것은 삶 자체의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오른쪽 창과 왼쪽 창을 앞에 두고 원식과 현철이 각각 서 있을 때다. 감독은, 긴 쇼트의 앞뒤로 현철이 자는 장면과 깨는 장면을 배치해 꿈의 효과를 보여주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원식의 뒷 배경은 실제 호텔의 모습 그대로이지만, 현철 뒤로 노랗고 붉은 컬러의 조명은 그를 지옥의 분노를 품은 사자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소박한 무대로 오페라의 거창함을 창조한 것인데, 원식이 내뱉는 얄팍한 사기의 냄새와 현철의 콧김이 내뿜는 거대한 분노가 공간을 꽉 채운다. 공포의 기운이 맴도는 그것은, 온전히 영화의 것이다.



프루스트와 조이스의 소설을 읽고, 그때마다 포기하면서 괴로웠던 것은 이야기의 맥을 도무지 잡지 못해서였다. <훌리오와 에밀리아 Bonsái>(크리스티안 히메네즈, 2011)의 주인공 훌리오처럼, 나는 프루스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훌리오는 어느 날, 해변으로 가 프루스트의 소설을 가슴 위에 놓은 상태로 잠이 든다. 깨어난 그의 가슴에는 책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는 건 그런 것이다. 이야기를 기억하고 이해하는 게 무어 대수인가. 가슴팍에 남은 작은 무엇과, 그것을 남길 수 있는 영화면 족하다. 그리고 계속 그 무엇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즐거운 영화 보기의 과정이다. <라오스>는 그런 즐거운 과정의 시작점을 찍어주는 영화다.



이용철│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