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별전/작은 영화의 조용한 반란

“주인공의 내외면의 중첩된 흉터 이미지를 그렸다”

지난 11일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임우성 감독의 <흉터> 상영 후, 임우성 감독과의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그 현장을 여기에 담는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채식주의자>가 먼저 소개되기는 했지만 제작은 <흉터>가 먼저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나.
임우성(<흉터> 영화감독): 원래 <흉터>를 먼저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투자 받는데 오래 걸려서 중간에 잠깐 포기했다. 그 사이에 대학원을 갔고 대학원에서 시나리오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시나리오를 지원하게 됐다. 같은 해에 <채식주의자>도 영진위에서 지원을 받게 됐는데 <채식주의자>는 먼저 개봉을 했다.

김성욱: <채식주의자>, <흉터> 두 작품 모두 ‘한강’이라는 소설가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었는데 특별한 친분이 있는 것인지.
임우성: 원래 친분은 없었다. 2005년도에 중편 세 개로 이루어진 『채식주의자』가 발표됐다. 이전에는 ‘이상 문학상’ 대상을 탄 「몽고반점」이라는 작품을 보고 굉장히 매료가 돼서, 다음날 작가 분에게 연락들 드렸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 말씀드렸다. 작품의 세계관이 내가 생각하는 세계관과 비슷했다. 그게 인연이 돼서 두 편을 같은 원작자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게 됐다.

김성욱: 한강이라는 작가의 세계관과 본인의 세계관이 유사한 지점이 있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이 그런가.
임우성: 한강 작가는 어두운 소설을 많이 쓰고 세상에 대해 조금 비관적이다. 나도 좀 그런 편인데, 세상을 볼 때 조금 냉소적인 부분이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런 것들을 깊게 파고들지 않는데 한강 작가는 끝까지 파고든다. 하지만 비관적이라고 해서 절망적인 것 같지는 않다. 끝까지 파고든다는 것 자체에서 희망을 보기도 한다.

김성욱:
원작의 제목처럼 영화에서도 아기부처의 형상이 모습이 많이 보인다. 영화 제목이 <흉터>인데, 원작인 「아기부처」 보다는 지금의 제목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임우성: 처음에 <아기부처>로 시나리오를 시작했는데 조금 소설 제목 같았다. 나는 한 단어로 이루어진 직접적인 제목을 좋아한다. 여자 주인공의 내면에 흉터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녀의 내면적인 흉터와 남자 주인공의 외적인 흉터가 중첩되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했다.

김성욱: 감독에 대한 정보를 모르면, 여성감독이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섬세하고 여성적인 성격이 있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남성감독으로서 아무래도 여성캐릭터를 중심에 놓고 영화를 만드는 데에 나름대로 어려운 지점이 있었을 텐데.
임우성: 소설은 대부분 1인칭 주인공 시점이거나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그래서 영화로 만들 때에도 실제 연기를 한 배우분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주변에 결혼하신 분이나 주부, 동료, 친구, 후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예전에는 나도 모르던 부분이었지만, 나는 한국에서의 여성의 삶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김성욱: 여성은 굉장히 복잡 미묘한 것으로 보이는데 남자는 비교적 단순하다. 남자의 결벽증을 나타내는 것도 직접적이다. 영화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나긴 하지만 남성에 대한 캐릭터를 더 보강하거나 주력한 부분이 있는지.
임우성: 캐릭터의 섬세함을 5:5로 간다거나 남자를 더 보강을 했다면 캐릭터의 균형이 깨졌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내가 철저하게 여주인공만을 따라가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남녀관계가 모자관계처럼 느껴졌다. 투정부리는 아들과 포용하는 엄마 같은 느낌, 사실 주위를 둘려보면 그런 관계도 많은 것 같다. 결국은 여자의 포용력과 모성애 없이는 삶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김성욱: 이 영화상에서 가장 모호하면서도 특별한 이미지는 불상의 이미지다. 동굴이나 자연의 형상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그런 이미지다. 느낌은 있지만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좀 어려운 느낌인데.
임우성: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점점 영화가 구체화 되면서 그 이미지를 마음으로 느꼈다. 내 느낌을 말로 직접 설명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아마 관객 분들에게도 언젠가 언뜻이나마 느낌이 오실 것이다.

관객1:
마지막 장면 소파에서 여자주인공이 자신의 어린 자아와 꼭 껴안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여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흉터와 상처가 치유가 되고 있다는 의미인가.
임우성: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어렸을 때 울고 웃는 감정들을 막아버리면 성인이 돼서 우울증을 겪는다는 걸 책에서 보았다. 그게 선희 캐릭터를 대변한다고 보았다. 엄마 대사 중에도 그런 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 시절과의 화해라기보다는 서로 보듬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명쾌하게 왜 그 장면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김성욱: 영화에서는 흉터가 많은 남편을 안는 것과 말씀하신 장면이 이어지기 때문에, 두 번의 포옹이 의도적으로 연결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남편을 안는 것과 어린 시절의 자신을 껴안는 느낌을 동등한 지점에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임우성: 이 여자는 사실 보통의 인간들 보다는 좀 나은 인간 같다. 자신을 억누르는데, 문제는 자기를 너무 눌러서 또 다른 방식으로 삐져나오는 게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정말 착하고 내조를 잘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왜 행복하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가진 포용과 끌어안음은 이 안에 분명하게 있다. 그래서 불교적인 것도 나오는 것 같다. 영화에는 포용, 인내, 용서 같은 것들이 담겨있다.

관객2: 주로 남편과 아내가 화장실에서 대화를 하는 씬이 많은데 어떤 의미인가.
임우성: 남편의 결벽증을 표현하기 위해서 양치하는 모습을 많이 사용했고, 화장실 그 자체도 굉장히 차가운 공간인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양치질에 집착하는 남편 옆으로 움직이는 여자도 의미가 있다. 다른 곳에서 이야기를 해도 되는데 굳이 여자가 화장실에 가서 대화를 시도한다는 게 재미있다. 처음에는 여자가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나중에는 능동적으로 시비를 걸기도 한다.

관객3: 여자주인공이 아기불상을 만지면 얼굴모양이 바뀐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남편이 자신에게 소원하다며 여자를 탓하는데, 그렇다면 불상을 남편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것인가.
임우성: 사실 나는 아기부처가 그 여자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를 괴롭히는 것도 자기 자신이라 느꼈다. 영화에서 거울이나 반사를 많이 넣은 것도 상징적인 의도로 사용한 것이다.


관객4: 엄마 역의 연기가 연극적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여주인공의 엄마 같다는 생각이 안 들고 다른 존재 같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임우성: 조금 의도적으로 그렇게 연출했다. 영화가 실내에서 많이 진행되는데 예산의 문제도 있었고 2인극 같은 실내극을 만들고 싶기도 했다. 엄마의 대사는 대부분 문학적 대사인데, 일상어로 바꿨을 때 원작의 느낌이 깨진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대사가 실내극의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김성욱: 지금의 저예산 방법 말고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촬영하신다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보았다.
임우성: 올 초에 상업영화 제의가 있었고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내가 조금 아쉬운 것은 독립영화는 왜 항상 가난해야 하냐는 점이다. 돈이 운동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냥 영화를 찍는 것이다. 지금은 여건이 안돼서 작은 돈으로 영화를 찍은 것이다. 좋은 여건을 만나면 그에 맞는 영화를 찍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장단점이 있다. 자본이 적은 영화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많이,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자본이 들어오는 영화를 하면 사공이 많을 것이니 감수를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경계보다는 하고 싶은 이야기에 맞는 장르와 규모 선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만약 그게 규모가 큰 영화라면 당연히 자본을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정리 김고운(관객 에디터) | 사진 이호규(자원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