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아닌 과거

 

파트리시오 구즈만의 <칠레 전투> 3부작(1975~1979)은 그 시대의 필연적인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였다. 1970년, 칠레의 가난한 국민들은 자신들의 대통령으로 아옌데를 선택했으나 얼마 못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때 아옌데가 사망한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반체제인사’들이 죽거나 추방당했다. 군부는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 거대한 수용소를 만든 뒤 사람들을 죽이고 땅에 묻었다. 칠레에서 나고 자란 구즈만 감독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어두운 시대를 정면으로 통과했으며 그 과정에서 카메라를 들고 <칠레 전투>를 만들어 나갔다. 이 기념비적인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칠레의 현실을 알 수 있었고 함께 분노했다. 영화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허울 좋은 수사에 그치기 쉽지만 이 영화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움직인 드문 영화 중 한 편이다.

그리고 감독은 약 40여년이 지난 2010년, 여전히 70년대의 칠레를 이야기하는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를 만들었다. 한 감독이 하나의 주제를 긴 시간에 걸쳐 다루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그는 <칠레 전투> 이후로도 수십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실제로 <칠레, 난감한 기억>(1997), <피노체트 재판>(2001), <살바도르 아옌데>(2004)와 같은 영화들에서 칠레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했다. 그런데 그는 아직 못 다한 이야기가 있다는 듯 또 한 편의 칠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선보인 것이다.

정말 그에게 새롭게 할 이야기가 남은 것일까. 물론 답은 ‘그렇다’이다. 그는 오히려 나와 같은 관객들, 즉 이제 칠레 혁명은 어느 정도는 지난 역사가 아니냐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다 밝혀졌으며 이를 기억만 하면 되는 게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답하듯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 이는 단순히 70년대의 칠레를 경험한 1943년생 노인이 젊은이들에게 과거를 기억하라고 설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과거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차분하게 설명하며 여전히 상처를 안고 있는 피해자들을 부드럽게 위로한다. 그리고 나아가 ‘과거’가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재임을 역설한다.

영화에 대한 배경을 모르고 처음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한동안 이 영화를 칠레를 배경으로 한 천문학 다큐멘터리로 착각할지도 모른다. 거대한 망원경이 등장하고, 비가 내리지 않는 아타카마 사막의 풍경이 펼쳐지고, 울퉁불퉁한 달의 표면과 아름다운 별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데 감독은 이 우주의 신비를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칠레의 근현대사 문제와 절묘하게 연결시킨다.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 역시 바로 이런 지점이다.

한 천문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보는 달빛은 1분 전의 빛이고, 햇빛은 8분전의 빛입니다”, “현재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현재라고 인식한 건 이미 과거로 지나간 문제죠” 이 말에 따르면 천문학은 근본적으로 과거를 연구하는 학문이지만 동시에 현재를 연구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이는 역사학도 마찬가지이다. 과거를 연구하는 것이 현재를 연구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즉 과거는 지금 우리의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는 설득의 기술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감독은 세계 최고의 천문대가 자리한 곳이며 수 만 명의 시민이 지금도 묻혀 있는 아타카마 사막에서 출발해 우주와 인간의 거대한 문제와 칠레의 70년대를 겹쳐놓는다. 이 프레임 속에서 칠레 혁명은 과거가 아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기억해야 하며 이는 지금 우리의 현재를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글 / 김보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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