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단계> 상영 후 유운성 영화평론가 시네토크 지상중계

 

우리 시대의 프랑스 영화 특별전이 한창이던 지난 12 1, 영화제 속의 작은 특별전으로 마련된 크리스 마르케 오마주섹션 상영작 중 하나인 <5단계> 상영이 끝난 후 유운성 영화평론가와 함께하는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5단계>를 중심으로 크리스 마르케의 영화세계에 대해 짚어본 시네토크 현장을 여기에 옮긴다.

 

 

유운성(영화평론가): 방금 보신 크리스 마르케 감독의 <5단계>란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크리스 마르케는 지난 729일 아흔 한 살의 나이로 타계했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 이번 서울아트시네마가 마련한 우리 시대의 프랑스 영화 특별전에서 5편의 영화를 모아 작은 추모 영화제를 하고 있다. 워낙 눈에 띄지 않는 부분이기도 한데, <5단계>를 처음 볼 때 혹은 거듭해서 볼 때조차도 간과할 수 있는 두 가지 부분이 있다. 이 시간을 이용해 그 부분에 대해 말해보겠다.

 

< 5단계>는 로라라는 여자가 그녀의 남자친구가 남긴 오키나와에 대한 전략 게임을 해독하는 내용이고 그 중간에 크리스라는 내레이터가 등장한다. 무엇보다 영화 초반에 중요한 장면이 있다. 카메라가 지하철 문틈으로 창 밖을 찍은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이제 나는 이미지를 만드는 자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이미지를 해독하는 자다라는 말하는 부분이다. 그 말처럼 영화는 오키나와 전략 게임과 관련한 여러 푸티지들을 다시 보고 해독하는 과정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영화는 크리스라는 인물의 편집의 결과물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크리스 혹은 크리스 마르케 자신이 편집한 것이라는 보여준다. 즉 도입부에서부터 이런 구조가 제시된다. 영화의 시작은 마우스를 조작하는 손을 네 개의 숏으로 나눠서 보여주는 장면이다.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 사람의 손이 아니라 두 사람의 손이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는 손은 시간적으로 다른 위치를 점하고 있는 다른 두 개의 손이고, 이를 교차 편집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한 손은 크리스 마르케 자신의 손일 것이고, 다른 손은 로라의 손일 것이다. 이것이 <5단계>이라는 제목이 뜨기 전의 도입부다. 최종적으로 드러나긴 하지만 여자는 사라졌고, 그녀의 남자친구가 남긴 게임과 오키나와에 대한 이미지들만 남는다. 그것을 크리스라는 인물이 편집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로라가 있는 자리를 현재로 인식하고 보게 된다.

 

두 번째로 영화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데도 간과되거나 무시하게 되는 부분은 주인공인 로라의 이름이 오토 프레밍거의 1944년 작인 <로라>의 이름을 따왔다는 점이다. 그 영화에서 이야기를 빌려온 건 아니지만, 과거에 다가간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두 영화 간에 흥미로운 대응 지점이 있다. <로라>는 로라라는 이름의 여자가 죽은 후 그녀의 과거를 쫓는 어느 한 저널리스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필름 느와르다. 그녀의 죽음 이후 그녀가 누구인지는 글쓰는 사람의 회고를 통해서 형성된다. <5단계>에서는 성별 역전이 있다. 회고를 하는 쪽이 여자다. 로라라는 여자는 사라진 남자친구와 그가 만든 게임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녀의 직업은 글 쓰는 사람이고, 그녀의 남자친구는 게임 개발자, 즉 이미지와 형상을 다루는 사람이다. 그래서 < 5단계>는 로라라는 여성의 진술과 크리스의 목소리가 이끌고 가는 예민한 관찰자의 여성적 다큐멘터리다.

 

또한 프레밍거의 <로라>는 플레시 백으로 펼쳐지는 과거를 미심쩍게 그려냄으로써 통상 영화에서 보여주는 플레시 백이라는 장치가 기만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영화를 통해 그려내는 과거가 신뢰할 만한 것인가라는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반면에 <5단계>는 과거의 전쟁 이미지가 많은 부분을 구성하고 있고, 그런 기존의 이미지들을 분석하고 비평하고 해야 한다고 말하는 에세이적인 영화다. 또한 구스타보란 군인의 이미지를 다루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지로 재현되는 죽음이라는 것의 모호함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모티브이다. <5단계>는 누군가 사라진 시점부터 시작하고, 죽음이라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사건 이후의 삶의 자세에 대해서 말하는 영화다. 두 영화를 모두 보면 알겠지만 < 5단계> <로라>를 반토막 내서 기이하게 리메이크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처음에도 말했듯 <5단계>에 대해서 말할 때 작업 프로그램에 대한 선언처럼 들리는 이제 나는 내 자신이 만든 이미지가 아니라 다른 이미지를 해독하는 자다라는 말은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다. <아름다운5> 같은 영화는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간 현장성이 강한 작품이다. 반면에 < 5단계>는 크리스 마르케적 스튜디오 영화다. 몇몇 이미지를 제외하고는 기존의 영상물을 재활용하거나 본인이 조작해서 만들어낸 이미지들이다. 누군가가 남긴 온갖 기록물들을 가지고 작업한 영화, 이것은 파운드 푸티지 작업으로 이미지를 재활용해서 만드는 영화라는 아이디어다. 이런 생각은 작업자의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지는 미래적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다. 크리스 마르케는 1990년대 이후에 텔레비전, 인터넷 등을 이용해 이런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감독 중에 하나였다. 영화 감독의 지성이 이미지에 담기게 될 것이라는 기존의 견해에 반박하며 지성은 코멘트나 편집을 해서 만들 수 있는 원재료 자체에 있다는 입장으로, 촬영의 과정이 제거되고 컴퓨터를 이용해 활용 가능한 텍스트, 이미지, 사운드를 조합하는 것이다.

 

하나 더 말해야 할 건 영화적 지위에 대한 것이다. <5단계>는 영화적 미장센이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영화는 카메라 앞에 놓이게 될 대상들을 어떻게 배치할 지가 문제가 아니라 관객, 시청자의 눈에 보이는 이미지들을 어떻게 배치할 지가 문제라는 얘기다. 이런 식의 영상들을 만들어 내는 작업은 카메라 앞에 무엇을 어떻게 놓을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심지어 로라가 사이버 스페이스를 유영하는 장면은 흡사 미디어 아트 작품 같다. 영화 제작 방법론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관점에서 봤을 때 크리스 마르케는 사진 작가나 영화 감독이라고 규정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설치 미술가나 미디어 아티스트라고 하기도 힘들다. 여기서 그를 영화 감독이라고 부르고 싶다면 영화 감독이라는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 < 5단계>는 한 편의 영화라는 형태로 주어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크리스 마르케를 영화 감독이라고 했을 때는, 기존 이미지와 사운드를 재활용해서 편집하기도 하고 비영화적인 요소들을 포괄적으로 활용해서 화면에 배치하는 일종의 기호 디자이너라는 개념으로 이동한 것이다.

 

크리스 마르케의 <5단계>라는 영화를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영화는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으로 시작한다. 영화에 나타나는 사물들을 읽어보면 이 영화는 쥐와 고양이 사이에 있는 올뻬미 같은 영화다. 마우스로 시작했던 영화는 스크린 세이버라는 고양이로 끝나고, 이 공간에서 가능한 이미지의 존재론을 탐구하는 지혜의 올빼미가 있다. 크리스 마르케의 영화에서 고양이의 기능은 여러 가지일 텐데, 여기서는 고양이를 스크린을 구하는 자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영화가 비영화적인 이미지를 통해 영화 이후의 시대에 진입한다고 해도 여전히 핵심은 영화가 세상과 역사하고 연결고리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 사이에서 고양이라는 존재는 쥐라고 하는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는 전령과도 같은 존재다. <5단계>는 사이버 스페이스에서도 여전히 역사하고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영화이자 포스트 시네마의 정치학이다. 다른 기회가 있다면 크리스 마르케가 이 영화에서 여러 영상들을 다루는 방식과 내부적 작업으로 역사적인 이미지에 접근해가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정리: 최혁규(관객에디터) | 사진: 박지연(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