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의 대작 <루드비히>는 19세기 바이에른의 왕이었던 루드비히 2세의 기이했던 삶의 궤적을 장엄하게 담아낸다. 영화는 루드비히 2세(헬무트 베르거)의 즉위식으로 시작한다.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부와 왕이라는 지위가 주는 거대한 권력은 그에게 부담감으로 다가올 뿐이다. 이제 곧 그를 둘러싼 권력자들의 정치적 압력이, 제복의 높은 깃이 목을 감싸는 것처럼 그를 옭죄어 올 것이다. 자신을 옭죄는 왕좌로부터 벗어나 그가 택한 것은 예술에 대한 탐닉이다. 그는 왕위에 즉위하자마자 시종들에게 바그너를 찾아오라는 지시를 내리고 바그너를 성으로 초대해 거의 우상처럼 떠받든다. 바그너는 루드비히의 거울이미지와도 같은 자유로운 인물이다. 그의 방탕한 생활은 왕실의 재정을 탕진시킨다. 재상들의 압력에 굴복한 루드비히는 결국 바그너를 원조하기를 포기하고 다른 지방의 성에 들어간다. 이제 그는 성의 축조에 광적으로 몰입해 노이슈반슈타인 성과 같은 유명한 성을 짓도록 한다.

 
루드비히가 사랑했던 사촌이 그 성의 복도에 들어오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카메라는 거대한 복도의 오색찬란한 빛 속에서 경탄을 감추지 못한 채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을 롱 숏으로 담아낸다. 공간이 너무나 압도적이고 화려해 그 속의 인간은 너무나 왜소해 보인다. 성의 과도함이 루드비히의 광기를 증명하고 있다. 그의 축성은 많은 국고를 탕진한다. 정치인들이 이를 비난하자 이제 그는 성 안의 더 깊숙한 곳으로 숨어버린다. 그는 마음에 드는 배우를 성으로 초대해 그로부터 거의 진기를 쥐어짜듯이 예술적 에너지를 뽑아낸다. 그의 광기는 급기야 남색으로 이어져 거의 초현실적인 남자들의 집단성애로 극에 달한다. 이제 왕들의 시대는 끝났다. 이상의 시대도, 낭만의 시대도, 예술의 시대도 끝이 났다. 루드비히는 너무 늦게 도착했고, 그 자신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 깨달음은 그를 내부로부터 붕괴시킨다. 썩어가는 치아가 주는 고통, 예술과 남색에 대한 광적인 집착, 외부로부터 오는 직접적인 정치적 압력은 그의 정신을 서서히 붕괴시킨다. 그의 얼굴은 퉁퉁 붓고 피부는 새까매지며 눈빛을 붉게 충혈 된다. 머리와 허리를 꼿꼿이 세우던 미남자의 모습은 더 이상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화의 색조도 검푸른 톤으로 변해간다. 이제 그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통해 부흥한 바그너의 음악과 화려한 성은 역사에 생생하게 아로새겨졌다. (박영석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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