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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사람들을 짓누르는 상투적 요소들을 고민했다”

3월 작가를 만나다 - 윤종찬 감독의 <나의 행복합니다>

심한 황사 때문에 날씨가 좋지 않았던 지난 20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궂은 날씨에도 연연하지 않고 3월 작가를 만나다가 열렸다. 상영작은 <청연>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윤종찬 감독의 <나는 행복합니다> 였다. 이날 끝까지 자리를 지킨 관객들은 무척 암울하다고 알려졌으나 의외로 따뜻한 기운을 뿜어내는 이 영화에 만족했고, 깊고 낭랑한 음성을 가진 윤종찬 감독은 조근조근 자신의 영화와 삶에 대한 고민들을 풀어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 작품이 어떤 느낌으로 남아있었는지 그 점을 먼저 묻고 싶은데.
윤종찬(영화감독): 그냥 편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촬영 기간도 6주가 안 됐던 것 같고.

김성욱: 이청준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으로 아는데, 원래 소설에서도 간호사 아버지의 설정이 있었던 것인가?
윤종찬: 각색을 통해서 사연을 집어넣고, 그렇게 해서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김성욱: 주인공 만수의 치유 과정이라는 건 정신적인 일인데 간호사 아버지의 치료는 물리적 고통이 따르는 항암 치료였고 두 가지가 이렇게 병치될 때 굉장히 이상한 아이러니가 많았던 것 같다.
윤종찬: 기본적으로 조만수와 수경을 가장 짓누르는 것은 물질적인 어려움들이다. 사람들을 가장 짓눌리게 하는 상투적인 이유들이 뭘까, 그 중에 하나가 돈이었던 것 같고. 그 다음에는 아직 봉건적인 가족 구조. 거기에 근거해서 그런 설정들을 했던 것 같다.

김성욱: 두 남녀의 어떤 꼭짓점을 형성하는 게 그 의사인 것 같다. 간호사의 과거 남자친구였던 것 같고 남자에게 있어서는 담당의사이기도 하고.
윤종찬: 소설에서 의사의 생각은, 이 환자를 현실로 돌려보내는 게 나의 소임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각색을 할 때는 간호사 수경에게 아버지 다음으로 고통을 주는 인물로 만들었다.

김성욱: 감독님께서 로또복권 판매 사장으로 출연하시던데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건지.
윤종찬: 남원의 가게를 섭외했는데 그 배역에 대사가 있었고 남원이다 보니까 배우를 또 서울서 데려올 수도 없었다. 골치 아파 하길래 내가 하겠다고 했다.

김성욱: 정신병동 공간 묘사가 상투적이지 않았다.
윤종찬: 실제 정신병원을 찾아가 환자들을 만났을 때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정신병자의 모습과 너무 달랐고 정신병원 자체도 별 특색이 없었다. 일반병원과 다르지 않았다.

김성욱: 배우들과 잘 상의를 하시는 편인지.
윤종찬: 배우들하고 상의를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배우들이 이 작품을 내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다 각오를 하고 오지 않았나 싶다.

김성욱: 엔딩 씬이 인상적이었다. 처음부터 상정해 놓은 것이었나?
윤종찬: 그 커트를 딱 엔딩으로 상정하고 처음부터 한 건 아니었다. 편집과정에서 나온 것이고 뭔가 결론적이지 않은 오픈 엔딩으로 하고 싶어 그렇게 했다.


김성욱:
주인공인 만수가 병원에서 퇴원하는 과정에서 의사가 제시하는 건 두 개인데 하나는 백지에 쓰여 있는 백억, 다른 하나는 가족사진이다.
윤종찬: 만수는 사실은 어머니와 형을 지극히 사랑했던 캐릭터인데 현실에서 오는 여러 가지 것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의사는 그런 것을 잔인하게 건드린다. 뿌리를 건드리는 거다.

관객1: 현빈이 이보영과 말없이 헤어지는 장면은 어떤 생각을 갖고 찍은 건가?
윤종찬: 특별히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 보다는, 배우의 감정을 보고 규정하지 않고 찍었다.

김성욱:
개봉 후 관객이나 평단의 반응에 대해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윤종찬: 열심히 준비하고 남 시선 의식하지 않고 결과를 미리 상정하지 않고. 이 영화가 내 마지막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작업하고 있다. 또한 감독이 어떤 사람이길래 저렇게 어두운 영화를 만들었을까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삶의 성향이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성향이라고 봐 주시면 좋겠다.

관객2:
이번 영화에 혹 <청연> 개봉 후의 경험들이 반영되지 않았는지.
윤종찬: <청연>은 110퍼센트 제 뜻대로 찍은 영화고 평가나 논쟁은 중요하지 않다. 유일하게 <청연>을 생각할 때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장진영이라는 배우다.

김성욱: 요즘은 어떤 고민과 어떤 생각들을 하고 계신지.
윤종찬: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되고 어떻게 시나리오를 써야 될 것인가. 어떻게 좀 더 효과적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 시대가 자꾸 변하고 있는데 도대체 나는 여기서 어떤 얘기를 해야 될까, 감독을 그만두면 어떤 일을 해야 되는 건가 등이다.
김성욱: 그 고민들 중에서 영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우선시돼서 진행이 됐으면 좋겠다.
(정리: 홍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