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족 전통의 계승과 극복

 

 

 

<치사한 놈>의 감독인 구라하라 고레요시는 한국에는 비교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감독이지만 1957년에 감독으로 데뷔한 후 90년대까지 3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며 오랜 기간에 걸쳐 일본 대중의 사랑을 받은 대표적인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는 1927년생으로 같은 세대의 감독 중에서는 드물게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으며 쇼치쿠에 입사했으나 1954년에 닛카츠로 소속을 옮겨 1967년까지 닛카츠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태양족 영화’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알린 나카히라 코우 감독의 <미친 과실>(1956)에서 조감독을 맡기도 했으며 그 후로는 젊은 감수성의 톡톡 튀는 영화에서 블록버스터까지 연출하며 폭넓은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특히 1983년에 만든 <남극 이야기>는 다음 해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기도 했으며,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가 개봉하기 전까지 일본최고흥행 기록을 갖고 있을 정도로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치사한 놈>은 구라하라 고레요시가 닛카츠에서 한창 활발하게 활동을 펼친 시기에 만든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 그가 영화를 통해 추구한 것이 무엇인지 잘 나타난 영화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눈에 봐도 젊어 보이는 세련된 스타일이다. 주인공인 다이사쿠와 노리코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과 그 매니저답게 세련된 최신 의상을 입고 다니며, 다이사쿠가 자주 찾는 클럽이나 그의 일터인 방송국 무대 역시 화려함을 자랑한다. 여기에 경쾌한 재즈음악과 광각렌즈까지 동원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카메라 워킹, 예고 없이 휙휙 넘어가는 편집까지 더하면 이 감독의 장기가 무엇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약간의 과장을 동반한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 스타일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단순히 당시 젊은 세대를 위해 만든 오락 영화로만 보기에는 아까운 면이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태양족’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번에 상영하는 스즈키 세이준의 청춘 영화에도 잘 드러나지만 당시 일본의 전전 세대와 전후 세대의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파시즘과 전쟁을 통과한 기성세대들의 눈에 전후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부를 바탕으로 놀기만 하는 못마땅한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젊은이들은 그런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미국에서 수혈 받은 신식문화를 바탕으로 <이유 없는 반항> 속 제임스 딘처럼 스피드를 즐겼으며 전자 음악과 록에 맞춰 춤을 췄다. 그리고 이때 때맞춰 나와 젊은이들의 큰 지지를 받은 이시하라 신타로의 소설 『태양의 계절』의 제목을 따서 당시의 젊은이들은 ‘태양족’이란 이름을 얻었다. 또한 이시하라 신타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친 과실>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닛카츠를 필두로 ‘태양족 영화’들이 속속 만들어졌다.

당시에 만들어진 태양족 영화들은 저마다 다양한 특징이 있었지만 그 핵심에 자리 잡은 것은 젊은이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이었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못마땅하게 여긴 것과 마찬가지로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를 자신들을 속박하는 장애물로 여겼다. 이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반항이었지만 그 반항은 기성질서를 전복하는 것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태양족 영화 속 젊은이들은 순간의 젊음을 만끽했으며, 기성세대에 무조건적인 증오를 보였으며,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전망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젊은 육체를 스크린 가득 뽐내면서도 자주 비극적인 결말을 맞곤 했다.

 

그런 맥락에서 <치사한 놈>의 주인공들은 50년대의 태양족 젊은이들이 몸만 성장한 채 사회에 정착한 인물들처럼 보인다. 다이사쿠는 화려한 생활을 즐기면서도 빡빡한 일상에 지쳐 피곤해하고 어떤 일에도 쉽게 흥미를 갖지 못한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다이사쿠와 노리코 커플은 737일이나 만났지만 섹스도 하지 않고 키스도 하지 않는다. 그 둘 중 하나라도 선을 넘을 경우 자신들의 ‘순수한 사랑’이 변질되고 말 것이란 걱정 때문이다. 명분은 거창하지만 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스스로의 젊음에 족쇄를 채우고 거세를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대신 강박적으로 자신들이 함께 한 날짜를 기록하고 미친 듯이 춤을 추며 반복적인 하루를 보낼 뿐이다. 60년대의 태양족 청년들은 이렇게 최소한의 저항마저 잊은 채 외양의 화려함만을 소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명백히 당시 세대에 대한 감독의 논평으로 읽힌다. <미친 과실>의 조감독으로 참여하며 젊은 세대의 억눌린 욕망을 파괴적으로 분출시켰던 장본인 중 한 명이 다시 영화를 통해 어떤 목표도 없이 그저 주어진 현실을 살아가는 태양족 세대를 비판적으로 그리는 것이다. 그리고 감독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다이사쿠는 순간의 충동을 좇아 낡은 지프를 타고 여행을 떠나고, 노리코 역시 그를 붙잡기 위해 최신식 재규어를 타고 그의 뒤를 좇는다. 그리고 이 사고 많은 긴 여행 끝에 놓인 것은 묻어뒀던 자신들의 욕망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스스로 채운 족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그들이 이 뒤에 유의미한 삶의 목표를 찾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처음으로 생기를 찾은 눈동자를 보여주며 방송국의 카메라를 뒤로한 채 하늘의 태양을 바라본다. 이 결말은 너무나 직접적인 감독의 메시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메시지가 가진 무게는 어느 영화보다 묵직하게 다가온다. 젊음은 그대로 간직한 채, 이번에는 제대로 박차고 일어서라는 것이다.

 

글/ 김보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영화읽기] 엘리아 카잔의 <에덴의 동쪽>


<에덴의 동쪽>(1955)이라는 영화의 제목은 성경에서 나온 것으로 영화에서도 등장인물인 보안관 샘의 입을 통해 이야기되고 있다. 성경에 따르면 카인은 아벨을 죽인 뒤 여호와를 떠나 에덴의 동쪽에 있는 놋으로 갔다고 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자막을 통해 이 작품의 지리적 배경이 사리나스와 몬터레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데, 그렇다면 아담 트라스크(레이먼드 매시)의 농장은 에덴이고 아담을 떠난 케이트(조 반 플리트)가 바를 운영하면서 타락한 삶을 살아가는 몬터레이는 놋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은 아버지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착한 아론(리처드 다바로스)은 아벨, 비뚤어진 칼(제임스 딘)은 카인이라고 봐도 될까? 아마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에서는 케이트와 아담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 좀 더 상세하게 다뤄진 것 같은데 영화에서는 아론과 칼 형제의 성장 이후가 시간적 배경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들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런 까닭으로 영화만 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가령 케이트의 자신의 손에 대한 콤플렉스 같은 것.

영화의 초반을 보면 분위기를 굉장히 잘 잡아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초반부에서는 케이트가 자신의 어머니가 아닌지 의심하는 칼이 그녀를 미행하고 있는데, 칼이 어떤 이유로 그녀를 쫓는지 설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의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은 단순히 칼이 그녀를 쫓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주위의 미장센 또한 이에 일조한다. 마치 그녀를 포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녀의 화려한 초록색 옷차림과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지 않는 평범한 옷차림 및 색상의 대비, 그녀를 응시하고 있는 주위의 시선들. 이 시선들 가운데로 칼이 파고들어온다.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적대당하고 있다. 그것은 그녀가 타락한 술집여자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남편을 버리고 달아났기 때문인가? 이후 영화는 가족 사이의 애증이 폭발하는 드라마로 전개된다. 영화 초반부의 미행 장면뿐만 아니라 애브라(줄리 해리스)와 어울리지 말라는 아론의 비난을 듣고 나무 뒤에서 걸어 나오는 그림자에 뒤덮인 칼의 모습, 그로부터 시작해서 죽은 줄 알았던 어머니를 대면하게 되는 바 장면은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미스터리한 분위기와 내용, 영화의 톤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에덴의 동쪽>을 이야기할 때 제임스 딘을 빼놓을 수 없는데, 영화 초반에 그는 항상 화면의 주변부에서 주위 사람들 곁을 얼쩡거린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주위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지만 자신은 너무도 어둡고 초라한 데 비해 주위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기 때문에 그들을 보고 있으면 그렇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나는 사람들. 관심을 주고 사랑을 달라고 하고 싶지만 그냥 달라고 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고 자신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과장하거나 내심 바라는 것과는 반대로 엇나가게 된다. 영화 초반부에서 제임스 딘은 그런 인물을 탁월하게 표현한다. 특히 기차 위에서 자신의 옷을 구속복 삼아 몸을 옥죄는 그의 연기는 그런 인물의 내면의 고통을 탁월하게 육화시키고 있다고 생각된다. 여성이 아니라 그 느낌을 정확하게 이해할 순 없지만 확실히 그의 연기는 모성을 불러일으키는 면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이유없는 반항>에서도 그랬다고 생각되는데 제임스 딘은 불량하고 반항적인 소년이지만 진심으로 비뚤어진 인물이 아닌 것으로 그려진다. 오히려 내면에서는 순수하고 선함을 간직하고 있는데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제임스 딘이 연기하는 인물이 일관되지 않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입버릇처럼 자신은 불량하고 나쁜 아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알고 보면 우등생에다 발명가인 자기 형제보다 더 창의적이고 더 똑똑하며 수완도 있고 배짱도 좋으며 ‘입에 발린 소리에 속지 않을’ 그런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아버지도 언젠가 진정한 자식이 누구인지 알게 될 거라고 중얼거리기까지 하면 지금까지 보아온 저 인물의 모든 것은 사실은 제스처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을까 의심이 들게 된다. 인내할 줄 알고 원하는 것을 얻어가는 현명함과 미숙함에서 나오는 내면적인 고통은 서로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의심을 더욱 짙게 만드는 것은 영화에서 케이트와 아론을 취급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마치 영화로부터 버려진 것처럼 여겨진다. 케이트는 등을 떠밀린 아론이 자신의 몸 위로 넘어질 때 그의 곁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것으로 영화에서 퇴장하며 아론은 창문을 머리로 들이받아 깨버리는 극적인 몸짓을 보여주고, 현명하고 잘난 사랑받는 아들에서 우둔하고 이기적이며 위선적인 인물로 추락한 채 전장으로 떠난다. 영화는 두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그들의 목소리, 고통에 귀 기울이는 것보다는 칼의 행동 하나로 거의 살해당하다시피 한 희생자처럼 그려놓는다. 그런데 그들의 극적인 추락은 칼의 고양과는 대비되는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칼이 아버지와 화해하고 숭고해지기 위해서 두 사람이 제물로 바쳐진 것 같은 그런 기분까지 든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 느껴지는 것은, 과연 두 사람의 평생에 걸친 갈등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 누군가의 간절한 부탁으로 해소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다. 칼은 그럴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아담도 그러했는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그것은 불가능한가? 모르겠다. 이 부분만은 앞으로도 질문으로 남을 것 같다. (홍성원)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 11일 오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워터프론트> 상영 후, ‘배우의 감독, 엘리아 카잔’이란 주제로 영화평론가 김영진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카잔과 말론 브랜도와 얽힌 재미있는 일화는 물론, 메소드 연기 스타일에 대해 들을 수 있었던 그 시간의 일부를 옮긴다.


김영진(영화 평론가, 명지대 교수):
엘리아 카잔이란 감독과 배우들에 얽힌 얘기를 드리겠다. <워터프론트>는 1954년에 아카데미에서 거의 상을 휩쓴 영화인데, 반미 위원회에서 엘리아 카잔이 동료들을 밀고한, 당대의 맥락에서 자유롭지 않은 영화이다. 권력집단에 맞서는 개인의 운명을 생각할 수 있는데 당시에는 상당히 복잡한 맥락에 있었던 영화이고 카잔의 경력에서는 오점이었던 작품이다. 말론 브랜도는 그런 면에서 이 영화 출현을 꺼려했고, 이런 저런 얘기 끝에 매일 오후 4시에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수락했다고 한다. 카잔의 상황과도 비슷하다. 채플린이나 조셉 로지 같은 감독들은 유럽으로 돌아갔지만 카잔에겐 돌아갈 곳이 없었고, 밀고 안하면 추방이나 망명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건 곧 카잔에겐 자기 경력이 끝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엘리아 카잔은 카메라 밖에서 드라마를 만드는데 굉장히 능했던 감독이다.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배우가 연기하게끔 하는, 카메라 바깥에서 이미 그 사람이 되게끔 하는 연기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서 어떤 사람은 카잔과 일하는 것을 너무 지긋지긋해 했다고 한다. 일례로 <혁명아 사파타>란 영화에 말론 브랜도와 안소니 퀸이 형제 역으로 출현했는데, 처음에 카잔은 둘이 형제같은 감정을 갖게 하려고 숙소, 현장에도 매일 붙어있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둘이 스타일이 너무 달라 친해지는 게 쉽지 않았는데, 후반부에는 둘 간의 배신의 드라마가 펼쳐지니까 그때부터는 둘을 이간질시켰다고 한다. 그 일은 안소니 퀸과 말론 브랜도는 15년 동안 말을 안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워터프론트>의 테리 말로이를 만들기 위해 말론 브랜도는 실제 복싱을 했고, 매일 에바 마리 세인트와 손을 잡고 지하철로 출퇴근을 했으며, 심지어 부두 조폭 두목과 점심도 같이 먹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를 카잔은 요구했던 것이다. 그렇게 브랜도는 몰입해서 테리 말로이가 되어 갔던 거다. 카잔은 작품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영혼의 소유자라고 말할 수 있다. 또 즉흥 연기로도 유명하다. <워터프론트>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이디가 장갑 떨어뜨리고 테리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과 형인 찰리와 택시에서 얘기하는 장면을 꼽는데, 그 두 장면 모두 카잔의 용인 하에 즉흥적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카잔은 그런 점에서 배우들의 감독이라고 불린다. 그의 작품에서 대가를 치루고 연기를 하고 나면 훌륭한 연기자가 되게끔 만드는 감독이다. 말론 브랜도와의 관계도 그렇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말론 브랜도는 브로드웨이 연극무대로도 섰었는데 처음엔 너무 긴장해 그 폭발이 안나왔는데 카잔의 도움으로 독방에서 소리를 지른 후 무대에서 큰 외침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고, 제임스 딘 같은 배우도 카잔이 발굴한 대표적인 배우 중 하나다. 카잔은 그렇게 카메라 바깥에서 실제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유형의 감독이다. 가짜가 아닌 진짜 연기를 끌어내는 것에 카잔처럼 능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사실 말론 브랜도가 연기를 그렇게 잘했지만 연기자란 직업을 혐오하고 고통스러워했다는 것만 봐도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짐작할 수 있다. 말론 브랜도가 후에 아예 섬을 사서 안 나타나고 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몇몇 일화만 봐도 엘리아 카잔이 미국영화사에 끼친 영향이 크다. 특히 배우의 창작에 관한, 즉 연기를 어떻게 끄집어 낼 지의 측면에서 그의 역할은 상당히 컸다.

이외에도 특히 40년대 중후반부터 50년대 카잔이 이뤄낸 또 다른 업적은 실제 거리에서 찍었던 스트리트 필름이 많았다는 거다. <거리의 공황>이나 <와일드 리버>, <에덴의 동쪽> 같은 영화의 장소를 보면 ‘저건 로케이션의 승리다’ 그런 느낌이 들 정도다. 결코 스튜디오에서는 나올 수 없는 장면이란 걸 체감하게 한다. 또 카잔은 몹씬도 굉장히 실감나게 찍는다. <워터프론트>의 마지막 부두 노동자들을 찍은 것만 봐도 그런데, 그건 아마도 현장에서 실제 단역배우들을 살게 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밀고자라는 뇌상이 커서 카잔은 60년대 <초원의 빛>이란 영화 이후 지속적으로 하강하는 경력을 갖게 된다. 전성기는 40년대 중반부터 50년대까지였고, 정치적 맥락에서 창작이라는 것을 보장할 수 없는 불행한 사례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199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 받았던 사건은 그에게 있어 너무 잔인한 퇴장을 하게 만든 것으로 기억된다. 할리우드가 자신의 면죄부를 얻기 위해서 엘리아 카잔에게 뒤 집어 씌웠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었지만, 엘리아 카잔은 ‘나는 조용히 사라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의 멘트를 남기고 떠나 복합적인 생각을 들게 한다. <워터프론트>는 엘리아 카잔과 버드 슐버그에게 자기변명 같은 영화였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어떤 보편적인 감동, 추상화 시켜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감동 상당히 오래 갈 것 같은 영화이고, 그 무엇보다 배우들의 감독이라는 명성을 가졌던 엘리아 카잔의 연출자적 개성을 가장 잘 증명하는 영화다. (정리: 신선자)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엘리아 카잔: 나의 삶」이라는 자서전에서 보면 카잔은 영화계에서 은퇴한 후에 아침마다 면도용의 작은 거울을 쳐다보며 마치 아이같이 ‘도대체 너는 누구인가’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그는 평생 자신이 어떤 인물인가를 고민했던 인물이다.


카잔은 1909년 터키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그리스인의 부모님 아래서 태어나 그의 나이 네 살 때 부모님과 함께 터키의 압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이주민이었다. 부친의 양탄자 사업으로 어린 시절 카잔은 비교적 유복하게 성장했지만 자신이 터키출신의 이주자였기 때문에 미국에서 깊은 소외감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가 연극과 영화에 몰두한 것도 이른바 소외를 탈피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는 아메리칸 드림의 체현자였고 동시에 그 꿈이 악몽으로 변하는 순간에 밀고자가 되기도 했다.

엘리아 카잔은 대학시절부터 연극에 몰두했고, 졸업 후에 ‘그룹시어터’에 참여하거나 수많은 연극무대에서 배우로 활동한 바 있고 직접 연출을 하기도 했다. 카잔에게 1947년은 기념비적인 해였는데, 이 때 그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연출하며 말론 브랜도로 대표된 '메소드 연기'의 정수를 대중들에게 선보여 연극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그룹 시어터'의 맥을 이으며, 배우의 연기에 주목한 '액터즈 스튜디오'를 뉴욕에 창설해 이후 제임스 딘, 마릴린 먼로, 워렌 비티 등의 역량 있는 배우들을 양성했다.


1945년부터 1957년 사이에 그는 10여 편의 작품을 연출하면서 <신사협정>과 <워터프론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에덴의 동쪽>으로 감독상에 지명되었으며, 브로드웨이에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유명세를 얻으면서 연극계와 영화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카잔은 '배우들의 감독'으로 불릴 만큼 배우 연기의 현대화를 꾀했는데, 말론 브랜도, 에바 마리 세인트, 제임스 딘, 워렌 비티와 같은 젊은 배우들이 그의 영화에서 독특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워터프론트>에서의 말론 브랜도, <에덴의 동쪽>에서의 제임스 딘, <초원의 빛>의 워렌 비티가 보여준 연기는 그들의 육체, 몸이 주는 무게감에 근거한 것이다. 특히 브랜도와 제임스 딘의 '우물거리는' 연기는 경이롭다. 앞뒤가 맞지 않는 그들의 불안감을 카메라 앞에서 숨김없이 드러내는, 그러면서 위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영혼을 표현하는 머뭇거리는 연기는 인물의 무의식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생각을 엿보게 한다. (김성욱)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4월 첫 프로그램으로 배우들의 영화감독이라 불리는 엘리아 카잔(1909~2003)을 조명하는 특별전을 연다.

오는 6일부터 1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이번 '엘리아 카잔 특별전'에서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를 비롯해 '냉정한 리얼리즘'을 반유대주의를 소재로 하여 보여준 <신사협정>(1947)
, 노동자와 자본 계급 간의 대립을 그린 <워터프론트>(1954), 제임스 딘의 고독한 눈빛이 인상적인 <에덴의 동쪽>(1955) 등 총 7편을 상영한다.

엘리아 카잔은 1950년대 이후 할리우드에서 사회·정치적 이슈 뿐 아니라 인종·가족 등 다양한 소재를 아우른 작품을 연출했다. 1945년 <브루클린에서 자라는 나무>로 데뷔한 후 예리하고 사실적인 시선을 작품에 반영한 주옥같은 할리우드의 명작을 만들어 미국영화의 특징을 대표한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그는 제임스 딘, 말론 브랜도, 나탈리 우드 등을 배출한 메소드 연기법의 효시인 연기학교 ‘액터즈 스튜디오’를 설립하는 등 할리우드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편 이번 특별전에는 엘리아 카잔의 작품세계를 보다 폭넓게 돌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두 차례의 강연도 진행된다. 8일 7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상영 후에는 ‘엘리아 카잔의 아메리카’란 주제로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강연을 하고, 11일 오후 4시 <워터프론트> 상영 후에는 명지대 교수인 김영진 영화평론가가 ‘배우의 감독, 엘리아 카잔'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행사 문의나 자세한 상영일정은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www.cinematheque.seoul.kr)를 참고하면 된다. (신선자)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