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4일, <아메리카의 밤> 상영 후 지난 달에 이어 두 번째 “오픈 토크”행사가 마련되었다. 영화에 대한 공감,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감독으로서의 어려움과 그럼에도 작업을 계속 이어가게 만드는 영화의 힘에 이르기까지, 네 감독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일부 옮긴다.

 

 

변영주(영화감독): 오늘은 김종관 감독, 이혁상 감독을 모시고, 트뤼포의 <아메리카의 밤>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먼저, 오늘 영화를 보면서 가장 와 닿았던 장면은 어떤 장면이었나?

김종관(영화감독): 공감도 있지만, 어쨌든 트뤼포 감독님은 저랑 사정이 많이 다르다보니 동경의 대목도 있다. 대부분은 영화를 찍는 시간이 아니라 영화를 찍기 위해서 기다리는 시간에 대한 고민이 많고, 영화를 찍을 때는 항상 찍는 순간의 즐거움이 있다. 영화에서 감독이 배우를 달래면서 하는 말이 있다. “영화는 야간 기차 같다. 네가 살아서 숨 쉴 수 있는 장소는 여기니까 도망치지 말고 여기서 어떻게든 해봐라”는 말이 와 닿았다. 영화를 찍어야한다는 강박에도 공감이 간다.

이혁상(영화감독): 계속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작업해왔기 때문에, 극영화 현장 분위기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극영화감독들은 참 난잡하다는 느낌이었다.(웃음) 영화판에 여러 가지 일들이 많지만, 그중에도 서로 정분나는 일들이 참 많다.

이해영(영화감독): 영화를 만들 때 감독들의 악몽과 무의식, 현실적인 부분 같은 것들이 잘 표현된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트뤼포니까, 프랑스에서 인정받으며 좋은 시스템에서 영화를 찍던 감독이니까, 사실은 영화 속의 고민이나 갈등이 굉장히 우아하다. 여기에 냄새로 따진다면 땀 냄새, 토한 냄새, 발 냄새 같은 걸 섞어 놓으면 충무로랑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다.(웃음)

 

변영주: 재밌게도 하필 오늘 이 영화를 보는 동안 트윗으로 메시지가 왔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고등학생인데, 영화감독이 되려면 19살에는 영화의 어떤 걸 공부해야 하냐고 질문을 보내왔다. 그래서 “19살에는 영화를 공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라고 답했다.(웃음) 오늘 이 자리에도 어쩌면 앞으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김종관 감독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언제였나?

김종관: 어렸을 때 영화를 보고나면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면서 공상하곤 했다. <그렘린>을 보면 <그렘린2>의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혼자 만들 거보고, <슈퍼맨>의 속편을 만들어본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이해영: 그렇게 블록버스터를 상상하고서 인디영화를 만드셨다.(웃음)

김종관: 영화를 재밌게 보는 것에서 어느 순간 영화를 만들기에 대한 욕구로 자연스럽게 옮겨가는 것 같다. 20대 초반에 필름 워크샵을 한번 했었다. 한 달 동안 워크샵에 참여하면서 어깨너머로 영화를 배웠다. 그 때 재밌게 했던 기억에서 어떻게 넘어오게 되면서, 20대 후반부터는 나의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이해영: 영화과에 비교적 늦게 들어간 편이다.

김종관: 그 전에는 장사도 하고 이것저것 다른 일을 했었다. 그런 일들이 다 잘 안되고, 뭔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하고 싶은 게 아니니까.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었다.

 

변영주: 이혁상 감독은 ‘연분홍치마’라는 다큐멘터리 만드는 독립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연분홍치마’의 첫 작품인 <마마상> 때부터 함께 했었나?

이혁상: 그렇다. 사실 애초에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인 것은 아니었다. 다들 제작을 전공한 것도 아니었고, 이론과에서 비평을 공부한 사람들이었다. 세미나 팀을 시작하면서 여성주의와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세미나만 하다보니까 뭔가 실천적인 것도 해봐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연분홍치마’를 만들게 되었다. 처음엔 카메라를 든다는 것 자체를 상상도 못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현장에서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실태보고서 나 자료집 같은 걸 만들게 되는데, 이걸 꼭 글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카메라로 다큐멘터리를 찍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처음 만든 작품이 <마마상>이었다.

 

변영주: 이해영 감독은 배우랑 결혼하고 싶어서 영화감독이 됐다는 게 사실인가.(웃음)

이해영: 특별하게 할 줄 아는 건 없지만, 막연하게 나에게 있는 잡다한 재능들을 모아보면 그나마 영화판에서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감독이 돼서 유명해지면 좋은 여배우와 결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웃음) 변영주 감독은 ‘연분홍치마’와 비슷하게 다큐멘터리의 길을 걷다가 갑자기 극영화로 전환하셨는데..

변영주: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처음에는 ‘장산곶매’에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현재 영상원의 김소영 교수님과 함께 사무직 여성노동자에 관한 중편극영화의 시나리오와 촬영을 했었다. 그러니까 다큐로 시작을 했던 건 아니었다. 그리고 나서, 김동원 감독을 만나 다큐멘터리를 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만든 첫 작품이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었다. 그 영화를 만들고 나서야 갑자기 감독이 되고 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이해영: 김종관 감독도 말했지만 사실 영화를 찍는 시간보다는 기다리거나 준비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다. 스스로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의식이 별로 없다가, <천하장사 마돈나>가 개봉하고나서 극장의 마지막 상영 때 혼자 영화를 보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더라. 그때부터 ‘나는 감독이다’ , ‘감독이니까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채근한다.

김종관: 처음에 영화를 시작했을 때는 영화가 굉장히 중요했다.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서 시작했기 때문에 스스로 배수진을 치고 뭔가 결과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자의식은 별로 없었다.

 

 

이해영: 이혁상 감독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다.

이혁상: 고민을 하고 있는데, 당장은 <두개의 문> 때문에 워낙 정신이 없는 상황이다. 한 번 더 게이 영화를 더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로 한 편 정도 더 작업하고, 다큐멘터리 뿐 아닌 다른 길도 모색해보려고 한다.

변영주: 영화촬영을 하면서 가장 끔찍했던 기억이 있나? <아메리카의 밤>에서처럼, 스크립터와 배우가 사랑에 빠져서 감독은 안중에 없게 된다면, 감독 입장에서는 정말 끔찍할 것 같다.

김종관: 영화촬영 현장에선 연애가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웃음) 적은 예산의 영화를 해오다보니까 항상 무슨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래서 처음의 계획대로 촬영이 진행되는 게 아니라 항상 무언가로 떼우게 되고, 그러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허덕허덕 하는 게 제일 스트레스다.

이혁상: 다큐멘터리는 일단 주인공들과의 거리 설정이 중요하다. 특히 <종로의 기적>은 스스로도 또 한 명의 주인공으로서 등장하기 때문에, 다른 주인공들과의 거리 관계가 힘들었다. 촬영 중간에는 주인공 중의 한 명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 때 정말 힘들었다. 2~3개월 동안 방에 틀어박혀서 악몽을 꾸고 아무것도 못할 정도였다.

이해영: 뒤늦게 고백하자면 예전에 감독을 해보니까 어떠냐는 질문에, 너무 귀찮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때는 농담이 아니라 진짜였다.(웃음) 감독에게 계속 모든 것을 물어오고, 감독은 계속해서 일일이 선택해야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공감했던 것이 악몽장면인데, 촬영을 하면서 실제로 악몽을 정말 많이 꾼다.

변영주: 영화현장에서는 정말 사사로운 것까지 감독에게 물어본다. 감독은 모든 걸 대답을 하면서 가야한다. 그 때 감독이 잘 대답을 못하게 되면 스탭과 감독 사이의 신뢰에 균열이 가게 된다. 언제가 선배감독으로부터 배운 요령은, 감독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그럼 너는 어떤 게 더 좋은데?’ 되물어보면 된다.(웃음)

 

관객1: <아메리카의 밤>에서 배우들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매고, 감독은 악몽 속에서 힘들어 할 때, 스탭들은 묵묵히 작업을 하고 있던 장면이 인상 깊었다. 영화감독이라면 아마도 ‘영화라는 게 대체 뭐길래’라는 물음을 힘들 때마다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이해영: 그 질문은 때로는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수많은 스탭들이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영화가 뭐길래 이들은 청춘을 다 바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찰나적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가 뭐길래 이렇게 터무니없는 낙관을 하게 만들고, 이렇게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치유와 상처가 그 안에 다 있는 것 같다. 영화의 대사 중에 영화가 삶보다 훨씬 조화롭다는 말, 우리는 영화를 해야만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가 핵심인 것 같다.

 

관객2: 감독님들께서 힘들 때 마다 꼭 찾게 되는 자신만의 영화 목록이 궁금하다.

김종관: 시기마다 좀 바뀌기는 한다. 지금은 예전처럼 반복해서 보는 영화는 없는데 가끔씩 보게 되는 건 영화에서도 나왔던, 장 비고의 <라탈랑트>이다. 관객으로서 깊은 교감을 느끼게 되는 영화다.

이혁상: 새벽에 <섹스 앤 더 시티> 시리즈를 보면서 최면에 걸리듯 잠이 든다.(웃음)

변영주: <스타워즈> 시리즈와 <아라비아 로렌스>, 50~60년대 할리우드에서 대작 붐이 일어났던 시기의 대작 영화들을 찾는다.

관객3: 어떤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될 때 갖는 기준이 궁금하다

이해영: 그런 생각이 들기 까지는 123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는 거 같다. (웃음) 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재미라는 점이 크다.

이혁상: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와서 그런지, 사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도 기록하지 않은 시간과 역사를 내가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종로의 기적>도 그런 출발에서 시작했었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더라도, 픽션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역사를 기록하고, 시간을 기록하는 기분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김종관: 앞의 두 얘기와 다 연결된다. 처음에 단서처럼 오는 건 기록인 거 같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나 계절, 그때의 감정을 편지를 쓰는 느낌으로 담아낸다. 모든 단서들은 차근차근 오는 것 같다.

변영주: 어떤 이야기를 접했을 때 혼잣말처럼 메인플롯을 만들어본다. 만들어보는 순간 어떤 메인플롯이 재밌다, 그리고 그 플롯 안에서 이런 장면을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이런 장면이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 최용혁(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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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시네마테크 오픈토크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시네마테크 오픈토크’의 두 번째 시간은 영화 감독들의 내밀한 삶에 관한 것입니다. 영화촬영 현장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우리가 극장에서 보는 영화들이 어떻게 이런 무질서한 현장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지 의아해하곤 합니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아메리카의 밤>에서 그런 영화촬영 현장의 내막을 보여주며 그 장소가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서로 입을 맞추면서 시간을 보내는 영화의 세계’라 말합니다. 영화 작업은 스크린의 세계와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입니다. 종종 영화 감독들은 배의 선장이나 비행기의 조종사로 비유되곤 합니다. 그들이 어떤 항로로 진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러나 관객으로서의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게다가 항해의 흥분과 기쁨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습니다. 트뤼포는 영화는 야간 열차처럼 그저 전진하는 것이며 영화 감독들은 결국 일 속에서, 영화라는 작업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운명이라 말합니다. 영화 감독의 삶은 그들의 영화보다 훨씬 가려져 있고, 그렇기에 두 시간 동안 보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반년, 혹은 수년의 시간을 어떻게 소진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6월의 오픈토크는 스크린의 뒤에 숨겨진 영화 감독들의 삶의 내막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입니다. 그 비밀스런 자리에 많은 분들을 초대합니다.

 

일시: 6월 24일(일) 14:00 <아메리카의 밤> 상영후

장소: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진행: 변영주 감독(<화차>), 이해영 감독(<페스티벌>)

초대손님: 김종관 감독(<조금만 더 가까이>), 이혁상 감독(<종로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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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 기념 시네마테크 오픈 토크 지상중계

 

지난 5월 17일 저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개관 10주년을 기념한 ‘시네마테크 오픈 토크’에 참여하기 위한 5인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서울에 시네마테크를 허하라! - 내가 사랑한 영화들, 극장의 추억”이란 주제로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는 이날 행사 진행은 시네마테크의 오랜 친구인 변영주 감독과 이해영이 감독이 맡았고 초대손님으로 진행자의 절친인 김태용 감독을 비롯해 시인 심보선 씨, 그리고 뮤지션 정바비 씨가 함께 했다. 1부 프로그램으로 파리의 시네마테크를 최초로 설립한 앙리 랑글루아를 다룬 다큐, <시티즌 랑글루아>가 상영되었고, 본격 오픈 토크는 상영 후에 이어졌다. 평소 아트시네마의 경직되고 무거운 분위기를 넘어서 자유롭고 장난스러운 농담과 영화관에 대한 애정, 소소한 추억이 오가며 관객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변영주(영화감독): 오늘 진행을 맡은 저와 메인 MC를 맡은, 최근 방송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이해영 감독 외에 특별히 초대손님으로 2~30대의 젊은 여성들의 심장을 두드리는 뮤지션, 정바비님과 심보선 시인님, 그리고 김태용 감독님을 모시고 시네마테크 개관 10주년 기념 오픈 토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도록 하겠다.

이해영(영화감독): 우선 1부 행사로 <시티즌 랑글루아>를 상영했는데 다큐 다 보시고 나서 어떠셨는지 소감부터 듣고 싶다.

정바비(가수, 작곡가): 영화에 고전 영화 장면이 시의 적절하게 삽입되면서 영화 만드는 분들에 대한 애정이 많이 묻어났다. 만약 내가 영화인이라면 이 메타적인 작품에 감동 받으면서 봤을 것 같다.

심보선(시인, 사회학자): 저도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오늘 랑글루아에 대한 영화를 보니까 총을 들고 프린트를 지키는 애정이 내 영화의 애정에 비할 바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태용(영화감독):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영화가 사실 가치가 있어서 좋아 한다기 보단, 영화를 좋아하게 돼서 가치가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저 분이 영화가 아닌 시나 나무를 만났어도 소중히 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지키고,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열정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해영: 영화 속 ‘시간은 곧 공간이다’라는 내레이션이 인상적이었다. 반대로 서울에는 시간을 담고 있는 공간들이 철거가 진행되면서 많이 사라졌는데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변영주 감독님은 많이 괴로하시면서 보시던데.

변영주: 괴로워하지 않고 재밌게 봤다. 영화를 공부하시는 분들이라면 영화 속 인물들이 어디선가 들은 인물들이지 않나. 영화를 열심히 보던 시기에 힘들게 보았던 작품들이 나오면서 두근거린 느낌도 나서 좋았다. 이 자리는 사실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원했던 것보다 대단한 자리였다. 초대 손님들도 많고 저희가 축제처럼 관객 분들을 무대로 모시면 애정에 가득 차서 시네마테크 나가면서 관객회원으로 등록 하게 하고 싶었다. 한 마디로 부흥회 느낌(웃음), 어떻게든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데울 수 있었음 했는데, 영화로 데운 것 같다. 심보선 시인에게 영화를 어찌 사랑하게 되셨는지 묻고 싶다.

심보선: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영화관에 데려갔고, 어두운 곳에서 아버지가 저를 데려 가셨는데 눈앞에서 스크린이 환한 빛처럼 펼쳐졌다. 그게 <메리 포핀스>였다. 영화라는 매직을 어린 아이가 처음 경험한 것. 어두워서 무서워하다가 눈앞에서 환상적인 장면이 펼쳐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경이로워하며 봤었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환상적 사건으로 영화적 첫 경험은 마술이었다. 부모님이 영화를 좋아하셔서 TV의 영화 프로그램 있으면 보여줬다.

이해영: 처음 영화가 <메리 포핀스>라니 참 시적이다. 정바비씨는 어땠는지?

정바비: 저는 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많이 봤는데, 가장 좋아하는 건 음악이었고 영화는 엔터테이먼트였다. 2004년 대학생 시기에 아트시네마의 에른스트 루비치 회고전을 교수님이 보라고 추천하셔서 보러왔다. 그레타 가르보가 처음으로 웃는 스파이 영화 <니노치카>였는데 극장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였다. 이를 계기로 영화에 대한 생각들과 감정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그래서 집에서 팜플렛을 찾아봤는데...(2004년 11월 에른스트 루비치전 팜플렛 꺼내며) 재밌는 말이 있었다. 트뤼포가 말하길 ‘예술가는 두 종류가 있는데 관객이나 독자 없이도 잘 할 수 있는 예술가가 있다면 반대로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보람을 느낄 수가 없는 감독이 있다. 루비치는 후자에 속하는 감독이다’고 했다. 저도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라 루비치가 와 닿았다.

 

 

이해영: 김태용 감독님은 영화와 첫 사랑에 빠진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김태용: 처음 본 영화는 <킹콩>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 사촌형이 시내 나가서 여자 친구랑 영화 보는데 데리고 가게 된 거다. 그 때 기억에 영화는 너무 무서웠다. 지금 보면 그렇게 많이 무섭진 않지만 신기하고 마술적인 느낌이었다. 어리석게도 다큐와 극영화의 구분도 못했다. 근데 계속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은 안했고 시네필로 자라지 못했다. 대학교 때 극장의 경험이 영화를 하게 만든 건 아니고, 선배들이 영화를 찍는 현장에서 조연출로 일했다. 연출부 일을 돕는데 신비한 경험이었다. 카메라로 영화를 찍고, 현상을 하는 메카니즘에 빠져서 영화를 하고 싶어 의식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나는 비디오 세대로, 문화학교 서울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몇 번이고 복사한 저화질의 영상을 보면서 영화를 꿈꿨다.

이해영: 변감독님은 어떠신지? 맞먹고 막대하긴 하는데 저보다 엄청난 선배님이시다. 대화를 하다보면 영화 관련 서적에서 본 것 같은 역사적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겸상하면서 들을 기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렇게 들을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변영주: 방금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1992년 93년 사이에서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다큐멘터리가 뭔지 모르고 만들었다. 첫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어떤 누구보다 이 영화가 끔찍하다는 걸 알았다. 그 뒤 정말로 감독이 되고 싶어졌다고 결심했다. 문화학교 서울 이전에는 유학한 선배들이 지령을 받은 것처럼 비디오를 카피해서 소포로 보내서 복사본들을 계속 만들었다. 저는 <미치광의 피에로>가 흑백영화인줄 알았을 정도였다. 근데 일본의 다큐 영화제에서 초청해서 많은 다큐를 접했다. 그러면서 영화사적인 작품들 중 내가 본 게 없구나. 과연 나는 감독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결혼식 비디오 찍고 알바를 해서 돈을 모아 파리로 갔다. 파리스코프를 사서 영화를 하루에 8편에서 9편 보러 다녔다. 아프리카 영화를 불어자막으로 볼 때는 마음대로 줄거리 상상을 하면서 봤다. 두 달 동안 미치도록 영화를 보고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젠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낮은 목소리>를 만들었다. 지금은 영화제목을 기억 못하지만, 그렇게 많은 소극장 시네마테크들에서 다양한 영화들 중 뭘 봐야할지 고민하고 아쉬워했다. 그 시간이 제가 아직까지도 영화를 만들고 있는 가장 큰 힘 중에 하나다. 만약에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낮은 목소리> 만들 때 나의 부모님들이 누구인지 모르고 만들었을 거다. 이 감독님은 감독이 되고 싶다고 결심했던 시기가 언제인지?

이해영: 일단 영화에 사랑에 빠지게 된 건, 80년대 초등학교 때 MTV를 보면 전 세계 영상언어가 만국 공통어일 때,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가 <E.T>다. 어려운 영화는 아니지만 어려웠다. 다시 극장에서 필름으로 보다가 영사사고가 일어나서 중간에 끊겼었다. 영화가 마법 같다고 다들 얘기했지만 영화의 물리적인 면을 깨달았다. 청소년기에는 홍콩영화 전성기라 동시상영관에서 <천녀유혼>, <첩혈쌍웅>, <영웅본색> 을 수십 번 봤다. 그러면서 영화랑 친해졌다. 80년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도 좋아했는데, 지금보다 그 시기의 영화들 이 창작할 때도 많은 자극을 준다. 그러면서 특별히 영화기 멀리 있거나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화를 해볼까 마음먹을 때도 큰 결단이 필요하진 않았다. 김 감독님과 반대로 요즘 저는 영화가 무섭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극장에 관한 추억이라면, 동시상영관 의 풍경은 엄청났다. 콘서트 장에 온 것처럼 영화에 열광하면서 봤다. 아이돌 콘서트에 온 것 같은 뜨거운 분위기가 영화가 누군가를 열광시킬 수 있구나하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극장에 관한 인상적인 기억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 정바비씨부터 말씀해 주신다면.

 

 

정바비: 아트시네마가 박물관이거나 성스러운 공간이지만, 평소에 영화하시는 분들이 젠체하는 느낌을 받는다. 데이비드 린의 <밀회>를 보는데, 한 아저씨의 징글벨 멜로디의 벨소리가 울렸다. 세 번 넘게 흘러나오는데도 아무도 저지를 안 해서 결국 그 아저씨에게로 가 핸드폰을 꺼내서 벨소리를 껐다. 그 아저씨는 약간 취한채로 깨어 있어서 공포스러웠다.

심보선: 저는 영화를 혼자 많이 보러 다녔는데, 극장에서 담배를 피면서 군복을 입고 보니 누가 뭐라 하지 않았다. 저한테는 군대에 있을 때나 혹은 대학교 다닐 때도 유일한 문화생활이었다. 사실은 그 때는 영화 보러 혼자 가는 건 이상하게 봤다.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런 공간은 혼자 편하게 보고 쏙 빠져나올 수 있는 공간이다. 멀티플렉스는 이벤트나 데이트 공간으로 혼자 가려면 용기를 내야한다.

이해영: 멀티플렉스는 고기 집에 가서 혼자 삼겹살 먹는 느낌이고, 여기는 기사식당 같다.

변영주: 전 멀티플렉스도 혼자 자주 간다.

김태용: 저도 극장 혼자 많이 간다. 혼자 가서 영화 보는 것 좋아하는 편이고. 좀 다른 이야긴지만 <가족의 탄생>을 개봉하고 그 영화를 곧 내릴 것 같아서 극장에 혼자 가서 봤다. 너무 촌스럽게 마지막 크레딧 올라가면서 눈물이 났다. 사람들 이름 올라가면서 이 영화가 내린다는 생각에 뭉클했다. 불 켜지고 혼자 울고 있는데 뒤에서 당시 씨네 21 기자 분이 나를 알아보더라. ‘감독님 뭐하세요, 우세요? 자기 영화 보고 우세요?’ 묻는데 변명할 수 없고 부끄러워서 도망갔다. (웃음)

변영주: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개봉한 날 낮에 <화차>를 봤다. 제 앞에 계시는 아저씨가 전화를 받으셔서 영화가 아닌 그 분을 보게 되었다. 가서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영화 중간 이후를 그 분 때문에 보질 못했고, 끝나고 보니 극장에서 일하시는 분이신데 ‘감독님이 첫날 영화 보러 왔네?’라고 해서 황당했다.

김태용: 99년에 <여고괴담 2>로 데뷔했을 때 멀티플렉스가 없어서 제작진이 극장에서 영화를 제대로 상영하는지 돌아가면서 체크했다. 영등포에 명화극장 밑에 명화 나이트가 있는데, 극장가서 보니까 거의 대사도 안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틀어 놓았다. 영사기사에게 말씀드렸는데 소리를 크게 틀어놓으면 나이트에서 불평이 온다고 얘기했다.

이해영: 지금은 그런 일들이 많다. 요즘은 멀티플렉스라 상영관들 환경이 통제가 잘된다. <천하장사 마돈나>를 볼 때 사운드가 너무 안 들려 영사실에 올라갔다. 소리가 너무 작다고 얘기했는데 결국 싸운 적 있다. 무대 인사를 하러 부산에 갔는데, 덕환이랑 기다리다가 몰래 들어가 반응을 봤다. 한 중년 남자 분께서 덕환이 립스틱 바르는 장면에서 아저씨가 갑자기 ‘뭐꼬 변태아이가!’라며 화를 내서 조용히 나왔다.

 

변영주: 시간이 많지 않으니 이제 관객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야 될 것 같다. 나는 영화와 이렇게 사랑에 빠졌다 얘기하고 싶으신 분은 손들고 이야기를 해주시기 바란다.

관객1: 저는 48시간 국제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는데 행사가 있어서 보게 되었다. 전 세계 107개 도시에서 열리는 영화제인데, 48시간 동안 시나리오 작성해서 영화를 만드는 게임이다. 올해 서울에서도 준비하고 있고, 10월 19일에 시작하여 누구나 출전할 수 있다. 시작하기 15분 전에 주인공 이름, 직업, 들어 가야하는 대사와 소품을 주고 촬영 직전에 장르를 추첨해서 맞춰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다.

이해영: 영화가 순발력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데. 순발력이 왜 가장 중요한 기준인지?

관객1: 순발력을 측정한다기보다는 잠시 쉬고 있는 감독님들에게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행사다.

변영주: 지금까지 영화에 대한 사랑과 극장의 추억 대해 얘기해보았으니 다음은 관객의 입장으로서 개선되어야할 점과 시도하면 좋을 것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도 듣고 싶다.

정바비: 개인적인 로망으로, 같이 영화를 봤던 여성분과 또 다른 장소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만남, 애프터에 대한 판타지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유도하는 장치나 테크닉이 필요한 것 같다. 영화관에서 우연히 만난 분과 잘 된 경우 있지 않는지?

관객2: 관객 분이 인터뷰를 할 때 아트시네마에서 연인을 만났고 다시 여기서 헤어지셨다고, 그래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이 아트시네마 밖에 없다고 말씀을 했었다.

이해영: 몇몇 대도시들의 시네마테크 전용관에 가면 라운지가 잘되어있어서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다. 건전하게 영화에 대해서 토크가 가능하고 네트워크가 관객들끼리 생길 수 있는 환경인데, 아트시네마 로비에 있다 보면 앞의 공간이 잘 활용이 안 되는 것 같다.

변영주: 정바비씨의 로망이 시네마테크에게 필요한 것 같다. 슬쩍 맞은편에 앉아서 영화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같이 밥을 먹으러 가는, 그런 애프터가 가능한 공간이 시네마테크에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심보선: 얘기를 듣다보니까 정바비씨에게 얘기하고 싶은 장면이 있다. 극장 앞에서 친구랑 커피 숍에 앉아있는데 밖에 비가 오고, 할머니가 곱게 단장을 하시고 우산을 쓰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극장 앞을 계속 서성이기 시작하는데 마치 스텝을 밟고 있는 느낌이었다. 영화가 시작했는데도 친구랑 같이 그 할머니를 걱정했었다.

정바비: 가사가 될 만 한 이야기인 것 같다. 사실 심보선 시인님의 팬이다. 시낭송회에 예전에 간 적이 있었는데, 시 낭송회는 지금 분위기보다 더 많이 무겁다. 좀 힘들었던 경험으로 바로 앞에 앉아있던 남자분이 시낭송회에서 빵을 꺼내 먹었다. 그 옆에 있던 일행분이 움직여서 말리는 줄 알았더니 음료수를 꺼내서 주었다. 순간 너무 웃겨서 손톱으로 누르고, 혀 깨물고 죽은 사람 생각하고 그랬는데...이 자리에서 말씀 드리고 싶었다.

 

이해영: 심 시인님은 극장에 바라는 게 없으신지?

심보선: 비슷한데, 학교 다닐 때 씨네꼼이라는 영화동아리를 만들었었다. 같이 한 황동엽이라는 친구가 그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감독의 길로 들어섰고 <도가니>를 만들었다. 그때 씨네꼼의 목표는 영화를 보고 같이 얘기하고 공부하자였다. 영화를 통해서 우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홈커밍 데이라고 해서 갔는데 영화를 보고 함께 나누는 공동체적 문화가 깨졌다. 사실 공간적으로 바깥에 테이블을 놓고 배치한다고 해서 될까 의문이다. 요새만큼 토크가 많은 시대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토론자들은 무대 위에, 관객들은 아래에, 객석은 꽉차있지만 교류가 없는 게 전반적인 경향이다. 그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을 해야할 것 같다. 다른 장르들도 마찬가지지만. 그런 고민을 이 공간이 좀 해줬으면 좋겠다.

변영주: 공간이 만들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공감하고 이야기 나누는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셨는데, 두 분이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해영: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많이 들으셨을 거다. 정책 문제와 영화인들 참여가 문제지만, 사실 교류가 가능한 가상의 공간에 대한 갈증을 공유하는 것을 잊지 않을 거다. 이제 자리를 마감해야 할 것 같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자리를 마무리하면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한다.

김태용: 아까 말처럼 시네마테크 분위기가 무거운데 이 분위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다른 극장에서는 혼자 영화보고 나오지만 여기 시네마테크에서는 관객들을 한번 보게 되는 습관을 보게 된다. 그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끼리의 동질감을 느낀다. 10주년을 축하하고 이후 10주년을 기획하는 자리인데 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가에 대해 많은걸 느끼게 해서 좋았다. 현재 시나리오를 쓰고 있지만 언제일지 기약은 없다.

정바비: 언니네 이발관 1, 2집에서부터 줄리아 하트, 바비빌, 가을방학까지 활동하고 있는데, 더 많은 교류를 했으면 좋겠다. 아까 그 사연을 보내주시면 참고하겠다.

심보선: 우울한 상황은 두 가지, 시를 못 쓴지 너무 오래됐거나 혹은 영화를 못 본지 오래되었을 때다. 비록 모든 관객이 아는 친구는 아니지만 좋은 영화에 대해서 같이 감동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공간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세분 감독님한테 좋은 영화 계속 만들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영화 없으면 저는 죽는다.

 

김태용: 영화 만들고 영화를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몸담은 곳이 생각보다 좋은 곳이라는 걸 극장에서 느낀다. 그 점에서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극장에서 많이 뵈었으면 좋겠다.

이해영: 저도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 식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변영주: 마무리를 하자면, 서울아트시네마가 시네마테크로서 좌석수가 작아져도 상관없으니 보다 더 많은 분들이 찾아오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부에서 시네마테크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오늘을 시작으로 아트시네마가 10주년을 넘어서서 어떻게 성장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을 것 같다. 5월 30일부터 인디포럼 영화제가 시작된다. 문득 랑글루아가 해임되어진 뒤 상황들이 흡사 6년 전 정부가 새로 만들어지고 문화부 장관이 바뀌면서 발생한 일들이 떠올랐다. 인디포럼은 소송비도 모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인데, 관객 분들이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2012년도 독립영화가 어떤지 열심히 봐주는 거다. 롯데시네마 피카디리에서 하니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아무튼 어느 순간 관객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어떤 정책이 와도 신경 안 쓸 수 있고, 올바른 문화들이 만들어질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리: 윤서연(관객 에디터) | 사진: 최미연(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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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이해영 감독과 배우 신하균이 추천한 <부기 나이트>의 상영과 시네토크가 있었다. 이례적으로 현장예매가 시작한 당일에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을 남긴 만큼 현장 분위기 또한 떠들썩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시네토크는 팬 미팅의 분위기보다는 진지한 논의의 자리였다. 다소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시네토크 마지막까지 들뜬 분위기에서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 현장을 옮긴다.

 

허남웅(영화 칼럼니스트) : <부기 나이트>를 추천한 이유에 대해 듣고 싶다.

이해영(영화감독) :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캐치프레이즈가 '이것이 영화다!'이고 그것에 관한 영화를 추천해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연스럽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떠올랐다. 그의 모든 작품들이 훌륭하지만 <부기 나이트>라는 영화가 가장 영화적인 유희를 주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모던함이나 기술적 완성도가 훌륭한 지점들을 스크린으로 보면 즐거운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추천했다.


허남웅 :
신하균 배우님께서도 이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언제 이 영화를 처음 보셨고 어떤 점에서 좋으셨는지, 어떤 배우의 연기가 좋았는지도 궁금하다.

신하균(영화배우) : 90년대에 봤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많이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오늘 다시 보니까 새롭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배우다 보니까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 깊었고. 개인적으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스카티 역)을 좋아한다. 잠깐 나오지만 인상적으로 연기를 한다. 줄리안 무어(앰버 역)도 좋았다.


허남웅 :
캐릭터를 볼 때 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부분은 어디에 있나. <페스티발>의 장배는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신하균 : 특별히 어떤 점에서 캐릭터의 매력을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다. 장배는 모든 남자들이 갖고 있는 최악의 모습을 다 갖고 있는 인물이라 재밌을 것 같았다. 이런 역할과 이런 시나리오는 다시 못 만날 것 같았고 너무 재밌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


허남웅 :
이번에 친구들 영화제의 상영작을 보면 90년대 작품들이 많다. 감독님에게 클래식이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부기 나이트> 같은 경우는 현대의 클래식이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

이해영 : 난 영화 전공자가 아니다보니 보통 클래식이라고 하는 영화들은 으레 이런 영화는 봐야하니까, 교과서 같은 느낌으로 접한 영화가 대부분이다. 그 중에 내게 직접적인 감흥을 준 영화는 적었다. <부기 나이트>가 어떤 분들에게는 얼마 안 된 영화 같은 느낌일수 있지만, 제게는 나를 영화로 이끌었던, 끊임없이 영화적 로망을 갖게 만들고 영화를 지향하게 하는 영화다.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 <부기 나이트>를 봤고 그 시기부터 여전히 나를 채찍질하거나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영화로 작용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내게는 옛날의 대선배들이 만든 그 어떤 영화보다 어떤 맥락에서는 클래식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허남웅: <부기 나이트> 같은 경우 폴 토마스 앤더슨이 시나리오에 카메라 촬영 기법이나 어느 방면으로 찍을 것인지 등을 상세하게 적었다고 한다. 감독님께서는 현장에서는 어떻게 배우들과 호흡하셨는지 궁금하다.

이해영 : 나는 감독은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원했거나 꿈꾸고 있는 뉘앙스, 그림들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사람. 어차피 구현하는 것은 배우니까. 캐스팅을 하는 순간 그 캐릭터는 배우의 몫이고 감독이 할 수 있는 것은 미미하다. 그 뒤로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그 배우에게 내가 어떤 것을 원하고 있고 꿈꾸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는 정도가 최대치라고 생각한다.



관객1 :
<천하장사 마돈나>와 <페스티발>을 인상 깊게 봤다. 두 영화 다 인물들이 비주류, 언더라는 인식이 강하단 인상을 받았다. 감독님은 영화들을 통해서 비주류의 사람들을 위해 대변인으로서 영화를 찍으시는지 궁금하다.

이해영 : 대변인을 자청한 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냥 내가 생각할 때 내가 메이저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결핍된 삶을 살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안온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정서가 쉽게 나오진 않는다. 개인적으로 안온한 삶을 사는 다수의 사람들이 다수라는 이름으로 소수에게 폭력적인 시선이나 언행을 일삼는 행태에 대한 기본적인 짜증과 불쾌함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그러다보니 소위 마이너한 사람들을 챙겨보고 싶고 돌아보고 싶다.

관객2 : <카페 느와르>에 롱테이크가 많은데 찍을 때 특별히 어려움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해영 감독님도 영화에서 롱테이크를 많이 사용하실 의향이 있는지도 묻고 싶다.

신하균 : 롱테이크는 기술적인 부분이라 연기할 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연극할 때는 긴 호흡으로 한 시간 반, 두 시간 연기를 하니까. 내 입장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해영 : <부기 나이트>에 수려한 롱테이크가 많이 나온다. 롱테이크는 이렇게 써야한다는 훌륭한 레퍼런스를 많이 주고 있다. 오프닝 때 '부기 나이트'라는 네온간판으로 시작해서 길거리를 훑다가 클럽 안으로 들어와서 모든 사람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마지막에 더크 디글러까지 가는 그 롱테이크가 굉장히 수려하고 놀라운데, 그것이 이 영화가 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정서라고 생각한다. 사실 롱테이크라는 것이 어떤 영화에서는 나태함, 게으름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 감흥을 크게 주지 못하는 독립영화 같은 경우가 그렇다. 컷이 길어지면 손쉽게 예술영화처럼 보인다. 롱테이크를 잘 사용하고 싶은 의향은 물론 있다. 롱테이크는 감독의 연출력을 가장 쉽고 빠르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부기 나이트>나 <살인의 추억>의 논두렁 장면 같은 수려한 테크닉을 스스로 구사할 수 있단 자신감이 들기 전까지는 채를 썰 생각이다. 잘게 말이다.(웃음)




관객3: 연극 연출을 공부하고 있다. 연극의 경우 오랜 기간 동안 함께 연습을 해서 러닝타임 동안만 연기를 한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경우는 카메라로 찍고 같은 장면을 반복하기도 한다. 게다가 오랜 기간 동안 찍는다.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그 역할에 집중하는지 궁금하다.

신하균 : 연극과 똑같다. 충분히 대화하며 조율할 시간이 있다. 매번 테이크를 갈 때마다 디렉션을 주시면 맞춰서 가기도 하고, 새로운 느낌이 있으면 제안을 하기도 한다. 배우마다 다를 것이다. 감정이 끊기기도 하고 촬영 기법에 따라서 연기를 반복해야할 때도 있지만 경험을 하다 보면 기술적인 부분이라 적응이 된다.

관객4 : 두 가지 궁금증이 있다. 하나는 더크가 친구들과 가짜 마약을 팔러 갔을 때 리드(존 C.라일리)가 빨리 나가자고 할 때, 빨리 안 나가고 더크의 얼굴이 클로즈업 돼서 뭔가를 계속 생각하는 표정이 있다. 그 때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고 두 번째는 영화가 마지막에 가서 결말이 가족적인 분위기로 끝난다. 잭은 아버지, 앰버는 어머니 같고 나머지도 가족 구성원처럼 보였는데 왜 감독은 결말을 가족처럼 구성해서 끝냈을까 궁금하다.

이해영 :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희망은 신도 이 세상도 주지 않은, 모두에게 버려졌던 사람들이 아득바득 어떻게든 살아남겠단 의지력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실에 대한 인지력이 약간 떨어져 있고 그럼에도 정신을 추슬러서 이성을 되찾는 그 생존력을 표현하는 얼굴이 아니었을까. 사실 가짜 마약을 팔려는 신을 그대로 빼도 말은 된다. 푼돈을 벌려다 수모를 당하고 잭에게 눈물로 찾아가 사과를 한다. 이렇게 하면 굉장히 쉽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많은 투자자들이 그것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단순화시키지 않고 정말 바닥까지 한 번 더 보내고 그 바닥에서 어떻게든 살아서 나오려는, 끈질긴 악과 깡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또한 이 영화는 굉장히 명징하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이 든다. 가족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다. 영화 초반에 잭과 앰버와 롤러걸이 차를 타고 가다가 더크를 태우는 장면이 있다. 그 바로 다음에 왠지 마약을 하러 가거나 술을 먹거나 유흥업소에 갈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이들은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는다. 누가 봐도 엄마 아빠와 아들 딸 같은 일종의 대안가족 같은 방식으로 이 관계를 묶어주고 이 가족이 시대의 변화와 산업의 몰락, 사람들의 방탕함으로 붕괴 됐다가 다시 뭉쳐진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5 : 감독님께서는 훌륭한 감독이 되기 위해서 어떤 개인적인 노력을 하시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감독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이야기를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어떤 것을 얻으려고 하시는지 궁금하다.

이해영 : 특별히 노력하는 것은 없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귀를 많이 열어놓고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나이도 먹고 감각도 떨어져서 많은 것이 남아있지 않지만 그 정도의 노력을 하는 편이다. 영화는 감독과 배우, 스텝 그 사이의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스란히 내 입맛대로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한다고 했던 것은 감독이 이야기를 꾸준히 해야만 그 삼각구도의 한 꼭짓점이 뾰족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이 구도의 긴장감이 팽팽해지고 영화가 잘 나온다고 생각한다.

허남웅 : 시나리오가 굉장히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들었는데 앞으로의 계획과 오늘 관객들과 함께한 소감이 궁금하다.

신하균 : 굉장히 많지는 않다.(웃음) 검토 중이고 아마도 다음엔 영화를 하게 될 것 같다. 오랜만에 <부기 나이트>를 많은 분들과 같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정리: 이정아(관객에디터)

사진: 최용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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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만추'의 김태용 감독

10월의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가족의 탄생>의 피 한 방울 나누지 않는 가족처럼 ‘따로 또 같이'의 가치, 전혀 타인끼리 마음을 여는 감정에 주목하는 김태용 감독의 최근작 <만추>(2010)를 함께 보고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특히 이번 관객과의 대화에는 <페스티발>의 이해영 감독과 <발레교습소>의 변영주 감독,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이 패널로 참여, 김태용 감독의 영화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현장을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이 영화를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다루지 못한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먼저 영화에 대한 느낌들을 간단히 듣고 이야기를 진행하려고 한다.
김태용(영화감독):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드리고, 좋아하는 동료 감독들과 함께 하게 되어 기쁘다. <만추>를 상영한다고 했을 때, 이 영화를 가을에 보면 참 좋겠다, 혼자만의 어떤 생각들을 가지기에 좋은 시간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같이 참석한 분들을 보고 나니 그렇게 되기는 힘들겠고, 오늘은 술을 먹어야할 것 같다. (웃음)
이해영(영화감독): 이 영화를 오늘 세 번째로 봤다. 두 번째 볼 때까지는 좋은 영화인 줄은 알았지만 실제로 뭔가 가슴이 저릿한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여기서 보면서 가슴이 저릿하고 멜로적으로 감동을 받았다. <가족의 탄생>을 굉장히 좋아해서, 감독으로 살면서 저런 영화를 한편 정도 만들면 여한이 없겠다 생각할 정도인데, 오늘 <만추>를 다시 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감독으로서 축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영주(영화감독):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부터 탕웨이보다 현빈씨가 눈에 띄었었다. 통속적일 수 있는 연기를 통속적이지 않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의 전반부를 정말 좋아한다. 이 영화가 앞으로 어떤 감성을 전달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특히 좋아하는 장면 중에 하나는 처음에 탕웨이가 버스를 타고 올 때 길이 보이는 듯하다가 카메라가 오른쪽으로 카메라가 팬하면 탕웨이의 얼굴이 보이고, 그렇게 이어지는 감정들이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만추>의 김우형 촬영감독이 최근에 <고지전>를 촬영했는데, 화면의 압도적인 느낌을 받았다. 전투 장면을 넓게 잡아서 옆으로 쭉 따라가는 그 사이즈는 그야말로 결정적인 사이즈 같은 느낌이 있다. <만추>에서도 마찬가지로 보통 촬영을 할 때 배우의 섬세한 움직임을 따라가거나 명백한 화면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데, 어느 순간 기다리면서 바라볼 줄 아는 카메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경미(영화감독):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탕웨이와 현빈이 마지막에 버스를 타고 달리는데, 안개가 가득한 풍경을 원경으로 찍고 둘이 주고받는 대화가 목소리로만 들리는 그 장면에서 눈물이 터졌다. 내가 왜 여기서 눈물이 나는지, 도대체 언제부터 나의 감정이 쌓였던 것인지 질문하게 되면서 영화를 더듬어가며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힘이 있다. 대개의 영화에선 감동을 주기 위해 힘을 주는 포인트가 있기 마련인데, 김태용 감독님의 영화는 그런 것이 명확하지 않은데도 어느 순간 툭 터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

변영주:
편집을 할 때 감독으로서 가장 고민하게 되는 것은 ‘이 쇼트를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이다. 어디까지 보여줘야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감정을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인데, 한편으로는 <만추>에서 감독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너무 견고하게 쌓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태용: 말씀하신 것처럼 감독은 사실 단순하게 쇼트 하나를 고민하는 사람인 것 같다. 어디서 무엇을 찍을 것인가도 있지만,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 어디까지가 이 쇼트의 운명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만추>를 찍으면서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쇼트가 더 이상 이야기를 가지고 가야하는 의무감이 없어진 상태로 남겨진 그 순간에 대한 매혹이었다. 죽은 시간을 다루는 쇼트들에 대한 고집이나 집착이 생겼던 것 같다. <만추>가 말과 말의 행간처럼, 쇼트가 필요 이상으로 긴 지점들이 있는데, 어떤 의무감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 쇼트 때문에 생기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 것 때문에 어떤 분들은 이 영화가 약간 지루하거나 과잉되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 것 때문에 내가 감정을 가져야하는 지점을 지나서 어떤 감정을 갖게 되는 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김성욱: 김태용 감독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는 사랑하는 확실한 두 남녀의 헤어짐의 슬픔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아직 제대로 된 감정을 모로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정을 갖게 되는 영화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영화가 피부의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피부, 피부적인 접촉, 만남, 그 안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감정이 조금씩 피어오른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 감정이 피어오르는 상태에 도달하고 영화는 끝나는데, 바로 그 지점까지를 영화가 충실히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탕웨이가 모텔에서 금이 가 있는 문에 부딪혀보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마치 자기 몸에 뭔가 부딪혔을 때의 통증이라는 감각을 떠올리게 되는 듯하다. 어떤 사람과 새롭게 만났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 문에 금이 가고 깨져있는 그 상태와 굉장히 잘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사물들을 통해서 접촉, 만남, 감정을 이끌어간다.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굉장히 피부적인 방식으로 구축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일반적인 영화와는 다르기 때문에 어떤 분들은 이 영화를 굉장히 좋아할 수도 있고, 애매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경미: 감독과 영화가 닮아 있는 분이 있는가 하면, 전혀 다른 분이 있다. 김태용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왜 항상 마음이 흔들릴까를 생각해보면, 감독님이 영화 안에서 이야기하는 스타일이 실제로 감독님과 얘기 나눌 때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근조근 얘기하시는데 어느 순간 슥 빨려 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다. 한 가지 질문은, 두 남녀가 모텔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감정적으로 훅 들어오는 느낌이어서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 감독님이 어디까지 디렉션을 주셨던 건지 궁금하다.
김태용: 그 장면은 리허설을 많이 했다. 워낙 공간이 좁고, 그런 씬은 액션 씬과 비슷해서 합을 맞추고 거기에 맞춰 카메라가 준비해야 되기 때문에 감정대로 움직일 수 있는 씬이 되기는 어려웠다. 결과물은 우발적으로 벌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해야 하는 씬이었다. 이 영화는 하나의 질문을 숙제처럼 가지고 찍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어떤 식의 호감을 갖게 되는 때, 그것은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이 유혹이든, 연민이나 열망, 욕정, 혹은 사랑이든 뭐든 간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어떤 순간은 과연 어떤 것일까. 흔히 사랑 이야기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확실한데, 그 사랑을 막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믿기지가 않았다. 사랑한다는 감정 자체를 믿는 편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전제를 두고 시작되는 모든 이야기에 약간의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만추>는 사랑이 없는데,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방 안에서 물리적으로 부딪히고 하는 것도, 서로 좋아해서가 아니라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인 것이다. 나의 마음보다 몸이 먼저 가 있거나, 아니면 자신의 마음을 조금은 닫은 사람이 움직이는 데에 힘을 느끼는 것 같다. 그렇다보니 모텔 안에서도 둘은 그 안에서 어떠한 분명한 감정도 없다. 분명한 감정 없이 몸을 움직여서 하게 되는 상황으로 연출을 하게 된 것 같다.

이해영:
보통 남성감독이 만든 멜로영화를 보면, 그 감독이 영화 속의 여성 캐릭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절절히 느껴진다. 그런데 <만추>에서는 특이하게도 김태용 감독이 탕웨이의 입장에서 현빈을 그리워하고 동경하고 있다는 느낌이다.(웃음) 영화의 모든 사연과 아픔은 모두 탕웨이에게 있는 반면, 현빈에게는 긴장감은 전혀 주어져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탕웨이는 자신이 어떤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해야하는지를 매 순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현빈은 자기가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시크릿 가든>에서는 자신의 재능과 매력을 너무나 잘 알아서 완벽하게 컨트롤하며 연기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매력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연기하는 <만추>에서의 현빈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김태용: 정확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웃음) 실제로 탕웨이와는 너무 편하고 친구 같았다. 탕웨이와는 애나라는 캐릭터의 디테일한 모든 움직임을 시연 하면서 같이 캐릭터를 만들어갔는데, 현빈의 캐릭터에 대해선 디테일한 디렉션을 거의 주지 못했다. 사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영화를 찍을 때 내가 현빈이 되어서 탕웨이같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마음을 열 생각도 없고, 욕망도 없데 갑자기 누군가 내 인생에 푹 들어온다면 어떻게 될지를 상상하면서 시나리오를 썼었다.

관객1:
데뷔작으로 공포영화인 <여고괴담2>을 만드셨는데, 어떻게 <만추> 같은 영화를 만드시게 됐는지, 그리고 특별히 시애틀을 영화의 배경으로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하다.
김태용: <여고괴담2>도 사실 사랑 영화다. 영화를 만들 때, 장르적인 것보다 한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이 있을 때 이 둘은 어떻게 될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이 공포든 다른 무엇이든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시애틀은 일 년에 55일 정도만 해가 뜰 정도로 워낙 흐린 날씨다. 가을, 겨울에는 자살률도 높고, 약간 신비로울 정도로 안개와 비로 항상 축축해 있다. <만추>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 때, 가을이란 것을 기후의 느낌과 공간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것에서 담아내고 싶었고, 그런 이유로 시애틀을 선택하게 되었다.

관객2: 영화의 일관된 톤을 잡아내는 것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다. 컨셉 조율하는 과정이나 헌팅하실 때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었나.
김태용: <만추>는 영화적인 무드가 중요한 영화이다. 무드를 만드는 여러 가지 요소 중에 촬영과 미술이 있는데, 영화의 룩과 관련된 부분은 사실 김우형 촬영감독과 류성희 미술감독 이 두 분이 다 하셨다. 워낙 잘 하셔서 연출자로서는 배우에 좀 더 많은 신경을 쓸 수 있었고, 많은 힘이 됐다. 두 분이 기본적이 준비를 처음부터 같이 해줬고, 두 배우는 현장에 미리 와서 두 달 동안 같이 리허설을 했다. 사전에 준비하고, 얘기했던 촬영감독과 미술감독, 배우들이 있어서 짦은 촬영 기간을 소화해 낼 수 있었다.

관객3: 포크 장면에 대해 궁금하다. 아마도 애나가 훈이 자기를 위해서 싸웠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가 첫사랑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게 하는 데에 그 장면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는 사실 애나의 삶에 많은 책임이 있을 수 있는 인물인데도, 미안하다고 말한 뒤 무언가 더 덧붙이지 않고 장면이 끝난다.
김태용: 그 장면의 리허설을 하면서 감을 도저히 못 잡았었다. 너무 웃겨서도 안 되고, 너무 슬퍼서도 안 되는 어떤 지점, 웃다가 갑자기 ‘어, 이게 뭐야’ 이런 느낌이어야 했다. 그런데 어떤 때는 감정이 과해서 애나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슬픔이 너무 확 오고, 어떤 때는 너무 가볍게 가다보니 애니가 울 때까지도 우리의 웃음기가 아직 남아있게 되어서 어려움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 원하는 만큼,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것으로 나온 것 같다.


관객4: 영화가 몽환적인 느낌이었다. 몽환적인 느낌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안개의 역할이 궁금하다.
김태용: 안개는 이 영화의 제일 중요한 요소다. 가만히 보면 <만추>는 정말 단순하고, 어떤 것도 숨기는 것 없이 툭툭 가는 영화다. 그런데 영화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안개가 걷히고 나면 다른 게 보일 수도 있는데, <만추>는 안개를 깔고 봐야만 하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안개를 걷고 보려고 하면, 오히려 이 영화를 제대로 못 본다고 생각한다. <만추>의 안개는 단지 미장센의 역할 이상으로 이 영화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제일 큰 요소인 것이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 주원탁(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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