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하지, 보석으로 휘감고 있는 당신을 보면 파리의 지하철 소리가 들려.” 젊은 장 가뱅이 아름다운 여주인공을 향해 속삭인다. 그가 그리워하는 것은 파리의 화려함이라기보다는 파리라는 도시가 상징하는 자유와 해방의 이미지이다. 이 젊디 젊은 도망자는 이국의 초라한 골목에 숨어살면서 과거에 누렸던 자유의 내음을 그리워한다. 그는 알제리의 수도 알제의 미로와 같은 카스바 구역의 왕이지만, 바깥으로 한 걸음 나서는 순간 범죄자로 전락하는 운명에 처해있다.
줄리앙 뒤비비에의 <망향>(1937)은 <무도회의 수첩>(1937)과 더불어 뒤비비에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알제리의 카스바라는 이름의 구역에 은거하고 있는 인기 만점의 매력적인 범죄자 페페와 파리에서 온 아름다운 관광객 가비의 짧고도 비극적인 로맨스는 1930년대 프랑스 영화들을 특징짓는 시적 리얼리즘의 정점을 보여준다. 2차 대전 직전의 절망적인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어둡고 비극적인 정조는 카스바라는 감옥에 말 그대로 갇혀버린 주인공의 아이러니컬한 운명으로 대변된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파리에서의 한 때를 꿈꾸는 페페의 금지된 욕망은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가비와의 짧은 사랑을 향해 말 그대로 불길을 향해 뛰어드는 나방처럼 몸을 던지게 만든다. 영화의 원제이자 남자 주인공의 이름인 Pepe Le Moko보다 한글 제목인 ‘망향’이 더욱 이 영화를 설명하는 데 적절해 보이는 이유는 페페의 위험한 로맨스가 딛고 있는 시공간적 이상향을 향한 그리움의 정서 때문이다. 그가 그리는 파리는 단순히 공간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20세기 초 프랑스의 좋았던 시절, 즉 벨 에포크의 시간을 향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파리는 페페의 고향인 동시에 그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이다. 도달 불가능한 장소를 향한 그리움을 뜻하는 노스탤지어는 <망향>의 전체를 감싸고 있는 가장 강력한 정서이기도 하다.

<망향>에서 페페의 절망적인 정서를 더욱 고양시키는 것은 마치 물 흐르듯 미끄러지는 카메라워크와 찰나의 간절한 욕망을 담지하는 클로즈업들인데, 이는 페페와 가비의 첫 만남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두드러지게 등장하며, 이후 페페와 가비 사이에 벌어지는 성적 교감에 숨 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특히 페페와가비의 첫 만남에서 페페가 바라보는 가비의 모습은 여러 컷으로 나뉜 클로즈업들로 묘사된다. 가비가 걸치고 있는 보석들, 눈동자, 입술의 클로즈업이 페페의 시선과 교차되어 등장하는 장면은 페티시즘에 가까운 페페의 욕망을 드러낸다. 비단 페페 뿐만 아니라 <망향>에서 주요 인물들의 눈동자를 클로즈업하는 장면들은 그들의 서로 다른 욕망을 전시한다. 페페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그를 체포하기 위해 끈기 있게 페페가 약점을 보이길 기다리는 슬리만 형사의 이글거리는 눈빛, 위험과 유혹 사이에서 망설이는 가비의 눈빛과 맹목적인 사랑을 호소하는 페페의 눈빛, 그리고 오로지 페페만을 바라보는 그의 정부 이네스의 간절한 눈빛은 이 영화의 감정적 분위기를 매 순간 고양시킨다.
알제리의 이국적인 분위기, 음영이 뚜렷한 드라마틱한 조명, 마치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카메라가 마치 유기체처럼 뒤엉켜 꿈틀대는 이 영화는 1940년대 할리우드 필름 누아르 영화들의 이미지에 일종의 단초를 제공해주는 표본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젊은 시절 패기 넘치는 장 가뱅과 그 시절 한껏 무르익었던 여배우 미레이유 발랭을 보는 것만으로도 <망향>은 충분히 매혹적인 영화다.

글/
최은영(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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