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만세’ 미성년 편의 연출자 양익준 감독 GV 현장스케치

한파가 이어진 지난 16일 저녁, 추운 날씨에도 관객들이 극장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이날 상영한 <애정만세>를 보기 위해 말이다. <애정만세>는 ‘2011 전주국제영화제 숏숏숏 프로젝트’로 부지영 감독과 양익준 감독의 작품이 함께 묶여 있는 영화이다. 상영 후에는 이 영화의 두 번째 에피소드 <미성년>을 연출한 양익준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몸이 좋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양익준 감독은 매 질문마다 때론 특유의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때론 단어 하나하나 신중히 고르듯이 성심성의껏 답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그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이 영화는 본인이 처음부터 생각했다기보다 제안을 받아 진행된 방식이었다. 주제는 정확하게 사랑, 애정이었는지.
양익준(영화감독, 배우): 그렇다. 허나 사랑이라는 주제가 너무 포괄적이었다. 또 지금도 그렇지만 몸 상태가 안 좋았고, 그래서 작은 프로젝트이긴 해도 반년동안 패닉상태에 빠져있었다. 조감독이 작업하던 중간에 계속 하다가는 당신이 죽을 것 같으니까 중간에 포기하라고 여러 차례 말했었다. 반년 전에 한 약속이다 보니 몸 상태는 좀 힘에 부쳤지만 진행됐던 프로젝트다.

김성욱:
나이 차이에서 비롯되어지는 긴장감이 영화전체를 흐르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들이 불현 듯 떠오른 건지 경험적인건지 궁금하다.
양익준: 경험적인 것은 거의 없다. 저렇게 대범했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잘 연결은 안 될 수 있겠지만 제가 모자란 상태에서 시나리오를 쓰다보니까 스스로 제목이 제 몸 상태의 비유와 가장 어울린다고 감정이입했던 것 같다.

김성욱:
둘의 관계에서 민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민정 역을 맡은 배우에게 저런 설정에서 통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원조교제 등의 문제를 잠식시킬 만큼의 독특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었나.
양익준: 원래는 오디션을 거의 거치지 않고 작업하는 방식인데, 미성년 만들 때는 2년가량 영화를 멀리하고 있다 보니까 기억하고 있던 배우들 데이터가 싹 사라진 터였다. 그래서 3일정도 오디션을 보았다. 그 친구는 사진에서부터 여운이 컸다. 발차기하는 사진을 보내서 ‘재밌는 친구다’ 생각했고, 얼굴도 눈매도 묘한 느낌이 있었다. 또 막상 만나보니까 순수한 느낌이 있더라. 연기를 잘한다는 부분보다 순수함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김성욱: 롯데월드 장면이 굉장히 생뚱맞다고 생각했는데, 그 장면이 없으면 녹음실에서만 벌어지는 에피소드다. 놀이공원은 그래서 일부러 넣은 건지.
양익준: 그런 건 아닌데... (웃음) 미숙해서 그런 것 같다. 이 영화 자체가. 예산이 워낙 작아서 넓게 펼쳐가며 찍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리고 일단 <똥파리> 이후에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만들어가는 환경 자체에서 스태프들에 대한 환경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예산을 밝혀도 될지 모르겠는데, 1천만원을 인건비로 하고 4백8십만원으로 영화를 찍었다. 1천만원도 열약한 거다. 왜 하소연만 하고 있지.(웃음)

김성욱: 둘이 어떠한 방식으로 만났을까 떠올릴 수 있는 정황증거가 잘 안 드러나 있다. 그 부분을 보탤까, 없이 갈까 이런 선택을 생각했을 텐데 결과적으로는 설명 없이 넘어갔는데.
양익준: 둘이 만나는 계기를 스스로에게는 간단히 설득을 해놓은 게 있다. 민정이는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고, 그로 인해 복잡한 것도 있지만 대처를 잘하는 애다. 하지만 엄마와의 트러블이 있고, 집안이 워낙 답답하니까. 가끔 자기를 버려버리고 싶을 때 있지 않나. 그때 친구들하고 술집에 갔고, 주인공 남자는 마침 그 안에서 여자 친구와의 갈등으로 답답해하다가 술집 계단에서 민정이와 마주친 거다. 여고생이지만 사복 입었으니 잘 모르지 않나. 세상에 그런 이상한 우연도 있겠지만 “같이 술 한 잔 할래요?”(웃음) 제가 배우들한테 A4 한 장으로 전사들을 써줬었는데, 기억이 잘 안난다.

김성욱:
전체적으로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의 상태에서 여자의 부분은 설득을 갖는 부분이 있는데 남자의 경우는 사귀던 여자와의 헤어짐이라는 것 외에는 약간 약했던 것 같다.
양익준: 맞다.(웃음) 여자주인공도, 남자주인공도 디테일이나 직업만 바뀌었지 다른 이야기 안에서 뜯어온 캐릭터다. 다른 파트에서 뜯어온 캐릭터들이 서로 약간 섞이지 못한 지점이 있었던 것 같다. 영화를 시간 안에 맞춰줘야 하는 시점이기도 했고. 여러모로 그런 캐릭터 설정이나 스토리 안에서 정당성을 줄 수 있는 것들이 미진했던 부분에 대해서 스스로도 시나리오에서 많이 느꼈다. 완성된 영화에 대한 부분은 제가 따뜻하게 끌어안고 가져가야 하는 부분이지만 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입장에서 ‘정말 온전한 상태에서 온전한 영화를 만드는 게 정말 중요하구나’ ‘단순한 순간의 욕망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등등의 고민을 굉장히 많이 제공해준 영화다. 아이러니하지만 제 상태하고 흡사한 영화라고 해야 할 거 같다. 흔들리고 빈공간이 있는 상태. 제가 단단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부분이 많이 아쉽다. 자꾸 반성모드로 가게 되네... (웃음)

김성욱: 상황설정이나 대사는 즉흥적으로 하는 편인지 사전적으로 설정해두는 편인지.
양익준: 기본적으로는 시나리오에 나름의 대사가 다 있지만 현장에서는 배우들이 스스로 대사를 많이 변형해서 하기도 하고, 혹은 정서와 상황만 맞으면 대사를 안 해도 크게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닌 거 같다. 캐릭터를 종이 딱지라고 생각한다. 전체 종이 딱지 판은 시나리오이고. 그런데 배우가 캐스팅되는 순간 영희, 철수, 순이라고 이름 붙여진 딱지들은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그 딱지의 빈 공간 안에 배우들 그자체가 들어와 주길 바라게 된다. 영희, 철수, 순이를 연기해주는 배우를 원치 않는다고 해야 하나. 철수를 연기하려는 배우의 의식을 삭제시켜주는 게 저에게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관객1:
영화보다는 개인적인 궁금증인데 연상호 감독님 작품에서 계속 오정세 씨와 목소리 출연을 하시는데 연기자 양익준 입장에서 스스로 출연하고 싶다고 요청하는 건지, 감독이 요청해오는 건지. 연상호 감독님도 여기에 출연한 걸로 알고 있는데, 연상호 감독님의 영화들을 어떤 점에서 좋아하시는지도 궁금하다.
양익준: 캐스팅은 연상호가 100% 요청한거다, 제가 연상호 감독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해본 적은 없다. (웃음) <돼지의 왕> 시나리오를 2005년에 처음 봤는데 현재까지 봤던 영화, 애니 시나리오 중에 통틀어서 가장 충격적이고 좋은 시나리오였다. 처음 보고 잠을 못 잤다. 정치, 사회에 관심이 없었는데, 머리로는 몰라도 이미 몸이 느끼고 있는 부분들이 그 시나리오를 보고 느껴지더라. 좋은 작품에 참여한 건 기쁘다.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다.

관객2: 마지막에 노래 제목 바뀌었다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개그 씬인지 궁금하다.
양익준: 그냥 개그 맞다. 아실 지 모르지만 뭐 ‘고추 좋아’ 같은. (웃음)

관객3: 제목이 미성년인데 어떤 캐릭터를 염두에 두고 붙이신건지.
양익준: 처음에 쓸 때는 ‘미’ 옆에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았었다. 여고생이 될 수도 있고 남자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로 아름답다, 미숙하다 등 여러 가지. 영어제목은 미성숙이다. 미성년으로 지어놓고 미성숙으로 했는지 모르겠지만. (웃음) 단어로 따지면 미성숙이 훨씬 어울리지 않았나 싶어서 영어제목을 바꾼 거 같다.

관객4:
남자나 여자 캐릭터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건가.
양익준: 옛날에 진짜 설명 잘했는데. (웃음) 사랑이라는 의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30대하고 19살이 잤다는 그 자체만으로 바라보면 좀 재미없는 개념이 될 수 있다. 관계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 한 거니까.

관객5: <똥파리>도 그랬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들,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배경을 가지고 있고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골라서 얘기를 전개하는 영화를 만드신 것 같다. 디테일한 설정을 할 때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는지.
양익준: 제가 31살 전까지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100% 짝사랑이었기 때문에. (웃음) ‘나에게는 특수한 재능이 있구나.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좋아하는 티를 전혀 내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생각까지 할 정도로. (웃음) 영화에서는 감정이 폭발한다. 일상에서 좋아하는 상대에게 말하고 싶던 저의 욕망이 영화 안에서 터지는 거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과정 안에서의 제가 영화 안에서 캐릭터로 형상화 된 거 같다. 또 고등학교나 2~30대의 기억보다는 대부분 중학교 기억 안에서 이야기를 많이 구축하려고 하는 편이다.

김성욱: 중학교 이야기를 더 듣고 싶긴 하지만 자리를 마감해야할 시간이다. 대충 얼버무리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이 심플하면서도 좋았던 것 같다. 준비하시는 게 있으시다면 앞으로의 계획 같은 것을 듣고 싶다.
양익준: 쉬겠다라는 계획이... (웃음)

김성욱: 연기로 또 어딘가에 출연할 계획은 없는 건가.
양익준: 현재로서는 계획이 없다. 앞으로 이렇게 계속 영화를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무의식적으로 든다. 영화를 계속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것만이 중요한가? 왜 해나가는가. 영화를 하면서 한번 크게 겪는 순간을 지금 겪고 있는 것 같다. 사라져야 될 것은 좀 사라지고 귀중하게 남아야 할 것만 잘 남겨서 건강하게 30대를 잘 보내고 30대 후반 쯤이나 40대에나 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 좋아하면서 제 살 잘 가꾸면서 살아가기 위해서 1~2년 잘 소비하며 살고자 한다. 이게 저의 가장 큰 스케줄이다. 그러다 중간에 머리가 혹해서 뭔가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정리 김휴리(관객에디터) | 사진 조유성(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