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2. 15:26ㆍ특별전/작은 영화의 조용한 반란
지난 18일 ‘작은 영화의 조용한 반란’ 기획전 마지막 날 마지막 상영작인 <풍산개> 상영 후 이 영화를 연출한 전재홍 감독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아 관객과의 만남을 가졌다. 그 현장을 여기에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화제가 된 것 중 하나는 김기덕 감독 각본이다. 원안에 대한 수정정도는 어땠나?
전재홍(영화감독): 데뷔작 ‘아름답다’이후 작가주의 류의 시나리오만 들어왔다. 다른 것도 잘 할 수 있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김기덕 감독님의 색을 유지하면서 내가 원하는 영화를 하려고 했다. 나는 모든 관객층이 재미있게 보는 것을 추구한다. 영화의 깊이 뿐 아니라 코믹 액션 멜로 등 모든 요소들이 들어가야 하고 그러기에 좋은 소재라고 생각했다.
김성욱: 전체적으로 비극적이지만 중간마다 우스운 촌극의 느낌이 있다. 원안도 그런 톤이었나?
전재홍: 오리지널은 몽환적이었다. 풍산은 불사의 신 같은 존재였지만 인옥을 만난 후 감정이 생기고 인간화가 된다는 걸 조금 추가했다.
김성욱: 풍산은 원래 대사가 없었나?
전재홍: 전혀 없었다. 필요가 없다고 봤다. 서울말이나 북한말을 하면 흐름을 깰 수 있기 때문에 언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김성욱: 영화에서 잘 설명되지 않은 불상의 의미는?
전재홍: 북한에서는 종교를 가질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액자 뒤에 숨겨놓기도 하고, 그러나 종교 주제의 영화는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부각시키지는 않았다. 인옥은 가족이 모두 숙청당했기 때문에 종교의 힘으로 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불상이라는 소재를 만들었다.
김성욱: 북한 공작원이나 전향자들은 소재로 버거울 것 같았는데 어땠나?
전재홍: 전쟁 영화의 주인공은 다 군인이다. 군인의 슬픔이고 군인의 전쟁이고, 내가 본 전쟁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싸우는 것이었다. 나는 탱크나 폭탄을 본 적이 없다. 영화에서의 전쟁은 너무 멋있게 그려지고 영웅들의 놀이터 같았다.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할 때 실제로 북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우리랑 똑같이 생겼고 음악도 매우 잘했다. 그러나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있었다. 이게 분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을 겪으신 분들에겐 가볍게 보일 수도 있을까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내가 보는 시점으로 영화를 푸는 게 가장 영화답다고 생각한 거 같다.
김성욱: 평양까지 왕복거리가 세 시간?
전재홍: KTX로 부산까지 세 시간이다. 거기에 모티브를 둔 것이다. 평양을 세 시간 만에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 속의 북한은 몇 백년 거리의 대장정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상징적으로 세 시간을 둔거다.
김성욱: 김기덕 감독 각본이기에 철책선을 점프해서 넘어간다는 아이디어였구나 했는데 감독으로는 어떻게 생각했나?
전재홍: 오리지널에는 뱀이나 학으로도 변한다. 감독으로써 철조망을 뛰어 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진짜 새처럼 날고 싶은 마음이니까. 촬영에 고생이 많았다. 윤계상씨가 직접 와이어를 했고, 영하 18도 였던 것 같았다. 영화에선 고생한 게 별로 안 나온 것 같았다.
김성욱: 분단의 상징으로 여성을 다룬다. 희생적이며 비극적으로 남에도 북에도 속할 수 없는 이미지로 인옥이란 여성이 그려지는데, 분단이란 설정과 두 남녀의 사랑이라는 멜로가 섞일 때 톤 유지는 어렵지 않았나?
전재홍: 김기덕 필름이 여성을 비하시키고 여성들이 싫어하고 안 보는 영화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영화를 찍을 때 여자들이 재밌어 해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인옥이 죽지만 살해당한다기 보다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풍산을 놓아주는 의미가 있다. 비록 비극으로 끝났지만 풍산을 변화시키고 자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다.
김성욱: 어떤 장면들은 너무 사실적으로 그려진 것 같다. 또한 코믹하면서도 어처구니없는 느낌도 많았다. 웃음과 비극이 이질적으로 붙어있는 것 같은데.
전재홍: 모든 관객이 재밌게 봐야했으므로 밸런스가 중요했다. 저예산 영화 특유의 어두움은 피하고자 했다. 예산이 적을수록 최고의 배우와 최고의 스탭이 필요하다. 예산이 적으면 학생 분들이나 아마추어 분들과 찍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 반대다. 히말라야 무산소 등반은 경험이 있는 분들이면 가능하다고 본다.
관객1: 남북 요원들을 좁은 방 안으로 집어넣는 장면은 이미 영화자체로 이야기 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 같아 지루했다. 메시지를 억지로 주입하는 건 아닌가.
전재홍: 현재 남북 상황을 간단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없으면 그냥 아름답게 죽는 로멘틱 영화다. 전쟁을 겪지 않은 젊은 분들에게 왜 방공호에 들어가야 하는지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고 믿는다. (웃음)
김성욱: 고위급 간부로 추정되는 공작원의 경우 경험치가 없으므로 순전히 상상적일 것 같다. 인공호흡, 키스, 입맞춤에 대해 집요할 정도로 캐묻는 장면도 있다. 인물들의 캐릭터를 어떻게 구현해가면서 배우들과 함께 고민했는가?
전재홍: 캐스팅부터 힘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들이 많았지만 난 적절한 선택이라고 본다. 단어에 집착한 것 또한 아니다. 갇혀있으면 예민해진다. 남자들의 질투심에 모티브를 둔 것이다. 간첩캐릭터는 만약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면 어떤 일을 할까라는 궁금증에서 좀 인간적인 북한 사람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김성욱: 크레딧을 보면 노래를 직접 불렀다. 따로 만든 것인가?
전재홍: 원래 성악을 공부했었다. 다른 음악이 사정상 못쓰게 됐는데 음악감독님 상의 하에 넣은 것이다. 풍산은 내가 투영된 것 같았다. 어릴 때 외국에서 살았고 전쟁에 대해서도 여전히 혼란스러워 하기 때문에 이런 나 자신을 노래로 넣고 싶은 면도 있었다.
김성욱: 이억이란 예산에서 음악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못지않다. 처음부터 음악을 이 정도까지 넣을 생각을 했는가?
전재홍: 음악은 영화에 중요하다. 음악을 했던 사람으로서 더욱 그렇게 생각한다. 기존의 저예산 영화는 음악의 수준이 매우 낮다. 난 빠른 스피드와 빠른 음악이 좋다. 북소리나 꽹가리 가야금 등 전형적인 아리랑 같은 건 싫다. 현재 관객들과 공감대가 중요하다. 음악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했고 뮤직 에디터는 반지의 제왕과 이클립스를 하신 분이기에 너무 만족한다. 내 영화의 톤을 잡아 주었다고 생각한다.
관객2: 김기덕 감독님과 다른 색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존경하신다는 김감독님과의 다른 면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내는지, 엔터테인먼트적인 영화와 작가주의 영화중 지향점은 어디인지.
전재홍: 루이뷔통의 마크 제이콥스와 같다고 보면 좋겠다. 루이뷔통이라는 고전의 브랜드를 가져가면서 자기 디자인을 만든다. 또 뉴욕에는 자기만의 마크 제이콥스라는 브랜드가 있다. 김대표님과 있을 때는 김대표님의 색깔에 내 디자인을 넣고 따로 나왔을 땐 내 디자인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작가주의출신이다. 단편영화가 베니스에 가게 되면서 ‘아름답다’를 찍게 됐고, 근데 지금 나이에 작가주의는 좀 어렵다고 본다. 인생의 깊이가...깐느에서 이창동 감독님, 김기덕 감독님이 앉아 계셨는데 엄청난 벽을 느꼈다. 어려운 옷을 입고 싶진 않다. 지금은 내가 추구하는 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헐리웃 영화를 지향하진 않고 그냥 모든 나이층이 즐겨볼 수 있는 영화를 추구한다. 내 몸에서 체험할 수 있는 영화, 내 나이에 맞는 영화를 찍고 싶다.
관객3: 결말에 어떤 의미를 담으려고 한건지 원래 각본인지 감독의 여러 버전 중 선택이었는지 궁금하다.
전재홍: 오리지널에서 풍산은 전쟁의 신이 된다. 나와 맞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지금 엔딩이 마음에 든다. 개인적으로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를 좋아한다.
관객4: 김기덕 감독님 영화에서 그려지는 여자에 대해 관심이 가는데 여기서도 성매매 여성분들이 인상적이고 날카롭게 그려졌다고 생각된다. 성매매여성들에 대한 김기덕 감독님의 스케치와 전재홍 감독님의 생각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전재홍: 나는 노출씬을 매우 싫어하는 감독 중 하나다. 많은 감독들이 신인여배우들에게 노출을 강요한다. 그건 아니라고 본다. 감독일수록 배우를 아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신인여배우에게 나를 믿고 찍어라. 풍산개가 네 프로필에 들어갔을 때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성매매란 단어가 크게 느껴질 뿐 문제는 그 역을 얼마나 감독이 배려해주는 가 인 것 같다.
김성욱: 풍산개가 개봉할 때 김기덕 필름이 붕괴할 즈음이라는 얘기가 돌은 걸로 기억하는데 김기덕 필름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됐는지 예산 조달은 어떤 식으로 운영해나가고 있나?
전재홍: 영화사가 건물도 없었고 사무실도 없었다. 모든 것이 중지된 상태였다. 그랬다가 작년 9월에 전화가 온 것이다. 우선 이 영화로 김기덕 필름을 살려야하겠다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 풍산개를 김기덕감독님이 만들었다고 알고들 있는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떼돈을 번 건 아니지만 김기덕 필름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정도의 재정은 만들어서 기분 좋다. 다음 영화는 다른 곳에서 할 예정이지만 김 감독님을 떠나는 건 아니다. 김기덕 필름은 좋은 신인 감독들을 찾고 있다.
김성욱: 끝으로 앞으로의 방향과 계획 등에 대해 듣고 싶다.
전재홍: 2008년 ‘아름답다’로 데뷔했을 때 내가 천재인 줄 알았다. 근데 현실은 냉혹했고 1억 8천으로 찍은 영화는 2개관으로 개봉해서 망하고 말았다. 작가주의 영화라는 시장은 너무 냉혹했다. 양익준 감독님의 똥파리 워낭소리, 우리가 만든 영화는 영화다로 저예산 영화의 시선이 바뀐 것 같다. 그래도 저예산 영화에 대해 싼 영화라고 우습게 보는 것에 대해 본 떼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도 2억이란 예산 공개를 안 하려 한 것이다. 지금 영화감독은 일회용 종이컵 같다. 안 되면 버려지고, 한 편만 찍고 사라지는 게 너무 많다. 나도 그런 케이스였다. ‘아름답다’ 이후로 아무 제의가 없었다. 현실적으로 감독을 평가할 때 얼마나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느냐로 결정되는 것 같다. 관객 분들도 저예산영화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셔서 많은 애정을 갖고 찾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리 김준완(관객 에디터) | 사진 조유성(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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