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시네바캉스 서울(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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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투르뇌르의 '캣피플'
젊고 아름다운 디자이너 이리나는 출생의 비밀에 사로잡혀 있다. 세르비아의 작은 마을 출신인 그녀는 사탄을 숭배하던 마을 사람들이 마녀로, 혹은 표범 형상으로 바뀌었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을 전설에 따르면, 그런 피가 섞여있는 사람은 사랑에 빠지면 안 된다. 육체적 접촉이 이뤄지는 그 순간 표범으로 바뀌어 상대방을 죽일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리나는 올리버와 사랑에 빠지고, 곧 질투와 의심과 자기 파멸의 격류에 휘말린다. 1942년작 은 프로듀서 발 류튼이 처음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발 류튼은 그 전에 신문기자와 펄프소설작가로 생계를 꾸려갔으며, 거물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에게 발탁되어 영화사 스토리 에디터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는 당시 파산 일보 직전이었던 영화사 RKO로부터 ‘1..
2011.08.02 -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
알프레드 히치콕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1958)은 가장 미스터리하며, 시각적으로 풍요로운 작품 중 하나로 간주되어왔다. 히치콕의 작가적 완숙미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를 대표하는 이 영화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는 스토리, 인간의 강박증에 대한 심리학적 탐구로 히치콕 영화에 빈발하는 '거짓 정체성'을 다룬 여러 이야기들 중 최고작으로 꼽힌다. 토마 나르스자크와 피에르 브알로(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의 원작자이다)의 소설 를 원안으로 한 은 무려 네 사람의 시나리오 작가의 손을 거쳐 개작되었다. 히치콕은 여기서 시각적 진술의 명료함과 위력을 통해 역동적인 영화 정보의 흐름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지극히 단순한 장면에서조차 정보전달 이상의 의미를 추구하는 작가적 완벽함을 보여준다. 의 플롯은 고소공포증에 시달리..
2011.08.02 -
프랭클린 J.샤프너의 '혹성탈출'
피에르 바울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프랭클린 J.샤프너의 (1968)은 지구 멸망 후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8월 18일 국내 개봉하는 은 지구가 왜 멸망해 원숭이들의 행성이 되었는지를 밝히는 프리퀄에 해당한다.) 테일러 박사는 날로 삭막해지는 지구를 떠나 우주여행을 하던 중 어느 행성에 불시착한다. 동료와 함께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하던 중 테일러는 원숭이 무리를 만난다. 말도 할 줄 알고 지능도 갖춘 이들은 원시인처럼 사는 인간들을 지배하며 행성의 주인으로 군림한다. 이들은 테일러 일행을 보자마자 잔혹한 방법으로 포획하고 감옥에 가둔 후 목숨을 위협한다. 이 영화 팬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주목을 끄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사실에서 기인한다. 우선 기술적인 측면에서 지금 봐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
2011.08.01 -
마이클 치미노의 '디어 헌터'
할리우드에서 전쟁영화를 하나의 굳건한 장르로 규정하자면, 1970년대까지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대세’였다. 그러다 1970년대 말에 이르러 (1978), (1978)같은 베트남전 영화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기존 2차 세계대전 영화들의 사소한 변형에 지나지 않았다. 를 쓴 배리 랭포드는 가 “전쟁영화의 역사적 무게중심이 결정적으로 베트남으로 옮겨가게 된 계기”로 본다. 또한 미국영화 투자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EMI가 당시 성공적인 출발을 하게 해준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배리 랭포드는 를 (1979)과 함께 베트남전과 무관하게 ‘할리우드 르네상스 스타일의 실험’이 더해진 전쟁영화로 본다. 그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 (1986), (1987), (1989)에 이르기까..
2011.08.01 -
마이클 만의 '히트'
마이클 만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현재형의 작가다. 지금 전 세계 영화계에 마이클 만 만큼 범죄 묘사를 통해 현대 도시의 속성을 기막히게 드러내는 감독은 없다. 일찍이 (1981)에서 범죄와 도시의 상관관계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던 마이클 만은 (1995)에 이르러 그만의 작가적 방식을 확고히 하기에 이른다. 닐(로버트 드 니로)은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프로페셔널 범죄자다. 일이 수틀리면 미련 없이 몸을 피하기 위해 집에는 가구 한 점 들여놓지 않고 심지어 동료들과 달리 가족은 물론 여자 친구도 사귀지 않는다. 닐을 쫓는 LA 경찰국 강력계 반장 빈센트(알 파치노) 역시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빈틈이 없다. 하지만 그 때문에 가족과의 관계는 살얼음판이다. 이미 두 번의 이혼 경력을 가진 그는 현 부..
2011.07.30 -
에른스트 루비치의 '천국은 기다려준다'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도 에른스트 루비치의 성공은 지속됐다. 도회풍의 세련된 코미디가 급격한 변화를 겪던 미국인, 미국 사회와 잘 맞아떨어진 까닭이다. 자기 영화의 성향과 잘 어울리는 파라마운트사와 주로 관계를 유지했던 루비치는 1941년에 폭스 사와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발표한 는 루비치의 유성영화 중 흥행에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남았다. 영화는 헨리라는 남자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상류층 뉴요커인 그는 죽은 뒤 지옥사자 앞에서 자기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루비치는 역사물을 다룰 때에도 시대와 무관한 작품 세계를 선보이곤 했다. 사회와 역사의 무게에 짓눌린 개인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의 전작인 (1942)를 기억해보라). 그러한 점에서 는 루비치 영화의 기념비에 해당한다. 영화는 19세기 말부터 ..
2011.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