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작가를 만나다 -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

지난 4월 24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의 대표적인 정기프로그램인 ‘작가를 만나다’ 행사가 열렸다. 상영작은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 이윤기 감독은 <멋진 하루>를 필름으로 보는 것은 당분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건넸고 이에 호응하듯 <멋진 하루>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개봉 당시 영화를 보지 못했던 많은 관객들이 함께 했다.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었던 이윤기 감독과의 시네토크 현장의 일부를 이곳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다시 봐도 재밌다. 배우들 연기도 재밌고 촬영도 좋고 음악도 포근하고 모든 부분의 밸런스가 잘 맞은 영화 같다. 너무 오래전에 봤던 영화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감독님은 다시 보신 소감이 어떠신지.
이윤기(영화감독): 원래 영화를 만들고 나면 확인 작업 때만 보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개봉버전을 본 적이 없다. 오랜만에 <멋진 하루>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한다고 하니 내용이 기억나지 않으면 질문을 받아도 모를까봐 오늘만 좀 예외로 영화를 봤는데 감회가 새롭다. 착잡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복잡하다. 개인적으로 일기장을 꺼내 다시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김성욱:
각각의 에피소드도 재밌고 특히 영화를 다시 보면서 공간적인 부분들이 많이 와 닿았다. 단편소설이 원작인데 한국단편이 아니라서 영화를 제작할 때는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들인데 이것을 모두 하루의 시점에 맞추기 힘들었겠다. 영화에 자동차부터 전철, 오토바이는 물론 기차도 지나가고 심지어 비행기까지. 모든 운송수단을 동원해서 공간의 움직임을 만든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윤기: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건 폭탄을 끌어안는 것과 같다. 하루의 이야기를 비교적 많지 않은 예산으로 해결해야하니까. 하루 일과를 일관성 있게 맞추는 건 스태프들을 거의 노이로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옷도 한 벌, 머리도 같게 해야 하고 화장도 그렇고 뾰루지가 나도 안 된다. 준비할 때는 재밌을 것 같지만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웃음). 그만큼 준비도 굉장히 치밀할 수밖에 없다. 로케이션 준비기간은 다른 영화보다 길었다. 많은 후보지를 둬야하고 매일 토론하고. 스태프들이 할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다른 영화의 몇 배 힘을 들여야 하는 부분이 있다. 힘들어 보이지 않지만 굉장히 힘들다.

김성욱: 병운이라는 인물이 참 흥미로운 것 같다. 미워할 수 없는 것 같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350만원을 조달받고 돌려줘야하는 상황에 놓인 인물이다. 영화를 보고나면 정말 독특한 인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영화의 주인공은 두 명이지만 남자 주인공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이윤기: 병운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컨셉은 분명했고 고민을 많이 했었다. 병운은 어쩌면 희수라는 여자의 꿈 일수도 있다. 이상까진 아니고 도피하고 싶은 꿈. 팅커벨 같은 천사였으면 좋겠는데 좀 이상한 천사가 나타난 거다. 과장을 시켜도 괜찮겠다 싶었고 관객들을 당황하게 만들고도 싶었다. 하정우 씨 자체도 병운과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웃음). 대사만 주면 질문도 없고 그냥 가서 마음대로 연기하시는데 거의 캐릭터와 똑같게 하더라.


관객: 감독님과 배우들 간의 연기 디렉션이 궁금하다.
이윤기: 내 영화에 비호감인 분들이 종종 비난하는 게 배우에 기댄다는 의견이다. 근데 실제로 현장이 그렇다. 디렉션도 안하고 이래도 오케이 저래도 오케이 하다 보니 이게 와전되어 배우에 기대는 기회주의자처럼 변모했다(웃음). 발끈하지만 사실이다. 나는 배우들에게 기대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스타일이다. 배우를 도구처럼 할 수도 있고 나처럼 그냥 배우에게 맡기는 사람도 있는 거다.

김성욱: 배우에 기대는 것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은 적절하지 않은 의견이라 생각된다. 기대는 것 자체가 마음의 소리를 듣는 거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근래 상황이나 구상중인 계획을 말해 달라.
이윤기: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제작사의 사정으로 미뤄졌다. 지금 준비하는 건 올 여름을 목표로 가고 있는 격정멜로가 하나있다. 아마 깜짝 놀라실 거다. 잘 될지는 모르겠다. 진짜 하고 싶은 영화는 마이클 만 영화 같은 것이다. 근데 그런 건 나에게 안 시킬 것 같더라(웃음). 워낙 여성영화감독, 이런 식으로 낙인찍혀서 활동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편견을 갖기 시작하면 그 편견은 사회상황과 비슷한 거다. (정리: 강민영)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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