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작가를 만나다 - 조창호 감독의 <폭풍전야>

지난 6월 26일 저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대표적인 정기상영회인 ‘작가를 만나다’ 행사를 열었다. 상영작은 두 남녀의 운명적인 사랑을 풍부한 감수성과 섬세한 연출력으로 표현해 새로운 멜로영화의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은 조창호 감독의 <폭풍전야>. 상영 후 가진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그 현장의 일부를 이곳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미지들이 굉장히 많이 남고 감정 상태가 많이 보이는 영화인 것 같다. 어떤 점에서 이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처음 하게 됐는지?
조창호(영화감독): 2001년도에 조폭 조직의 행동대장쯤 되는 분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되어 있는 와중에, 같은 교도소 안에 수감되어 있는 에이즈 감염인의 피를 자기 몸에 바르고 마시고, 그런 일을 되풀이하다가 발각된 사건이 있었다. 그걸 신문에서 접하면서 필이 확 왔다. 과연 목숨을 담보로, 모든 걸 다 바쳐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 어떤 게 있을까,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던진 다음에도 얻은 게 없는 그런 허무한 상태에서, 그 남는 시간에 우리는 어떤 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그런 부분에 대한 질문이 생겨 그걸 모티브로 해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김성욱: 영화를 보면 인물들이 엇박자나는 느낌을 받았다. 계속 어긋나는데 그게 감독님 얘기하신 것처럼 허무한 상황인지, 아니면 일종의 미필적 고의 같기도 했는데.
조창호: 미필적 고의는 분명히 아니다. 어떤 한 인물이나 사건이 다른 인물이나 사건에 미치는 영향력 같은 것이 갈등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존재 자체가 이미 어떤 복수의 것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갈등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야기를 만들 때 아주 단순화 시키면 드라마가 헐거워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다.


김성욱: 이 영화에서 시각적인 측면으로 보면 사라진다는 게 눈을 감거나 눈을 가리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런 건 어떤 데서 생각을 했는지?
조창호: 마술이란 서로 약속하지 않아도 공통적으로 떠올려지는 이미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영화 속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마술이 시각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는 것은 일종의 판타지인데, 실제적으로 그 속에 이루어지는 것은 트릭이다. 그러니까 카메라가 진실을 포착하는 데 있어서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가, 영화 역사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믿어지는 흐름을 다시 한 번 제가 정리를 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김성욱: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회성이나 존재성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창호: 욕인가? (웃음)
김성욱: 아니다. (웃음) 일단 인물의 많은 부분을 비워두고 영화를 찍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중간 중간에 장난들도 좀 더 길게 지속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굉장히 짧게 가고, 짧은 에피소드들이 되게 많이 있는데 그런 부분들이 전체적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그런 부분을 선택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조창호: 이런 주제와 인물에 관심이 많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훨씬 더 사회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아직 날것 그대로 끌어와서 영화를 만드는 그런 높은 경지는 아닌 것 같고, 이런 주제를 가지고 이 얘기를 할 때는 그냥 그렇게 떠올려 지더라. (웃음)

김성욱: 김남길 씨가 뛰는 장면이 있는데 그러다 쓰러진다. 저쪽에서 또 다시 황우슬혜 씨가 열심히 뛰어오다 또 쓰러진다. 그걸 여관집 소녀가 보고 언니 하면서 뛰어 올라가는데 그 장면이 되게 특이하게 느껴졌다. 어떤 이미지에서 딱 촉발이 된 건지?
조창호: 그런 장면에서 웃는 관객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기본적인 연출의 세기가 부족했다는 부분은 스스로 인정을 해야 될 것 같고. 다만 이미지는 아니고 드라마 상에서 꼭 필요한 이야기였다. 수인이 입장에서는 자기가 얼마 살지 못한다는 거 충분히 알고 있고 그 시점에 와서야 자기가 한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그리고 그 여자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다는 그런 걸 느꼈을 때 하루라도 더 살아서 이 삶과 공존할 수 있다면, 그런 바람이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김성욱:
영화 첫 장면에서 현수막에 보면 지상최하의 마술이라고 돼 있는데 그렇게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조창호: 처음에 그거는 저 자신에 대한 조소로 출발했다. 처음에 계획했던 것은 상당히 볼거리가 있고 그러면서도 영화의 주제와 좀 더 맞닿고 하는 거였고 마술에 관련해서 굉장히 많은 자료를 찾고 준비하고 그랬다. 많이 연구하고 기획했던 여러 가지 마술 장면들을 포기하게 되면서 제 스스로에게 일종의 fuck you를 한번 날린거다.

관객1: 수인, 상병, 미아, 이름이 다 특이하다. 수인이라는 건 참는다, 인내한다는 말도 되고 그 다음에 죄수를 다른 말로 수인으로 부르기도 한다. 미아도 사랑하는 사람과 있다가 미아가 된다든지 그런 의미가 있을 것 같고. 그런 걸 생각하고 이름을 붙였는지?
조창호: .그렇다. (웃음)

김성욱:
영어 제목은 <Lovers Vanished>라고 되어 있는 것 같은데.
조창호: 그거는 회사에서. (웃음)

관객2: 첫 장면이 바람 부는 것, 그 다음이 마술쇼 장면이다. 보이고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있지만 또 하나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공간적인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다.
조창호: 일단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서, 저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술이 하나의 이미지, 어떤 제3의 장소에서 떠올리는 존재하는 이미지일 수도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이 이제 겨우 사랑을 알 것 같은데, 그러자마자 영화는 이제 끝인데 거기서 이제 그 감정이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또 다른 의미로 지속되어질 것 같은, 당장 여기서는 우리 눈에 보이진 않아도. 인물들의 뿌리가 없는 건 맞다. 폭풍전야는 사실 자연 현상이다. 공간에 대한 영화처럼 보이는 부분은, 그렇게 의도한 건 사실 아니다.

관객3:
영화를 보고 나니까 이미지라든가 이미지 안에서 인물이 배치되는 배경 이런 부분이 상당히 독특하게 느껴졌다. 대사가 그냥 외국어고 자막으로 만약에 이 영화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또 하나 궁금한 건 이 영화는 어떤 장르로 봐야 되는지?
조창호: 그냥 다른 것 빼고 드라마라고 부르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자막으로 보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는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알 것 같다. (웃음) 제가 다 화살을 맞을 이야기다. 풍경에 관련해서, 많은 분들이 그렇게 느끼셨을 것 같다. 아, 그림 예쁘다, 라든가 풍경 예쁘다, 라든가. 근데 사실 전 그런 것이 욕이라고 생각한다. 제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은 종류의 영화들이 몇 있다. 그런데 특별히 칭찬할 거 없을 때, 그림 좋다, 미술 좋다, 뭐 이런 얘기를 하지 않던가. 물론 영화 속의 어떤 풍경이 하나의 감정으로, 이야기로 작용을 하길 간절히 원하면서 찍긴 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인물, 인물의 감정이고 그것이 제대로 표현되었다면 그것이 우선적으로 이야기가 나올 거다.

관객4: 영화 정말 잘 봤다. 이런 느낌은 처음인데 영화를 정말 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봐서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이 이야기를 봐서, 이 이야기를 알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너무 슬퍼서 막 울었던 게, 되게 절박하게 느껴졌다. 결국은 이 이야기도 마술처럼 사라지고 사람들이 모르는 얘기가 될까봐 너무 마음이 아팠다.
조창호: 영화를 봐서 다행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도 그런 관객을 뵙게 되어서 다행이다. 이건 방향을 가리키고 그쪽으로 가지 못한 그런 영화다, 저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가끔 얘기한다. 가끔 나는 되게 잘 봤는데 왜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 하시는 분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제가 이 영화를 못 가게 만들었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곳까지 가 계신 분들이니까 만드는 사람보다 더 뛰어난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관객5: 저는 장면들이 되게 정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수인이 달리는 장면조차도 정적으로 느껴졌다. 제가 보기엔. 그리고 그런 정적인 장면들이 카메라가 이렇게 계속 가지 않고 장면을 전환시키는데 그 사이에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제공된다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조창호: 저 스스로는 영화를 만들면서 정적이다, 동적이다, 상징과 은유,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다만 이것이 어떤 영화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건 있다. 저는 아직까지는 세상의 선한 의지를 믿는 사람이다. 수인과 미아의 아주 선한 마음의 결, 민정에게도 그런 것이 좀 남아있고, 다른 캐릭터에도 조금씩 남아있어서 쉽게 깨지지 않는 그런 아름다운 마음씨, 그런 결이 부딪치면서 만들어지는 감정. 제가 생각하는 감정이 제가 썼던 대사로 제대로 전달되어졌을 때 대사 하나하나에 충분히 그런 감정이 느껴질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김성욱: 이제 마쳐야될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신다면.
조창호: 영화를 보러 와 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실제로는 이런 자리가 이 영화 만들고 나서 처음이다. 다섯 문제밖에 못 맞췄는데, 와 이 문제 어떻게 풀었어? 이렇게 질문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런 자리가 저한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고 영화 만들라 말씀하시는 것 같고 저도 좋은 기운 받고 돌아가는 것 같다. (정리: 홍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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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작가를 만나다 - 정지우 감독의 <사랑니>

지난 5월 15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의 대표적인 정기프로그램인 ‘작가를 만나다’ 행사가 열렸다. 상영작은 정지우 감독의 <사랑니>. 이날 극장 안은 개봉한지 꽤 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이 함께 해 <사랑니>에 대한 여전한 팬심을 보여주었다. 사랑의 시작과 끝, 매혹, 그에 대한 기억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만들었다는 <사랑니>에 대해 정지우 감독과 관객들이 나눈 시네토크 현장의 일부를 이곳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사랑니>는 어떤 영화였고, 또 어떤 생각으로 준비를 하게 되었는지?
정지우(영화감독): 긴 시간 독립영화를 하다가 <해피 엔드>로 장편 상업영화 데뷔를 하게 됐고, 그게 생각이 많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를 정말 잘 해보고 싶다고 열렬히 고민했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5년 만에 영화를 하게 됐다. 하고 싶은 기분 그대로 끝까지 가서 만들었다.

김성욱: 이 영화는 어떤 이미지에서 시작 되었는지 아니면 어떤 이야기에서 착상 됐는지 궁금하다.
정지우: 여기 여자 관객 분들이 그동안 연애한 남자친구들을 하나하나 생각을 해보면 어떤 공통점이 있을 거다. 자기가 매혹되는 어떤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 시작과 끝이 맺어져 있고, 매혹은 바뀌지 않고, 그런 기억들은 놓치지 않고 만들어야 되겠다는 기분이 있었다.

김성욱:
과거와 현재의 두 인물이 반복되고 치환되고, 또 보상 같기도 한데 영화 안에서는 그게 또 일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지우: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대로이기도 하고 바뀌기도 하는 수많은 것들이 과거의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또 다른 이미지로 되고, 이러면서 사람은 조금씩 변화하고. 영화를 마치면서 그래도 살만한 거 아니냐는 기분을 끝까지 던진 것 같다. 반복과 변주가 뱅뱅 돌면서 답답하고 괴롭기 보다는 변하고 달라지고 있는 것은 맞다.

김성욱: 공간들이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지우: 공간에서 한옥을 사용했는데 안과 밖이 섞여 있는 공간으로서의 한옥이 너무 좋았다. 프로덕션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과거와 현재가 섞여 있고 과거의 장면 같은 것은 대단히 모던하고 현대적인 공간으로. 그것이 서로 섞이는 그런 계획으로 구성되고 촬영됐다.

김성욱: 이 영화에서는 사실적인 레벨보다는 조금 떠 있는 듯한 순간들이 있다.
정지우: 현실의 물리적인 법칙들로부터 벗어난다든가 하는 그런 어떤 순간,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영화적으로 묘사하고 싶은 꿈이 있다.

김성욱: 그럴 경우에 배우들을 설득하는 편인가?
정지우: 배우가 불편해하는 건 거의 안 하는 편이다. 연애할 때 발이 땅에 안 닿아있는 기분, 그런 말로 설명을 했는데 이심전심으로 알아듣는 그런 상황들은 감독으로서 행복하다.

관객1:
어떻게 보면 어린 인영이 서른 살로 점프하는 꿈을 꾸는 걸로 보인다.
정지우: 그것이 구별되지 않는 상태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관객2: 혹시 2편을 만드신다면 사랑니를 빼버릴 건지, 놔둘 건지 궁금하다.
정지우: 그냥 아픈데 못 뽑는 상태를 또 만들고 싶다.

관객3: 인영이와 동거하는 친구 정우의 캐릭터에 대해서 설명을 부탁드린다.
정지우: 에로틱한 우정, 너무너무 좋은 내 편인 친구 같은 캐릭터를 원했다.

관객4: 이수가 지구본을 좋아한다. 특별히 지구본을 설정한 이유와 석이가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면, 김정은이 모텔에서 화분을 들고 도망 나오는 것, 마지막 장면에서 정유미의 뒤에 배경으로 나왔던 벚꽃이 너무 화사한 이유 등을 묻고 싶다.
정지우: 같은 프레임 안에 소년이 지구본을 갖고 있는 상태가 되게 하고 싶었다. 엘리베이터 공사는, 일상적인 공간임에도 위태롭고 휘청한 느낌을 영화에서 만들고 싶었다. 벚꽃, 그렇게 하면 견디기 어려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랬다. 여관에서 화분을 갖고 도망가는 건 그게 훨씬 더 재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관객5: 금기관 같은 게 있는가?
정지우: 어떤 이유로든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이야기를 지지할 수 없고, 그러고 싶지 않다.


관객6: 영화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이것만큼은 꼭 찍어보고 싶었다는 어떤 이미지라든지 설정 같은 게 있다면 무엇인지 혹은 영화를 찍다가 우연하게 충동적으로 찍고 싶었던 장면이 있다면?
정지우: 용기를 얻고 살만하다고 여기는 서른 살 조인영의 마음을 놓치지 않고 만들려고 했다. 정유미 양이 일식집에서 전화를 받고 난 다음에 뛰쳐나와서 김정은 씨한테 다가오던 장면이, 계획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카메라가 배우의 움직임을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움직임이 생겼다. 그런 순간이 너무너무 행복하다.

김성욱: 정유미 씨가 양호실에서 드러눕고 양호선생님이 구두를 갈아 신는 장면이 있다.
정지우: 운동화신고 완전히 나자빠진 유미랑 구두신고 좋은 사람 만나러 나갈 것 같은 양호선생님이 한 공간에 있는 걸 찍고 싶었다.

김성욱: 이 영화 다음에 <모던보이>가 있고, 그리고 나서도 2년 정도 이상의 시간이 지났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갖는 의문과 질문들도 있었을 것 같다.
정지우: 2000년대 중반부터 와이드 릴리즈가 급격히 들어오고 다양한 영화들을 보기가 점점 어려운 환경으로 가고 있다. 나는 동시대 관객한테 말을 걸고 현실에 영향을 미치려고 영화를 시작을 했고, 그것을 포기한 건 아니기 때문에 힘겹기는 하지만 그 끈을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한 번 해보고 싶다. 절충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만들겠다. (홍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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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김정 감독의 <경 Viewfinder>


김정 감독의 신작 <경>(viewfinder)은 다소 딱딱한 어투와 고도의 지식적 틈새를 이용하여 초반부터 스스로의 범상한 입지화를 거부하는데, 보는 이들에겐 어느 순간부터 신기하게도 이러한 난해함들이 방해로 작용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고전의 '거리'와 사이버 '세계'와 애니메이션의 '무대'를 상상적으로 넘어다닐 때 영화는 그것에 명확한 인식의 경계점을 긋지 않는다. 이것은 포스트모던한 사고라고도 볼 수 없다. 영화는 현대 사회에서의 통로를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절망하는 회유적인 정서를 깊게 깔고 가지만 그 비관적인 것을 결코 시선화하거나 확대, 재생산하지 않는다. 정서는 쓸쓸하나 그것을 담아내는 시선은 결코 관조적이지 않다. 이것은 영화 미학적인 실험이 목적인 영화가 아니다.
 

영화의 오프닝, 남강 휴게소의 간판이 보인다. 어둔 밤 고속도로 위의 한 차에 실려 그를 따라가던 카메라가 2차선 도로에서 깜박이등을 켜며 서서히 속도를 멈춘다. 순간적으로 헤드라이트 앞에 개 한 마리가 보이고 옆으로 같은 색의 비슷한 차가 무서운 속도로 스쳐 지나간다. 함께 달렸으면 몰랐을 괴물적 속도가 상대성의 원리로 재현될 때 이 흰 색의 차와 개에 투영된 우리의 근심은 마치 우리 자신에게로 전도되는 듯 하다. 차에서 내린 젊은 여자가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고 나서, 불도 켜지 않은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다 뒷문을 열고는, 남강의 풍경을 향해 걸어들어간다. 새벽의 풍경은 검지도 밝지도 않은 적막한 푸른 색이다. 이 어둠 속의 디지털 촬영기술의 미세함,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재현될 때 보는 자로서는 그저 놀랍기만 하다.

날이 밝아오자 여자는 모자를 쓴 안내원들이 일하는 관광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 인터넷으로 아르바이트 정보를 검색한다. 다시 길을 나서던 여자는 남자 '창(window)'과 우연히 스쳐지나간다. 이 '창'이란 이름의 남자는 IBM 노트북 하나가 전 재산인, 그야말로 디지털 유목민같은 행색을 하고 있다. 영화는 이 남자를 등장시키면서부터 종종 그의 관망적인 나레이션을 인서트하면서, 영화 자체를 마치 웹의 공간에 타이핑하는 듯이 밖으로 완전히 빠지는 프레이밍을 보이기도 한다. '창'을 통해 이 영화 자체를 window 시스템과 같은 '매체'로 다루려는 의식이 영화 속 인물들에게 종종 투영되기도 하는데 그의 혼잣말에 가까운 '대화', 혹은 이미지 프로그램을 이용해 사진 작업을 하는 여자가 인터뷰라는 명목상으로 진행하는 인터뷰에서 보이는 인터뷰이들의 '혼잣말(고백)'등에서 그러하다. 영화의 모든 대사는 타자(대상)가 없는 상태에서 오직 뷰파인더와 자신과의 대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자의 이름은 전경(前鏡)이다. 그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49제 후) 집을 나간 동생 후경(後鏡)을 찾아 나선다. 전경은 초반 휴게소에서 스친 전직 에니메이터이자 현 사이버 퇴마사를 자칭하는 남자와 이후에도 몇 번을 인상적으로 스쳐가고, 그녀가 찾는 후경과도 우연히 스쳐지나가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의 아이덴티티(ID)가 없는 상태로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영화는 디지털을 이용하여 사람의 자취를 찾는 것의 맹점에서 헤매인다. 안내 데스크에서 일하는 여자의 경우도 그러한데 그녀는 자신의 핸드폰 속 아바타와 소통하며 CMA통장까지 만들어 언젠가 이 도시를 벗어나 함께 아시아 하이웨이를 타고 새로운 세계로의 이주할 꿈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무언가를 찾고자(find) 그것을 들여다보고(view) 있다. 하지만 PC, 핸드폰, PDP, 네이게이터의 화면을 통해 찾으려는 사이버상의 좌표들은 찾는 자의 아이덴티티(ID)를 먼저 묻는다. 아이디가 없으면 말해주지 않는 진실들. 그것을 위해 만들어지는 가상의 아이덴티티(ID). 그 가상에게 전달되는 가상의 정보. 그들이 실제로 서로의 지표를 확인하고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부조리한 현상들. 영화는 아이덴티티를 확인받지 못한 채 정착하지 못하는, 안정된 위치를 결코 확보하지 못하는 메트로시티 속 현대인들의 고독, 그들의 정처없는 좌표를 그린다.
 
무엇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경(viewfinder)의 view+finder라는 단어 자체의 결합성. '보는 것(view)'과 '찾는 것(find)'의 결합. 거울(鏡)의 실재계와 상상계. 전경(前鏡)과 후경(後鏡). 결국 상상 이미지 속에서 찾아 헤매는 자아상. 마치 차이밍량의 영화를 떠올리게도 만드는 정체성이 부유한 상태에서 또 다른 곳에 존재할지 모르는 정체, 혹은 존재했었던 기원성의 정체를 찾는 행위로서의 영화. 고독과 불소통과 각자의 '창'에 갇힌 인물들. 그 '창'은 그들이 몸에 장착한 채 그들이 찾는 정체성과도 같은 경은 finder로서의 viewer가 아니라 결국은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이미지 거울같은 폐쇄적 창일지 모른다. 멀리 간 것 같은데 결국 돌아 다시 그 자리. 마치 자크 타티 영화의 거대한 교차로에서의 차들의 운동처럼 온통 거리로 나온 차량들의 트래픽 상태에서의 원형운동. 영화는 멀리 나아갈 듯 하다 막힌 지점에서 늘 턴을 한다. 정지, 그 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돌기, 전진과 후진. 들어가고 빠져나오고 창을 열고 스스로 창을 닫고 나온다. 스스로 충전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 늘 충전하러 들러야만 하는 휴게소, 충전소, 웹의 공간. 그곳들의 인간 군상. 구심점 없이 떠돌아다니다 아시아 하이 웨이로 들어서는 도로에서 일직선으로 늘어선 밤의 자동차들. 그들의 행렬. 그 곳은 또 다른 세계를 열리게하는 길목일까.

디지털 유목민. 도시의 플라네르(flaneur). 구경자(영화사 '구경'의 첫 작품)로서의 인물들은 과거로부터의 죽음을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절망의 현재를 벗어나려 미래의 세계를 재탐색하려는 듯 끊임없이 리셋(reset)하며 스스로를 새롭게 디자인하는데 몰두한다. 이들의 이러한 행위는 마치 과거라는 구심점을 두고 계속 같은 자리를 빙빙도는 부유하는 시간, 즉 단 한번도 현재와 만난 적이 없는 미래의 까마득한 시간을 불러들인다. 영화에서 전경이 어느 순간 영화의 구가지에서 만나는 낯선 이미지는 까마득한 과거이면서 동시에 미래에서 들여다 본 현재의 유곽화된 거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영화의 현재, 그 현장의 한 가운데가 아니라 영화 바깥에서 미래에서 도착한 자로서 과거의 영화를 지켜본다. 그것은 우리가 영화에서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자취들을 찾고 있다는 무의식적인 증거이다. 도시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우리는 도시 속을 여행한다. 그러나 도시는 우리가 찾는 것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도시는 현재라는 구심점으로부터 우리를 시공간적으로 끊임없이 내몬다. 도시 속의 여행자인 우리들은 사회의 구심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아무 것도 찾지 못한 채 그저 집을 나갔다 다시 돌아 오는, 그런 빙빙 도는 운동으로 밖에 작금의 정처 없음과 좌표 없음을 증명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오늘도 거대한 무리에 속한 채 그들과 함께 끝임없이 어딘가로 가지만 결국 갈 곳이 없다. 우리는 그 '정처 없음'의 자리로 매번 되돌아 온다.

현재의 자취가 없는 우리는 그것을 찾는 여행을 하게 된다. 현재의 부유함은 다른 시간의 장에 존재하는 존재들을 만나게 한다. 과거라는 사진적 형상으로, 지면의 땅 속으로 사라진 자, 곧 죽은 자는 오늘의 실재적 흔적이 없다. 우린 현재 속에서 상상적인 디지털 창을 그려넣고 결국 그들을 찾는 여행을 떠난다(떠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상상의 창을 통해서만 현재의 단절된 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의지로서의 상상력을 실행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을 통해서만 과거의 존재를 찾고, 채 애도 못한 죽음을 애도할 수 있도록 허락된다. 결국 우리 모두는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로 이주할 꿈을 꾸는 디지털리스트들이 된다(되었다).

PC방에서 어머니의 추모제를 드리는 딸, 묻힐 땅이 없어 현재를 떠돌고 있는 과거의 유령들. 한 번도 자리를 내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HD카메라를 들기 시작한 이 땅의 작가 감독들. 완전히 매혹된 영화를 PC방에서 홀로 화면을 향해 밤새 써내려가고있는 지금 내 모습까지. 우린 지금 어쩌면 다 같이 주인없는 땅. 나 없는 내 인생. 바로 그 거울을 보고 있다. 나는 결국 이 영화에 설득당했다. 민숭 맨숭한 채 영화를 보다가 후반부에서 눈물이 흘렀다. 화면 안엔 전경과 후경이 그토록 부정하려 했던 과거의 정신병적 어머니도, 과연 인간의 정서가 남아있을까 의심스러웠던 오타쿠적 디지털리스트들도 아닌, 완전히 발가벗겨진 스스로의 현재상이 있었다.



김정 감독의 전작 다큐멘터리에서 다룬 이 땅에서 잊혀진(미발견의) 과거(여성의 구술로써의 역사), 그 기원의 팩트들이 사이버의, 가상의 세계에서 만나 사장되고 단절된 현재의 역사성을 카메라 트래킹으로써 '이야기한다' 카메라를 실은 전경의 차는 오토바이에 탄 후경의 뒷 모습을 발견한다. 후경이 전경을 돌아다본다. 그들은 유리를 사이에 두고 아무런 발견도 하지 않으나 핵심은 그들의 시선이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마주친' 것이다.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의 앞과 뒤를 탐사하는 카메라, 앞에서 리드하다 뒤로 빠져나와 지켜보는 그 카메라의 움직임. 제 각자의 층에 존재하는 시간성과 시대의 고유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것 자체를 사유하려는 움직임. 이 '영화의 움직임'이 아름답지 않다면. 도대체 현재, 이 도시 속에서 무엇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김시원 영화비평웹진 ‘네오이마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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