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인터뷰] 장 프랑수아 로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프로그램 디렉터

여섯번째를 맞은 '2011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영화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러 내한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프로그램 디렉터 장 프랑수아 로제 씨를 지난 13일 시네마테크 마스터클래스가 열리기 전 서울아트시네마 로비에서 만났다. 그가
말하는 영화의 즐거움은 무엇일까? 그가 느낀 시네필의 즐거움, 극장의 즐거움, 한국영화의 즐거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디렉터로써의 즐거움 그리고 시네마테크의 즐거움을 들어봤다.


시네필의 즐거움은?
내가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마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어머니가 영화를 좋아하셔서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영화를 자주 시청하였다. 어릴 때부터 그 옆에서 같이 영화를 보며 자라왔다. 60, 7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내 연령대의 사람들은 나처럼 극장에서 보다는 텔레비전으로 영화를 더 많이 접했다. 집에 있는 텔레비전으로 자연스럽게 접하고 좋아하게 된 영화에 대한 애정이 커져서 나를 시네필로 만들었다. 어렸을 적에는 영화가 너무 좋아서 가정용 캠코더로 짧은 영화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연출은 나의 역량이 미치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나는 창의적인 예술가형은 아니다. 나는 영화를 보고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더 잘한다고 생각하고 더 좋아한다.

극장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는 제리 루이스의 <팻시>(1964)였다. 너무 어려서 내용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봤다. 나중에 크고 나서야 줄거리 파악이 됐다. 어린시절 아프리카에서 2년을 보낸 것 또한 나에게 색다른 극장의 경험을 선사했다. 코트디부아르의 아비장이란 도시에서 살았다. 그곳엔 극장이 많이 있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나는 그중 한곳에서 나의 9살 10살 시절을 보냈다. 한 스크린에서 다른 영화들이 연속상영이 됐는데 한번 앉아선 그날의 상영작을 모두 보곤 했다. 집 그리곤 해변, 극장, 집, 해변, 극장만을 왔다 갔다 했다. 극장에 갈 때면 3번째나 4번째 줄을 선호한다. 나는 영화의 전체적인 프레임을 내 눈에 다 담고 싶기 때문에, 스크린에서 너무 멀게 앉지 않는다.

한국영화에 대한 느낌은?
내가 한국에 방문하기 전 보아온 한국영화들은 한국 특유의 에너지를 전달해주기에 충분했다. 영상 속에 이미지들은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고 한국이란 곳에 호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국에 처음 온 것은 2004년이다. 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왔었다. 서울은 6번의 한국방문중 3번밖에 오지 않았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넘치는 에너지에 압도당했고, 이곳에서 만난 한국 영화인들의 친절함에 반했다. 한국 영화감독들과 평론가들을 만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한국인의 감성도 조금은 배울 수 있었다. 한국 영화에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에너지와 사랑스러운 감성이 있다. 처음 본 한국영화는 1989년에 프랑스에서도 개봉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이다. 그다지 마음에 들었던 영화는 아니지만 영상이 좋았다. 나를 진정한 한국영화의 세계로 이끌어 준 것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들이다. 내가 이탈리아의 한 영화제에서 그의 <씨받이>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그의 영화세계에 반했고 그가 만든 다른 작품들도 모조리 찾아보았다. <서편제>또한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이다. 임권택 감독의 작품에서 묻어나는 한국의 혼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한국영화에 빠지게 되었다. 이번 3월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는 홍상수 회고전을 할 것이다. 홍상수 감독이 직접 와서 마스터 클래스도 할 텐데, 굉장히 기대 된다. 나는 그가 현재 세계영화계에서 매우 영향력 있고 중요한 감독 중 한명이라 생각 된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디렉터로써의 갖는 즐거움이 있다면?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진 않았다.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했다. 다만 내가 이쪽으로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적절한 타이밍에 맞는 일터와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 같은 프랑스의 CNC 라는 곳에서 운영과 행정업무를 보았다. 거기서 1991년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디렉터가 된 도미니크 파이니를 만났다. 그는 당시 영화 제작자였는데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일을 맞게 되었고 나에게 같이 일하자고 제의를 했다. 나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20년이 되도록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디렉터로 일해 오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이 일은 시네필인 나에겐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된다. 힘이 닿는 한 계속적으로 이 일을 할 것이다.

시네마테크는 OO다.
시네마테크란 사람과 영화를 위한 공간이다. 모든 영화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상업영화, 독립영화 또는 어린이용 영화, 여성용 영화, B급영화, A급영화, 미국만을 위한 영화, 한국만을 위한 영화로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런 분류적인 개념에 찬성하지도 않는다. 모든 영화가 분별되는 특징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영화는 영화다. 모든 영화는 시네마 Cinema 라는 한 개념 안에 있는 예술적인 존재이다. 그리고 시네마테크는 고전영화나 어려운 영화만을 상영하는 곳이 아니다. 모든 영화를 아울러 상영하는 극장이다. 모든 형식과 내용, 스타일, 시대 그리고 감성의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를 보러오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공간이 시네마테크라고 생각된다.

(인터뷰 : 시네마테크 서울 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배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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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2일, 막스 오퓔스의 저주받은 걸작 <롤라 몽테스>의 상영 후 이 영화를 추천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장 프랑수아 로제 프로그램 디렉터와의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다. 개봉 당시 상업적 이유로 제작자들에 의해 함부로 편집되는 불운을 겪었던 이 영화는 반세기가 지난 후에야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대대적인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감독의 본래 의도에 가장 가깝게 재탄생되었다. 장 프랑수아 로제는 이 자리에서 영화에 관한 이야기 외에도 필름 보존 및 상영 뿐 아니라 복원에 있어서 시네마테크의 역할과 그 작업과정에 대한 뜻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훌륭했던 영화만큼이나 흥미와 공감을 불러일으킨 그 시간의 일부를 전한다.


장 프랑수아 로제(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프로그램 디렉터): 우선 이 영화의 역사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영화 뿐 아니라 프랑스 영화계의 역사를 잘 상징해주는 영화다. 감독 막스 오퓔스는 1936년에 독일에서 망명하여 프랑스에서 영화를 만들다가 2차 대전 초에 할리우드에서 몇 편의 영화를 찍고 다시 프랑스에서 4편의 영화를 감독했다.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영화다. <롤라 몽테스 Lola Montès>(1956)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특히 높이 평가되는데,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롱테이크와 복잡한 카메라 움직임을 좋아했다. 그래서 바로크적인 스타일의 감독으로 불린다. 이 작품은 가장 극단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사실주의의 느낌이 사라지면서 꿈같은 것이 그 자리를 대체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인, 독일인 두 사람의 제작자가 이 영화를 제작했는데. 처음 공개 된 이 영화에 관객들은 거의 폭동 수준의 난폭한 반응을 보였고 평론가들은 완전히 혹평 했다. 상영기간 동안 영화를 본 관객들이 줄 서 있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지 말기를 권유하고 심지어는 경찰들이 자제를 시켜야 할 정도였다. 또한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나쁜 취향, 나쁜 독일 취향의 예라고 말했다. 단지 몇몇 젊은 평론가들만이 이 영화를 지지했는데, 그 중 대표적으로 당시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였던 프랑수아 트뤼포가 있다. 그는 영화가 너무 전위적이어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다소 공격적으로 이 영화를 옹호했다. 어쨌든 영화는 상업적으로 실패했으나 비용이 많이 든 작품이었기 때문에 제작자들은 영화를 변형시켜 재탄생시켜보고자 했다. 막스 오퓔스 감독은 요양소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몇 달 뒤에는 세상을 떠났다. 영화에 대한 평가가 그의 죽음의 영향을 다소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영화에서 첫 번째로 바뀐 부분은 모든 외국어 대사들, 즉 영어, 독어 대사들이 프랑스어로 더빙됐다는 점이었다. 제작자들은 세계주의적 경향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변화도 그다지 상업적 이익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2,3년 후 국제적으로 개봉 될 때 또 재편집하게 된다. 이 때 플래시백이 모두 사라졌고, 이야기는 순차적으로 재배치되었으며,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내레이션이 추가되었다. 또한 몇몇 장면을 편집해버렸다. 그래서 <롤라 몽테스>는 저주받은 걸작이 되었고 원래 감독이 의도한 부분은 60분 밖에 남지 않았다.

영화인들은 작품을 어떻게 복원해야할지 난감했는데, 1966년 이 영화의 제작사가 파산하면서 이듬해 제작자 피에르 브롱베르제가 영화의 상영권과 그 외 모든 자료들을 인수한다. 그는 처음에 오퓔스가 의도했던 영화로 돌려놓기 위해 이를 재편집했다. 우리는 2007년에야 오리지널 필름을 재발견했다. 오늘 상영된 작품은 이 버전으로, 오퓔스가 처음 편집한 영화와 가장 가까운 버전이다.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다양하고 복잡한 노력들이 필요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영화 박물관이다. 박물관의 역할은 보존과 전시다. 때로 보존 작업에는 복원도 포함이 된다. 이 역시도 시네마테크의 주 작업 중 하나이다. 이 영화를 처음 버전대로 복원하기 위해서 우리는 브롱베르제의 딸인 로랑스 브롱베르제가 가진 네거티브 필름을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처음 봤을 때, 이 네거티브 필름은 온전치 못했으며 복원을 위해, 막스 오퓔스의 아들인 영화감독 마르셀 오퓔스로부터 그의 촬영 당시 제작 노트를 받았다. 그 후 유럽 전체에 퍼져있는 아카이브에서 이 영화의 다른 버전들을 찾았다. 그 중에서 벨기에에서 처음에 의도했던 편집과 가장 유사한 버전을 찾아냈다. 그래서 이런 여러 버전들을 처음의 오리지널 시퀀스대로 재편집을 했다. 이 네거티브 필름의 컬러가 다 사라졌었기 때문에 복원이 필요했으며, 다양한 필름들 간에 각각의 비율이 다르다는 문제도 있었다. 그래서 테크니컬러의 LA연구소로 가서 디지털 작업으로 복원하며 색을 되찾고 화면에 나타나는 잡티들을 제거했다. 또한 많은 버전들이 스테레오 사운드가 아니었기 때문에 음향을 손봐야 했다. 그리하여 영화는 디지털 프린트 되었고 이를 나중에 35mm프린트로 인쇄했다. 이 필름은 칸느 영화제의 클래식 부문에서 상영되었다. 오늘 상영된 것은 35mm 필름이다. 영화는 디지털 복사본과 35mm복사본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35mm를 좋아한다. 이 영화가 처음에 이 버전으로 만들어졌었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시네마테크는 박물관이며, 이러한 발상은 영화가 예술의 한 형식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만약 영화가 예술이라면 스크린에 상영될 뿐 아니라 필름으로서 보존되어야한다. 복원은 보존의 한 방법이고, 파괴 된 영화를 구해내는 일이다. 이 경우에도 제작자들에 의해 파괴 되었던 막스 오퓔스의 영화가 50년 후에 본래의 버전을 되찾게 된 것이다.

관객1:
최근에 고전영화 복원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만약 오리지널 프린트가 온전히 남아있어서 그걸 복원할 수 있으면 좋지만, 우리나라 하녀의 예도 있고, 오리지널 프린트가 없으면 다른 판본 여러 개를 모아서 제작노트를 참고해서 복원한다. 그런데 이처럼 여러 판본이 있을 때 복원된 완전판만이 정통으로 인정받고 이전 판본들, 손상된 판본들은 잊혀져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판본들에도 접근 가능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장 프랑수아 로제: 그래서 영화를 복원할 때는 윤리적 바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이드라인을 보자면 처음에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그가 넣지 않기로 결정한 씬은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오퓔스의 다른 영화인 <윤무>의 예를 들자면, 제작자가 감독이 이미 편집한 부분을 추가로 넣어서 상영했었는데 이는 옳지 않았다고 본다. 이것이 필요하다면 감독에 의해 덧붙여졌어야 한다. 몇 주 전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편집된 17분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이 영화 제작 과정에 있어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줄 수는 있겠으나 아무리 좋아도 영화에 다시 덧붙여서는 안 된다. 또한 영화 복원 중에 생겨난 다른 판본들은 당연히 보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여러 자료들은 이 영화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고 이 작품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알려주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복원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먼저, 손상되었던 영화를 감독의 의도에 가장 가깝게 물리적, 기술적으로 되돌리는 작업이다. 하지만 두번째로, 그 뿐만이 아니라  기술적 복원과 함께 문화적인 재평가, 예술적, 비평적 논의가 병행해야만 한다. 최근 복원과 관련해서 이런 사회, 문화적 맥락까지 충분히 고려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저 영화제에서 군중을 끌기 위한 쇼와 이슈로써만 이용되는 경향도 있어 보인다. 
장 프랑수아 로제: 복원의 과정은 영화에 대해서 알게 되고 배우게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복원을 생각할 때는 조심해야한다. 복원자들 중에 유토피아적 자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복원이 처음 개봉된 그대로의 영화와 같아야 된다는 생각 등이다. 그러나 우리가 영화를 경험하는 상황은 늘 다르다. 우리가 첫 번째 영화와 완전히 같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기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현재의 관객이 과거의 관객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의 복원은 영화의 삶의 한 부분이며 일종의 진화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관객2:
영화가 당시 대중들에게 그토록 격렬히 외면 받은 이유가 영화의 완성도 때문인지, 감독의 시각 때문인지, 아니면 혹 페미니즘 때문인지 궁금하다. 또한 이것을 복원하게 된 이유가 이 영화와 감독의 비극적 운명 때문인지 아니면 영화가 이후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인지 궁금하다.
장 프랑수아 로제: 페미니즘과는 관계가 없고 영화의 전반적인 질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서커스 같은 부분이 고급스런 취향으로 보이지 않았고, 여주인공인 당대의 스타 마르틴 캐롤이 영화 내에서 롤라 몽테스의 10대 연기를 하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여겨졌다. 또 감독이 독일 감독이었기 때문에 그의 스타일이 프랑스와는 다르고 좀 더 저질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영화 복원의 의미라 하면 우선 이 영화가 명작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50년대의 대표적인 영화이며 막스 오퓔스의 가장 극단적인 영화이다. 사실주의적 경향은 축소되고 점점 고독해져 가는 한 여자의 운명과 상상적인 부분이 결합되면서 이미지와 형식적인 부분이 강조된다. 막스 오퓔스는 가장 위대한 영화작가 중 하나이다. 우리는 이것을 다시 찾아내고 싶었다. 그 영화의 제작자들이 영화를 재편집했을 때 영화의 플래시백과 편집 순서, 보이스 오버 등을 다 바꿔버렸기 때문에 영화의 아름다움은 사라졌다. 우리는 영화 본래의 아름다움들을 되찾고 싶었다. 여러 시퀀스가 나눠져 있고 섞여 있고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 또한 서커스 장면의 어마어마한 세트, 이를 연출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와 요소들이 들어가는데 이 다양성은 영화를 더 위대하게 한다.

김성욱: 두 시네마테크가 다 비영리 민간법인이라는 점이 비슷하다. 80%란 말로는 감이 안 오실 텐데, 100억 단위가 넘는 예산이기에 사실 비교할 것은 못된다.(좌중 웃음) <롤라 몽테스>를 보면 여자의 운명이 영화의 운명과 오버랩 되는 인상을 받는다. 오늘 이야기 되진 않았으나 이 영화는 여러 측면에서 서정적이고 정중하고 우아하고 아름답다. 그런데도 스타일적인 측면에서는 굉장히 급진적이다. 이것이 종종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까닭은, 내용이 이해하기 어렵다기 보단 이런 형식적 급진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리: 백희원 서울아트시네마 관객에디터, 통역: 김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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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보관 중인 12편의 작품을 모아 상영하는 매우 특별한 섹션을 마련하였다. 이 영화들이 상영되는 주간에 맞춰 내한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장 프랑수아 로제는 이날부터 3일간의 일정으로 시네토크 및 시네마테크 관련 포럼에 참여하게 된다. 그 첫 번째 순서로 필립 가렐의 <내부의 상처>와 장-마리 스트라우브, 다니엘 위예의 <로트링겐!> 상영 전에 짧은 영화 소개가 있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이번에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시네마테크의 역사 안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 영화를 소개하는 특별전 행사를 열게 됐다. 동시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장 프랑수아 로제 씨를 초대하여 오늘부터 내일 모레까지 이어지는 시네토크 자리를 준비했다. 특히 일요일은 시네마테크와 관련된 포럼이 열릴 예정이다. 오늘은 영화 상영 전에 간단한 영화 소개만 해 드릴 것이다.

장 프랑수아 로제(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프로그램 디렉터): 오늘 관람하실 작품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드리겠다. 오늘 보실 작품은 두 작품인데, 하나는 필립 가렐의 <내부의 상처>이고 연이어 보실 작품은 장-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의 <로트링겐!>이다. 이 감독들은 영화적 모더니티의 매우 급진적인 방식을 대표하는 감독들이라 할 수 있다. 필립 가렐은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디렉터인 앙리 랑글루아에 의해 소개되었다. 랑글루아는 30년대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설립하고 77년에 죽을 때까지 시네마테크를 지킨 사람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수많은 프랑스 시네필들이 무성영화의 클래식들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60년대와 70년대에 앙리 랑글루아는 때때로 관객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관객들에게 F.W.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와 같은 독일 표현주의 무성영화의 걸작을 보여주겠다고 관객을 불러 모은 후, 사실은 그 영화가 아니지만 그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작품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상영한 것이 필립 가렐의 영화들이었다. 이는 필립 가렐의 영화가 아주 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필립 가렐 감독의 작품은 극장 개봉이 되지 않았었고, 오로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아주 소수의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필립 가렐의 영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드리긴 어렵지만, 필립 가렐의 영화에서 얼굴은 풍경이고 또 풍경은 얼굴과 마찬가지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오늘 상영할 프린트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90년대에 직접 프린트를 한 것이다. 당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디렉터였던 도미니크 파이니의 주도로 필립 가렐의 모든 영화들을 복원하고 프린트로 만들었다.

<로트링겐!>에 대해 몇 마디 첨언하자면, 장-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는 아주 급진적인 영화감독들이었다. 그들의 특징은 음악적 표현으로서 영화와 문학을 충돌시키는 점에 있었다. 언제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 <로트링겐!>은 프랑스 작가인 모리스 바레스의 작품을 토대로 했다. 이 소설의 제목은 <콜레트 보도슈>이다. 1870년대 있었던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후에 프랑스가 독일에게 넘겨주었던 로트링겐 지방에 대한 소설로서, 가끔 전쟁 중에 우리들의 나라를 잃기도 한다는 사실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을 낭독하는 사운드와 함께 과거에 그 일이 일어났던 실제 장소의 현재 모습을 찍은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세계화에 반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상영본 역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1995년에 직접 프린트한 버전이다.

김성욱: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공개되면서 사람들이 무르나우를 처음 발견했던 것처럼, 가렐의 영화는 시네마테크의 아들처럼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에서 소개가 됐었다. <로트링겐!>은 감독의 요청에 의해 자막이 없이 상영된다. 왜 그런 요청을 했을지 영화를 보면서 느껴보시길 바란다.

(정리 : 박영석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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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대표하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1936년 앙리 랑글루아, 조르주 프랑쥬, 장 미트리 등이 참여해 비영리 단체로 사라지는 무성영화를 보존하고, 복원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박물관의 기능으로 출범했다. 앙드레 말로의 표현을 빌자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상상의 박물관이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본격화된 것은 물론 전후의 일이다. 1948년 10월 메신느 거리에 50석 규모의 작은 상영관과 영화 박물관을 개관하면서 시네마테크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고다르, 트뤼포, 로메르, 리베트, 샤브롤 등의 미래의 누벨바그 감독들은 어느 날 랑글루아의 낡고 허름한 작은 영화의 집을 방문했고 거기서 진정으로 영화의 빛과 마주했다. 그들이 접한 빛은 당시 카누도와 델뤽을 매개로 ‘알고 있다’고 여겼던 영화들, 혹은 주말의 명화에서 접하는 그런 영화들이 아니었다. 젊은 친구들에게 진정한 영화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영화들, 볼 수 없었던 영화들이었다. 혹은, 장 콕토의 표현을 빌자면 ‘저주 받은 영화들’이었다.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는 미학적 저항의 교두보와도 같은 장소였다. 누벨바그리언들이 이곳에서 발견한 것은 영화의 되찾은 시간들, 기억들, 역사들이다. 랑글루아는 50석의 상설관에서 야심찬 기획으로 전쟁의 고아이자 과거가 없는, 혹은 과거를 원치 않았던 아이들에게 진정한 영화의 기억을 선물했다. 그 과거란 결국 언제나 뒤늦은 기억들이다. 이들은 이후에 작가주의를 주창했지만 방점은 언제나 작품에 있었다. 작가 이전에 작품이, 작가 이후에 작품이 존재한다. 작가는 부재하지만 사라진 그들의 작품은 여전히 젊고 영원하다. 누벨바그리언들은 작품에서 부재의 빛을 발견한 자들이었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허식에 가득한 이들이 수다스럽게 본 영화들을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는 것과는 다른 일이었다. 누벨바그리언들이 발견한 빛은 이제는 사라진 과거의 흔적과 잔재들이다. 시네마테크와 더불어 비평은 그 흔적을 더듬어 작품의 유예된 시간성을 회복하는 작업이었다.


전후, 전 세계를 통틀어 하워드 혹스의 영화를 무성에서 유성영화까지, 그리고 코미디, 스릴러, 서부극, 누아르의 영화들을 모두 볼 수 있었던 곳은 단연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 뿐이었다. 앙드레 말로가 ‘벽 없는 미술관’이라 불렀던 상상의 박물관을 랑글루아는 현실 속에서 실현했다. 영화의 박물관은 영화의 새로운 관계들을 매번의 상영을 통해 회복하는 곳이었다. 범주화나 연대기, 혹은 연상이나 연합에 의해서가 아니라 항구적인 이질성, 생산적인 혼란을 거치면서 영화의 진정한 역사가 창조된다.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의 매번의 상영을 통해 영화의 역사가 과거와의 관계에서 갱신되고 매번 변경된다고 믿었다. 이는 하나의 총체적인 역사가 아니라 일시적이고, 덧없고, 불안정하고 복수적인 영화사의 시간성을 상정하는 기획이었다. 랑글루아의 상영은 영화의 역사를 마치 초현실주의자가 그러했듯이 매번 시공간의 거리와 차이가 있는 영화들 간에 새로운 성좌를 그려낼 수 있게 해주었다. 젊은 비평가들은 랑글루아 덕분에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뒤범벅으로 볼 수 있는 자유를 누렸고, 이는 창조의 자유로 이어졌다. 시네마테크가 없었다면 트뤼포, 샤브롤, 로메르, 고다르의 새로운 영화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68혁명을 거치면서 힘든 1970년대를 보냈다면, 1980년대 이래로 ‘영화의 집’의 건설계획 등을 거쳐 영화박물관의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05년 영화도서관과 박물관, 시네마테크가 함께 베르시로 이전해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재정의 80%를 국가의 도움으로 받고 있지만 시네마테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들은 국가의 어떤 간섭도 없이 ‘문화적 예외’의 보호를 받고 있다. 이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특별전’은 그런 시네마테크의 역사 안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은 프랑스 영화들을 상영하는 행사이다. 새롭게 복원된 영화들, 시네마테크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작가들의 영화, 시네마테크가 발굴한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이 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함께한 영화들. 이는 프랑스 영화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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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프로그램 디렉터 장 프랑수아 로제 내한
-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역사와 만나다!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www.cinematheque.seoul.kr 대표 최정운)는 올해로 6회째를 맞는 ‘2011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맞아 2월 13일 오후 4시30분에 서울 유일의 비영리 시네마테크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평소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장 프랑수아 로제를 초청해 시네마테크에 관한 현안을 논의하는 ‘시네마테크 마스터클래스’를 개최한다. ‘미래의 시네마테크’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마스터클래스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역사와 함께한 프랑스 영화 12편을 상영하는 ‘카르트 블랑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특별전’의 일환으로 열리는 행사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2002년 개관이래로 지속적으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협력해왔다. 특히, 지난해 서울아트시네마가 재정적 위기에 처했을 때,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대표이자 영화감독인 코스타 가브라스는 “정부의 안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서울아트시네마는 수년간 모범적인 방식으로 영화예술에 가치를 부여하고 진흥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이는 영화예술을 보다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서울아트시네마 운영진이 주도한 것으로 특별히 서울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지금의 시네필들에게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충분한 지원을 받아 독립적이고 안정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지속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완전한 독립 없이, 전용관을 갖지 않고서는, 또한 장기적인 공적 지원 없이는 한국의 시네마테크는 영화 예술을 보존하고 복원하고, 진흥할 수 없을 것”이라 밝혔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1936년 앙리 랑글루아가 주축이 되어 민간이 설립한 비영리단체로 영화를 보존하고, 복원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영화문화의 유산을 계승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네마테크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네마테크 중 하나이다. 동시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누벨바그 세대로 알려진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자크 리베트, 에릭 로메르 등의 세계적인 거장 감독들이 영화를 배우고 영화작업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영화문화의 요람이기도 했다.

21세기에 들어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영화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정부지원의 협조를 얻어, 2005년 영화도서관과 박물관이 함께 구비된 새로운 건물로 이전했고, 매년 감독들의 회고전과 특별전, 영화전시, 교육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파리의 대표적 명소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장 프랑수아 로제가 참여하는 ‘시네마테크 마스터클래스’는 그런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역사와 21세기의 시네마테크의 역할을 함께 논의하는 자리이다. 장 프랑수아 로제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전시와 프로그램 전반을 기획하고 있고, 한국영화 특별전을 개최한 공로로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시네마테크 마스터클래스’에서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설립의 역사, 정부지원과 민간의 역할, 박물관으로서의 시네마테크의 역할, 21세기의 시네마테크가 고민하는 문제들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이 자리에는 한국영상자료원의 프로그램 기획자인 오성지 차장과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램 디렉터가 함께 참여한다. 이번 마스터클래스’는 또한 프랑스의 사례만이 아니라, 현재 활발하게 진행중인 서울에 시네마테크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지난해 영화인들이 주축이 되어 발족한 ‘서울에 시네마테크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대표 이명세 감독)’는 서울에 시네마테크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지도 거의 십 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문화수도인 서울에 제대로 된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마련되지 못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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