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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Feature

카르트 블랑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Carte Blanche Cinematheque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1936년 앙리 랑글루아, 조르주 프랑쥬, 장 미트리 등이 참여해 비영리 단체로 사라지는 무성영화를 보존하고, 복원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박물관의 기능으로 출범했다. 앙드레 말로의 표현을 빌자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상상의 박물관이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본격화된 것은 물론 전후의 일이다. 1948년 10월 메신느 거리에 50석 규모의 작은 상영관과 영화 박물관을 개관하면서 시네마테크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고다르, 트뤼포, 로메르, 리베트, 샤브롤 등의 미래의 누벨바그 감독들은 어느 날 랑글루아의 낡고 허름한 작은 영화의 집을 방문했고 거기서 진정으로 영화의 빛과 마주했다. 그들이 접한 빛은 당시 카누도와 델뤽을 매개로 ‘알고 있다’고 여겼던 영화들, 혹은 주말의 명화에서 접하는 그런 영화들이 아니었다. 젊은 친구들에게 진정한 영화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영화들, 볼 수 없었던 영화들이었다. 혹은, 장 콕토의 표현을 빌자면 ‘저주 받은 영화들’이었다.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는 미학적 저항의 교두보와도 같은 장소였다. 누벨바그리언들이 이곳에서 발견한 것은 영화의 되찾은 시간들, 기억들, 역사들이다. 랑글루아는 50석의 상설관에서 야심찬 기획으로 전쟁의 고아이자 과거가 없는, 혹은 과거를 원치 않았던 아이들에게 진정한 영화의 기억을 선물했다. 그 과거란 결국 언제나 뒤늦은 기억들이다. 이들은 이후에 작가주의를 주창했지만 방점은 언제나 작품에 있었다. 작가 이전에 작품이, 작가 이후에 작품이 존재한다. 작가는 부재하지만 사라진 그들의 작품은 여전히 젊고 영원하다. 누벨바그리언들은 작품에서 부재의 빛을 발견한 자들이었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허식에 가득한 이들이 수다스럽게 본 영화들을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는 것과는 다른 일이었다. 누벨바그리언들이 발견한 빛은 이제는 사라진 과거의 흔적과 잔재들이다. 시네마테크와 더불어 비평은 그 흔적을 더듬어 작품의 유예된 시간성을 회복하는 작업이었다.


전후, 전 세계를 통틀어 하워드 혹스의 영화를 무성에서 유성영화까지, 그리고 코미디, 스릴러, 서부극, 누아르의 영화들을 모두 볼 수 있었던 곳은 단연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 뿐이었다. 앙드레 말로가 ‘벽 없는 미술관’이라 불렀던 상상의 박물관을 랑글루아는 현실 속에서 실현했다. 영화의 박물관은 영화의 새로운 관계들을 매번의 상영을 통해 회복하는 곳이었다. 범주화나 연대기, 혹은 연상이나 연합에 의해서가 아니라 항구적인 이질성, 생산적인 혼란을 거치면서 영화의 진정한 역사가 창조된다.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의 매번의 상영을 통해 영화의 역사가 과거와의 관계에서 갱신되고 매번 변경된다고 믿었다. 이는 하나의 총체적인 역사가 아니라 일시적이고, 덧없고, 불안정하고 복수적인 영화사의 시간성을 상정하는 기획이었다. 랑글루아의 상영은 영화의 역사를 마치 초현실주의자가 그러했듯이 매번 시공간의 거리와 차이가 있는 영화들 간에 새로운 성좌를 그려낼 수 있게 해주었다. 젊은 비평가들은 랑글루아 덕분에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뒤범벅으로 볼 수 있는 자유를 누렸고, 이는 창조의 자유로 이어졌다. 시네마테크가 없었다면 트뤼포, 샤브롤, 로메르, 고다르의 새로운 영화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68혁명을 거치면서 힘든 1970년대를 보냈다면, 1980년대 이래로 ‘영화의 집’의 건설계획 등을 거쳐 영화박물관의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05년 영화도서관과 박물관, 시네마테크가 함께 베르시로 이전해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재정의 80%를 국가의 도움으로 받고 있지만 시네마테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들은 국가의 어떤 간섭도 없이 ‘문화적 예외’의 보호를 받고 있다. 이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특별전’은 그런 시네마테크의 역사 안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은 프랑스 영화들을 상영하는 행사이다. 새롭게 복원된 영화들, 시네마테크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작가들의 영화, 시네마테크가 발굴한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이 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함께한 영화들. 이는 프랑스 영화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