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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샤 기트리

연극화된 영화의 창조자, 사샤 기트리 사샤 기트리는 러시아 페트로그라드 출생으로 프랑스 극작가이자 배우로 출발했다. 아버지의 무대에서 배우로 활약하다가 극단을 위해 가벼운 희극을 쓰기 시작했는데 영국에서 많이 상영되었다. 그의 작품은 환상, 정열, 기지로 가득 차 있고 수법이 교묘했다. 1920년 런던에서 (1905)를 아내 Y.프랭탕과 공연했으며 자작 희극을 직접 연출하고 때로는 아내와 함께 출연하여 ‘연극의 귀신’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후 영화연출에도 관심을 보였는데 대표작으로는 (1919), (1925), (1936) 등이 있다.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 1930-1960’에서는 (1936)와 (1948) 두 편이 상영된다. 독일 점령기의 파리를 배경으로 한 프랑수아 트뤼포의 (1980)에는 장 포아레가 연기한 겉으로는 파렴치해 보이.. 더보기
시네마테크가 있었기에 우리는 이런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거다 시네필 정성일의 선택, 사샤 기트리의 시네토크 2월 11일 특별섹션으로 마련된 카르트 블랑슈: 시네필의 선택작으로 정성일 평론가가 추천한 사샤 기트리의 상영 후 정성일 평론가와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다. 정성일 평론가는 ‘영화가 상영되는 지금 이 시간에도 시네마테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김성욱 프로그래머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자’는 말을 건네며, 에 대한 이야기와 시네필의 강령을 전달했다. 그는 시네마테크의 관객들이 극장을 지키기 위해 행동해야만 할 것이라며 행동이 결여된 채 극장에 앉아있다는 것은 영화를 사랑하는 행위가 아니라고 말했다. 약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강연은, 시네마테크가 처한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자는 ‘선배 시네필’의 지혜와도 같은 것이었다. 정성일(영화평론가): 사샤 기트리.. 더보기
완전작가를 탐한 기트리가 삶을 대하는 자세 [영화읽기] 사샤 기트리의 사샤 기트리 영화의 핵심은 ‘역설’에 있다. 역설은 기트리의 영화, 기트리와 영화의 관계를 모두 이해하는 데 근사하게 쓰이는 말이다. 일례를 들어보자. 1912년, 연극에 주력하던 이십대의 기트리는 감히 ‘영화는 정점을 지나버릴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후 감독이 되어서도 그는 영화를 얕보는 태도와 주장을 굽히지 않았는데, 그런 자세는 기존의 영화 관습과 약호를 거부하는 결과를 낳았다. 영화에 대한 경멸에서 비롯된 기트리의 독창성은 누벨바그 감독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고, 혹자는 그를 ‘모던 시네마의 아버지’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한편, 그를 옹호하지 않는 자들로부터 단조로운 희극, 삼각관계 실내극 정도로 취급받는 기트리의 영화는 사실 반코미디의 정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