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크가 있었기에 우리는 이런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거다

2010. 2. 12. 17:17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시네토크

시네필 정성일의 선택, 사샤 기트리의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 시네토크

2월 11일 특별섹션으로 마련된 카르트 블랑슈: 시네필의 선택작으로 정성일 평론가가 추천한 사샤 기트리의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 상영 후 정성일 평론가와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다. 정성일 평론가는 ‘영화가 상영되는 지금 이 시간에도 시네마테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김성욱 프로그래머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자’는 말을 건네며,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와 시네필의 강령을 전달했다. 그는 시네마테크의 관객들이 극장을 지키기 위해 행동해야만 할 것이라며 행동이 결여된 채 극장에 앉아있다는 것은 영화를 사랑하는 행위가 아니라고 말했다. 약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강연은, 시네마테크가 처한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자는 ‘선배 시네필’의 지혜와도 같은 것이었다.

정성일(영화평론가): 사샤 기트리의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는 영화사적으로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영화 중 하나다. 이 영화에 관한 글을 찾는다면 호의적인 비평보다 비판적인 글들을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의 비판들은 대부분 이 영화가 연극적인 것이라는 부분을 지적한다. 여기서 질문. 영화가 연극을, 영화가 회화를, 혹은 영화가 문학과 음악을 끌어안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 하는 문제. 나는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를 보는 즉시 매혹되었다. 굉장한 걸 봤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트리의 영화 13편 정도를 보았는데 당시 영화를 함께 보았던 친구들은 아무도 나의 기트리에 대한 방어를 동조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내 세대에서 누구와도 기트리에 관한 사랑을 함께 나누지 못한 것이다. 그의 영화에 대한 사랑을 나눌 친구들을 기다리고 기다리며 내 방식으로 글을 읽고 영화들을 찾았다. 여전히 기트리에 대한 책들은 한글은 물론이고 영어연구서적도 찾을 수 없다. 프랑스에서조차 그에 대한 연구서적 2권과 자서전 1권, 연대기 1권 정도가 전부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의 목록을 정하면서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어쩌면 이번 영화제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을 때, 다른 영화는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사샤 기트리의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만큼은 꼭 상영했으면 좋겠다고 간곡히 부탁했다. 이유는 세대를 건너뛰어 나의 친구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8년 동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사샤 기트리의 영화가 단 한 편도 상영된 적이 없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다가 김성욱 프로그래머에게 올해 사샤 기트리의 상영계획이 잡혔다는 말을 들었다. 이기적으로 이야기하면 그걸 보기 위해서라도 서울아트시네마는 계속되어야한다. (웃음)

 

기트리는 매우 긴 시간 동안 작업을 했었고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감독이지만 프랑스바깥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 연극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영화를 연출했지만 동시에 연극무대를 포기하지 않았던 감독이다. 연극은 프랑스영화사에서 매우 뿌리 깊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연극배우들 대부분이 영화로 흘러들어왔으며 기트리도 그런 맥락에 놓여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물론 기트리는 장 르느와르의 위대함에 비견할만한 자리에 오르지 못했으며 그는 마르셀 까르네나 쥘리앵 뒤비비에가 아니었다. 나는 기트리가 까르네나 뒤비비에보다 더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기트리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비평가들의 관심 밖에 놓였다. 기트리를 비평의 범주에 놓이게 한 것은 1950년대 까이에 뒤 시네마의 젊은이들이었다. 특히 세 사람이 기트리를 옹호했다. 한 사람은 고다르였고, 다른 한 사람은 알렝 레네, 또 하나는 크리스 마르케였다. <사기꾼의 이야기>의 첫 장면, 제작과 음악감독 등을 소개하는 장면은 고다르의 <경멸>의 첫 장면과 동일하다. <경멸>은 프리츠 랑에게 바치는 존경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트리에게 바치는 존경의 표시이기도 하다.

 

“기트리의 영화가 발견된 건 시네마테크의 공로다”

 

기트리는 1895년 2월 21일에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이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뱀파이어> 상영 때 말씀드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트리는 태어나서 영화의 탄생을 본 셈이다. 그리고 그가 러시아 페테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는 뜻은 맑스주의의 보급이 진행된 시기를 말하며 볼세비키들의 활동이 조직화로 이어지는 초입의 시대였다. 그는 고향을 떠나 프랑스에 온 후 1차,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색출, 나치 승복 등 격정의 시기 속에 힘겹게 러시아인으로서의 생을 보냈다. 기트리는 연극에 매우 재능이 있던 사람이었다. 스무 살에 직접 쓴 희곡을 무대에 올리고 연출을 했다. 기트리는 연극에서 즉흥연기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느슨하게 구성된 연기의 가능성들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기트리가 영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15년, 그는 연극을 했던 사람답지 않게 <우리 집의 그들>이라는 다큐멘터리로 데뷔했다.

20세기 초 드가나 로댕, 마네와 같은 예술가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었지만 곧 영화에 관심을 잃고 연극에 전념했다. 그는 토키영화(유성영화)의 시작과 함께 다시 영화계로 돌아왔다. 1957년까지 기트리는 30여 편의 영화를 찍었다(이것은 미완성된 영화들 포함한 것이다). 영화계로 복귀한 기트리에 대해 비평가들은 대부분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다. 지나치게 연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필름 다르(예술영화를 낮춰 부르는)’라는 치욕을 받았다. 하지만 알랭 레네는 가장 강력하게 기트리의 영화를 지지했다. 레네는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를 자기 생애의 베스트 중 하나로 뽑았고, <히로시마 내 사랑>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기트리의 아이디어를 훔쳐왔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두 작품 사이의 친척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것은 결국 시네마테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기트리의 영화는 영화사적으로 버림받았기 때문에 상업극장에서는 볼 방법이 없었다.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시네마테크의 도움 때문이었고 랑글루아의 프로그래밍 덕분이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랑글루아에게는 원칙이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램을 감독, 배우, 장르 중심으로 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네마테크는 학교가 아니고 박물관이 아니며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 영화들을 섞어서 상영하며 관객들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사를 만들고 연관성을 찾아내고 영화들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충격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주의였다. 랑글루아는 졸작을 함께 상영할 때에 진정한 시네마테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레네는 기트리의 영화를 지지하며 이렇게 말했다. ‘순수영화와 싸워라.’ 시네필이나 비평가들 혹은 감독들 중에서 영화만으로 순수하게 생각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레네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진정한 영화는 순수한 영화 밖에서 활동하기 시작한다고 믿었다. 영화 이전에 존재했던 긴 예술의 행적을 부정할 수는 없는 거다. 기트리는 기꺼이 그 순수의 논리에 반하여 연극과 우정을 나눴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영화를 보시면 즉각적으로 발견하는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의 보이스내레이션. 토키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과거로만 넘어가면 모든 장면들이 단 한 번의 대사도 없이 보이스오버내레이션으로 찍혀진다. 틀림없이 브레송은 이걸 보았을 것이다(맹세코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시골사제의 일기>를 찍으며 사샤 기트리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히로시마 내 사랑>의 내레이션도 역시 기트리의 연장선인 것이다. 이 영화가 또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흔히 말하는 ‘크레타인 문제’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거짓말의 부분과 전체집합, 발화와 언술의 전체와 부분집합의 논제가 이뤄지는 거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궁극적으로 모우리가 보았던 모든 말들이 사기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민한 분들이라면 이게 이 영화의 핵심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문득 ‘이 모든 것이 사기라면 이것을 믿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이것은 즉각적으로 관객을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들이다.

 

기트리의 영화 중 내가 특별하게 사랑하는 영화는 그의 필모 중 마지막 세 편의 것이다. 물론 기트리의 영화들 중에 여러분을 질겁하게 할 만한 위인전 시리즈가 있다. (웃음)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에게 선입관을 주고 싶지 않으니, 그때까지 시네마테크가 버텨준다면 기트리의 회고전을 보며 다시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기트리를 방어한 레네의 이야기를 더 붙이면, 레네의 열렬한 팬들이라면 레네의 영화가 1970년대 중반이후 갑자기 전환점을 맞은 것처럼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레네는 그때부터 연극처럼 영화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런 레네의 영화들을 보면 아주 명백하게 이 영화들은 기트리가 만들었던 연극과 영화 사이의 우정관계에서 시네마틱한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를 보며 가장 감동받았던 건 사기를 치는 장면들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 영화를 보며 깨달은 사실, 영화 속의 사기행각은 단 하나도 흉내를 낼 수 없다는 것. 모두 영화적인 방법으로만 성립되는 사기라는 것이다. 카메라, 편집, 보이스오버내레이션 등이 있을 때 만 성립되는 사기, 기트리는 메소드 속에서 사기의 메소드가 어떻게 시네마를 성립하는 것인가. 순간 모든 것이 부서져버린 거다. 영화는 무엇보다 ‘시네마’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어떻게 견디는 것인지를 생각해야한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견디어진 영화들이 두 번 보고 DVD를 구입해서보고 그것이 세계 명작인양 소유하고 하는 유혹을 건네주는 것이다.


 

관객1: 영화의 연극적인 부분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 부탁드린다. 그리고 어제 <뱀파이어>를 보면서 느낀 것이 있는데 스턴트들이 굉장히 과감하게 짜여진 것 같았다. 무성영화의 공통적인 특징인가.

정성일: 연극적인 부분에 대한 것은 세트 디자인과 클로즈업 씬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단 세트라는 공간이 정해지면 그 공간을 스테이지화하는 것이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의 특징이다. 이 영화에는 클로즈업이 없는데 당대 비평가들은 이런 영화 속 동선이 지나치게 연극적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 무성영화에서 가장 중요한건 스펙타클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관객들을 매혹시킬만한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무성영화에서 가장 발전하지 못한 것이 멜로드라마다. 당시에는 카메라와 인물사이의 거리를 관습적으로 떨어뜨리는 방식이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액션들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팡토마>를 보시게 된다면 재밌는 부분들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이다.

관객2: 시네마테크를 얼마 다니지 않았는데 영화를 어떻게 봐야하나 고민해야 할 때가 많다. 항상 그냥 영화를 보러 오곤 하는데 어떤 마음가짐이나 태도나 접근방식을 가지고 오면 좋을지에 대한 조언과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필요성에 대해 말해달라.

정성일: 아무 생각 없이 이곳에 오는 게 맞다. 이곳은 다른 곳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순간 시네마테크는 게토가 되는 것이다. 행여 이곳에 온다고 해서 선민의식을 갖고 내 안목은 훌륭하다 생각하는 건 참 웃기다. 상영하는 영화가 좋고 프로그램이 좋아서 여기에 오는 것 뿐이다. 시네마테크 전용관도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사실 어떤 영화를 상영하는가에 더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장소의 목표는 영화 상영에 있어야 하고, 지금의 이 좌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영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 공간을 확보하려 노력하는 거잖나.

관객3: 정성일 평론가가 관객들과 스크린 사이에서 말을 할 때 나에게는 그게 하나의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 시네필의 형님으로서 한 마디 한다면.

정성일: 마음 같아서는 시네필 소림사를 하고 싶다. (웃음) 하지만 지켜지지 못한 것이 많다. 일례로 키노는 100호를 만들지 못하고 끝났는데 중요한 교훈을 줬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들도 많았으나 ‘있을 때 잘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시네마테크가 있을 때 잘하셔야한다는 것이다. 그때 시네마테크가 있었어, 이건 다 헛소리다. 잘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각자 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답을 가지고 행동을 하면 된다. 그 답을 가지고 있어야 시네필이다. 답을 가지지 않고 이 자리에 앉아있으면 사실 그 분이 시네필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답을 갖고 행동하는 것 두 가지가 지금의 시네필 강령이 아닌가 생각한다. 세월이 좋아 태평성대 보내며 영화를 보던 시절은 끝났다.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만일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나는 그에게 ‘영화는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반문하고 싶어진다. (정리: 강민영)