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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우리 시대의 프랑스 영화 특별전

[리뷰] 클로드 샤브롤의 <둘로 잘린 소녀>

피를 부르는 사랑

 

클로드 샤브롤은 히치콕처럼 거의 매번 범죄영화만 만들었다. 그래서 샤브롤은 브라이언 드 팔마와 더불어 흔히 히치콕의 대표적인 후예로 지목된다. 범죄물을 만든다는 점에서는 그런 설명이 맞다. 그러나 스타일에서 보자면 샤브롤은 히치콕과 대단히 다른 작품들을 내놓았다.

샤브롤의 후반기 작품인 <둘로 잘린 소녀>(2007)도 그의 전형적인 범죄 드라마다. 그의 영화가 늘 그렇듯 이 영화도 시작하자마자 아름다운 전원도시를 보여주고, 그런 평화로운 풍경에 어울릴듯한 아름다운 저택을 등장시킨다. 말하자면 샤브롤의 범죄물은 살벌한 도시보다는 자연과의 조화가 완벽해 보이는 평화로운 시골에서 주로 진행된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평화는 거짓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의 전원도시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여기는 프랑스 동부의 리옹 근처다. 푸른 들판, 키 큰 나무들, 포장되지 않은 시골길이 있는 곳이다. 지극히 평화로워 보이는 아름다운 집의 주인은 베스트셀러 작가인 샤를(프랑수아 벨레앙)이다. 50대로 보이며, 헌신적인 아내와 둘이 산다. 이 중년남자가 저자 사인회에서 만난 지역 방송의 기상캐스터 가브리엘(루디빈 사니에)에게 첫눈에 반하면서 ‘위험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왜 위험하냐면 샤브롤 영화의 상투성이기도 한데, 그의 대표작인 <부정한 여인>(1969)에서처럼 ‘불륜’이 있을 때, 종종 피를 보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재벌 후손인 폴(브누아 마지멜)이 파티에서 가브리엘을 만난 뒤, 역시 호감을 가지면서 삼각관계가 시작된다. 그만큼 가브리엘은 밝은 표정에 눈부신 금발,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처녀다. 가브리엘 역의 루디빈 사니에는 프랑수아 오종과의 협업으로 유명한데, 특히 <스위밍풀>(2003)에서의 반누드의 연기로 단박에 알려진 배우다. 그런데 가브리엘은 동년배인 청년 폴에게는 냉담하고, 부자연스럽게도 아버지 같은 존재인 샤를에게는 목을 맨다(폴 역의 브누아 마지멜은 미하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2000)의 주연이었고, 샤브롤의 작품에도 곧잘 나왔다). 외모만 보면 폴은 가브리엘의 천생연분처럼 보인다. 그러나 샤브롤의 영화가 종종 그렇듯, 이야기는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진행된다. <둘로 잘린 소녀>는 이 세 사람의 삼각관계를 다룬다.

샤브롤은 흔히 ‘반부르주아 드라마’의 대표 감독으로도 꼽힌다. 드라마의 갈등이 주로 부르주아 윤리의 억압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히치콕이 개인의 죄의식을 건드린다면, 샤브롤은 계급의 윤리적 통념을 의심케 한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는 가브리엘이 민망스럽게도 아버지뻘 되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식이다. 그의 영화에는 이렇게 부르주아 윤리의 기반을 위험에 빠뜨리는 근친상간에 대한 위반이 늘 숨어 있다. 불륜을 저질렀으니, 처벌이 따르는데, 세 사람이 모두 피해자이기도 하고, 또 가해자이기도 한 혼란스런 입장에 놓이는 점도 샤브롤의 전형성이다. 말하자면 부르주아 윤리의 위반이라는 것이 죄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는 참 냉소적인 태도이다.

엔딩은 더욱 샤브롤적이다. 히치콕처럼 감독이 전지적 작가 시점에 있는 게 아니라, 결말은 자신도 모른다는 태도다. 말하자면 초현실적인 결말을 보여주는 것, 이것도 샤브롤 영화의 일관된 특징이다.

 

글/ 한창호(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