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작가를 만나다 - 김정 감독의 <경>

2월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두 이름으로 두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정 감독의 영화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이에게는 영화감독 김정이라는 이름보다는 영화평론가 김소영 또는 김소영 교수가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특히 이번 자리는 다른 사람의 영화가 아닌 직접 만든 영화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던 더 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감독이자 이론가의 모습을 동시에 만날 수 있었던 그 흥미로운 시간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그 동안 다른 분들의 영화에 대해서 늘 이야기하셨지만, 오늘은 직접 한 편의 영화를 만드신 분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작가 김정과 선생님 김소영이라는 두 가지의 이름으로 존재하고 계신 김소영 선생님을 소개하겠습니다. <경>은 김정 감독님의 첫 작품은 아니고 영화사 구경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이 영화의 한국 제목은 ‘경’이고 영어로는 ‘뷰파인더(Viewfinder)’입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경'에 굉장히 다의적인 것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경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증이 듭니다. 마지막에 보면 특이하게도 아이디어 제공자, 창작 제공자 분들의 이름이 크레딧에 들어있어서, 한 편의 영화이면서 동시에 한 권의 책을 에디팅한 느낌도 듭니다. 여러 사람들이 제공한 아이디어와 감독님의 생각들이 전체적으로 <경>이라는 하나의 작품으로 총화된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리셨고 ‘경’이라는 것을 어떤 식으로 생각하시는지.

김정(영화감독, 영화평론가 및 교수): 한국어는 동음이의어가 많아서 의도하지 않게 다중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러한 언어의 다중성이 한국문화의 중요한 특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경’은 ‘경계’, ‘경관’, ‘경전’, ‘구경’ 등의 많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경’이란 단어가 가지고 있는 다의적인 의미를 좋아하고, 이미지와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경’이라는 단어가 풍요로움을 가져온다고 생각한 듯해요. 영화는 여자 주인공 이름을 정경, 정후경으로 지으면서 시작했습니다. 작년, 재작년 어린 소녀들 혹은 십대 청소년들의 가출, 실종, 유괴, 죽음 등이 많았는데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애도 못하는 어린 소녀들의 죽음 등이 힘들었고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었습니다. 동시에 어머니의 죽음과 디지털 시대에서 끊임없이 서치(검색)를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이 윈도우의 창처럼 제 머릿속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것이 ‘경’이었고, 영어로는 정확히 번역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뷰파인더’가 가장 가깝겠다고 생각하여 영문 제목을 그렇게 정했습니다.

 

김성욱: 저는 이 영화가 <아바타> 이전에 나온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한편으론 이 영화의 공간이 거대한 아쿠아리움으로 보이기도 했고요. 아쿠아리움 안에서는 유리벽 때문에 바깥세상이 투명하게 열려있다고 생각되지만 경계로 가면 유리벽에 막혀서 실제로 거대한 내부 안에 있습니다. 경계의 문제, 안과 밖의 문제가 이 영화에서는 남강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한 흥미로운 지리적인 탐색을 통해 나타납니다.

김정: 수족관이란 비유는 좋은 비유인 것 같습니다. 사실 디지털 시대에서 우리는 전자 수족관이 되면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신드롬이 생겨난다고 봅니다. 디지털 시대로 오면서 감시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영화에서는 이런 감시를 컴퓨터로 보는 ‘창’이란 캐릭터가 있습니다. 또 디지털로 인해서 내부, 외부라는 경계들이 새롭게 조율되고 이 안에서 새로운 커넥션들이 발생한다고 생각됩니다.

 

김성욱: 영화 속에서 남강 휴게소는 중요한 공간으로 나타납니다. 심지어 엔딩부분에서는 남강 휴게소를 베이스캠프라고 표현하더군요. 남강 휴게소는 뒤쪽 문을 통하면 강이 펼쳐지며 끊임없이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유령 같은 느낌의 독특한 공간성을 갖고 있는데 남강 휴게소라는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발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정: 제가 <거류>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부터 굉장히 오랫동안 운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거류>를 찍었던 고성으로 가려면 당시에는 대진 고속도로가 없었기 때문에 덕유산을 넘어서 갔습니다. 그래서 폭설이 내리면 길을 돌아서 남강 휴게소를 들리곤 했는데, 그곳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공간성과 정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제가 왕가위 영화에서 혹하고 반했던 것이 24시간 편의점이었는데 고속도로에서는 휴게소가 그런 느낌입니다. 12시간씩 운전하고서 새벽 4시쯤에 휴게소에 들리면 휴게소가 절대절명의 위안을 줄 때가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 이 영화의 중요한 축이 죽은 소녀, 가출한 소녀, 집을 나간 엄마에 대한 애도가 있는데, 이런 끔찍한 사건들이 실제로 휴게소에서 많이 생깁니다. 이런 측면에서 휴게소는 폭발적인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남강 휴게소는 완전히 발전 된 곳이 아니라서 그대로의 정취가 남아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습니다.

 

김성욱: 인물들이 말하는 것이 독백이기도 하고 인터뷰이기도 합니다. 뷰파인더라는 영화 제목을 떠올리면 영화 안에는 또 다른 뷰가 있으면서 말과 보기라는 것이 묘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특히 후경이 엄마의 과거에 대해서 말하는 공간의 세트와 인터뷰를 보면서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통상적인 구어체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밀도 높은 대사들이 보여 지는 모습들이 인터뷰라는 방식으로 묶여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말을 하는 장면들을 포착하는 방식이 굉장히 색다르다고 느껴지는데요.

김정: 뷰와 인터뷰를 연결하신 것은 비평가로서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대사가 서로 네트워크는 되어있지만 씽크가 되지 않는 것, 특히 정경과 창이 대사를 주고받는 방식이 그러합니다. 요즘은 검색이 일상화 되어있어서 대화를 할 때도 검색을 하는 방식으로 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화가 잘 되지 않기도 하면서 오해하고 의미들이 미끄러지는데 이런 것을 대화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인터뷰는 영화에서 중요했습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인물인 오나와 세화는 20대 중후반에 서비스 직종에 있는 여성들입니다.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들에 대한 관심이 있는데, 오나가 얘기한 것처럼 이들은 서비스 직종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계속 웃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실제 인터뷰를 토대로 많은 대사들이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방식에 다른 중요한 것은 TV의 영향입니다. 한국은 TV드라마가 사람들의 심리와 관계, 삶의 방식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엄마가 돌아가셔서 엄마 고향을 찾아간다고 간 곳이 평소에 엄마가 좋아하던 TV드라마의 세트장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모성, 자연 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것들은 제가 평소에 하는 생각들, 한류 TV드라마가 오랫동안 사람들을 지배했을 때 모녀와 관계와 같은 가장 원초적인 관계는 어떻게 바뀔까 라는 의문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TV가 사람들의 마음을 인공적이고 인위적으로 성형수술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김성욱: 남자의 이야기 중에 남성의 아이덴티티를 군대와 연결시키는 창의 이야기가 흥미롭고 매우 독특하게 다가왔습니다.

김정: 일단 창 캐릭터는 크레딧에 나온 것처럼 얼 잭슨 선생님이 쓰셨습니다. 얼 잭슨 선생님이 일본문화 특히 애니메를 연구하고 계시기 때문에 일본의 경우와 비교하셔서 쓰셨습니다.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는 친구에게 한 번 읽어보라고 하였는데 그 때 그 친구가 창의 그 부분이 좋다고 했고 애니메이터로서 동의하며 굉장히 사실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남성의 아이덴티티를 창이 경남 고성의 칠공주 능에서 말한다는 것이 어떤 아이러니를 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김성욱: 윈도우, 창, 프레임들이 있을 때 시선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키노아이 같기도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카메라가 남강 앞에 세워져 있는데, 이 카메라가 누구에 의해 세워져 있고 누구에 의한 시선인지를 계속 생각하게 합니다. 인간이 부재한 카메라의 시선, 기계에 의해 포착된 시선 같기도 합니다. 중간 중간에 들어가는 카운트다운에 나타나는 뷰파인더도 그런 느낌을 주었습니다. 영화의 시선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김정: 전에는 사실 그런 식으로 시선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삶 자체가 유비쿼터스 방식이 되면서 표식 되지 않은 시선이 누구의 시선인지 정당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도 누구의 시선인지 정당화 되어야 하지만 카메라를 그냥 세워두면서 지금은 시선이 편재해 있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관객1: 엄마의 화장 문제를 어떻게 보고자 하신건지.

김정: 영화가 굉장히 좋은 작업인 것은 협업을 한다는 점입니다. 여러 사람들의 에너지와 탤런트를 모아서 감독이 어떤 방식으로 오케스트레이션 한다는 것이 굉장한 작업입니다. 마지막 크레딧에도 나오지만 엄마에 관한 이 에피소드도 문화미래 이프의 엄을순 씨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몇몇 부분들이 제 이야기거나 제 견해라기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들이고 여기서 저는 그런 이야기들을 배치하는 작업을 했다 할 수 있죠. 그리고 딸이 컴퓨터상에 엄마의 추모관을 만드는데 이것에 어떤 아이러니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2: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디지털 퇴마사의 의미가 궁급합니다.

김정: 옛날 민담을 보면 조력사가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여기서는 창이 디지털 시대의 조력자입니다. 오나에게는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는 디지털 요정 세화가 있는데, 세화에게 디지털 스토거가 생긴 것입니다. 조력자인 창은 도와주기 위해서 어떻게 퇴마를 하는지 알려줍니다. 주술은 가장 오래된 사람들의 기원을 푸는 방식인데, 이것이 디지털 시대에도 창이라는 인물을 통해 나타납니다.


김성욱:
영화배우 고 신일선 씨를 어떻게 엄마로 설정하게 되셨는지.

김정: 신일선이라는 여배우의 행로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신일선 씨는 여기서 딸들이 말하는 삶들을 실제로 살았었던 인물이죠.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의 국민 여동생이라는 위치에 있다가 나중에는 파출부와 매춘까지 하게 되는 인생역전을 겪었지요. 이 시기에는 배우 신일선 씨뿐만 아니라 많은 여배우들과 당시의 어머니들이 그러한 삶을 살았었다고 해요. 그랬을 때 굉장히 잘난 딸들이 이러한 엄마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 봤습니다. 여러 가지를 생각했는데, 그 중 담배 피는 신일선 씨의 사진을 택하게 되었지요. 매우 도발적이고 매우 이상하다고 여겨지는데 그만한 모습을 연출을 할 수 없다고 생각되어서 신일선 씨의 사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정리: 신윤하)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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